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가 억압된 이유.
성도 5백명의 교회가 있다고 하자.
성도 각각에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서 각자의 삶에 맞는 비전을 주셨다.
하지만,
교회에 나오는 순간, 그 교회가 비전이 있다고 하고
특별히 목사님은 너무나 놀라운 본인의 비전이 있다.
그런데, 성도들에게 이야기한다.
하나님의 비전(솔직히 자기 비전)이 있으니,
성도들에게 이런 일에 동참하라고.
이럴 때 5백개의 비전이 갑자기 1개의 비전으로 줄어 들게 된다.
오늘날의 한국교회가 점점 영향력이 없어지는 이유는
그 교회의 비전이라고 일컫는 몇 개의 비전,
목사의 비전에 모든 성도들을 동원하기 때문이다.
난 그래서
비전이 큰 목사와 비전 몇 개 세워 어머어마한 홍보를 하는 교회는 좋아하지 않는다.
결국, 한개 교회에서 세우는 몇개의 비전이나, 목사의 지극히 자신의 경험에서 제한된 몇개의 사역만을 위해 정말로 뛰어난 성도들과 삶의 경험을 가지고 있어서 그 영역에서 달려갈 성도들을 자기 사역에 동원하여, 성도들이 자기 비전을 상실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도들의 각자의 삶 속에서 부르심을 격려하고
500개의 비전을 향해 교회는 자원을 나눠주면
1개의 비전이 500개가 되어 버리고,
그 영역에 하나님 나라가 오게 되는 것이다.
목사 한 사람이 아무리 좋은 사역을 가진다 하더라도
자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자기 비전에 성도들이 모든 자원을 투입하면
그만큼 성도들의 삶의 자리에서 흘러가야 하는 자원들이
안 흘러간다는 생각을 왜 못할까?
너무 지나치게 자신의 사역을 홍보하는 것이
결국에는 다른 영역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지 못하게 막는다는 것을 왜 모를까?
자녀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부모가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재능과 관심 분야를 보고
그 쪽으로 가도록 지지하고 노력해 주면
자신의 아이는 다양한 분야에서 섬기는 사람이 될텐데,
부모가 어떤 특정일을 하는 것이 좋다고 아이들을 다 그 직업의 사람이되게 한다면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 것인가?
하나님께서 다양한 분야를 섬기도록 사람들에게 은사를 나눠줬는데
특정인과 단체를 위해 자신의 분야를 잊어버리고, 자원을 몰아주는 세상에
어찌 하나님 나라가 제대로 설 수 있겠는가?
이제는 과거의 과오를 반복하지 말자.
한국 교회가 날로 쪼그라든것은
결국 500개의 비전을 1개로 만들어왔던 사람들의 모습 때문이 아닐까.
(물론 아무 비전 없이 사는 사람에게 비전을 찾아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장선기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