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읽기
이전의 관련 역사
기원전 350년경 : 아리스토텔레스가 미래 사건의 결과에 대해 어떤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문제를 대략 기술한다.
기원전 300년경 : 시리아의 철학자 이암블리코스(Iamblichus)가 어떤 사실이 알려지는 것은 인식자의 능력에 달려있다고 주장한다.
이후의 관련 역사
서기 1250~1270년경 : 토마스아퀴나스가 신은 시간을 초월해서 존재하므로 인간의 이해력을 넘어선다는 보이티우스의 견해에 동의한다.
서기 1300년경 : 존 던스 스코터스에 따르면, 인간의 자유는 신의 자유에 의존하여 행동에 옮기며, 또한 신은 그의 변하지 않지만 자유로운 의지를 통해 인간의 미래의 자유행동을 알고 있다.
로마 철학자 보이티우스는 전통 플라톤주의 철학에 관해 교육을 받았으며, 또한 기독교도였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보다 먼저 '신이 우리가 미래에 무엇을 할것인지 이미 알고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자유의지를 지녔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딜레마를 이해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떠올려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늘 오후에 나는 영화를 보러 가거나 글을 쓰는 데 시간을 보낼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영화를 보러
간다. 이 상황으로 보아, 나는 오늘 오후에 영화를 보러 갈 예정이란 것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이지만) 사실이 된다. 하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내가 오후에 글을 쓰는 데 시간을 보내려는 선택을 정말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문제를 밝혀낸 최초의 인물이었지만 그의 해답은 그리 명백하지 않다. 그는 '나는 오늘 오후에 영화를 보러 갈 것이다'라는 문장은 참도 거짓도 아니거나, 또는 적어도 '나는 어제 영화를 보러 갔다'와 같은 식의 의미도 아니라고 생각한 것처럼 보인다.
시간을 초월한 신
"모든 것은 그 자체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식자의 능력에 따라 결정된다(보에티우스)"
보이티우스는 그와 똑같은 문제에서 더 어려운 형태에 직면했다. 그는 신이 과거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까지 모든 것을 안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내가 오늘 오후에 영화를 보러 갈 예정이라면 신은 현재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 결과, 신이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과 상충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사실상 오후에 글을 쓰는 데 시간을 보내기로 선택할 자유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보이티우스는 이와 같은 것은 인식자의 본질에 따라 여러 방법으로 알려질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한다.
보이티우스는 이와 비슷한 방식에서 시간을 고려한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 속에 살기 때문에 오직 과거 (사건이 이미 일어난경우), 현재(사건이 지금 발생하고 있는 경우),미래 (사건이 일어날 경우)로 사건을 인식할수 있다.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의 사건에
대한 결과를 알 수 없다. 이와는 반대로 신은 시간의 흐름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신은 영원한 현재에 살고 있으며, 또한 신은 우리가 현재를 알고 있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가 어떠한지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당신이 지금 앉아있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당신의 자유를 멈추도록 방해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미래 행동에 대해 신이 알고 있다는 것은 현재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자유행동을 멈추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어떤 사상가들은, 나는 오늘 오후에 영화를 보러 갈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아무것도 없으므로, 모든 것을 아는 신조차 내가 영화를 보러 갈지 안 갈지는 알지 못하고 또한 알 수도 없다고 주장한다. ■
보이티우스(서기 480-525년경)
아니키우스 보이티우스(Anicius Boethius)는
로마제국이 쇠퇴하고 동고트족(Ostrogoths)이
이탈리아를 지배하던 때 태어난, 기독교를 믿는 로마 귀족 출신이었다. 그는 일곱 살에 고아가 되어 로마의 한 귀족 집안에서 양육되었다. 그는 교육을 매우 잘 받아 그리스어도 유창하게 했으며, 그리스와 라틴 문학·철학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도 지녔다. 그리고 보이티우스는 그리스의 원전을 번역하고 해석하는데 삶을 바쳤다. 특히 동고트왕 테오도리쿠스(Theoderic)의 주요 고문관이 될 때까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에 관한 저서들을 번역하고 해석하는 데 몰두했다. 그리고 약 5년뒤, 그는 왕실 모함의 희생자가 되어 부당하세 반역죄 혐의를 뒤집어써 사형선고를 받았다. 보이티우스는 감옥에서 사형선고를 기다리면서 그의 가장 유명한 저서 <철학의 위안>을 저술했다.
주요 저서
서기 510년경 '범주론'에 관한 해석
서기 513~516년경 해석론'에 관한 해석
서기 523~526년경 철학의 위안
*철학의 책 p74-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