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겨울날 아침 강가
십이월 중순에 접어든 목요일이다. 전날 귀로에 소답동 골목 상가에서 퇴직 전 근무지 두 동료와 방어 생선회를 앞에 두고 한담으로 안부를 나눴다. “제주산 대방어가 물차에 갇혀 실려 / 뭍으로 건너와서 횟집촌 수족관에 / 유유히 꼬리를 치며 미식가를 홀리네 // 추위가 더할수록 살점은 쫀득해져 / 뱃살이 일품이나 등살도 마다 않아 / 기름장 묵은지 감싸 입안 가득 맛보네”
앞 단락 인용절은 잠을 깬 새벽에 생활 속 동선의 글을 남기면서 곁들인 ‘제철 대방어’ 한 수다. 날이 밝아와 자연학교 등교를 앞두고 베란다 밖을 내다보니 하늘이 흐려 우산을 챙겨 현관을 나섰다. 이른 시각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안민동에서 시내를 거쳐온 102번 시내버스로 창원역 앞으로 갔다. 건너편에서 근교 강가로 가는 1번 마을버스로 갈아타 도계동 만남의 광장을 지났다.
용강고개를 넘으니 구름이 낮게 드리운 하늘은 빗방울이 긋지 않아 차량은 정상 속도로 운행했다. 용잠삼거리를 지나면선 내리고 타기도 하던 승객은 점차 줄고 대신 몇몇 할머니들이 탔다. 목요일은 면 소재지 가술에서 노인대학 노래 교실을 열어 거기로 찾는 분들이다. 월요일은 아침나절은 강연이고 목요일은 외부에서 사회자를 모셔 와 트로트 가락에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가술에서 할머니들이 모두 내리자 모산까지 국도 구간을 달리면서 늙수레한 사내와 둘만 남았다. 나는 강변 요양원 근처에서 내리고 사내는 제1 수산교에서 하차한다고 했다. 그는 나도 가끔 걸어서 건너는 수산교를 건너 밀양으로 가려는 듯했다. 신설 국도로 접속하는 삼거리에서 강변으로 나갔다. 자전거길이 시원스레 뚫린 강둑에는 벚나무 가로수는 나목이 되어 줄지어 섰다.
드넓게 펼쳐진 둔치에 자란 물억새는 색이 바래져 야위어졌다. 건너편 수산 시가지 높다란 아파트가 시야에 들어왔고 강심으로는 수산대교가 걸쳐 지났다. 가로수의 열병을 받으면서 수산대교 교각을 지나 대산 문화체육공원으로 향하자 빗방울이 가늘게 떨어져 우산을 펼쳐 썼다. 시든 국화만이 남았을 플라워랜드로 내서서지 않고 강둑을 따라 걸어 모산리로 가는 굴다리를 지났다.
남모산에는 내가 북면에서 텃밭을 경작하는 밭뙈기를 소유한 주인이 산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내가 평소 약차로 달여 먹는 건재 가운데 말굽버섯 조각과 올가을 작대산에서 캐 와 말린 단풍마를 배낭에 챙겼더랬다. 두어 차례 들러 익혀 둔 모산 주인장 집을 찾으니 안사람만 있고 바깥양반은 들녘 당근 비닐하우스를 살피러 나가 약재만 건네고 간단한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강변 들녘은 벼농사 이후 겨울 농사로 비닐하우스로 특용작물을 재배했다. 예전은 수박 농사가 대세였으나 농사일이 힘들고 시세가 들쭉날쭉해 당근으로 작목이 바뀌었다. 제주 구좌에서 생산되는 당근과는 출하 시기가 달라 전국으로 보내지는 수요처가 있는 듯했다. 외국인 일손으로 하우스가 세워져 계약 재배에 의한 영농과 출하로 수익은 단계별로 관계자들이 몫을 나누었다.
남모산 거리에서 국도변을 따라 걸어 가술로 와 행정복지센터로 들어 아침에 앵글에 담은 강변 풍경 사진을 지인들에게 보냈다. 이후 흐렸던 하늘이 개고 햇살이 드러나 삼봉공원으로 나가 운동기구에 매달려 몸을 단련하고는 이른 점심을 한 끼 때웠다. 식후는 문화나눔센터 카페에서 커피를 받아 도서실로 올라 농어촌활성화센터에서 간행한 마을 소개 책자 ‘금산리’ 편을 읽었다.
엊그제 학동과 상촌에 이어 금산리는 서북산 기슭 마을로 자주 찾은 곳이다. 내가 속한 문학 동인회에서 뵙는 공직 은퇴 후 귀촌한 일죽 선생이 사는 마을로 그분이 책자를 엮는데 도움을 준 내용도 엮어져 있었다. 찾은 이가 아무도 없는 열람실을 개인 서재처럼 머물다가 정한 시간이 되어 들녘 초등학교 주변에서 맡겨진 임무를 수행했다. 하늘은 기러기들이 편대를 이뤄 날았다. 25.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