왜 책을 캔디로 바꾸는가?
보름째 계속 책을 강매하고 있다.
강매는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들고 가서 얼굴을 마주 대하고 구입해주시라고 간청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을 선정해서 무조건 우체국 택배로 발송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책을 주문한 것도 아니요, 나와 오랜 인연이나 지속적인 좋은 만남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 분들의 인정에 호소를 해서 책을 판매하는 것이다. 먼저 책을 강매할 분에게 ‘책을 보내겠으니 받아주시라’는 문자 메시지를 정중하게 보낸다. 그 다음에 책 속표지 또는 A4 용지에 책을 판매하는 사연을 절절하게 적어서 보내고 상대방의 호의를 기다린다. 어느 누구에게서도 답장을 받을 생각은 하지 않는다. 책을 받고 당혹한 나머지 속으로 욕 만하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제 아무리 판매 수익금으로 난민들을 돕는다고 하더라도 나의 행위가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면 무례하기 때문이다. 책을 보내고 죄인의 심정으로 일주일 열흘 정도를 묵묵히 기다린다. 상대방이 어여삐 여겨서 책을 사줄 경우에는 보통 일주일에서 열흘 사이에 책값이 온다. 그러나 열흘을 넘어서면 책이 반납되어 오거나 아니면 책은 미아가 되고 책값은 꿩을 구워먹은 것으로 끝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판매하는 것은 미아가 된 책보다 자비로 받아들여진 책들이 더 많기 때문이요. 자비로 책을 구입한 분들이 책값을 후하게 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후원으로만 하는 일을 잠간 멈추고 스스로의 노고를 통해서 주님의 마음자리에서 절박한 마음으로 이웃들과 나누며 섬기고자 해서이다.
책을 받아주시라는 메시지를 쓸 때 구차하다는 생각에 슬퍼지기도 한다. 언제까지 이런 일을 계속해야 하는가? 하면서 눈물을 흘릴 때도 있다. 그러나 정작 상대방이 무뚝뚝한 음성으로 책을 가져가라는 말을 할 때 의기소침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세상에 모든 장사들에게 반납은 다반사요, 나또한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로 모욕적인 언사를 들으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금번에는 책 판매수익금으로 3년째 정글에서 난민으로 지내고 있는 미얀마 친족 아이들에게 성탄축하잔치를 열어주기로 하였다. 책을 많이 팔아야 보다 많은 난민캠프에서 성탄축하잔치를 열 수가 있다. 그리고 그 날 만이라도 성탄의 무드 속에서 난민 아동들이 캔디와 쿠키를 실컷 먹을 수 있도록 해주기로 하였다. 그러니 내가 무례를 범하면서 까지 책을 강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올해 들어서 정말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으로 24차례나 긴급구호를 실시하였다. 긴급구호 시 구호팀이 난민캠프 현장으로 가기도 하지만 길이 너무 험하고 위험하면 난민들을 교통이 좋은 곳으로 오게 한다. 그럴 경우 산길을 오리나 십리 심지어는 삼십 리를 걸어오시는 분들도 계신다. 그런 분들이 아기를 등에 업고 자기는 쌀부대를 이고 따라온 대여섯 살짜리 아이들에게 작은 보따리를 들게 한다. 꼬마들은 혼자 몸으로 걷기도 피곤하건만 작은 보따리를 낑낑대며 들고 엄마의 뒤를 따라간다. 어떤 꼬마가 작은 보따리- 그 보따리 속에는 설탕과 식용유와 홍차 잎이 들어 있다. - 를 들고 졸면서 엄마 뒤를 따라가는 모습이 사진에 찍혔다. 보따리를 가슴에 부여안은 채로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너무 피곤하고 지쳐보였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그 아이의 얼굴이 한국전쟁 때 고아가 된 소녀의 얼굴과 겹쳐졌다. 전쟁으로 부모님을 잃고 수많은 전쟁고아들의 슬픈 눈빛이 나의 마음을 흔들었다. 눈물이 가슴에서 파도쳤다.
미얀마 난민캠프 현장에서 그들을 돌보고 있는 테흐로에게 아이의 사진을 보내서 그를 찾았다.
아이는 씨아씨 난민캠프에 살고 있는 6살 소녀로 이름이 “슈에 뉴 뽀우”였다. 3살 때 부모님
을 따라 피난을 나와서 정글에서 6살이 된 아이를 위해서 무언가 해주고 싶은데 해줄 것이
없었다. 마음껏 먹고 마시며 뛰어 놀아야 하는 나이에 난민캠프에서 겨우 끼니를 잇고 있는
아이의 가슴을 생각하니 가슴이 애틋해졌다.
정글에서 무엇을 보며 지낼까?
무슨 놀이를 하며 지낼까?
친구랑 소꿉놀이를 할까?
버섯 따러 다닐까?
나물 캐러 다닐까?
꽃을 좋아할까?
책을 읽을까?
글씨 공부를 할까?
노래를 부를까?
엄마에게 옛날이야기를 들을까? 등을 생각하면서 정글에서의 그의 생활을 상상해보았다.
아이에게 정글은 가혹하다. 정글에는 낭만도 다정함도 없다. 꽃도 열매도 거의 없다. 시냇물의
속살거림도 아름다운 새의 노래도 없다. 다만 무성한 숲과 칙칙한 습기와 온갖 벌레들이 있을
뿐이다. 순진무구한 아이를 정글로 몰아넣은 전쟁은 너무 악하다. 너무 악하다.
하루라도 빨리 아이를 정글에서 구해내야 한다. 그리운 고향으로, 집으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
그러나 내게는 전쟁을 끝낼 힘이 없으니 죄송하기 그지없다. 먼저 세상에 온 자로서 평화를
이루지 못하고 그들을 전쟁의 땅에 방치하는 것이 너무 미안하다.
뽀우의 기쁨과 행복을 빌면서 그에게 선물을 보낼 궁리를 하였다. 옷, 장난감, 책, 맛있는 과
자 등. 그를 위해서 선물할 것을 생각하였지만 번지가 없는 난민캠프에 사는 아이에게 선물이
도착할 리가 만무하였다. 그리고 그처럼 난민캠프에서 지내는 아이들을 생각해서도 그에게만
선물을 보내서도 안되는 일이었다. 뽀우를 즐겁게 해주고 싶지만 그것마저도 뜻대로 되는 일
이 아니었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고 있는데 테흐로가 그 아이를 왜 찾았는지 이유를 물어 왔다. 나
는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시간을 끌었다.
그 사이에 인도에 가서 우리 희망공동체의 어린이들, 공부방 학생들, 공부방 졸업생들을 만났
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 샨띠홈 아이들도 만났다. 우리는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였다. 희망공동체 아이들이 너무 열심히 자원봉사를 하여
식사를 여러 번 함께 하게 해주었다. 아이들은 환성을 지르며 기뻐서 날 뛰었다. 나는 칭찬과
함께 상으로 그들에게 과자와 캔디를 자주 나누어 주었다. 아이들은 희희낙낙하며 나에게 성
탄절에 와서 함께 지내 달라고 간청하였다. 성탄축제를 자기들이 준비할 테니 와서 참여만 해
달라고 하였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테흐로에게 대답하였다. 난민캠프의 아동들을 위해서, 뽀우를 위해서 성탄
축하잔치를 열라고. 그리고 아기 예수님의 선물로 무조건 한 아이에게 큰 사탕 한 봉지 씩
선물하라고 하였다. 가능하면 전쟁이 끝나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아이들이 슬플 때, 외로울
때, 두려울 때, 화가 날 때, 배고플 때 먹을 수 있도록 많은 사탕을 주기로 하였다.
모든 난민캠프에서 성탄축하잔치를 열고 모든 아이들에게 큰 봉지의 사탕을 선물로 주려면
최소한 한 아이당 100루피 정도가 든다. 큰 난민캠프는 20만 원정도, 작은 난민캠프는 10만원이면 충분하다. 아이들이 사탕을 먹으면서 캐럴송을 부르고 동방박사와 목자들의 꿈을 꿀 것이다. 그리고
사람 몸으로 오신 아기 예수를 만날 것이다. 아이들이 캔디를 먹으면서 슬픔도, 고통도 잊고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정원의 백합화로 잘 성장할 것이다.
지난 보름 사이에 난민아동들의 사탕을 만들기 위해서 350 여권을 들고 다녔다. 들고 나가서
팔기도 하였지만 물론 무례하고 무식하게 택배로 보내서 강매하는 방법을 더 많이 이용 하였
다. 그러나 하루에 2,30권의 책을 들고 나가려면 편지를 쓰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책을 포
장 하는데 꼬박 두 시간 정도가 걸린다. 우체국에서 배송하고 난 뒤에는 혹시 너무 이기적이
고 무례하다고 비난하는 문자 메시지가 오지 않을까? 가슴 졸이며 기다린다. 위산이 역류하는
시간이다. 죽은 것처럼 숨을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는 시간이다.
그러나 나에게 쓰고 아픈 것이 아이들에게 달콤한 것이 되니 책을 판매하면서 겪는 모든 것들
이 감사가 되고 은혜가 된다.
가장 먼저 뽀우네 마을에서 성탄축하잔치를 열었다.
뽀우가 캔디와 쿠키를 손에 가득 들고 기뻐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보면서 모든 피곤을 잊었다. 스트레스가 날아갔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뽀우가 전쟁 중에도 행복하며 평화의 사람으로 잘 성장하길
기도한다.
앞으로 판매해야 하는 450권의 책들이 또한 난민 아동들의 캔디와 쿠키가 될 것이다. 책을 쿠
키와 캔디로 바꾸기 위해서 가슴을 펴고 더욱 용기를 내기로 한다.
2023년 12월 15일 자시
우담초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