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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기도
주님,
주님을 믿는 저희를 인자로이 비추시고
주님 영광의 찬란한 빛으로 저희 마음을 밝히시어
저희가 구세주를 올바로 알아보고 충실히 섬기게 하소서.
제1독서
<우리는 형제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습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3,11-21
사랑하는 여러분, 11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말씀은 이것입니다.
곧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2 악마에게 속한 사람으로서 자기 동생을 죽인 카인처럼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가 무슨 까닭으로 동생을 죽였습니까?
자기가 한 일은 악하고 동생이 한 일은 의로웠기 때문입니다.
13 그리고 형제 여러분, 세상이 여러분을 미워하여도 놀라지 마십시오.
14 우리는 형제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는 것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죽음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
15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모두 살인자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알다시피,
살인자는 아무도 자기 안에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16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 목숨을 내놓으신 그 사실로
우리는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17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 그에게 마음을 닫아 버리면,
하느님 사랑이 어떻게 그 사람 안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18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
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해 있음을 알게 되고,
또 그분 앞에서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20 마음이 우리를 단죄하더라도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보다 크시고 또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21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이 우리를 단죄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복음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43-51
그 무렵 43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기로 작정하셨다.
그때에 필립보를 만나시자 그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
44 필립보는 안드레아와 베드로의 고향인 벳사이다 출신이었다.
45 이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만나 말하였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
46 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였다.
그러자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7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48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49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50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51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거짓과 믿음은 어둠과 빛의 관계와 같다
믿기 위해서는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우리는 믿고 싶다면서도 거짓을 좀처럼 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님을 만나는 방법은 이 두 길밖에는 없습니다. 곧 메시아로 만나고 라뽀니로 만나는 방법입니다. 예수님의 공생활이 이 둘로 나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통하여 진리와 은총을 주십니다. 은총으로 만나면 메시아를 만나게 되고 진리로 만나면 라뽀니를 얻게 됩니다.
은총은 ‘삶의 이유’를 밝혀주고 진리는 ‘삶의 방식’을 알려줍니다. 어제 ‘서바이브’란 영화에서 우울증에 삶의 의욕을 잃은 주인공이 자신을 위해 죽어가는 한 사람을 살리고 싶어 자신도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게 된 이야기 안에서 그 주인공이 만난 사람이 바로 메시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진리로 만나는 방식을 알려줍니다. 나타나엘은 나자렛에서 대단한 게 나올 수 있겠느냐고 말합니다. 하지만 필립보에게 순종하여 예수님을 만나러 갑니다. 예수님은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라고 하십니다. 나타나엘은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라고 묻자 예수님은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라고 하십니다.
요한복음에서는 ‘보는 것’과 ‘아는 것’, ‘사랑하는 것’, 그리고 함께 ‘머무는 것’은 거의 동의어로 쓰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분을 알기 이전에 우리를 아십니다. 이것을 인정하게 되면 나타나엘처럼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믿는 이들을 더 큰 믿음으로 이끄십니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아나요? 잘 모릅니다. 잘 안다면 이렇게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잘 알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모른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배울 수 있습니다. 솔직하지 않으면 배우지 못합니다.
미국 드라마 ‘마인드헌터’는 실제 FBI 프로파일러인 존 E. 더글러스(John E. Douglas)를 바탕으로 FBI 요원 홀든 포드(Holden Ford)를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이 시리즈는 자신이 범죄 심리학에 대해 확고한 이해를 하고 있다고 믿는 다소 거만하지만 야심 찬 젊은 요원에서 범죄 정신의 깊이와 복잡성을 깨닫는 노련하고 겸손한 프로파일러에 이르기까지 홀든의 여정을 추적합니다.
처음에 홀든은 범죄자에 대한 자신의 이해에 강한 믿음을 나타냅니다. 그는 자신의 지식을 사건 해결에 적용하려는 열망과 결심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연쇄 살인범의 세계를 더 깊이 파고들면서 그는 자신의 초기 가정에 도전하는 복잡성과 미묘한 차이에 직면하게 됩니다.
지금까지의 자기 지식이 부족했음을 솔직히 인정한 홀든은 파트너 빌 텐치, 심리학자 웬디 카와 함께 투옥된 연쇄 살인범을 인터뷰하는 획기적인 프로젝트에 착수합니다. 이 인터뷰는 강렬하고 충격적이며 심오한 통찰력을 제공하여 홀든을 인간 정신의 가장 어두운 구석에 노출시킵니다.
이러한 만남을 통해 홀든의 관점은 극적으로 변합니다. 그는 이러한 범죄자들의 동기와 정신에 대해 실제로 아는 것이 얼마나 적은지 점점 더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겸손은 그의 결심을 약화하지 않습니다. 대신, 더 많이 배우고 이 지식을 혁신적인 방식으로 적용하려는 그의 열망을 불러일으킵니다.
시리즈가 진행됨에 따라 홀든의 진화하는 접근 방식이 결실을 보기 시작합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연결을 만들기 시작하고, 범죄 정신에 대해 새로 발견한 이해를 적용하여 복잡한 사건을 해결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여행은 단지 직업적인 여행이 아니라 매우 개인적인 여행이기도 하며, 그의 관계와 정신 건강에 영향을 미칩니다.
거짓말은 모든 안 좋은 것을 정당화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무화과 잎으로 자기를 가리며 자기들이 지은 죄를 자기들이 수습할 수 있다고 믿어버렸습니다. 자기 힘으로 하느님과 이웃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자비로 죄가 용서받는다는 진리를 무용지물이 되게 하였습니다. 그들에게 하느님께서 준비하신 가죽옷은 거추장스러울 뿐입니다. 오직 그 가죽옷만이 자기 죄를 덮어주고 주님 앞에 나설 힘을 준다는 사실을 믿을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거짓말은 믿음을 의미 없게 합니다. 그러니 믿고 싶다면 거짓말을 하지 않는 존재가 됩시다. 어둠과 빛이 공존할 수 없듯, 거짓과 믿음이 공존할 수 없습니다.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재미있는 실험 결과를 보았습니다. 기차를 타고 있습니다. 주위에 많은 사람이 앉아 있는데, 이들은 모두 처음 본 낯선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이 낯선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조용히 혼자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을 선택해야 더 즐겁게 기차 여행을 할 수 있을까요?
대부분 혼자 조용히 있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이 나쁜 경험이 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억지로라도 대화를 나누라는 지시를 내렸고, 실험자들은 지시에 열심히 따랐습니다. 그 결과 처음 생각과 달리 긍정적인 경험을 했다고 답변했으며, 이 시간이 평소보다 훨씬 즐거웠다고 평가했습니다.
이 실험은 우리 인간이 정서 예측에 미숙하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실제로 자신의 어려움은 모두 인간관계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그래서 남 때문에 삶이 어려워졌다고 밝힐 때가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관계 안에서 우리는 긍정의 마음과 만족스러운 결과를 더 많이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사실 많은 이가 고독을 즐기는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른 사람과 연결되었을 때 빚어질 잠재적 혼란을 피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혼란을 피하기 위한 노력이 본인의 더 큰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이웃은 ‘나’를 힘들게 하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나’라는 존재가 더 잘 살 수 있도록 해줍니다. 예수님께서 사랑을 말씀하신 이유, 또 이 사랑의 힘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긍정적 마음과 더불어 만족스러운 결과는 사랑의 관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 모범을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들이 굳이 필요 없을 텐데도 제자들을 하나둘 모아서 제자단을 형성하십니다.
어제 복음에서는 요한과 안드레아 그리고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단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는 필립보와 나타나엘을 부르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그 늘어나는 숫자에 우리의 이름도 넣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말했던 것처럼 주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와서 보시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주님 안에 하나를 이룰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더 큰 기쁨과 행복 안에서 이 세상을 잘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선포하신 기쁜 소식은 몇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기쁜 소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혼자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과 함께,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할 때 그 기쁨은 훨씬 더 커지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행복이란 하늘이 푸르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만큼 쉬운 일이다(요슈타인 가아더).
사진설명: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첫댓글 365일 말씀으로 살아가기.. 오늘은 창세기 19=22장 입니다.
야훼이레, 주님의 산에서 마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