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불식 간에 텃밭 주변에 모였다. 그리고 즉석에서 날을 잡았다.
박농민은 집으로 오는 길 위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냥 하는 얘기지?"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아니, 진짜 같던데!"
바로 그 길 저편에서 다시 텃밭대장님을 만났다. 나는 확인사살차 다시 물어보았다.
"그날 저녁 약속 진짜인 거 맞지요?"
"그럼요! 진짜죠! 원래 그렇게 잡는 거예요"
우리는 한바탕 웃고는 다시 헤어졌다.
나는 박농민에게 이렇게 다시 물었다.
" 우리 그럼 그날 서울 가야 되는 거야?"
"?!... 웬 서울?"
" 아니, 그날 마장동 간다며?"
"...., 마장동은 월곶 읍내에 새로 생긴 고깃집이야"
"....ㅋㅋㅋ 진짜?"
아, 이렇게 서로가 남의 다리 긁는 대화를 나누다 보니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바로 그날이 되었다.
저녁 6시 반에 텃밭에서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세 분 모두 나와 계셨다. 텃밭대장님과 새로 알게 된 저쪽 이웃텃밭 부부였다.
우리는 마장동으로 향했다. 한우마을에서 고깃집을 하던 분이 이쪽으로 옮겨서 마장동 고깃집을 열었다고 하였다. 고기는 맛이 좋았다. 나는 준비해 간 우리텃밭 상추를 꺼냈다. 일하시는 여자분께서 상추 가져와서 먹으면 우리는 좋지요라고 말해 주셔서 안심이 되었다. 이웃텃밭 부부께서는 당귀를 가져오셨다. 산당귀 줄기는 맛이 일품이었다.
이웃텃밭 부군께서는 고기를 잘 구우셨다. 덕분에 편하게 구운 고기와 소맥을 음미할 수 있었다. 텃밭 가꾸는 일이 너무너무 좋으시다고 하셨다. 텃밭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일이 즐겁다고 하셨다. 이웃텃밭 분들과 대화를 하다 보니 부인은 나와 동갑이었다. 동갑 만나기 진짜 힘든데 여러모로 반가웠다.
__
전정수 텃밭대장님은 텃밭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현재 우리가 텃밭을 일구고 있는 땅이 비싼 땅이라고! 나도 익히 알고 있는 바였다. 그래서 우리는 텃밭에서 나오는 상추 한 장 값을 계산해 보니, 대략, 만 오천 원이었다. 정말 비싼 상추였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곳에 주상복합 건물을 짓고 싶은 것이로구나 싶기도 하었다. 그런데 이 동네 특성상, 이 중앙 공간에 또다시 높은 건물이 들어선다면, 아마도 질식의 느낌이 있을 거라고 생각되었다. 월곶 전체를 계획도시로 리모델링할 것이 아닌 바에야, 현재 상태에서 이 중심지에 높은 건물이 들어서는 것은 안될 일이다.
이곳에서 십여 년 동안 텃밭을 하는 일은 바로 그런 일들과 싸우는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많은 곳에서 시민들에게 그리고 도시에 투자를 하지만, 월곶텃밭 농장만큼처럼 사람과 사람의 소통의 장을 일구는 효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는 말씀도 하셨다.
___
내가 그동안 경험해 보니, 그 말씀은 맞는 말이다. 그리고 이 자리도, 우리텃밭이 이쁘다고 만들어진 자리이다. 그저 이쁘게 가꿨을 뿐인데, 사람들은 웃음 지으며 말을 건네고 서로에게 호감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러한 부분을 닮아가려고 제스처를 취하여 서로서로가 친밀해진다.
월곶 텃밭에는 군데군데 텃밭대장님이 기획적으로 심어놓은 텃밭 가꾸기 용병들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어김없이 그곳에서 멈춰 서서 주르륵 서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 꽃을 피운다. 서로 이름도 전화 번호도 모르지만, 텃밭이라는 공통의 주제로 그렇게 함께하게 된다. 그러면 사람들이 또 하나 둘씩 모여든다. 공동체는 이렇게 형성되는 것이며, 여기에는 핵을 담당하는 구심축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한 구심축이 해년마다 역동적으로 재구성되고 있는 중인 것이다.
일 년 했을 때는 잘 모르는 것들, 이 년 하면 조금씩 눈이 떠지기 시작하여 보이는 것들, 삼 년 되면 이미 그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에게도 이런 기회가 주어진 것은 나의 입장에서는 우연이지만, 나의 오랜 질문에 비추어보면 필연이기도 할 것이다. 겉으로의 양상은 다르지만, 인간은 그 자신이 위치하는 존재적 위치를 이해할 때, 필연을 깨닫게 되는 것 같다.
___
그렇게 1차로 소고기, 2차로 삼겹살, 3차로 돼지 껍데기를 마장동에서 감사하게 잘 먹은 후, 커피를 사들고 텃밭 대장님 사무실에서 커피타임을 가졌다. 아이들이 오며 가며 들르는 문방구 아니고 아이들이 그냥 꼭 들렀다 가는 하루 일과표 같은 곳이기도 하다고 하셨다. 그래서 냉장고에는 아이스크림이 항상 가득 차 있다고 하셨다. 전에 우리도 하나씩 먹었던 그런 아이스크림이. 아이스크림은 지나가며 사람들이 사다 놓고 가신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일종의 우정의 기부인 셈이다. 그리고 그 아이스크림을 이곳에 들리는 동네 아이들에게 주는 것이다.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월곶에 대해서 더 알아가게 된다. 세상에는 행정상의 도시가 있고 또 그 행정을 비켜 선 도시가 있다. 모든 도시에는 두 형태의 도시가 겹쳐진 채로 공존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면의 도시가 한 도시의 문화일 것이다.
박농민과 나는 월곶 도심을 월곶 읍내라고 부른다. 자그마한 읍내도 걷다 보면 읍내가 또 아주 작은 것만은 아니다. 텃밭대장님은 월곶이 엄정 깨끗해졌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보기에도 그랬다. 빛바랜 간판들도 컬러로 거의 교체되었다. 낡은 빛깔의 보도블럭도 교체되었다. 예전에 비해 많이 생기를 찾은 것이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말하겠다.
___
오늘은 그간 티타임을 한 번 하려고 했었는데, 방법이 마땅치 않아서 하지 못했었는데, 가장 편한 방법을 취하기로 하였다. 보온병에 차를 우려서 테이크 아웃컵에 따라서 건네주고 텃밭 길에 서서 같이 마시는 것이다.
보온병 용량은 적은 테이크 아웃 컵에 일곱 잔을 따를 수 있다. 처음 만난 분은 헌옥 쌤이셨고, 두 번째로 만난 분은 어제의 마장동파 부부이셨고, 세 번째 만난 분은 은주 씨였다. 우리는 나란히 서서 티타임을 가졌다. 차는 따뜻한 대홍포였다. 오늘 안 사실인데 은주 씨도 나와 동갑이었다. 이로서 동갑 세 사람 확보이다.
은주 씨는 월곶 역 큰 길가 쪽, 텃밭 중앙에서 보자면 뒤편 쪽에 위치한 텃밭에서 텃밭을 가꾸는데, 그 앞에 놓인 공용화단을 아주 멋지게 새롭게 화단으로 구성했다. 그 모양과 풍경을 보면서 흙과 거름만 더 보충하면 완벽하다고 우리는 말했다. 우리는 그동안 은주 씨가 고생 많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니, 은주 씨 구상대로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기에 지켜보는 것과 화단 감상하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물론 거름은 찌끔 뿌려주었다 ㅎ.
네 번째로 만난 분은, 바로 우리텃밭 옆 텃밭 분이시다. 같이 오늘 텃밭 길 풀을 뽑고 길 정비를 하였다. 다섯 번째로 만난 분은, 진짜로 티타임 하자고 말했던 그 이웃 텃밭 분이시다. 차를 건네고 언제 다시 티타임 하자고 말하며 헤어졌다. 나까지 포함하여 도합 일곱 잔의 테이크 아웃 잔이 모두 마감되었다.
___
그 후로는, 전에 꽃해바라기 씨앗을 받아서 전해드렸던 분이 오셨는데, 더 이상 남은 차가 없어서, 잔에 따라놓은 차를 드셔도 된다고 하였다. 사진 찍으려고 따라 놓아서 식었지만, 맛은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드시고는 주머니에서 호박엿을 꺼내서 주신다. 한알씩 까먹었다. 저녁 무렵에 먹는 호박엿은 풀뽑기 노동의 나른함을 날려주었다. 저번에 가져간 상추가 아직 남았다면서 그냥 가셨다. 이 상추는 보관이 오래간다고 말씀하셨다. 물론 나도 보관이 길다에 동감하는 바였다.
그 후 다육을 주셨던 이웃텃밭분께서 오셨다. 그분의 텃밭 길과 바로 옆 텃밭 분의 텃밭 길과 우리텃밭 길이 교차되고 있어서 정작 그분 텃밭길도 되는데 옆 텃밭 분과 내가 그분의 텃밭 길도 정비한 셈이 되었다. 그분은 우리를 감독하며 정말 잘하네! 하신다. 우리는 그냥 웃었다. 내일은 그분께서 자신의 텃밭에서 상추를 솎아서 우리텃밭에 심으라고 하셨다. 어떤 상추인지는 모르지만 색이 고와서 그러겠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박농민이 텃밭에 왔다. 언제 왔는지 모르게 뒤에 서 있었다. 퇴근 후 옷을 갈아 입고 바로 텃밭으로 온 것이다. 내가 정비한 길을 마저 마무리하였다. 남은 한 잔의 차는 주변이 어두워지자 색이 더 진하게 보여서 다른 분께 드리지 않고 박농민에게 주었다. 차갑게 식었지만 마시고 잔을 챙겨야 했기 때문이다.
텃밭에서 차를 나누어 마셔본 것은 처음이다. 준비해 간 찻잔에 차를 따라 텃밭에 올려놓았다. 찻잔에 차를 따라 텃밭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기까지는 텃밭 3년여의 시간이 필요했는가 보다. 물론 진즉 이렇게 사진을 찍어 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아무 때나 되는 일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러니 지금이 적절한 때였던 것이다. 텃밭에서 찻잔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편하고 보기에도 좋았다. 이러한 행위가 나를 의식하지 않은 상태라서 좋았다.
텃밭에서 사람들과 이렇게 오후를 보냈다. 오늘은 좋은 날이었다.
#텃밭_시간정원_시간랜드
#월곶도시농업텃밭
#월곶텃밭상추
#텃밭과사람들
#미나리꽝과차한잔 #시간정원과차한잔 #시간랜드와차한잔 #다석지와차한잔 *다석지는 내가 새로 만든 연못 이름이다. 차금지와 다석지 중 고민하다가 차석지로! 차금지는? 내가 성이 김가여서, 차를 마시는 김가 연못이라는 의미였다. 다석지는 말 그대로 차를 올려놓는 돌 받침이 있는 연못이라는 의미다.
____ 텃밭 사진 퍼레이드____
______은주씨 텃밭 앞의 화단, 이 화단 가꾸기에 매진하고 있는 은주씨다____
_____헌옥쌤 텃밭, 강낭콩 지지대를 직접 만들어서 세우다_____
_____이웃 텃밭, 공중 정원, 꽃은 공중에서 키워야 합니다~^^________
_____마장동 고깃집에서 저녁 후 텃밭 산책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