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를 보며 / 강한석
없으면 한 걸음도 옮기지 못하면서
벗어놓으면 잘 보지 않던 구두
문득 본다
뒤축이 한쪽으로 닳아있다
혼자 정의롭게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왔는데
기울고 기운 모습으로 앉아있다
평지는 없었다
둥근 지구에 면 맞춰 살지 못해도
진솔한 모습은 낡고 다정하다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밤이나
가벼운 음계를 밟는 아침에도
말 없는 순종으로 함께한다
선뜻 다른 신으로 갈아 신지 못하는
안온함으로
날마다 먼 길을 걸어간다
가시 길도 꽃길처럼 걸어온 날들
닳고 닳은 모습으로도
보이지 않는 길을 갈 수 있다
선연한 무지개를 바라보며
나만의 꽃 한 송이를 찾기 위해
꿈으로 바라보는 실크로드를 간다
꽃의 무게를 안고
하나씩 버려야 닿을 수 있는 곳
그곳을 향하여 나아간다
직선 / 강한석
직선이 꺾이지 않으면 모양을 만들 수 없다
더 많이 더 아프게 꺾이어야
보다 많은 면을 만들 수 있다
먼, 면은 선의 헌신이고 열매이다
선의 만남으로 세상은 만들어지고
세상은 만남의 축제이다
직선 위의 두 점을 정할 때 길이를 알 수 있다
수많은 점들 중에서
어느 것을 정할 것인가
먼저 단들어질 전체의 모양을 생각하여야 한다
타협하지 않은 직선은
창이 되고 칼의 모습이 된다
세렝게티의 포식자는 두 점 사이의 가장
가까운 직선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꽃을 찾는 나비는
하늘하늘 물결처럼 날아간다
사랑하는 우리가 직선이 되어
천 번을 그어 놓은 수많은 평행선
오늘도 건너오지 못하는 우리의 사랑이다
한쪽으로 휘어질 때
눈물 같은 만남이 있다
만남은 역사가 된다
우리동네 시인선 006
<붉은 지붕> 강한석 시집 P52, P116에서
카페 게시글
좋은 시 읽기
구두를 보며 외 / 강한석
안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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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5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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