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일곱빛깔 이야기
‘훌륭한 결혼은 완벽한 한 쌍이 만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남녀가 만나 서로 다른 점을 즐기며 사는 것이다.’미국의 심리학자 데이브 모러의 말처럼 서로에게 완벽한 남녀는 지구상에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로 아는 것과 달리, 애정과 미움이교차하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다 보면 사랑의 눈길을 주고 받던 부부도세월의 흐름에 묻혀 점점 삭막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잘 살아보겠다는 굳은 결심이 가물가물해졌다면 잠시, 다른 부부들이 사는 모습에 눈을 돌려보자. 독특한 빛깔과 사연을 지닌 네 남녀의 모습을 통해 ‘부부’라는 이름으로 뭉친 이들의 의미는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혼 후 재결합한 10년차 부부“결혼할 때는 모두 평생 사랑하고 아끼며 살겠다고 하죠. 하지만 살아본사람이라면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 아실 거예요.”이혼의 아픔을 겪은 지 8개월 만에 재결합에 성공한 10년차 부부 민지훈(38ㆍ가명) 정희영(33ㆍ가명)씨는 요즘 두 번째 신혼 생활에 푹 빠져 있다. 친한 친구의 소개로 만나 1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 8년 동안 주위로부터‘잉꼬부부’라는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던 이들이 이혼으로 치닫기까지걸린 시간은 불과 3~4개월.
“결혼 후 8년쯤 지났을 때였을 거에요. 시어머니를 모시는 일, 아이 학원문제 등 그 동안 늘 있어왔던 일들이 갑자기 문제로 불거지면서 다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또래 엄마들을 만나면 나만 답답하게 사는 것 같고 도저히 돌파구가 안보였어요.”결국 두 사람은 심하게 다툰 2002년 4월 어느날 밤 이혼하기로 합의를 봤다.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은 것은 그로부터 3일 만이었다. 두 딸은 남편이 맡았다. 정씨는 그 때를 회상하며 “남편이 어찌나 밉던지 아이 데리고고생 좀 해보라는 마음까지 들었다”고 토로한다.
그러나 이혼 후 두 달이 지나자 두 사람은 ‘이건 아니다’라는 후회에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먼저 손을 내민 것은 뜻밖에도 자존심 강하던 아내 정씨였다. 전화번호까지 바꿔버린 남편을 수소문해 전화했을 때남편은 “당신이 연락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놀라면서도 기다렸다는듯 만날 약속을 잡았다.
다시 만나 두 사람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았고 만나는 횟수가많아지면서 재결합을 생각하게 됐다. 싫다고 나간 며느리를 다시 받아들일수 없다는 시어머니를 정씨가 직접 설득해 다시 혼인신고를 한 것은 2002년 12월.
“재결합하고 나서 무려 13㎏이 찔 정도로 마음이 편해졌어요. 요즘은 아이 아빠랑 그 때 얘기를 하면서 키득키득 웃을 수 있을 정도가 됐고요.”물론 한 차례 이혼이 남긴 상처는 작지 않다. 부부는 무엇보다 아이에 대한 미안함이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고 말한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다 큰 어른들이 ‘몹쓸 짓’을 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돌이켜보면 조금만 여유를 가졌으면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를 너무 파고들어서 곪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요즘은 서로 늦게 들어와도 왜 늦었냐고묻지 않아요. 믿기 때문이죠. 평생 보며 살 텐데 눈 앞의 문제에 급급하면뭐해요. 부부는 소유물이 아니라 서로 기대어 쉴 수 있는 느티나무가 같은것 아닌가요.”시련으로 동지적 사랑 일군 이목희·임정숙부부민주화운동 유공자, 통일시대국민회의 정책위원장, 노동법 위반으로 구속됐던 노동운동의 산 역사…. 4ㆍ15 총선 때 서울 금천구에서 당선된 이목희(40ㆍ열린우리당)씨는 노동운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사람이다.
그의 부인 임정숙(34)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는 웬만한 여성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울 난관과 시련을 묵묵히 지나온 ‘강한 아내’다.
“결혼생활 24년, 뭐가 가장 기억에 남냐고요? 임신 7개월째 출장 간다고가방 싸서 나간 남편이 열흘이 되도록 연락이 없었던 사건이었죠. 열흘 후집으로 돌아온 사람은 남편이 아니라 경찰이었어요. 그 후로 1년간 남편은재판도 없이 구치소 생활을 했습니다. 학생운동 하면서 만난 사이라 이해는 했지만 속상한 마음까지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죠.”당시 남편을 찾은 그녀에게 주어진 면회시간은 3분 정도. 임씨는 아직도영등포 구치소를 나와 ‘저 벽만 넘으면’ 있을 남편을 생각하며 맞은 편꽃밭에 서너 시간씩 앉아있던 기억이 생생하다. 갇혀 지낸 1년 동안 이씨는 부인에게 88통의 편지를 썼다. 아내의 가슴에 20년 후까지 새겨진 문구는 모든 편지의 첫 줄을 장식하던 말, ‘존경하고 사랑하는 나의 아내 임정숙에게’다.
수감 생활을 끝내고 나서도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유명한 노동운동 강사로 지방을 다니며 괜찮은 수입을 챙기면서도 “이 돈은 나를 위해 써서 안된다”며 후배들 밥 사주고 술 사주고 교통비까지 줘서 보내는 남편을 대신해 집안 살림을 챙기는 것은 부인 임씨였다.
“서점, 출판사, 번역, 르포 기자…. 가난과 불안이라는 두 짐을 등에 업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사방으로 뛰는 아내를 보면서도 그 때는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을 견뎌낸 아내가 무척 대견합니다. 이씨는 “인천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던 아내가 어느날 새벽, 술먹고 들어온 나를 깨우며 ‘차비 하게 500원만 달라’고 했던 생각만 하면아직도 마음이 짠하다”고 눈을 붉힌다.
그토록 참아만 오던 아내가 ‘반란’을 일으킨 것은 1995년. 못 먹는 술을먹자고 심상찮은 제안을 한 아내는 늦은 밤 이씨에게 “이목희의 아내, 이규정(아들)의 엄마…. 그럼 나는 도대체 뭐야?”라며 말을 꺼냈고 영국으로 여성학을 공부하러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이건 보내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씨의 회고다.
2년간 영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중학생 아들의 도시락을 싸 보내고 집안 살림을 챙기는 것은 이씨의 몫이었다. 팍팍한 환경 덕분이었을까. 두 부부는말다툼은 자주 했지만 권태기를 느낄 틈은 없었다고 말한다.
‘정숙아, 보고싶다’ ‘나두야, 흐흐’ ‘정숙아, 메시지 보내는 법 배웠네. 장하다’….
지난달 말 열린우리당 당선자 워크숍 당시 둘이 주고받은 메시지를 자랑하는 이씨는 ‘팔불출’이라는 주변의 핀잔도 아랑곳 않고 요즘도 20년 전그대로 아내를 부른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나의 아내 정숙아!”"아이가 다 크면 부부 관계 다시 시작하세요"5월 10일로 결혼 30주년을 맞은 김민석(56) 박은자(53) 부부. 중년의 부부란 마냥 무덤덤하고 무난할 것 같지만 이들은 지난해 뜻하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저희는 아들만 셋입니다. 어릴 때는 그렇게 말썽을 부리고 정신을 쏙 빼놓더니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부터는 애들이 아예 입을 다물어 버리는 겁니다. 그러니 갑자기 부부가 할 말이 없어졌어요. 너무 오랜 세월 부부끼리대화를 잊고 살아와 당황한 거죠.”의사소통 방법을 잊은 부부의 대화는 거의 100% 말다툼으로 이어졌다. 부인 박씨는 ‘이제 이 가족은 내 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마음에 서글펐고 남편은 남편대로 늘 어두운 표정의 아내가 짜증났다.
“외식을 하려고 해도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알아야 말이죠. 무뚝뚝하게말을 던지면 아내는 ‘싫다’고 잘라 답하고 그러면 저는 제 맘을 몰라주는 집사람이 너무 원망스러웠죠. 결국 지난해 말 저는 평생 안 하던 ‘못된 짓’을 하고 말았어요. 그만그만한 다툼이 이어지던 어느날 아내에게손찌검을 한 겁니다.”결국 평생을 조용히 살던 부부는 법원까지 가게 됐고 법원은 김씨에게 한국 가정법률상담소에서 운영하는 16주 부부 상담 프로그램에 출석하라는명령을 내렸다.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여덟 명의 남자 동기들이 함께 교육을 받았는데 모두 다른 문제를 갖고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러나 하나같이바랐던 것은 이혼만은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었죠. ‘있을 때 잘해’라는 게 무슨 뜻인지 태어나서 처음 느꼈습니다.”미운 정 고운 정보다 더 무서운 것이 ‘세월의 정’임을 알았다는 김씨.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멋 없는 남편이었는지를 뼈저리게 느꼈다는 그는 아내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다.
“거창한 건 아닙니다. 아내가 아프면 ‘약이나 사먹지’라는 말 대신 ‘어디가 아프냐’는 관심을 보이고 ‘사랑한다’는 표현을 자주 하려고 노력하는 거지요. 저 같은 아저씨가 그런 말이 쉽게 나오겠습니까. 그런데한두번 하다 보니 어느새 생각보다 쉽다는 걸 알게 됐어요. 마음 속으로하는 수만 가지 생각보다 한마디 말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모든 남편이알았으면 해요.”김씨는 마지막으로 “부부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화인 것 같다”며“결혼하기 전의 예비 부부가 대화 하는 법을 배운다면 결혼 생활이 훨씬수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첫댓글 대화가 중요하지요~ 그런데 대화가 어려울때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