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7월 초록이 아름답던 어느 날 온천지 사방 들녘에 꽃인듯 어쩌면 아지랑이인 듯 하얀 개망초꽃들이 하늘하늘
지천으로 피어 났었다. 나는 친구 삼총사들과 모처럼 일상에서
벗어나 바람따라 인연따라 어딘가에 발길 머무는 곳으로 삼사
순례를 떠나기로 일정을 잡았다. 이른 아침 진해에서 출발하여
맨먼저 하동 쌍계사를 참배했다. 빗방울이 가늘어져 이슬비가
내려 물안개 자욱한 지리산 자락을 타고 가락국 허황후
일곱왕자가 성불 했다는 칠불암 그리고 구례 화엄사까지 갔다...
하루 일정을 일찍 마친 우리 자유부인들은 집으로 돌아오기가
아쉬워 뱀사골을 따라 가면서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시원한
계곡물에 퐁당퐁당 발도 담그고 물장난을 치면서 남원 실상사까지
가게되었다.....
아픈 사람을 치유해준다는 실상사 약사전 철불 약사여래 부처님은
국보 41호라고 한다 . 지리산 천황봉을 바라보고 산의 정기를 받아
영험이 많다고 알려진 부처님. 법당에서 만난 어느 노보살님의
말씀이시다. 우리들은 신라고찰 실상사를 나오면서 해탈교
입구에 있는 자그마한 오막살이 초가집 산마루라는 전통 찻집에 들어갔다...
이엉이 삭고 삭아 지붕위엔 그물을 씌워놓고 잡초들은 웃자라 풀숲을
이루며 고향냄새 흙냄새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집안 곳곳에 빛바랜
사진첩처럼 초등학교 국어.산수.음악 과목별 교과서들이 널려있고
모퉁이 한쪽에는 낡은 풍금도 놓여있어 내 유년시절 잠깐 동심으로
돌아가 검은 건반 하얀 건반도 두드려 보면서 수다쟁이 삼총사들은
그렇게 그렇게 행복 했었다....
그 찻집 좁은 마루에 산꽃과 들꽃들이 오종종 오종종 소담스럽게
꽂혀있는 고추장 항아리 화려하지 않아 내 눈길이 자꾸자꾸
그 곳에 머물러 참 예쁘기도하다......
쪽진 생머리와 뽀오얀 남자 고무신을 꿰신은 중년의 찻집
여주인과 다리를 하나 잃은 순하디 순하게 생긴 진돗개 누렁이가
절뚝이면서 빛과 그림자 마냥 따라 다닌다 불쌍한 누렁이는 앞산에
산보 하러 나갓다가 무뢰한 밀렵꾼들이 쳐놓은 올무에 걸려서
다리가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말없는 짐승을 그렇게 잡아 번 돈으로
백만장자를 살것인가 억만장자를 살것인가 그걸 보양식이라고 먹는
사람들은 백년 살것인가 이백 년을 살것인가 그 들도 우리 인간과
똑같이 이 대지위를 숨쉬고 살아갈 권리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을
그리고 자연의 일부분인 것을.....내 마음 한편이 아려온다.......
수령이 몇 백년이 된듯한 아름드리 정자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그 찻집은 지리산에서 자생하는 약초 캐어다가 가마솥에
불지펴 다려 우린 약초차를 내다 팔았다 후덕하고 넉넉한 찻집 주인
인심 때문에 너무 많이 마신 탓인지 세월의 흔적이 남은 우리들
얼굴 피부가 보송보송한 느낌도 들었다.....
그해 그 날에 장애를 입은 불쌍한 그 누렁이에게 등을 쓸어 주면서
나는 약속 했었지? 다음 번에 올 때는 꼭 맛나는 빵 사다줄께라고
한 해 두 해가 가고 몇해가 지난 지금껏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그 누렁이에게 미안한 마음 금할 길 없다
개들의 수명은 10년 남짓이라고 하는데 오늘도 무탈한지 궁금하다
우리들은 어스름이 내리고 하늘 한 귀퉁이에 하얀 눈썹달이 뜨고서야
누렁이와 찻집 주인의 배웅을 받으면서 그곳을 떠나왔다....
남원 실상사 해탈교 입구에 있는 산마루 찻집을 누가 아시나요?
다리 하나 잃은 누렁이는 옛모습 그대로 오는 이와 가는 이를
잘 맞이 하고 있는 지... 아련한 옛 추억의 한 송이 들꽃이 되어
내 마음 한 켠에 머물고 있다.....
아직도 내일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오늘이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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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05년 성주사 사보 "곰절"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무량수 두손모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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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줌마들끼리 해보고 싶어하는 여행..그것도 절로절로~~ㅎㅎ부럽습니다~~행복한 삶이 보이는 님의글..굿~입니다~()()
끼리 끼리하는 여행은 참 행복하데요! 감사합니다...
15년 사는 강아지도 있던데...근데 귀가 멀었다는거 그래서 짖지못한다는거 ....
그렇군요!ㅋㅋㅋ 감사 합니다...
남산동 시외버스 터미널에 "진순이"라는 누렁이가 있었는데 얼마전에 안 보이기에 물어보니 늙어서 죽었다더군요. 가게 지키는 개였는데 제가 가끔 부산 갈때 쥐포를 사주면 잘 받아 먹어서 그 인연으로 저만 보면 안다고 꼬리 흔들던 기억이...(저를 쥐포 주는 아줌씨로 기억을 한듯...)착하고 순하다고 지은 이름이라던 진순이가 생각납니다....
님은 좋으신 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