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생명을 다루는 의사는 성직자와 같다
김정우 요한 신부 · 전 대구 가톨릭대학교 총장
의사는 재화 획득의 수단이 아냐
직업에 거는 기대`희망 간과 안돼
의료활동은 사회가 요청하는 직무
공직 더 나아가 성직의 성격 지녀
이 글은 의사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평가하고자 함도 아니고, 정부가 주장하는 내용을 평가하고자 함도 아니다. ‘의사, 그들’을 가톨릭 윤리신학 특히 생명윤리 입장에서 바라보고자 함이다. 지금 우리의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을 두고 구태여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끌어들여 말하고 싶지도 않다. 오로지 ‘의사, 그 존재가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을 뿐이다.
-직업, 존재의 가치를 드러내는 것
먼저 오늘의 사태는 우리 사회에 오랫동안 잠재해 온 직업의식의 오류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본다. 우리 삶에는 존재의 이유가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는 ‘생명의 복음’ 회칙에서 “아무런 의미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난 생명은 아무도 없다”고 하였다. 이처럼 각자는 존재의 이유와 가치를 갖고 세상에 태어났으며 그 존재의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 ‘직업’이다.이런 의미에서 마르틴 루터는 신약성경 코린토서에 나오는 “저마다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상태대로 지내십시오” 라는 구절에서 ‘부르심’을 하느님께서 인간을 세상으로 불러내실 때 각자에게 고유한 능력을 선물로 주셨고, 그 능력을 발휘하여 세상과 인간을 위해 헌신하며 살도록 해 놓은 것이 직업(職業) 이라는 의미로 해석하였다. 인간이 하느님의 부르심, 소명을 받아 사회속에서 보람되게 살도록 재능을 주셨고, 인간은 이 재능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드러내며 생명이 다할 때까지 이웃과 세상을 위해 살도록 한 것이 ‘직업’이다.
-의사, 그대는 누구인가?
의사는 역사적으로 볼 때 사제(司祭)와 마찬가지로 어떤 특별한 정신(ethos), 강력한 전통과 연대성을 발전시켜온 계층이었고, 어떤 면에서는 고대로부터 의사 또는 치유자들은 사제의 기능을 갖고 있었다. 이런 면에서 의료행위를 하는 의사라는 직업은 현대에도 서슴없이 성직(聖職)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사제와 의사는 오늘날까지도 그 직분이 명예와 신뢰의 대상이 되어온 것이다. 이 직업을 선택하는 과정은 다른 직업의 선택 과정과는 다르다. 이 의료 직책은 단순히 재화 획득의 수단으로 간주되어서도 안된다. 그 이유는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의 능력과 적성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이 직업에 대해 거는 사회의 기대와 희망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 의사라는 직업은 단순히 한 개인의 직업이 아니라 공직(公職)의 성격, 더 나아가 성직(聖 職)의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료활동은 한 공동체나 사회가 직접 요청하는 직무이기 때문에 그 사회 안에서 요청하는 기능을 다해야 하며, 또한 의료행위가 한 인간의 출생과 성장과 사망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그 어느 단계와도 관련되지 않는 부분이 없을 만큼 긴밀히 관련되어 있기에 언제나 어디서나 요청되고 보호되어야 하는 직업이므로 그에 상응한 존경과 권리 그리고 의무가 의사라는 직책에 주어져 있는 것이다.
-환자 곁을 떠나는 자유를 허락할 수 없는 이유
어느 시대에나 의사들의 윤리성이란 아픈 이웃에게 봉사하는 것을 자기의 사명으로 이해하는 데 특징지어져 있다. 그 사명은 모든 환경에서 자기의 지식과 능력을 다해 환자의 고통을 덜어 주고 치유하는 데 헌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사는 예컨대, 정치적 이유나 어떠한 공리주의적 이유로도 결코 환자를 저버릴 수 없고 환자 곁을 떠나서도 안된다. 의사라는 존재는 자의적인 판단으로 옳고 그름의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의사라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 행동의 옳고 그름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의사라는 존재는 결코 환자 곁을 떠날 수 없고, 결코 떠나서도 안된다는 것이 역사를 통해 내려온 인류 문화의 보편적 가치다. 따라서 작금의 현실은 한 가정의 부모가 사회적 여건이 맞지 않다는 이유로 가정을 내버리고, 자녀 양육을 도외시하고 가정을 떠나버리는 무책임한 태도에 비견될 수 있다. 또 가톨릭 사제가 삶의 여건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성무 집행을 포기하고 교회를 떠나는 것과 같다. ‘존재는 행위를 규정한다’는 원칙은 어떤 이유에서도 성직과 같은 의사직에 환자 곁을 떠날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할 수 없음을 규정한다. 좋은 의사는 사회적 명예와 특별한 신뢰를 받을 자격이 있다. 그는 물질적 안정을 누릴 권리가 있다. 그러나 그가 생활비를 버는 것이 그의 직업 선택의 첫째가는 동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이유 또한 ‘존재가 행위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 지혜의 친구!
고대 그리스의 격언에 의하면 의사는 ‘지혜의 친구’, 하나의 ‘철학자’로 불리고 있었다. 그만큼 의사의 지위는 한 사회 안에서 믿음과 신뢰와 사랑의 대상인 것이다. 따라서 의사 윤리의 회복은 사회의 기초적인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며, 의사 없는 사회와 세상을 생각할 수 없듯이 의사 윤리 없는 의사 또한 생각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분명 의술(醫術)은 인술(仁術)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이 현상황을 어떠한 이유로도 합리화시킬 수 없으며 합리화시켜서도 안된다.
‘존재는 행위를 규정한다’는 인류 문화 역사의 이 보편적인 진리를 생각하며, 의료현장을 떠난 의사들이 하루빨리 질병과 고통으로 신음하는 환자들 곁으로 돌아오길 기대한다.
매일신문 2024/02/28
첫댓글 세상이 존재의 가치를 저버리고 소유의 가치로 가는 길에 집단 이기주의가 팽배한 사회가 되어 버린 것이라 생각합니다. 의사들이여
환자 곁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 그대들의 부모가 수술을 해야하는 상황에도 집단 사직서를 낼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