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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의 만남 혹은 사진을 통한 만남
내가 중학교 입학을 앞둔 1980년도 1월에 할아버지께서 간경화로 세상을 떠나셨다. 그때 할아버지께서 남기신 유품 중에 올림푸스 하프 사이즈 카메라가 있었다. 나는 중학교 수학여행 때 그 카메라를 갖고 가서 같은 반 아이들과 사진을 찍었다. 그 후 고등학교에 입학하니 학기 초부터 여러 써클(동아리)에서 신입회원을 모집하러 선배들이 점심시간에 1학년 교실을 다니면서 홍보를 했다. 그때 홍보를 다닌 여러 써클 중에 하나가 사진부였다. 나는 사진기나 사진에 대해서 전혀 몰랐지만, 할아버지께서 남기신 올림푸스 카메라가 생각나서 선뜻 사진부에 가입했다. 사진부에 가입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단체로 1박2일 촬영을 가는 일정이 잡혔다. 그런데 우리학교 근처에 있는 여자고등학교 사진부와 함께 촬영을 간다고 하니 아버지께서 허락을 하지 않아서 나의 첫 촬영은 무산되었다. 사실 그 단체 촬영은 여자학교께서 지도교사가 동행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이유인지 보수적이었든 아버지께서는 허락을 하지 않았다. 지금 그 상황을 다시 생각해보면 당신의 학창시절에 카메라를 메고 다니든 주변 사람들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이 그 판단에 영향을 끼쳤던 것 같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나는 사진부에 가입하고서도 한 학기 내내 사진을 한 번도 찍지 못했다. 그 후 여름방학이 지나고서 2학기 때 사진부의 가장 큰 행사인 종합전의 일정이 잡히고 나서야 2학년선배들과 함께 촬영을 갔었다. 그런데 막상 촬영을 가서보니 선배들이 갖고 온 카메라와 내가 갖고 있는 하프사이즈 카메라가 기능적으로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배들은 모두 S L R 카메라를 갖고 있었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실망을 하지 않고 주변 친척집에서 카메라를 빌려서 사진부 활동을 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고등학교 3학년 겨울 방학 때 삼성카메라에서 판매한 미놀타 X-300을 구입해서 본격적으로 내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의 사진부 활동은 매년 가을에 열리는 종합전에 전시하는 작품을 준비하는 것이 전부였다. 기술적인 것은 선배들이 그 때 그때 일러주어서 터득하였다.
또 종합전에 전시한 작품 중에서 선배들이 골라서 당시에 경북실전 사진과에서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공모한 공모전에 출품하는 것도 중요한 활동 중에 하나였다. 그 외 당시에 가장 인기가 있었던 사진 잡지인 ‘영상’지 과월호를 보는 것도 사진을 공부하는 방법 중에 하나였다. 나는 사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공부에 흥미를 잃고서 나름대로의 방황을 했다. 꿈도 없었고 하고 싶은 일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고3이 되면서부터 막연하게 사진학과에 가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했다. 당시 사진부 동기 중에는 2학년 때부터 사진학과에 진학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후일에 국내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미국에 사진유학을 가서 그곳에 정착했다는 소식을 몇 년 전에 우연히 접하였다.
당시에 대구에는 4년제 사진학과가 없었고, 2년제 전문대학 두 곳에만 사진과가 있었다. 4년제 사진학과는 중앙대학교, 부산산업대학교(경성대 전신), 상명여자대학교에만 있었다. 사실 당시의 보수적인 집안분위기상 사진학과를 가겠다고 고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 후 전기입시를 실패하고 전문대에 있는 사진과를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결국 타의반 자의 반 후기 대학인 대구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입학식 때 사진반 신입생을 모집한다는 현수막을 발견하고서는 사진반으로 바로 찾아가서 입회를 했다. 내가 고등학교 때 사진반 활동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2학년 선배 중에 한사람이 휴게실에 데리고 가서 커피 잔을 놓고 한 시간 가까이 이 것 저것 이야기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사실 나는 명목상 고등학교 3년 동안 사진부 활동을 했지만, 이론적으로 사진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물론 기능적으로 사진을 찍는 방법은 터득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엄청 아는 척하고 떠들은 기억이 난다. 물론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에 남는 것은 없지만.
나는 대학교 4년 동안 학과공부는 멀리하고 열심히 사진반 활동을 했다. 고등학교 시절 활동과 다른 점이 있다면 흑백암실 작업을 배워서 직접 한 것이다. 그런데 사실 당시에도 나는 암실작업과 카메라 메커니즘보다는 사진 책을 읽는 것을 더 좋아했다. 마침 한정식 선생임의 ‘사진예술개론’과 육명심 선생님의 ‘세계 사진가론’이 출판되어 이론공부에 많은 도움이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교 사진반 동기 중에는 예술적인 재능이 있거나 기술적으로 사진을 잘 찍은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군복무를 마치고 3학년 중에 복학하고 나서는 사진과 조금씩 멀어져 갔다. 물론 졸업 후에 웨딩 스튜디오를 하면서 전업으로 사진을 찍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대학교 3학년 때 우연히 천안에서 열린 전국대학생 사진공모전에 출품해 최고상인 금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사진과 관련된 직업을 갖기로 생각을 조금씩 정리해나갔다.
사진반 동기 중에는 대학교2학년 때부터 학교 바깥에 있는 사진동호회에 가입해서 활동을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친구가 자극제가 되어 나도 대학교 3학년 12월에 우연히 전시를 관람한 햇살 사진회에 가입했다. 입회금이 있었는데 공모전에서 받은 상금을 입회금으로 냈다. 다른 동호회도 있었지만, 공모전출품 위주로 활동을 했기 때문에 나의 성향과 맞지 않아서 햇살회를 선택 한 것이다. 햇살회는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데,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작품의 경향이나 활동방향이 진보적이었다. 공모전 출품은 배제하고 흑백사진을 중심으로 실험적인 연작사진을 주로 발표했다. 나는 이모임에서 안홍국 선생님을 만나면서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하기로 결심했다. 당시에 선생님은 경성대학교 사진학과에 재직 중이었다.
대학교 4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대학원준비를 하면서 사진이론공부를 했다. 그전인 1989년도에 대구시내에 있는 금강제화지하에 있던 르느와르 아트홀에서 선배 두 사람과 3인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나는 3학년 때부터 주제를 정해서 사진을 찍었는데, 그때 찍은 벽 사진으로 전시를 했다. 대학원에 다니면서는 석사청구 논문을 준비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쓴 논문을 많이 읽었다. 그때 읽은 논문들이 지금도 많은 도움이 된다. 또 대학원 4차 학기 때인 1993년 5월에 대구 동아백화점 5층 동아 갤러리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가졌다. 그 당시로서는 드물게 일본 오리엔탈사에서 제조한 화이버 베이스 인화지로 프린트한 흑백사진으로 전시했다. 내 자신의 그림자를 찍은 사진이었는데, 우연히 본 홍순태 선생님의 작품과 리 프리들랜더의 작품의 영향을 받은 결과물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 하더라도 홍순태 선생님은 대중적으로도 스타 강사였다. 민사협 주최 사진특강에서 홍선생님의 강의를 들었던 적이 있는데 당시로서는 사진사와 현대사진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나는 대학원에 다닐 때 당시에 대구지역 젊은 사진가들의 리더였던 양성철 선생님을 비롯해 많은 사진가들을 접했다. 그들 중에서 나의 사진세계를 정립하는데 영향을 끼친 사람은 지금 대구예술대에 재직하고 있는 김정수 선생님과 안홍국 선생님이다. 김정수 선생님은 프레임을 선택하는 감각을 익히는데 도움을 주었고, 안홍국 선생님은 사진을 고르는 안목을 키우는데 영향을 끼쳤다. 또 양성철 선생님이 참여하거나 기획한 전시들은 사진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혀주었다. 또한 1994년도에 창립된 민족사진가 협의회(현재 민족사진가 협회)에 가입하면서 한국사진 전체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됐다.
지금 다시 내가 대학원을 다닌 1990년대 초반을 되돌아보면 한국사진의 중요한 변화의 시기였고, 격동기였다. 1989년에 창간한 월간 사진예술 지면을 통해서 해외유학에서 귀국한 젊은 사진가들의 새로운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었다. 또, 1991년부터 1994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서 개최된 ‘한국사진의 수평’전 이후 한국사진의 지형이 변화되고 있었다. 당시에 나는 사진예술에 연재된 사진에 대한 여러 글들을 통해서 사진이론에 대한 기초적인공부를 했다. 당시 사진예술지에는 사진역사 외에도 현대사진이론이 소개되어 해외사진에 대한 정보와 사진이론서가 부족한 현실 속에서 많은 도움이 됐다. 사진예술이 창간되기 이전에는 사진아카데미와 사진애호가들의 사진에 대한 인식에 큰 벽이 있었다. 그것을 해결하는데 사진예술이 큰 공헌을 한 것이다. 사실 필자도 대학원 수업보다도 사진예술과 같은 전문 잡지나 사진계 현장에서 만난 사진가들로부터 더 큰 도움과 영향을 받았다.
나는 1993년도 첫 개인전 이후 94년도와 95년도 두 차례에 걸쳐서 젊은 사진가전에 참가했다. 또 대구지역 민사협 기획전에도 94년도와 95년도에 참가했다. 그런데 94년도에 대학원을 졸업한 이후 사진계와는 조금씩 멀어졌다. 내가 대학원을 진학한 것은 사진을 지속적으로 하기위해서는 사진과 관련된 직업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에 내주위에 있었든 사람들은 그 이후에 대부분 사진학과 교수가 됐다. 하지만 필자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로 인해 교수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조금은 마음이 상한 상태였다. 그 후 1999년에 대학원 동문 전에 참가한 이후 사진계와는 완전히 멀어졌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부터 인터넷이 일반화되면서 필자도 인터넷을 하게 되었고 다시 사진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인터넷을 하면서 포털사이트에 현대사진연구모임(현재 현대사진포럼)이라는 카페를 10월3일에 개설했다. 카페를 중심으로 인터넷 사이트에 사진에 대한 글을 쓰면서 조금씩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고, 2004년 1월부터 서울에서 활동하면서 김영섭 화랑에서 2년 연속 개인전을 개최했다. 2005년도에는 개인전을 하면서 전시기획도 했다. 또 2004년도 봄에는 우연히 대구문화에 글을 기고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2008년도부터 2년 동안 사진에 대한 글을 연재하기도 했다. 2006년도에는 대구에서 활동하는 어느 사진가의 도움으로 대구매일신문과 인터뷰를 했고 몇 차례에 걸쳐서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2006년도 여름에는 강원도에 하대리에서 열리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젊은 예술가들과 교류했고 현대미술로서의 사진에 대해서 이해하는데 계기가 됐다. 또 그해 가을에 개최된 서울국제사진페스티벌과 대구사진비엔날레를 계기로 국제적인 사진행사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한 나의 구체적인 생각을 월간 사진에 기고하기도 했다. 2007년도 1년에 갤러리 나우에서 기획한 ‘도시. 사진적 풍경’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전시 기획자로서 사진전을 기획했다. 같은 해 갤러리 나우에서 기획한 ‘감성 혹은 직관에 대하여’전을 시작으로 해서 갤러리 와, 갤러리 룩스, 갤러리 아트비트, 갤러리 엠 등 여러 갤러리에서 전시를 기획했다. 그 후 서울국제사진페스티벌에 두 차례 큐레이터 혹은 운영위원으로서 참여했다. 2008년도에는 우연히 알게 된 상업화랑에서 개인전을 기획했고, 2009년도에는 갤러리 아트사간 개관전을 기획하면서 갤러리 아트사간 디렉터로 활동을 하고 있다. 또 2008년도부터는 경운대학교에서 사진이론을 강의하고 있다. 2004년도에 본격적으로 사진과 관련된 여러 일을 하면서부터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그 만남으로 인해 새로운 일을 할 수 있었다. 지난 2010년도에는 갤러리 아트사간을 중심으로 많은 일을 했고, 작년5월부터는 새롭게 창간한 포토플러스에 칼럼과 전시리뷰를 기고하고 있다. 또 8월에는 ‘알기쉬운 예술사진’이라는 책을 처음으로 출판했다. 모든 일들이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때문에 얻어진 결과이다. 그동안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받은 도움도 많고 상처도 받았다. 그 중에는 2004년도부터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만남도 있고, 오랫동안 지속되지 못한 만남도 있다.
현재 내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 사진 때문에 만난 사람들이다. 현재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것은 가족들의 도움도 있지만, 사진 혹은 예술 때문에 만난 여러 사람들이 나를 알게 모르게 도와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현재는 내주변의 제자들, 갤러리 아트사간과 코아 스페이스의 여러 식구들, 경운대학교 안홍국 선생님을 비롯한 대구의 여러 선생님들, 포토플러스 대표님, 창신 카메라 사장님의 지속적인 도움이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이글을 통해서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한다. 지금 이 시간 현재 가족에 대한 소원을 제외한 개인적인 소원이 있다면 현재 내 주변에 있는 여러분들과 함께 계속해서 오랫동안 지금 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또 갤러리 아트사간과 코아스페이스가 발전해서 이 땅의 문화예술발전에 기여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지금까지 나에게 도움을 주고 계시는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을 다시 전하며 글을 마친다. 감사 합니다.
2011년 2월 5일 김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