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회 명단
김광한
우리때는 요즘의 초등학교를 국민학교라고 했다.나는 서울 용산구 효창동에 있는 금양국민학교를 다녔다. 우리 아버님도 그 학교를 졸업하셨다.국민학교를 졸업한지가 반세기가 훨씬 넘어서 이젠 그 추억도 없다.중고등학교를 마포에 있는 학교를 나왔는데 고등학교 졸업한지 20여년쯤 뒤에 동창모임이 처음 열렸다.그때는 제법 돈푼께나 만지던 친구들이 존재감을 과시하기위해 회비를 전액부담하기도 하고 동창 발전을 위해 얼마씩 기부를 하기도 했다.
<동창 발전은 무슨 발전, 괜히 폼잡기 위한 것이지.>
당시만해도 40대 초쯤의 얼굴들이라서 아직 얼굴에 기름기가 배어있었고 화제가 여자들과의 외입얘기 등등 이었다.그리고 무슨 무슨 자동차가 좋다느니 외국의 어느곳에서 맛있는 요리를 먹었다느니 하는 위세섞인 얘기가 주를 이루었다. 10년쯤후, 자식들 시집장가 보내느라고 열심히 동창모임이 주선되었고 이때 역시 주제는 여자관계 얘기였다.자식 자랑 며느리 자랑 마누라 자랑이 간간히 섞였다.그러나 그것도 잠시...어느듯 인생의 황혼기 60대,모이는 친구들이 무척 줄어들었다. 얼굴들이 이상하게 변해서 흔히 종로 공원에서 보는 늙은이들의 용모를 하고 있었다.구부러진 어깨 비척거리는 걸음걸이 40명에서 열댓명으로 줄어든 모임에서의 화제는 여자 얘기가 행방불명이 되고 어디가 아픈데 무슨 약이 특효라는것이 주제였다. 다시 세월이 흘러 60대 중반,두어달에 한번씩 문자 메시지가 오는데 누가 죽었으니 어느 영안실로 시간나는대로 찾아보라는 것이 고작이었다.
1962년도 180명 졸업에 3분지 일이 줄어든 지금 하늘나라로 간 친구들이 아마도 거기서 동창회를 하고 있을 것이다.이승에서 동창회장을 하던 친구도 갔으니까 회장자리는 따논 당상이겠지.이승 동창회 명단보다 저승 동창회 명단이 점점 더 불어날 것같은 느낌에 우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