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의 백팔번뇌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몇 천만년 스쳐온
오묘불가해한 대 우주의 혼의 세월
어이 버텨낼 수 있을지
수많은 선배이인 들의 스러지지 않는
영혼의 시향 만물에
끝은 있어도 천지는 끝없나니
백 년 쯤 살 고가는 여인숙이 아닐까?
화타는 의술로 한생
풍미 하였고 석가는 거리에서
생을 끝냈으매
과연 우린 그 무엇을 남길 수 있을지
역사의 부귀공명도 백년을 넘지 못하고
바람의 향기에 취해
스러지는 자연의 일부분 인데
수유는 찰 라이 듯
스쳐가는 세월의 한 단면 일 뿐
윤회의 사슬처럼 만상은
천변만화하여 그 끝을 알 수 없건만
세상 사 고달파도 인정은 남아있어
한번 두 번 진 목숨 빛
청풍명월로도 못 갚으니 친우들과의 극락지정
사랑의 정원 심연의 바다로 변했어라
저 멀리 선경에서 새벽 닭 우는소리
동녘이 밝아와
천지가 다시없을 나그네 길
기쁘기 한이 없네.
108번뇌※인간이 지닌108가지 번뇌를 뜻함
윤회의 사슬※수레바퀴처럼 끝없이 도는 것
지·수·화·풍·공※만물이 소생하는 다섯 가지 원소
어릿광대의 춤 2
저 하늘의 실구름처럼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지
서로 얼굴은 달라도 바람 같은 나그네 길
서로 가면 쓴 인생극단의 애절한 사연
주고받으며 날 새는지도 모르고
천상의 별님 달님도 함께 눈물 흘려주며
주고받는 막걸리 한잔 속가슴 아픈 어릿광대의 길
사랑하고 베푼 만큼 주고받는 것이 세상사거늘
짧은 시간 베풀고 나눠줘도 모자란데
어리석은 욕심으로 무거운 짐 지고 가려했던가!
쇠똥구리도 쇠똥을 끝없이 굴리지만
욕망이나 탐욕의 짐이 아닌
삶을 향한 생존의 수레바퀴랍니다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무거운 짐 가벼운 짐
털어버리고 갈 텐데 명예욕도 자랑스러움도
해주지 못한 것도
후회하며 떠나게 될 영원의 길
결국은 가야할 길
인세의 욕망과 탐욕의 우치에 사로잡혀
언제까지 사바세계 떠돌려는지
어리석고 어리석을 뿐이로세!
그대와 나
향기는 달라도 가고자 하는 길
차원의 틈새 굽이쳐 돌고 돌아 방황하는 魂
빠져나오길 항시 기원 드린답니다.
천지사방 이름 지어지지 않은 아득한 옛날
수 억겁의 시공간너머
삶과 죽음 그 운명의 수레바퀴를 뛰어넘어서
己亥年을 맞으며 3
일 년 삼백 육십오일 쉴 틈 없이 달려온 생
이곳은 과연 어디쯤일까?
천지사방 둘러보아도 캄캄절벽 뿐
제 아무리 되새김 질 해보려 노력 해봐도 생고무 씹듯 역한 내음 뿐
번갯불 콩 구워먹듯 스쳐가는 일분일초
허나 그 짧디. 짧은 순간
몇 백년이 지난 듯한 어둠의 터널
제 아무리 벗어나려 애를 써도 그것은 마음 뿐
실금 간 영사기 속 한 편의 영화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삶의 애환이 깃든 무술년
돌아오는 기해년엔
황금돼지를 잡을 기회가 올 것인가…
회한 속 역린의 해로 기억 될 것인가…
아니면 고도의 문명을 자랑하는 사이버 세상의 수많은 물자와 정보 속
자학의 파문을 일으키듯 수많은 실선 중 하나가 될지
넋을 잃은 채 가쁜 숨 몰아쉬며 모래사장 틈
바늘 찾기 식 춤추는 코브라처럼 박멸하려야 박멸 할 수 없는
줄기세포처럼 잠식해드는 세균 곰팡이 아닐는지요.
2018. 12. 30.
건축현장의 48시간 1
수필
아득한 기억의 편린 너머 연장 가방 하나 둘러매고 조선팔도 좁다 할 정도로 바람 따라 활개치고 다니던 꽃다운 이 팔 청춘 오류동서 서 목수 형님과 둘이서 6. 25때 지었다는 세무서 자리를 한식집으로 바꾸는데 그대로 원상복귀 시켜서 짓는 일을 맡게 돼 둘이서 조공은 현장 서 쓰고 목수연장 및 설비, 타일, 등 일체를 포터에 정화조와 근 한 차의 연장을 싣고 겁 없이 인제 원통으로 향한 10월 중순의 겨울을 따뜻하게 날 것이란 흥분과 기대 속에 우린 인제 원통으로 향했다. 허나 웬걸 기대와는 정 반대로 인제를 지나 원통으로 접어들다 보니 한양과는 천양지차로 온도차이가 나며 귀가 떨어져 나갈 듯 스치는 한풍과 발목까지 빠질 듯 쌓인 눈, 빙판 길에 차가 헛바퀴를 돌며 다람쥐 쳇바퀴 돌듯 제자리를 벗어나질 못하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허허벌판에 드문드문 군 수송차량과 짚 차 뿐 어찌어찌 현장을 도착하니 다 삭을 대로 삭아 껍데기만 앙상한 도깨비 집 아닌가! 우선 민박을 정하고 현장에 짐을 푼 후 현장 내부를 검토도중 세무서를 부대에서 지었다는 말에 주방을 살펴보니 시멘트 강도가 장난이 아닌 게 부대에서 아궁일 만들면 시멘트 강도를 강하게 만든다는데 함마드릴로 암만 쳐도 깨지질 않는다. 동네가 워낙 시골이라 큰 철공소도 없고 모든 자재 값이 서울의 몇 배가 되도 말도 못하고 동네 고물상이란 고물상은 다 뒤져 겨우 씨 형강을 중고로 구해 내부를 보강 해 철거 작업을 시작했다. 민박 집 아가씨가 소주와 막걸리에 막 잡은 빙어 회를 가져왔다. 이 곳 주변에 보이는 이는 다방 레지와 군부대 상대의 술집 작부뿐이다. 그래도 요샌 꽤 친해진 듯싶다. 벌써 이곳에 온지도 보름 이젠 간판을 제작해 걸어야 하는데 다들 바가지만 긁을 뿐 다시 고물상가서 간판 프레임만 구하러 꼬박 하루를 해매서 육 미터짜릴 구해 민박 집 뒤 숲에 감춰두고 근처 전파상에서 전기자재를 사 밤에 간판을 만들 모든 준비를 마치고 건물 주 몰래 낮엔 현장서 일 하고 밤엔 민박 집 뒤 공터에 전깃불 밑에서 간판 만들길 몇날 며칠 이었을지 결국 우린 처음으로 만든 간판을 한식집에 걸 수 있었으니 주인은 좋다고 난리를 쳤고 우린 직접 만든 간판 값을 반값인 사백만원 정도 받은 것 같다. 삼팔 선 가까운 최전방인 인제 원통은 워낙 전방이라 모든 물가가 부르는 게 값인 곳이란다. 근 두 달 여 시월 중순에 내려와 벌써 십이월 중순이라 지겹기도 지겹다. 옆에 다른 식당을 또 져 달라는데 둘 다 싫다고 고개 흔들고 올라가려 하지만 주인에게 붙잡혀 또다시
집을 짓게 되었는데 퇴폐이발소를 지어달라는게 아닌가 집안을 완전 미로로 꾸며 한번 발을 잘 못 딛으면 빠져
나올 수 없는 그런 집을 지어 달라는 것인데 다름 아니고 최전방에 눈 뿐인 곳이다 보니 군인 상대로 술 장사를
하려는 계획인 듯 싶다. 서목수 형님과 난 다시금 미로 속 아방궁을 짓기 시작하였고 서울 집에서는 안 온다고
난리가 나 우린 일단 1월 말 서울로 올라와 팀을 재 정비해 집 식구들과 함께 원통으로 가게되었다. 다시 금 한 쪽에선 목수일을 하며 한 쪽으론 언 땅을 포크레인으로 파내 100m 파이프를 심으며 정화조 배관을 다시 해 나가며
타일 등 밤 낮없이 일을 진행해도 진척이 없는 지겨운 공사일을 겨우겨우 4월 중순이되어서야 끝낼 수 있게 됐다
집 사람도 그렇지만 목수 형님 내외분도 다신 인제 방면으론 쳐다도 안 본다고 맹세에 맹세를 하고 올라왔지만
그래도 올라오는 마음만은 무사히 일을 끝냈다는 안도감에 지친 몸이지만 가슴만은 뿌듯하니 가벼웠다.
20 여 년 전 인테리어 일을 맡아 할 당시 인제 원통서 한식집과 술집을 지었던 체험 수필
사랑하는 처자식에게 2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사랑스런 보성이 엄마 그리고 보성이 보미에게 무엇보다 아무리 사고이었다지만 한 집안의 가장으로써 2007년 4월에 연안부두서 집으로 가기위해 운전해 나오던 중 교통사고 당한 후 근 십년 간
병원생활 하다 퇴원 후 일 년 반 만에 다시 비봉서 6층공장 지붕철거 중 마지막 지붕 판넬 커팅과 동시에 중간이 주저앉으면서 3층의 공 고리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면서도 제천의 가호로 쇠가 박혀있던 우측다리 아닌 좌측다리 먼저 떨어져 발 뒤꿈치 분쇄골절로 다시금 1년간 병상생활을 하면서 당시 초등학교 졸업반이던 아들 보성 이는 젓 먹이 딸을 돌봐가면서 병간호를 하느라 애 엄마가 제대로 돌봐 주지 못하고 혼자 학교를 다니느라 점점 외톨이가 되고 방에만 박혀있는 날이 많아지면서 컴퓨터만 매달려 살고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퇴원 후 다리가 안 좋아 집에서 쉬고 있던 도중 탄도에서 금영 호 꽃게잡이 배에서 사람이 필요하다는 연락이 남양의 인력 사무실로 전화가 와 소장이 배일은 힘들어 아무도 안 가려 한다며 바둑 두다 한숨 쉬 길래 나도모르게 내가 간단 말을 하게되었고 순간 인력소장은 고맙다며 바로 통화 해 다음 날 탄도로 가고자 짐을 싸니 집에선 그 다리로 무슨 배일이냐며 애 엄마가 말렸으나 그 당시 육지에선 다친 발로 일을 못하니 다시 바다로 나가 일을 하겠다며 절뚝대는 발로 선장을 찾아가 월급제로 먹고 자기로 하고 이르면 밤10시에 선착장서 7.5톤 안 강만 금영 호를 타고 다시금 바다에서 제 3의 인생을 시작 하였습니다. 가랑잎처럼 파도에 이리 저리 가랑처럼 흔들리는 배위에서 발 다친걸 숨기고자 기를 쓰고 버텨서서 밧줄을 추리고 길디 긴 장대로 바다 위 표류하는 스티로폼 깃대를 달리는 배위에서 낚아 챌 때의 그 상쾌함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망망대해에서의 자유 주위를 스치는 갈매기와 돛대에 앉아 구구대는 반가 운 친구 그물을 걷어 올리다 주꾸미라도 보이면 바닷물에 휘휘 져서
대가리부터 씹어 먹으며 온통 먹물과 땀에 범벅돼서도 웃는 모습 실로 가관 아니었던가 새벽녘 동천에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온 세상이 붉디. 붉은 노을에 대 자연의 위대함에 그 얼마나 경이로워 했던지 비록 몸은 고단하고 다리는 쑤시다 못해 끊어 질듯 아리지만 육지에서 걱정해주는 처자식 생각
에 일주일 한 달이 금방 지나가 첫 월급날 혼자만의 숙소인 방에서 별별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그 중 일하면서 선장님 몰래 가스랜지에 들통으로 물 팔팔 끓여 다리 담가 지지 길 얼마 이었던가 혹여 들키면 다리병신이 속이고 배 탔다며 누구 죽일 일 있느냔 식의 불호령이 떨어질까 봐 말도 못하고 혼자 새벽마다 발을 지지고 바다에 나가야 하는 비참하다면 비참 한 현실 그 누가 알아줄지 만리타향 계신 우리 님 이런 심정 이해라도 할런지 선장형님과 낮에 농협을 와서 첫 월급을 집으로 부치는 데 만감이 교차하며 눈물이 계속난다 하루는 선장 형님이 내일이 토요일이니 집 식구들을 부르라 하셔서 바로 전화해서 집 식구들이 탄도로 1004번을 타고 왔는데 바로 나가시자더니 농협 근처 고기 집으로 데려가서 먹고 싶은 대로 실컷 먹으라 시어서 장군과 보미가 실컷 먹겠다며 집사람과 실컷 먹고 숙소인 컨테이너에서 4 식구가 오랜만에 함께 자게 되었다 다음날은 바다를 안 나가고 집에 있는 꽃게를 삶아서 애들을 주니 얼마나 잘 먹던지 보는 내가 다 배가 부르는 듯 금영 호에 식구들을 태워 선장형님과 함께 바다로 나가서 일 하는걸 보여주고 직접 살아 움직이는 꽃게를 보여주며 망에 넣기 전에 꽃게의 앞발을 자르며 안 그러면 자기들 끼리 싸워 상처가 나서 가격
이 떨어진다며 애들에게 소상히 설명해 주시는 선장님 그걸 보며 얼마나 감사했던가! 헌데 저녁에 차로 비봉까지 태워다 주신다며 잡아온 꽃게 3망 에 박키지 2망을 챙기시고 말린 고기마져 갔다 해먹게 주시는 선장형님의 자상함 집에 오니 또 하루 더 쉬었다 오라시며 혼자 탄도로 가신 후 다시금
탄도로 들어와 일상인 밤10시 배타고 나가서 다음날 4시에 선착장으로 들어오는 하루가 시작되고 어느덧 겨울이 다가오는 11월 중순 하루는 이제 금년에는 그만 어장을 접겠다시며 뭍으로 나가도 일을 못 할 테니 당신이 아는 김 양식장을 다니며 겨울만 나고 3월부터 함께 하시자며 일자리를
걱정해 주셔서 바로 그리 하기로 해서 생각도 안했던 겨울의 김 양식장 일을 하게 되었다. 그 후 2012년 봄에 집으로 와 집 사람과 애들의 만류로 다시 인테리어를 시작 하게 됐는데 옛날 말에 한번 사고가 나면 계속 난다 했던가! 정녕 그 말이 맞는 것인지 다시금 건축 일을 하던 중 이번엔 외부 아시 바 철거를 맡아 하던 중 12m 쇠 파이프를 풀어 밖으로 던진 게
떨어지면서 아시 바 귀퉁이를 후려쳐 봉에 매달려 철거하던 데로 날아와 발등을 후려쳐 사람들의 도움으로 근처의 병원으로 급히 옮겨 엑스레이를 찍는데 발 등뼈가 으스러진 게아닌가! 놀라며 다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던지 남들은 한 번도 나기 어렵다는 사고를
몇 번이나 나는 건지 전생에 무슨 죄를 그리 많이 진 것인지 근 십년 간 병원생활만 하면서 다른 집 아빠처럼 맛있는 것도 못 사주고 함께 놀아 주지도 못해서 너무 미안하고 애들 엄마 에게도 고생만 시켜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 어찌 말로 다 할까만 이제 몸도 어느 정도 회복이 되 가고 또 시인도 돼서 빠른 시간 내 시집을 내자는 출판사도 있으니 우리 4식구 똘똘 뭉쳐서 가족끼리 잘 살아보자고 두 손을 다 잡아본다. 일 할 때는 일하느라 함께 있어주지도 못하고 놀아주지도 못하고 또 다쳐서는 다쳐서 함께 해 주지 못해서 미안함에 썩을 대로 썩어 뭉그러진 심정 보성이 보미 너희들은 모르겠지? 속 터져서 하루에도 몇 번씩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었는지 지금도 좁디. 좁은 방에서 제대로 생활도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세상에 가족보다 소중한 게 세상천지 또 어디 있겠니 보성아 보미야 언젠가는 엄마와 아빠를 이해 해 줄 날 있으리라 믿는단다. 이 아빠도 하루속히 몸 추스려 최대한 빨리 일하려 노력 중이란다. 반드시 좋은 집 장만해서 공주
님하고 손가락 걸고 약속한 집으로 이사 가서 예쁜 방 만들어 드리고 오빠도 엄마도 더 이상 힘든 일 안하고 학회활동과 살림만 할 수 있도록 해 줄게요. 장군은 소설 공부 하도록 아빠가 최대한 노력할게요. 이제부터는 아침저녁 빠트리지 말고 하기로 엄마도 약속하고 우리 보성장군님과 보미공주님도 손가락 걸고 도장 찍고 아빠 좀 도와줘요. 다리 나서 예전처럼 함께 뛰어놀 수 있게 해달라고 그래야 아빠가 일도해서 빨리 집 장만하지요. 자 우리 모두 파이팅해서 조금만 더 고생 해줘요. 자! 하나 둘 셋 보미 네 가족 파이팅.
김효석 프로필
현 주소: 경기도 시흥시 신천 6길 15- 8 지층 1호
1983. 3월 검정고시 합격
2000년. 원양어선 선원 종사 5년 여
2006년 종료
월간 문학세계 2013년 11월 7일 신인문학상 당선.
당선 작 허무, 새벽이슬, 홍시.
대한문인협회 2014. 3월 15.
신인문학상 당선. 마음의 창너머, 잃어버린 정신,
슬픈 탕아의 노래
사단법인 한국문학작가회
신인문학상 당선. 기로 외 물같이 구름같이 흐르고자,
푸른 창파의 노래
2018. 1. 7. 오은문학사 동인지 2호 참여 및 종합문예지 여름호 참여
백두에서 한라까지. 서울역사는 알고있다.
백두 금강 태백의 신비외 14편외
오은 문학상 수상 및 시조시인, 수필등단
월간문학세계 시 세계 정회원
한국 문인협회 정회원
오은 문학사 정회원
대한 문학세계 정회원
사단법인 한국문학작가회 정회원
국민공익청소년보호 국민정화운동본부 사무장 겸
청소년 보호국민 밴드 리더
민주 문인협회 정회원
한국 스토리 특별회원
태극기 뱃지 달기 실천하는 사람들 연맹 리더
생각찾기 시 밴드 공동리더
(사)대한민국 독도사랑 연대 공동리더 겸
2018년 11월25일 대한민국 독도사랑 세계연대 문화 홍보대사로 위촉됨
독도 지킴이 대마도 본부 정회원
2014문학세계문인회
동인지제5호 참여,
창파에 혼을 싣고,
학생과 선생의 의무, 외 2편
2017문학세계문인회 동인지
제 8호 참여,
서울 역사는 알고있다,
영혼의 노래 7, 삼대용왕과 충무공의 분노
2014년움터영상문학회 제7호
동해의 천상신궁 독도.
보이지 않는 마의 손 외 3편
월간 민주문학 2017년 9월
창간호 참여
과연 나에게 시란 무엇인가.
오. 민족의 혼이시여
오. 배달의 혼이여 외 3편
2017. 11. 30. 매일신문 주최 대한민국
바른지도자 상 수상
2018년 1월 13일 서울 매일신문 문화복지사 문화 기획사 1급 자격증 취득
2017년 명작선 한국을 빛낸 문인
정유년을 맞으며 자연의 추상화외 한편
2018년 명작선 한국을 빛낸 문인
시조 공허, 사모외 시 한 편
2018년 12월 21일 국민공익 청소년 보호 및 지도자 육성 유공자 임병택시흥 시장 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