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수행단체들을 방문
얼마 전에 우연히 한 기(氣) 수련단체를 방문했었는데
그 단체의 수련법에 묘한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단전호흡을 통해 선계(仙界)로 진입하는 수련법이라고 해서
‘선계수련’이라는 간판을 단 수련단체였습니다.
그 단체는 여성이 수련지도자였고,
내건 기치나 수행방법이 제가 이제껏 보아왔던 수련법과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그 여성지도자는 화담 서경덕, 토정 이지함, 북창 정염 등
유명한 우리 선조들이 바로 선계수련을 한 선인(仙人)들이었다고 주장하며,
자신은 그들과 기적(氣的) 통신(이른바 텔레파시)을 하며 교류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 누구든지 선계수련을 하면
선계의 선인들과 통신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특이하게도 이 수련단체에는 수년에서 수십년까지
다른 기수련 단체를 헤매다 들어온 사람들이
수련생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곳이야말로 자신의 수련 종착역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지난 10년간 우리 나라에서 내노라하는 기공사를 비롯해
세상에 얼굴을 내놓지 않는 기인과 도꾼들을 만나 취재했고,
심지어는 기공의 종주국이라고 하는 중국까지 찾아가 그 지도자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내심으로는 제가 증산도를 신앙하며 태을주 주문수련을 하고 있기 때문에
참고로 여러 가지 기 수련법을 알아보자는 뜻도 있었습니다.
뒤에서 본격적으로 밝히겠지만 결론적으로
국내외 각 기공단체의 수련법들이 저마다 독특한 장점이 있긴 했지만
태을주 수련법이나 도공(道功)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고
그 어느 것도 양에 차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우리 조상들이 수행했다는 전통의 수련법을 복원했다고 주장하며
바로 우리 조상인 선인들과의 대화가 가능하다는 선계수련 단체가 나타났으니,
저는 10년 탐색작업의 마지막으로 그 단체의 수련법을 자세히 알아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인터뷰했던 그 수련단체 여성지도자를 만나
선계수련이 어떤 것인지 직접 체험해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여성은 대뜸 지금까지 내가 신념체계로 다져오고 수련을 통해 다져온 그 모든 것을
다 버릴 수 있겠느냐고 질문했습니다.
선계의 기는 매우 순일(純一)하기 때문에
마음과 몸의 모든 것을 버려야만 선계수련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지금껏 제가 해오던 수련법(태을주 수련)도 포기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따를 수 있을 때 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고민했습니다.
그 단체의 수련이론 등에 대해서는 책자나 그녀의 말을 통해 파악이 됐지만
과연 무슨 기운인지 느껴보기 위해서 내가 근 20년 동안 간직해오던 태을주
수행을 접어두라니?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수련법이기에 저렇게 과감히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선계수련 기운 맛을 보고 10년 기단체 방문작업을 끝낼 것인가,
아니면 쓸데없는 데 시간 빼앗겨 괜히 헛공부하지 말고 증산도 신도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태을주 수행을 본격적으로 할 것인가?
바로 그 즈음에 태사부님, 사부님의 도공전수 소식이 들려왔고,
저 역시 태전으로 내려가게 됐던 것입니다.
저는 사실 몇해 전에 태사부님께서 도공을 내려주신 후
서울 신촌도장에서 신도들 사이에 말하는 '오토auto 동작'(저절로 움직여지는 동작) 정도는 됐으나,
더 이상 진척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도공은 오토가 전부인 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세계에서 유일무일한 도공 수련법
태전 세종도장에 도착해
태사부님, 사부님의 말씀을 들었고,
드디어 태사부님의 도공전수가 계셨습니다.
세종도장 2개 층에
신도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어서
손 하나 마음대로 펼칠 수 없는 상태에서
태사부님의
“이제부터 해봐”하는 말씀으로
도공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어서 “상제님이시여∼”하면서
신도들은 도공을 하는데,
저는 하던 동작도 멈추고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순식간에 몰입해서 도공 자세를 취하는
신도들. 어떻게 저럴 수 있단 말인가?
태사부님의 도공전수를 보면서 중국의 기수련단체를 방문했던 기억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저는 몇년 전에 중국에 들어가 중국 정부가 학문연구의 영역으로 유일하게 인정하고 있는
원극기공을 취재하면서 그 단체 지도자인 장지상(張志祥)씨의 기공을 체험한 적이 있었습니다.
장씨는 13억 중국인구 중에서 기공 고수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대단한 능력을 인정받고 있던 인물입니다.
실제로 한번에 3,000명을 수용하는 대강당에서
장씨가 ‘발공(發功: 기 수련자가 대중에게 기를 보내는 것)’을 하고,
3,000명이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그의 기를 받는 모습은 장관이라 할 만했습니다.
장씨가 강당 위에서 손짓으로 기를 내뿜는 동안 사람들의 몸이 기에 취해
의자에 앉은 자리에서 들썩들썩 움직이는 등 ‘기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을까 장씨도 힘이 들어 보이는 듯 의자에 앉더니
동작을 멈추고 기력을 가다듬는 듯했습니다.
저도 대중과 의자에 앉아서 그의 기를 체험하는 동안 ‘참 대단한 고수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장씨처럼 대중을 상대로 한번에 많은 기를 전수하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태사부님, 사부님의 도공전수 모습은 어떤가.
단 몇 마디 말씀으로 끝내고 우리 신도들은 곧장 오토,
정확히 말하자면 기공 용어로 ‘자발동공(自發動功)’의 자세로 몰입해가지
않는가.
그렇다고 두 분 지도자께서 특별한 동작 등으로
신도들에게 기를 불어넣어 주시는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이렇게 해봐”하시며 자세만 가르쳐주시고 단순히 말씀에 의해서 도공이
전수되다니!
그런데도 그 반응은 중국의 기공 대고수 장씨가 온 힘으로 대중에게 전하는
밋밋한 기 반응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강력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몇 해 전에 태사부님 전수 이후로
도공전수 광경을 직접 목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우리 성도들 중에는 태을주 수행과 도공을 일상적으로 하다보니까
그것이 얼마나 위대하며 최고급 수련법인지를 잘 깨닫지 못하는 분들이 계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그야말로 세상에 내노라하는 기공 고수들을 만나봤기 때문인지 금방 감이
왔습니다.
도공은 그야말로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태사부님 말씀대로 세계에서 유일무일한 최상의 도법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태전 행사를 끝내고 서울로 올라오면서 흥분에 들떴습니다.
태전에 내려가면서 고민했던 선계수련법에 대한 미련은 봄날 눈 녹듯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광화문 도장에서 여러 성도님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도공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온몸이 기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동작, 기공식으로 표현하면 자발동공이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이전에 제가 체험했던 ‘오토’ 동작보다 훨씬 깊이가 있었고 자세도 다양했습니다.
어떤 날은 평생 무예를 익혀본 적도,
가까이 해본 적이 없는 저에게
‘택견 동작’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여러 무예를 익힌 적이 있다는 한 성도가 제 동작을 보고서 ‘그게 바로 택견 고수의 자세’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자발동공이 원래는
우리 민족의 원초적인 수련 방법의 하나였음을 아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자발동공의 본 면목은 우리 나라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단지 토속종교나 무속에서 나타나는
무당들의 접신(接神) 현상(무당들이 신이 들어 격렬히 몸을 흔드는 상태),
그리고 한국에서 일본으로 흘러간 신도(神道)의 수련법인 영동법(靈動法)에서
일부 변질된 채 나타날 뿐입니다.
저는 한민족 고유의 기 수련법이 이번에 태사부님, 사부님의 지도 하에
도공(道功)이라는 이름으로 원 면목을 드러낸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런 자발동공이 너무나 격렬해
그 모양이 마치 ‘미친 사람의 행동’또는‘신들린 사람의 행동’같다고 해서
별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자발동공의 본 면목을 모르기 때문이며,
또 한국의 일부 단체에서 ‘자발동공’을 왜곡시켜 전파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 ‘자율진동’이라는 이름으로 기공수련을 하는 모 단체는
중병에 걸린 환자들을 치료하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실제로 자발동공은 질병 치료에 있어서 여느 기공법에 비해 매우 탁월한 효과를 발휘합니다.
문제는 그 단체 지도자의 리드에 의해 이뤄지는 자발동공이 너무 격렬한 데다,
환자들 자신이 제어하지 못할 정도가 돼 자칫 잘못하면 빙의(憑依)가 될 위험성이
매우 높다는 점입니다.
자발동공에서 제일 중요한 포인트는 기의 흐름대로 몸을 맡기되,
마음의 통제하에 기 흐름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격렬한 동작과 자세를 취하다가도 수련 지도자의 말이나 자신의 의지에 의해
멈추고 싶으면 언제든지 동작이 멈춰져야만 위험하지 않습니다.
우리 도공 수련이 그렇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이상한 듯이 보여도
자신이 언제든 멈추고 싶으면 그대로 자연스럽게 되돌아가는,
그래서 전혀 부작용이 없는 자발동공 수련법인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매우 강력한 자기치유 효과가 나타납니다.
도공(道功)의 강력한 파워
저는 도공 수련을 하면 할수록
그 깊이가 매우 강렬해지고 중후해짐을 느꼈습니다.
실제로 몸 안에서 하단전에 기운이 돌고,
기공식으로 말해 임맥(任脈), 독맥(督脈)이
소통되는 듯한
느낌도 받았습니다.
머리 위로는 굵은 기 기둥이 서 있는 듯도 했습니다.
도공의 깊은 맛을 표현하려니
‘장풍도사’로 유명한 기공사 양모씨를
예로 들어보아야겠습니다.
저는 도공을 익히기 전에 장풍도사를 만나
그의 기 바람을 쐰 적이 있습니다.
그의 경우 내공(內功)이 어느 수준인지는 몰라도
기를 밖으로 발산하는 외공(外功)으로는
우리 나라에서 첫 손가락에 꼽힐 만한 인물입니다.
그가 한강에서 폭이 1km 이상 떨어진 강 건너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장풍을 보내 쓰러뜨리는 장면을
텔레비전에서 본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건 꾸민 것이 아니라 실제 상황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아무리 대단한 기공 고수라고 해도
그 정도 기운을 바깥으로 쏟아내는 사람을 찾긴 힘듭니다.
어쨌든 그가 여러 명을 상대로 장풍을 쏠 때 저도 그 ‘장풍 맛’을 보았습니다.
흔히 손으로 바람을 내보낸다고 해서 ‘장풍’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양씨의 장풍은 무협소설에 등장하는 바람 같은 것은 아닙니다.
그의 기가 손을 통해 상대방의 몸에 전달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를 운기방사(運氣放射)라고 표현합니다.
그가 기를 돌려 방사하면 상대방은 기를 받아들여 온갖 자세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저는 그의 장풍을 ‘맞은’지 얼마 지나서
제 몸에서 기가 도는 것을 느끼면서 ‘기 춤’을 추었습니다.
말하자면 자발동공이 됐는데 참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장풍을 한 20분 보낸 양씨는 그야말로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만큼 기 소모가 컸던 모양입니다. 그 후에도 여러 번 그의 기를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도공을 시작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양씨에게서 체험했던 수십 배, 아니 수백 배 이상의 강력한 기운을 체험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외에도 저는 그간 매우 많은 기공사들을 만나 그들의 기를 체험하고 다녔습니다.
한국에서 제일 회원숫자가 많다고 하는 기수련단체 지도자에서부터
세상에 이름을 드러내지 않은 도인에 이르기까지 온갖 기체험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제가 지금 스스로 하고 있는 태을주 도공에 미치지 못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저의 이같은 기공세계 편력을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이 사람, 저 사람의 기운을 쐬다 보니 몸에는 어느 새인가 헛기운이 잔뜩 고여 있었던 것입니다.
애초 이런 부작용을 각오했었습니다.
함부로 남의 기를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은 기공계의 불문율이기도 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주화입마(走火入魔)가 되거나 빙의(憑依)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공사들을 찾아가 기를 받을 때도,
기 체험을 하고 나서는 집에 돌아오면 반드시 태을주를 외면서 받았던 기운들을 풀어내려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도력이 얕았던지 헛기운이 들어와 있었던 것입니다.
헛기운을 증상으로 표현하자면,
태을주 수행을 할 때 허리 부분이 심한 진동으로 떨려 차분히 수행을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것이 제 몸 깊숙이 자리잡아 태을주 기운과 상충되는 듯했습니다.
이 헛기운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부디 호기심 많은 성도들에게 당부하건데, 쓸데없이 남의 동네 기 수련을 배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수련법을 알고 싶으면 그들 단체에서 펴낸 이론서나 입문용 책을 봐도 충분할 것입니다.
도공 수련과 참회의 눈물
다시 도공 얘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광화문 도장에서 밤에 함게 도공을 했던 ‘동지들’ 중에서
상제님, 태모님 신전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몇 명은 통곡을 했습니다.
모두들 무어가 그리 회한에 차 있었던지, ‘상제님이시여, 태모님이시여∼’를 부르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특히 신앙한 지 오래된 사람들일수록 강도 높은 참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한편 저는 도공을 하는 과정에
제 몸의 잘못된 곳을 바로잡기 위해 두들기고 자극하는 동작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어떤 때는 누운 상태에서 기에 이끌려
왼손을 들었다가 여지없이 방바닥을 내려치는 자세가 멈출 줄 모르고 나왔는데,
너무 아파서 눈물을 펑펑 쏟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아픈 것과는 상관없이 기(氣)가 끊임없이 제 손을 이끌어 혹사시켰습니다.
사실 왼손에 여러 가지 기능적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여하간 그런 손동작이나 이마를 방바닥에 찧는 동작을 하면서,
이것이 바로 참회하는 도공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전생에서부터 현생까지 제가 저지른 잘못을 뉘우치기 위해 몸으로 고행을 하는 수련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도공에서 나오는 참회의 눈물이나 동작은
기공계의 일반적인 ‘자발동공’에서는 잘 목격되지 않는 현상입니다.
정성기운만큼 커지는 도공 파워
저는 도공을 여러 주 동안 하면서 어느 순간에 어떤 벽에 부딪혔음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건 비단 저만 느낀 것은 아니었습니다.
광화문 도장 포정님을 비롯해 여러 포감들, 그리고
도공 수련에 참여한 모든 성도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각자가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해 더 이상 진전이 없는게 아닌지
속으로만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포정님이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정성껏 제물치성을 올려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각자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되는 정성금이 할당되었습니다.
그 정성기운으로 벽을 뚫어나가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시한을 정해놓고 그 정성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겪은 우리 성도들의 우여곡절도 참 많았습니다.
마침내 정성수행을 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정말로 비장한 마음을 갖고
도공수행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기도를 하고 도공에 들어가는 순간
바로 뭔가 다른 기운을 느꼈습니다.
이전에는 생각도 못한 강한 기운이
도장 내를 감싸는 것을 느낀 것입니다.
도공 자세도 달라졌고
온몸으로 기운을 받아들이는 듯했습니다.
도공 수행을 끝내고 보니
모두들 저 이상의 강한 체험을 했습니다.
바로 정성의 힘에 의해 무언가 한걸음 더
나아갔다는 것을 공통적으로 느낀 것입니다.
사실 정성은 우리 신도들이 수행을 하는 데
있어서 절대적인 밑천입니다.
제 개인 생각으로는 사람과 신명이 만나는 데는 ‘정성’이 개입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봅니다.
물질로도 그렇고 마음을 들이는 것도 그렇습니다.
도공을 시작할 때도, 그리고 한계에 부딪쳐 정성금을 마련해 수행을 할 때도
저는 그 정성 기운에 감응해 천지신명께서 우리 성도들을 보살펴주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 가지 더 덧붙이면 저는 도공을 하면서 21일 새벽수행을 병행했습니다.
새벽에 태을주 수행을 할 때 제가 아는 지인(知人)을 데리고 같이 수행을 했습니다.
그야말로 증산도의 ‘증’자도 모르는 상태에서
막연히 태을주 수행이 몸에 좋다고 권유해서 같이 수행해 임했습니다.
저로서는 이전에는 전혀 고려해보지 않은 색다른 포교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새벽수행에 감화가 됐는지, 증산도에 입도해 우리 식구가 되었습니다.
개벽철에 사람을 많이 살려야 참도인
마지막으로 도공과는 별로 관계가 없겠지만
제가 세상에서 체험한 것을 하나 소개하고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 나라 땅덩어리는 비록 조그마하지만,
풍수지리상 혈처라서 그런지 대단한 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모악산에서 수도하여 득도했다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수련 경계는 여러 사람들의 증언을 종합해보건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깊은 경지에 도달해 있었고, 후천개벽이 되는 상황까지 체험한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저는 그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도가 그 정도로 깊고, 개벽이 되는 것까지 보셨으면 앞으로 무얼 하실 생각이십니까?”
“나와 인연이 있는 사람에게 내 수련법을 전수해 줄거야.”
“과연 몇 명이나 선생님의 수련법을 따를 수 있을까요?”
“그야 모르지. 한두 사람에게 뿌려도 그것이 싹이 자라나면 세상에 보탬이 되지 않을까?”
“그러면 선생님 수련법을 닦으면 후천개벽 때 살아남을 수 있습니까?”
“잘하면 그럴 수도 …”
“우리 나라는 그렇다치고 다른 나라 사람들은요?”
“….”
요지는 그가 아무리 탁월하게 깨쳤다 해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후천개벽이 되는 걸 보았다면서도
그의 대응은 범부의 소박한 생각과 하나 다를 바 없었던 것입니다.
제가 만나본 대다수의 기(氣) 고수들도 이와 유사했습니다.
후천을 대비해 천하사를 도모하고 천하창생을 건질 생각은 꿈에도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기공 고수 중에는 우주원리를 몰라 후천개벽을 전혀 인정치 않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설사 후천개벽이 온다는 안다고 해도 아무런 대안이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대비 카드가 준비돼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제가 태전으로 내려갈 때 수련을 해볼까 고민했던 선계수련의 주인공도
결국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성도 여러분께 간곡히 권합니다.
절대 한눈 팔지 마시고
태사부님 사부님께서 내려주신 태을주 수도와 도공을 열심히 하십시오.
바로 그것이 자신이 사는 길이며,
자신의 가족과 천하창생을 건지는 유일무이한 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