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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2023년은 그 어느 해보다 예민했고 치열했다. 내 몸 안에 살아있는 모든 세포가 대학 입시라는 목표를 향해 달렸기에. 어둠 속 긴 터널을 언제 빠져나올까 싶었지만 시간은 흘렀다.
아이와는 기나긴 전쟁을 치렀다. 휴전을 할 수도 종전을 선택할 수도 없는 상황에 몰린 나는 작년 9월 수시 원서를 내고는 거의 탈진에 이르렀다. 워낙 면역력이 좋아 감기 한번 안 걸리던 나는 정신력으로 버텨오다 결국 추석 무렵엔 대상포진에 걸리고 말았다.
유난히 촘촘했던 학교 내신에서 경쟁력을 발휘하지 못한 아이는 정시로 가겠다며 수시 원서 포기를 선언했다. 부족한 내신 탓에 수시에 승산이 없을 것으로 판단한 아이는 재수생과 N수생이 가득한 정시로 대학을 가겠다고 도전장을 내민다는 것이다. 고3 현역 입시의 꽃이라 불리는 수시를 포기하겠다는 것은 대학을 안 가겠다는 말과도 같았다. 불합격하더라도 원하는 모든 대학에 원서를 내보자고 남편과 함께 아이의 마음을 다독였다.
아이의 학교생활기록부는 학교 내신에 비해 리더십, 인성, 봉사, 주도성, 창의성, 적극성이 많이 부각되어 있었다. 그래서 학업성적보다 우수한 활동내용을 최대한 어필할 수 있는 대학과 전형 위주로 수시지원 대학을 골랐다. 혹시 놓치는 부분이 있을까 형광펜으로 표시해 가며 대학의 평가기준을 구조화하고 도식화했다. 수시 입시요강에서 강조하는 평가요소들을 잣대로 하여 아이의 생활기록부를 분석했다. 1학년, 2학년, 3학년 각각 아이가 탐구하고 활동했던 내용들을 정리했다. 심화 확장되어 3년 동안 연계된 주제가 몇 개의 영역으로 추려지는지부터 살폈다. 전문가 그룹 인터뷰, 설문조사, 1:1 면담 등 어떠한 다양한 탐구방법으로 어떻게 결과를 도출했는지, 하나의 사례가 아닌 여러 사례의 결과를 함께 어느 기준으로 비교 분석했는지, 그리고 도출된 결과를 어떤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검증하여 신뢰도를 확보했는지, 또 얼마나 다양한 교과 영역이 융합되어 창의적인 새로운 결과물이 산출되었는지, 이와 연관시켜 대학 입학 후에 향후 어떤 세부주제를 더 심층탐구하고자 하는지 등을 살펴보면 아이가 고교과정 동안 어떠한 비전을 가지고 학교생활에 임했는지 한 문장으로 요약정리가 된다. 그 한 문장은 아이가 지닌 가치관과 신념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아이의 고교 생기부는 색깔펜으로 메모되어 형형색색으로 탈바꿈되었다. 대학교마다 평가기준이 달랐기에 생기부는 점차 너덜너덜 해지기에 이르렀다. 나중에는 아이가 한 어떤 활동이 몇 학년에 나오고 어떤 책이 어떻게 연결되어 어디쯤에 언급되어 있는지 저절로 외워지게 되었다.
수시요강 지면에 나타나지 않는 생생한 알짜 정보는 대학 입학설명회에서 직접 들어야 얻을 수 있다. 문닫고 보내는 게 수시의 묘미라면 대학 어디가의 50% 컷 70% 컷은 그저 참고용일 뿐이며 추가합격 마지막 컷을 설명회 현장에서 운 좋게 얻어 갈 수도 있다. 그리고 현장에 온 입학사정관과 1:1 면담을 통해 어느 전형, 어느 학과가 우리 아이에게 더 유리한지를 가늠했고 승산이 없어 보이는 전형과 학과는 과감하게 제외시켰다. 이렇게 현장 입학설명회 참여, 입학사정관 면담, 대학 입학처 전화상담, 대학 입시 유튜브 영상, 대학선배 멘토단, 대학 입시 학부모 밴드, 유명 아카데미 카페 등 다양한 채널을 다각도로 접근해 어느 대학, 어느 전형, 어느 학과에 아이가 합격할 수 있을지를 판단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과연 어느 대학에서 우리 아이의 장점을 최대한 알아 봐 줄 수 있을까로 접근했다. 성적으로만 나열하는 학교가 아닌 아이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보고 뽑아줄 대학을 찾아야 했다. 그 대학을 찾는 게 우리의 역할이었고 대학 선택의 핵심이었다. 3학년 1학기 내신이 마무리되어 정량적 결과치가 확정되면 학생생활기록부 활동과 세부특기사항과 같은 정성적 내용들은 8월 말에 마무리된다. 여름방학을 활용해 조금 더 보완할 수 있다면 생기부의 질적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여름방학부터 모의전략 가족회의를 했다. 아이가 원하는 전공을 중심으로 대략 15개 정도의 대학과 전형을 골랐다. 회의를 통해 아이에게 불리한 전형을 제외시켜 10개로 압축한 다음 실제 수시원서접수 기간에는 실시간 경쟁률을 비교했다. 그 어느 대학도 확실하게 자신 있는 전형이 없었기에 원서 접수 마감 전날까지 남편과 해당 전형에 대한 유튜브 동영상을 최대한 많이 찾아보았다. 내신등급대 위주로 불합격 라인을 찾았고 우리 아이가 해당하면 그 대학은 제외시켰다.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온 에너지를 집중해 대학 지망에 신중을 기했다. 원서지원 경쟁률 현황을 공개하는 마지막 날에 분명 전년대비 경쟁률이 약했던 학과였음에도 불과 2시간 만에 최고 경쟁률로 마감한 학과도 있었다. 물론 우리 아이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심지어 하향안정대학으로 갑자기 관심이 생겨 미처 정보가 없었던 대학은 바로 전날 원서 접수가 마감되어 버렸다. 수시원서 접수기간 내내 잠은 부족했고 눈은 빨갛게 충혈되었다.
수시원서접수가 끝났지만 1차 서류통과 여부와 상관없이 왕복 교통편을 예약하고 대학 인근 숙소 예약을 해 놔야 아이가 편안하게 2차 면접고사를 보고 논술시험을 볼 수 있다는 선배맘들의 조언에 따라 학교마다 다른 일정을 체크하여 시기에 맞게 모두 예약을 했다. 담임선생님도 임박해서는 KTX 예약이 어려우니 미리 예약해 놓고 불합격하면 취소하는 전략으로 가야 한다고 하셨다. 예약가능한 첫날 새벽에 예약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중엔 불합격으로 취소를 더 많이 해야 했다.
그렇게 무시무시하게 험난했던 입시전쟁은 6지망 마지노선 대학의 수시 합격으로 막을 내렸다. 수시를 포기하지 않고 원서지원 전략가로 자처한 우리 부부에게 아이는 최고의 부모님이라며 감사함을 잊지 않았다.
정시모집도 마무리된 지금.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는 울산의 모든 학생들에게 3월의 학교 가는 길이 즐겁고 행복한 여정이 되길 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