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어머니’라는 말은 성모 마리아가 아들 예수님을 낳아 육친의 어머니가 되었듯이, 교회와는 신앙과 사랑의 모범으로 어머니가 된다고 믿는 신앙이자 성모 마리아의 별칭으로, 교부 시대까지는 마리아와 교회의 관계가 신학적으로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 소수의 교부 만이 동정녀로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것처럼 교회 또한 신자들의 동정 어머니라는 사실을 지적하였을 뿐이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중세까지 지속되어 몇몇 교부들이 은총이 가득하신 동정녀로서 그녀를 교회의 형상이나 교회의 가장 탁월한 일원 그리고 교회의 사랑스러운 어머니로서 표현하였으나 이 역시 커다란 흐름을 형성하지는 못하였는데, 그나마 ‘성 대 알베르토’(1200?~1280년, 도미니코 수도회의 주교이자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의 스승) 이후에는 교회와의 관계에서 간격을 좁히지 못하며 그렇게 중세 시대를 보내게 됩니다.
그러다가 20세기 초 교황 ‘비오 10세’(재위: 1903~1914년)에 의하여 마리아가 교회의 어머니로 다시 관계를 맺게 되는데, 교황은 교회에 대한 마리아의 기본적인 관계가 어머니로서 갖는 관계임을 공식적으로 선포하면서 은총이 가득하신 동정녀가 신비체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시라는 사실로 전체 몸인 교회의 어머니가 된다는 점을 강조하게 됩니다. 한편, 교회 역시, 사람들에게는 교회로부터 사람들이 초자연적 삶을 얻으며 성사의 수행을 통해 양육되기 때문에 또 ‘다른 그리스도’인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어머니가 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현대 신학에서 마리아와 교회 사이의 관계는 구원의 교의를 이해하기 위하여 필수적인 주제로 등장하고 있는데, 현대 신학자들은 마리아가 당신 아들의 구원 사업에 동참하신 것에 초점을 맞추면서, 마리아와 교회의 관계 역시 이러한 차원에서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 헌장> 제8장은 그리스도 및 교회의 신비와 관련시킨 동정 마리아에 관한 교리를 공식화하고 종합한 문헌으로, 이러한 교회에 대한 마리아의 모성적 위치가 명확하게 규정되었음에도 당시 공의회의 교부들은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라는 호칭으로 부르기를 주저했습니다. 이는 마리아의 모성적 역할이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유일한 역할을 격하시키는 것으로 인식될 위험 때문으로, 실질적으로 그분의 모성적 역할은 그리스도의 공로에서 나오고 철저하게 그분의 중재에 종속되어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교회 헌장 제8장은 우선 구원 사업에서 마리아는 동정녀로 그리스도를 잉태할 때부터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때까지(57항) 성자와 결합하였기 때문에 어머니가 되신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곧, 신앙의 나그넷길을 걷고 아들에 대한 일치를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충실히 보존하였으며, 하느님의 섭리대로 그 십자가 밑에 서 계셨고, 거기서 당신 외 아드님과 함께 심한 고통을 당하셨으며, 아드님의 제사를 모성애로 함께 바치심은 물론, 당신이 낳은 희생자의 봉헌을 사랑으로 동의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 19, 26) 하신 그 말씀으로 제자의 어머니가 되시고(58항), 아울러 당신 아들이 승천한 후 기도로써 초기 교회를 도와주셨던(59항) 것입니다. 이처럼 마리아는 당신 아들의 구원 사업과 성령의 활동에 전적으로 참여하여 신앙과 사랑의 모범이 되셨으며, 바로 이런 삶의 모습이 마리아를 교회의 가장 뛰어나고 가장 독특한 지체와 전형으로 보게 만드는 근거가 되며(53, 63항), 지상에서 한 역할에 못지않게 은총의 세계에서도 영혼들의 초자연적인 생명을 회복시키는 일에 함께하여 구원 사업에 협력하신다(61항)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재위: 1978.10.16.~2005.4.2.)는 이 같은 내용을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에서, 교회에 대한 마리아의 모성적 관계가 예수가 제자(요한)에게 어머니를, 어머니에게 제자를 맡기신 행위(요한 19, 25~27)로 확립되었다고 하면서, 주님의 뜻이 곧 마리아의 특징인 모성적 협력이 교회의 특징이 되기를 바란다는 점을 재확인하였습니다.
성모님의 달을 5월에 지내는 것은 유럽의 계절적 사회적 요인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꽃이 피고 화창한 봄철의 축제를 지내는 사회적 분위기에 성모님을 공경하고자 하는 신심이 자연스레 합쳐져 성모님을 축제의 중심으로 모시고 기도와 찬미를 드리려는 열망이 확산한 것이 성모 성월의 기원이라고 합니다. 이 같은 성모 성월에 호칭기도와 묵주기도를 바치며 성모님께 특별한 정성을 드리는 전통은 17~18세기에 수도 공동체로부터 시작되어 각 본당으로 빠르게 확산하였고 20세기에 이르러 서방교회 전역으로 확대되었습니다. ‘비오 12세’ 교황(재위: 1939.3.2.~1958.10.9.)은 1947년에 발표한 회칙 「하느님의 중재자」를 통해 성모 성월이 “거룩한 전례에 속하지는 않지만, 특별히 중요하고 품위 있는 신심 행위(182항)”임을 피력했으며, ‘성 바오로 6세’ 교황(재위: 1963.6.21.~1978.8.6.)은 1965년 폐막을 앞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그 결실을 풍성히 거두고, 두 번의 세계 대전의 아픔 뒤에 다시 세계 평화를 위협하던 냉전 상황을 환기시키며 특별히 온 세상의 평화를 위해 전 교회가 5월의 성모 성월에 더욱 열심히 성모님께 간구하자고 강조했습니다.
이후 ‘프란치스코’ 교황(재위: 2013.3.13.~2025.4.21.)은 전 세계적인 팬데믹 상황에서 성모님에게 기도하기를 권고하며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날을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로 선포했습니다. 특히 교회가 어머니 마리아를 본받아 여성적인 모성애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따스하고 온유하며 자비로운 성모님의 마음, 사랑 넘치고 포근한 어머니의 품을 교회가 신자들에게, 또 신자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처럼 현대의 교황님들은 성모 성월에 당시 교회가 처한 어려움들을 성모님께 봉헌하며 특별한 도움과 전구를 청해 오셨던 것입니다. ‘주님 부활 대축일’ 50일 뒤에 오는 ‘성령 강림 대축일’과 그다음 날인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은 주로 가정의 달인 5월에 거행되기에 우리가 성모 성월을 지내면서 전례 안에서 성모님의 삶을 되새기며, 따스하고 자비로운 마음을 이웃들에게 전하는 사람이 되기를 교회의 어머니께 청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 윗글은 ‘한국가톨릭대사전’의 내용을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 2026년 제21회 교육 주간 담화문(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교육위원회)
https://cbck.or.kr/Notice/2026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