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에서 돌아와 부여를 회상하다.
국립유산청 산하 문화유산원 사람들과 함께한 답사를 마치고 돌아와 백제라는 나라를 다시 회상한다.
백제의 부여, “날이 부우옇게 밝았다”는 말에서 나온 부여는 아침의 땅이었다. 그러나 그 조용했던 아침의 평온은 나당연합군의 침략으로 산산이 깨어졌다. “집들이 부서지고 시체가 풀 우거진 듯 하였다” 하였다던 부여의 낙화암이 <삼국유사>에는 사람이 떨어져 죽은 바위라는 뜻으로 타사암墮死巖으로 실려 있고, 「동국여지승람」에는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낙화암洛花巖: 현 북쪽 1리에 있다. 조룡대 서쪽에 큰 바위가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의자왕이 당나라 군사에게 패하게 되자 궁녀宮女들이 솓아져 나와 이 바위 위에 올라가서 스스로 몸을 던졌으므로 낙화암이라 이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궁녀들이 떨어져 죽은 바위일 뿐이지 삼천궁녀가 꽃 잎처럼 백마강에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은 생겨나지 않았는데, 후일에 만들어진 것이다.
고란사 아래를 두고 대왕포라고 부르는데 <삼국유사>에는 그곳에 대한 연원이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무왕 37(636)년 3월에 왕은 좌우의 신하들을 거느리고 사비하(백마강) 북포에서 연회를 베풀고 놀았다. 이 포구의 양쪽 언덕에 기암과 괴석을 세우고 그 사이에 꽃과 이상한 풀을 심었는데,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왕은 술을 마시고 흥이 극도에 이르러 북을 치고 거문고를 뜯으며 스스로 노래를 부르고 신하들은 번갈아 춤을 추니, 이때 사람들은 그곳을 대왕포라고 말하였다.
소설가 유현종(劉賢鍾)은 들불에서 “금강을 이용해서 왜인들이 쌀을 가져가고 그로 인해 백성들은 피폐해져 아사 직전까지 이르게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권력자들도 금강을 타고 오르며 뇌물을 거두어들이기에 정신이 없고 백성들은 점점 어려워만 진다”라고 하여 금강은 백성을 수탈하는 길로 이용되었음을 보여주었는데, 나태주(羅泰住)는 <금강가에서>라는 시에서 “비단강이 비단강임을 많은 강을 돌아보고 나서야 비로소 알겠습니다. 그대가 내게 소중한 사람임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겠습니다”라고 하면서, 고향을 떠나본 뒤에야 느끼는 고향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노래하였다.
백제 123년의 도읍지로서 흥망성쇠를 지켜보았던 새벽의 땅 부여에는 백제의 유물들이 별로 없다. 부여에는 상상력을 가지고 가지 않으면 보고 올 것이 없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부여 시내는 물론이거니와 부소산 일대에도 그날의 자취를 고스란히 전해주는 문화유산들은 별로 없다.
새벽의 땅 부여
그러나 부여 시내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일 뿐만 아니라, 우현(又玄) 고유섭(高유燮) 선생의 연구에 의하면, 백제 사람들이 목탑에서 석탑을 만들어냈고 신라에서는 전탑(塼塔 벽돌로 만든 탑)에서 석탑을 만들어내어 통일신라에 들어서서는 마침내 감은사탑과 같은 완성된 석탑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탑은 백제를 멸망시킨 후 당나라의 소정방이 세웠다고 잘못 알려져 왔다. 그것은 탑 1층의 탑신부에 ‘대당평백제국비명(大唐平百濟國碑銘)’이라는 글자가 있기 때문인데, 그 글자는 백제를 멸망시킨 소정방이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이미 세워져 있던 탑에 새겼을 것으로 추측된다.
오층석탑 뒤편에 있는 보물 108호인 석불좌상은 얼굴이나 몸체가 세월에 부대껴 제대로 드러나지 않지만 고려 현종대인 1028년 이 절을 대대적으로 중수할 때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데 전체 높이는 5.62미터이고 보물 제 108호이고 지금은 새로 지은 전각 안에 모셔져 있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궁남지는 현존하는 우리나라 연못 가운데 최초의 인공조원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 무왕 35년 조에 “3월에 궁 남쪽에 못을 파고 20여리나 먼 곳에서 물을 끌어 들이고 못 언덕에는 수양버들을 심고, 못 가운데는 섬을 만들었는데, 방장선산方杖仙山을 모방하였다.”고 실려 있는데, 연못 동쪽에서 주춧돌 등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이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람들은 가끔씩 옛 추억을 찾아가듯 부여에 간다. 부소산 낙화암에 올라 요절한 가수, 배호가 불렀던 ‘추억의 백마강’을 불러 제낀다.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잃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
저어라 사공아, 일엽편주 두둥실
낙화암 그늘에서 울어나 보자.
사람들은 그 노래 한마디를 부르며 잃어버린 백제왕국을 되찾는 착각에 빠져 이 나라의 노래방에선 밤마다 슬픔도 없이 구곡 간장이 알알이 찢어져 갔다.
조선 숙종때 사람 석벽 홍춘경은 그 시절을 이렇게 회고했다.
나라가 망하니 산하도 옛 모습을 잃었고나
홀로 강에 멈추듯 비치는 저 달은 몇 번이나 차고 또 이즈러졌을꼬
낙화암 언덕엔 꽃이 피어 있거니
비바람도 그 해에 불어 다하지 못했구나
백제라는 나라가 사라졌다가 견훤이 의해 부활되었고, 다시 사라진 지, 천 백여년, 그 사이 또 몇 개의 나라가 이 땅에 들어섰다가 사라진 이 나라는 지금 어떤 나라이고,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가?
2024년 10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