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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회개를 촉구함
호 10:9-15
9 이스라엘아 네가 기브아 시대로부터 범죄하더니 지금까지 죄를 짓는구나 그러니 범죄한 자손들에 대한 전쟁이 어찌 기브아에서 일어나지 않겠느냐
10 내가 원하는 때에 그들을 징계하리니 그들이 두 가지 죄에 걸릴 때에 만민이 모여서 그들을 치리라
11 에브라임은 마치 길들인 암소 같아서 곡식 밟기를 좋아하나 내가 그의 아름다운 목에 멍에를 메우고 에브라임 위에 사람을 태우리니 유다가 밭을 갈고 야곱이 흙덩이를 깨뜨리리라
12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13 너희는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
14 그러므로 너희 백성 중에 요란함이 일어나며 네 산성들이 다 무너지되 살만이 전쟁의 날에 벧아벨을 무너뜨린 것 같이 될 것이라 그 때에 어머니와 자식이 함께 부서졌도다
15 너희의 큰 악으로 말미암아 벧엘이 이같이 너희에게 행하리니 이스라엘 왕이 새벽에 정녕 망하리로다
호 10:9-15 / [타락은 전쟁을 초래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오, 이스라엘 백성들아, 기브아의 그 끔찍한 밤이 지난 뒤 오늘날까지도 너희는 음행과 타락의 죄악을 범하고 있구나! 너희는 옛날과 다름없이 지금도 나를 거역하고 있구나. 기브아의 그 극악무도한 무리들에게 전쟁이 닥쳐왔듯이 너희 반역자들에게도 전쟁이 닥쳐오리라. 10) 이제 내가 가서 너희를 치리라. 세계 만방의 군대를 모두 이끌고 가서, 너희들이 예전에 지은 죄와 지금 저지르고 있는 죄를 한꺼번에 징벌하리라.' 11) [하나님 백성의 역사를 설명한 비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에브라임은 곡식을 밟아 떠는 일에 익숙한 젊은 암소와 같았다. 그 일은 쉽고, 또 그가 좋아하는 일이었다. 나는 우연히 그 곁을 지나가다가 그 목덜미가 힘있게 생긴 것을 보고 좀더 어려운 일을 시키고 싶었다. 유다에게는 쟁기질을 시키고 이스라엘에게는 써레질을 시키고 싶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였다. 12) 너희는 선한 행실의 씨를 뿌려라. 그러면 좋은 열매를 거둘 것이다. 너희는 묵은 땅을 가는 농부처럼 다시 시작하여라. 이번에는 나 여호와에게 물어 보고 시작하여라. 그러면 내가 너희에게 가서 온갖 좋은 복을 쏟아 부어 주겠다.' 13) [이제는 끝장이 났다] 그러나 너희는 부정과 불법을 심어 온갖 범죄의 열매를 무성하게 키워 냈다. 또한 거짓을 신뢰하여 전쟁 무기와 막강한 병력만이 나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너희가 바란대로 이제 그 보상을 온전히 받게 되리라! 14) 네 나라의 모든 도시에서 전쟁이 터지고, 산성들이 무너져서 모두 ㄱ) 살만왕이 파괴한 벧아벨처럼 될 것이다. 그때에는 어미와 자식들이 함께 던져져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다. (ㄱ. BC 740년 경 길르앗을 침입한 모압 족속의 왕 살만으로 보인다) 15) 이스라엘 백성아! 타락할 대로 타락한 너희들에게 내가 이같이 벌을 내리리라. 전쟁이 시작되는 날 동이 트기가 무섭게 이스라엘 왕이 죽어 없어지리라.
여기서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왜 징계를 받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며, 아울러 징계 후에 회복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의 징계(9-1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계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또 다시 사사통치 말기인 기브아 시대에 행해졌던 범죄를 언급하시면서(9:9), 이스라엘 백성이 이런 극악한 범죄를 지속적으로 행해왔다고 지적하십니다. 10절의 “두 가지 죄”(doulbe sin; NIV)란 지속적으로 가중된 죄라는 뜻으로 보입니다. 이 지속적인 죄악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징계하실 것인데, 그것은 이스라엘이 전쟁포로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호세아는 전쟁포로 상태를 ‘멍에를 쓴 암소’에 비유합니다. 제멋대로 뛰노는 어린 송아지를 주인이 길들이듯이, 하나님께서는 포로생활이라는 고난을 통해 이스라엘을 길들여 마침내 그의 뜻에 복종하게 하실 것입니다. 징계를 선포하는 가운데서도 호세아는 멸망이 아니라 치료와 회복이라는 희망적인 맥락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묵은 땅을 기경하라(12-13) 패망한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면 회복될 수 있을까? 호세아는 그 비결을 공개합니다. 그것은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는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죄악을 심어왔으며, 그들이 심은 대로 죄를 거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들은 묵은 땅을 기경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여호와를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것이 이스라엘의 공의(하나님의 뜻)이며, 그리할 때 그들은 인애(하나님의 자비하심)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군사력을 의지해왔습니다.
정녕 망하리로다(14-15)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군사력을 의지한 결과는 참담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그런 참담한 결과를 겪어보았습니다. 여기서 살만은 앗수르 왕 살만에셀의 단축형입니다. 앗수르의 살만에셀 3세와 5세는 이미 북 이스라엘을 침공한 바 있습니다. 그때에 앗수르의 군대가 이스라엘의 민간인들을 산산이 부쉈던 것처럼 이스라엘은 또 다시 앗수르의 다른 왕에 의해 철저하게 짓밟힐 것입니다.
적 용 : 좋고 많은 열매를 맺으려면 묵은 밭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나의 삶과 나의 마음의 밭에서 없애야 할 묵은 것들이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새롭게하라’ “들판의 잡초를 없애는 방법 중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자리에 곡식을 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마음속에 자라는 잡초 또한 선한 마음으로 어떤 일을 실천할 때 뽑아낼 수 있다.” 이기심, 자만심, 욕심, 허영심, 시기심 등 마음의 잡초는 스스로가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무성히 자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쉼표가 필요한 것입니다. 잠시 쉬는 시간을 갖고 내 안에 자라고 있는 잡초를 거둬낸 다음 그 자리에 평온함, 겸손함, 기쁨 등을 심는다면 살아가는 동안 자신도 모르는 잡초는 다시 자라지 못할 것입니다.
< 설 교 >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서 론
호세아 10장은 호세아의 아홉 편의 설교 가운데 여섯 번째 설교입니다. 매 설교가 동일한 메시지를 증거하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각각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호세아 10장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는 회개입니다. 호세아는 농부들이 사용하는 대단히 단순한 언어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택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오늘 신약시대의 이스라엘인 교회에 적용되는 말씀인 것입니다. 호세아가 촉구하는 회개는 농부들이 사용하는 언어이기 때문에 이해하기 쉽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악을 심어 죄를 거두었으니까 그 길에서 돌이켜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는 것입니다. 심는 것이 잘못되니까 거두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는 것을 바꿔서 거두는 것도 바꾸라는 것이 호세아가 말하는 회개인 것입니다.
호세아는 인간의 마음을 밭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밭은 기경을 하지 않으면 잡초가 우거지게 됩니다. 잡초가 우거지면 밭에서 먹을 수 있는 좋은 곡식을 거두지 못하고 거짓된 열매만 거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기경하지 않아 잡초가 우거진 땅을 호세아 선지자는 “묵은 땅”이라고 했습니다. 농사짓는 사람들은 아시겠지만 묵은 땅은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묵은 땅은 보기에도 아름답지 않습니다(unlovely). 오랫동안 농사를 짓지 않고 방치한 땅을 보십시오. 잡초가 나고 사람들이 쓰레기를 가져다 버려서 아름답지 않습니다.
둘째, 묵은 땅은 먹을 만한 열매도 맺지 못합니다(unfruitful).
셋째, 하늘에서 내리는 우로를 모두 낭비합니다(wasteful). 아무리 좋은 설교를 듣고 아무리 좋은 간증을 들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좋은 씨를 뿌려도 잡초에 가려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묵은 땅은 그대로 두면 안 됩니다. 묵은 땅은 기경하고 거기다 좋은 씨를 뿌려야 가을이 되면 먹을 만한 열매를 거둘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호세아 10장에서 가장 중요한 본문은 12절입니다.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호 10:12) 여기서 중요한 동사 세 가지를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기경하라(break up)이고 둘째는 뿌려라(sow), 셋째는 거둬라(reap)입니다.
I. “기경하라” (Break up)
남의 땅에 잡초가 우거진 것을 기경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 밭에 지금 잡초가 얼마나 우거져 있는지를 살피고 남의 밭이 아닌 자기 밭을 기경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듣고 내 마음 밭에 얼마나 잡초가 우거졌는지를 생각하고 기경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먼저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에 두 종류의 잡초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저희가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죄를 받을 것이라 하나님이 그 제단을 쳐서 깨치시며 그 주상을 헐으시리라” (호 10:2) 첫 번째 잡초는 두 마음을 품은 것입니다. 마음은 하나인데 둘로 나누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바알신에게 가면 바알신도 사랑한다고 합니다. 하나님도 섬기고 바알신도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누어진 마음입니다. 부부가 같이 살면서 남편이 아내한테 “여보, 당신을 사랑해.” 라고 하고 또 술집에 가서 “나는 그대도 사랑해.” 또 출장 가서 “나는 당신도 사랑해.” 이렇게 마음이 여러 여자에게 나눠져 있으면 그것이 참된 사랑이겠습니까? 그런 남자와 살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십시오. 선교사들이 힌두교를 믿는 지역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면 아주 어려운 고충이 있습니다.
힌두교에는 신이 4,300개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증거하고 구주이신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면 다 믿겠다고 한답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예수만을 믿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4,300개의 신을 믿는데 거기다 하나를 더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향해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바알도 사랑하고 아세라도 사랑했습니다. 이렇게 두 마음, 세 마음으로 갈라진 마음을 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땅에 좋은 씨를 심을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이런 두 마음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기경해야 됩니다. 여러분 가운데도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이 있다면 오늘 기경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원하는 때에 저희를 징계하리니 저희가 두 가지 죄에 걸릴 때에 만민이 모여서 저희를 치리라” (호 10:10)
두 번째 잡초는 두 가지 죄에 걸린 것입니다. 두 가지 죄에 대해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야기했습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렘 2:13) 여러분 어떤 목마른 사람이 있다고 해봅시다. 목이 말라서 물을 마시고 싶어 하는데 오른쪽에 생수가 솟아오르는 샘물이 있습니다. 생수가 펑펑 솟아오르는 샘이 있는데 이 사람은 그 물을 마시지 않고 왼쪽에 땅을 파서 비가 오기를 기다립니다. 비가 와서 물이 고이겠다고 생각했는데 땅 밑에 구멍이 있어 물이 다 빠져나가서 남은 진흙탕 물을 마시는 것입니다. 생수의 근원이 계시는데도 터진 웅덩이를 판 것입니다. 생수의 근원을 버린 것이 첫 번째 죄이고 터진 웅덩이를 판 것이 두 번째 죄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아무리 다른 곳에서 만족과 기쁨을 얻으려 해도 하나님을 떠나면 만족과 기쁨이 생겨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두 마음을 품고 두 가지 죄에 걸려 왕도 망하고 국가도 망하고 섬기던 우상도 함께 망해버렸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내 마음 밭이 묵은 땅은 아닌가? 내 마음 밭에 잡초가 우거져 있지는 않은가?’ 살펴봐야 되겠습니다.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마 13:22)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이유는 대부분 재리의 유혹 때문입니다. 주일날 교회 안 나오는 것도 돈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엿새 동안 부지런히 일해야 됩니다. 성경에 게으른 사람은 먹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엿새 동안 부지런히 일해서 정직하게 돈을 벌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일은 일하지 않아도 복을 주십니다. 일하지 않아도 복을 주시고 일을 하면 복을 빼앗아 가신다는데 왜 사람들은 주일에 일을 합니까? 그것은 바로 재리의 유혹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 영혼 밭에 잡초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축복의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합니다. 디모데후서 3장 2~5절에는 말세를 사는 사람들의 마음 밭을 묵은 땅이 되게 하는 세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딤후 3:2-5) 하나님을 사랑해야 축복과 만족이 오는데 자기를 사랑하고 돈과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경건의 모양만 가진 사람들에게서 돌아서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여러분 오늘 성령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셔서 우리 마음의 참된 상태를 보게 하시고 우리 마음 밭에 온갖 잡초가 우거져 있으면 좋은 열매가 나올 수 있도록 기경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Ⅱ. “심으라” (Sow)
호세아 선지자는 심으라는 동작보다 심는 씨앗이 어떤 것인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씨앗을 심되 아무 씨앗이나 심지 말고 의를 심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의를 심어야 긍휼을 거두고 악을 심으면 죄를 거두기 때문입니다. 의를 심는다는 것은 외부적으로 착한 행동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뿌려지는 올바른 진리를 심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스펄젼 목사님은 우리 성도가 마음에 뿌려야 될 의의 씨앗은 네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1. 복음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심으라는 것입니다.
복음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진 사람과 잘못된 지식을 가진 사람은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말하는 것도 다르고 가르치는 것도 다릅니다. 설교자들이라 할지라도 복음에 대한 지식이 다르면 설교 내용도 다르고 제자훈련 내용과 삶의 원리도 다 다른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기도하고 공부하고 연구한 모든 것을 통틀어 확신하건대 개신교 복음이 옳다고 믿습니다. 마틴 루터가 찾아낸 이신득의의 교리와 존 칼빈 선생님이 가르친 하나님의 주권 교리를 개신교의 핵심 주축 진리라고 믿는 것입니다. 20세기 유명한 아더 핑크라고 하는 분이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아주 유명한 책을 저술했습니다. 그리고 존 머레이라는 분이 구속론이라는 책을 저술했습니다. 이 두 가지 책을 부지런히 읽고 묵상을 해서 영혼에 들어오면 그것은 우리 마음 밭에 아주 훌륭한 복음의 씨앗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이 은혜의 교리를 알고 확신하며 변호할 수 있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전도사나 목사들도 남을 가르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의 영혼에 은혜의 교리를 체계적으로 깊이 있게 심어야 됩니다. 자기 광주리에 떡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생명의 떡을 주겠습니까? 광주리에 떡이 없는 사람은 이상한 돌을 주워서 줍니다. 무슨 계시를 받는다느니 자기가 사도가 됐다느니 엉뚱한 소리만 하는 것입니다. 물론 루터와 칼빈을 모른다고 해서 그 사람이 다 이단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최소한 루터와 칼빈을 향해서 극도로 욕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루터와 칼빈의 교리를 감정적으로 싫어하고 의도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이단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가까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은 복음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심고 변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복음에서 나오는 삶의 원리를 심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으면 성경을 읽고 연구해야 됩니다. 머리가 좋다고 성경은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기도하면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주일 성수를 해야 하고 십일조 생활도 해야 합니다. 이런 기본적인 것도 하지 않고 교회에서 직분을 맡으려 한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전도와 선교에 헌신하고 약자를 돕고 정직하고 정의로운 삶을 사는 신앙의 원리를 우리 마음에다가 깊이 새겨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열정적인 신앙은 원하지만 원리적인 신앙은 등한시합니다. 하지만 열정적인 신앙은 쉽게 식고 변질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차가운 것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원리적인 신앙이 있어야 우리 영혼 깊이 뿌리내리고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신앙의 원리를 마음 깊이 심으시기 바랍니다.
3. 체험적인 믿음을 심으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어떤 교회든 교회라는 곳에 다니는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당신의 죄를 위해 대신 죽으셨음을 믿느냐고 물어본다면 100% 다 믿는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과연 그것이 진실한 고백인지 의심을 갖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고백하고 있는 논리적인 근거가 이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 모든 사람의 죗값을 예외 없이 갚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나는 온 세상 모든 사람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의 죗값도 갚으셨다고 믿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논리적인 추론은 실체가 없는 헛된 믿음이고 거짓된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온 세상 모든 사람의 죗값을 예외 없이 갚기 위해서 죽으셨다는 말씀은 제가 지금까지 성경을 공부하면서 본적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은 잃어버린 양을 찾아 구원하기 위함이지 잃어버린 염소를 찾으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5) 물론 성경에 예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신다는 말과 모든 사람을 위해서 죽으셨다는 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이라는 단어나 ‘세상’이라는 단어는 깊이 연구해야 될 대단히 추상적인 단어입니다. ‘예외 없이 모든’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만약 아니라면 예수님께서 아말렉 족속이나 가룟 유다의 죗값도 갚으셨다는 말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의 택하신 사람들의 죗값을 갚으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마틴 루터와 칼빈의 사상이고 개신교 복음입니다. 디도서 1장 1절에 보면 “택하신 자들의 믿음”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또한 우리를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 (살후 3:2) 이 말씀에서도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고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 성부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예수님께서 속죄하시고 성령의 역사 가운데 내가 주관적으로 예수님께서 내 죗값을 갚으셨다는 것을 믿게 되는 체험적인 믿음만이 성경적인 믿음입니다. 우리는 논리적인 추론으로 예수님께서 내 죗값을 갚으셨다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로 체험되어 예수님께서 내 죗값을 갚으셨다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두 아들이 있어도 에서는 미워하시고 야곱은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무궁한 사랑이지만 선택적인 사랑입니다. 야곱을 택하시고 허물이 많아도 축복하시는 선택적인 사랑입니다.
4. 죄를 거부하는 “거룩을 향한 열정”(desire for holiness)를 심으라는 것입니다.
죄는 우리를 죽이는 독이 가득한 뱀입니다. 독사를 품에 안고 있으면 독사가 우리를 물어서 독이 퍼져 죽게 됩니다. 독사를 죽여야 우리가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8장 13절에 우리가 꿈에서도 잊지 말아야 될 중요한 진리를 증거했습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 8:13) 죄에게 지면 반드시 죽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도우심으로 죄를 죽이면 우리는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마음에는 의의 씨를 심어야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저절로 심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고 울면서 씨를 뿌려야 되는 것입니다. 씨를 뿌리고 진리를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됩니다. 보통 죄인들이 모두 그것이 진리라고 하는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죄인들의 마음에는 죄성이 있기 때문에 진리에 어긋나고 반항을 합니다. 죄인들이 반항하는 것이 참된 진리인 것입니다. 진리를 우리 마음속에 심으려면 우리는 자아와 편견을 꺾어야 합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 자아와 편견을 꺾고 무릎 꿇고 눈물 흘리며 기도하니까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성경과 역사를 깨닫게 해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저는 목사였지만 진리를 마음속에 심기 전에는 진리를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체험한 이후에 알게 되면서 진리를 말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속에 의의 씨를 심어야 합니다.
Ⅲ. “거두라” (Reap)
심는 일과 거두는 일 사이에는 반드시 일정한 시간이 있기 마련입니다. 콩을 심어놓고 그 자리에 앉아서 콩이 나기를 기다리는 농부는 없습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어야 거두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악을 심기 시작한지 오래되었습니다. 몇백 년 동안 악을 심어 왔는데 아직 악의 열매를 다 거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여로보암 2세 시대에 호세아 선지자가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예언했지만 금방 망하지 않았습니다. 여로보암 2세 시대가 끝나고 무려 4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나간 뒤에 B.C. 721년 앗수르에 의해 북 왕국은 망하게 됩니다. 악을 심어도 금방 심판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의를 심어도 금방 거두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의를 심으면 세 가지를 거둔다고 했습니다. 호세아 10장 12절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호 10:12)
1. 하나님이 임하시는 축복입니다.
여호와를 찾아도 하나님께서 오시지 않는 것은 의를 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의를 심고 여호와를 찾으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오십니다. 기도응답으로 오시고 성령의 임재로 오시며 말씀으로 오십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오신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2. 긍휼을 거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병든 사람을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면 병이 낫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을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면 귀신이 떠나갑니다. 또 사업이 망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면 사업이 다시 일어납니다.
3. 의를 소낙비처럼 내리신다고 했습니다.
의를 심으니까 의를 거두게 됩니다. 심은 것과 동일한 것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심어 확신을 거두고 믿음을 심어 하나님의 영광을 거두고 거룩을 심어 거룩한 삶을 거두고 복음의 원리를 심어 축복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결 론
오늘 자기의 마음을 보니까 잡초가 많다는 분은 쟁기를 가지고 잡초를 뽑아내고 땅을 갈아 엎으셔서 좋은 씨가 심길 수 있는 기경된 땅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마음에 온갖 악한 것을 자꾸 심는 사람은 오늘부터 악을 심지 말아야 됩니다. 악의 씨는 쓰레기통에 다 갖다버리시고 의의 씨, 복음의 씨, 말씀의 씨, 진리의 씨, 복음의 원리의 씨를 마음속에 다 심으셔서 때가 되어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의를 소낙비처럼 거두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