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이트 스토리(스트레이트라는 노인의 이야기)'라는 영화를 봤지. 어젯밤 EBS에서 방영하길래 모처럼 시간을 쪼개서 봤는데 노인의 지혜와 가족애로 인해 가슴이 뭉클하데. 이 영화의 주된 줄거리는 실제 뉴욕 타임스에 기사화됐던 실화가 바탕이 됐다고 하는데 잠깐 소개하면... ... .
이 영화는 73살 먹은 노인이 10년 전에 싸우고 등을 돌린 죽어가는 형을 마지막으로 만나기 위해 잔디깎는 기계를 타고 6주간 장거리 여행을 떠난다는 설정이다.
앨빈 스트레이트는 언어 장애가 있는 딸 로즈와 함께 아이오와의 한적한 시골마을에 살고 있다. 어느 날 10년 전에 싸우고 연락을 끊은 형이 뇌졸증으로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은 앨빈은 며칠 고민하다 스스로의 힘으로 형을 만나기로 한다. 그러나 앨빈은 마루에서 쓰러져 두 개의 지팡이로 몸을 의지해야 걸을 수 있고, 눈이 나빠져 운전을 할 수도 없다. 그리고 형에게 가는 버스 노선도 없으며, 딸 로즈는 운전면허증도 가지고 있지 않다.
앨빈은 혼자만의 장거리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시속 5마일로 달리는(?) 잔디깎는 농기계에 휘발유와 소시지를 가득실은 조그만 트레일러를 이어 붙여 천천히 목적지를 향해 간다. 카메라는 길게 뻗은 길을 가는 잔디깎이 기계를 비추다 시선을 들어올려 파란 하늘을 한 동안 보여준다. 그러다 다시 시선을 땅으로 내리는 데 꽤 긴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앨빈이 움직인 거리는 거기서 거기다. 그만큼 잔디깎이 기계는 느리게 움직인다. 자전거 속도나 될려는지... ... .
줄거리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일종의 로드 무비의 형식을 띠고 있다. 그런데 일반적인 로드 무비들이 떠나는 여정에서 여러 사건을 통해 스스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그리는 게 보통이라면, <스트레이트 스토리>는 지혜로운 노인이 떠나는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자신의 지혜로서 성장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게 이채롭다.
앨빈은 임신을 하고 가족 모르게 가출을 한 10대 소녀, 스피드를 즐기는 젋은 자전거 레이서들, 길에서 걸핏하면 사슴을 차로 치는 히스테리컬한 여성, 따뜻한 친절을 베푸는 중년 부부와 끊임없이 다투는 쌍둥이 자동차 수리공 등을 만난다. 앨빈은 그들과 대화를 나눈다. 긴 대화도 있고, 짧은 대화도 있다. 그런데 사실 노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건 새롭거나 위대한 수사들이 아니다. 기존에 익히 들어봤음직한 얘기들이며, 그것도 가족의 소중함이라는 일관된 주제를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상식적이고 평범한 얘기들이 터벅터벅 걸어가는 듯한 잔디깎기 기계의 느린 움직임과 노인의 깊게 패인 주름살, 그리고 형과의 화해를 위해 고된 여행을 떠나는 앨빈의 현실과 맞물리면서 깊은 인생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한달 반 동안의 긴 여행을 통해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 앨빈은 형과 만난다. "나를 보기 위해 저걸 타고 왔냐"고 묻는 형의 질문과 두 노인네의 눈에 비치는 눈물.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서로의 눈을 들여다볼 때, 그 눈에선 그 동안의 오해를 넘어서는 깊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 둘은 어린시절처럼 밤하늘의 별을 바라 본다. 화면 가득 채워진 별과 함께 영화는 막을 내리지만 쉽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긴 여운을 준다. 앨빈 스트레이트 역을 맡아 홀로 외로운 여정을 감내했던 리처드 판스워스는 스턴트맨으로 영화계에 데뷔했으며, 57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배우로 연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76살의 노인이 됐을 때 첫 주연을 맡은 작품이 바로 <스트레이트 스토리>였으며,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한다. 촬영 당시 말기 암에 걸려 있던 그는 영화가 완성된 뒤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영화에서 보이는 앨빈의 눈빛이 더 슬퍼보이고 깊어보였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옛날에 내가 소개했던 '비키퍼'라는 영화와 흡사하다. 인생의 무게감과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 .
노인이 남긴 가장 기억에 남는 말
- "나무 젓가락을 부러뜨러 봐. 금방 부러지지. 부러진 나무 젓가락을 묶어서 다발로 부러뜨려봐. 부러뜨려지지 않지? 그 나무젓가락 묶음이 바로 가족이야."(임신한 가출 소녀에게 집에 돌아가라며 한 말)
-"늙는다는 것이 가장 안 좋을 때가 언제죠?"(젊은이가 묻자)
"나도 청춘이 있었지"라고 말할 때 가장 슬프지."(노인의 대답)
첫댓글 친구들, 오랜만이네.
잔잔한 감동과 여운이 깊은 영화로군요...스펙타클한 영화보다 재미는 떨어지겠지만 성찰을 하는 계기가 될것 같고..오랫만에 친구의 방문으로 카페가 모닥불을 지핀듯 따뜻해오네요....감사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