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서 배우다】왜 명장·조조는 단순한 함정에 빠졌을까? 현대인도 빠지는 ‘예상치 못한 심리’ / 3월 3일(화) / 다이아몬드 온라인
◆ 압박을 받을 때의 '즉각적인 판단·결정'은 NG… 40만 명의 대군이 10만 명에게 패한 이유
‘고민될 땐 역사에 상담하라’는 평을 받은 『리더는 일본사에서 배워라』(다이아몬드사)의 저자이자 역사에 정통한 경영 컨설턴트가 이번엔 무대를 세계로 확장했다. 『리더는 세계사에서 배워라』(다이아몬드사)에서는, 처칠, 나폴레옹, 간디, 공명, 다빈치 등 세계사에 이름을 남긴 35인의 말을 단서로, 현대 비즈니스 리더가 갖추어야 할 ‘결단력’, ‘통찰력’, ‘육성력’, ‘인간력’, ‘건강력’ 다섯 가지 역량을 갈고닦는 방법을 설명한다. 감독은 세계사 연구의 권위자인 도쿄대 하네다 마사시(羽田 正) 명예 교수. 최신 ‘글로벌 히스토리’ 관점을 반영해 기존 틀에 얽매이지 않는 리더상을 제시한다. 각 에피소드는 몇 분 안에 읽을 수 있는 구성임에도 불구하고, ‘논리적으로 통하지 않는 상대에 대한 대처법’, ‘부하의 재능을 파악하고 키우는 방법’, ‘고립했을 때 가져야 할 각오’ 등 현장에서 마주하는 과제와 직결되는 해결책이 가득하다. 마치 역사적 위인들이 직접 말을 건네는 듯한 실용성과 설득력이 넘치는 ‘리더를 위한 지혜의 보고’다.
● 왜 '적벽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까?
제갈공명(181~234년)은 촉의 군사이자 정치가이다. 본명은 제갈량이며, 공명은 자(字)이다. 후한 왕조(25~220년) 말기에 태어났다. 젊은 시절 ‘맑은 날에는 경작하고 비 오는 날에는 독서한다’는 생활을 했지만, 후한 말기의 혼란 속에서 부상한 유비에게 세 차례 방문을 받아 그 군사가 되었다(소위 ‘삼고의 예’). 당시 중국 북부를 지배하며 실권을 잡고 있던 조조의 남하에 맞서기 위해, 양쯔강 이남을 지배하던 손권과 동맹을 맺고, 적벽 전투에서 조조군을 격파하는 큰 공을 세웠다. 그 후 ‘천하 삼분의 계’를 진행해 조조, 손권, 유비 세 세력으로 중국을 분할하는 구상을 실현한다. 유비는 촉을 건국하고 황제로 즉위했지만, 223년에 사망. 그 후 제갈공명은 그의 아들 유선에게 봉사했다. 위(조조의 아들 조비가 건국)를 무너뜨리려 북벌을 시도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채 234년에 오장원에서 병으로 사망. 제갈공명은 참모의 이상형으로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높은 인기를 누리는 인물이다.
● 공명의 '천하 삼분의 계'와 촉·오 동맹의 성립
제갈공명이 유비에게 제안한 ‘천하 삼분의 계’는 중국 대륙을 위·오·촉 삼국으로 나누어, 촉과 오가 동맹을 맺어 위를 무너뜨리는 거대한 전략이었습니다. 당시 유비가 처한 상황을 생각하면, 매우 거대한 계획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공명이 유비에게 봉사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 전략이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것이 영화 소재로도 유명한 ‘적벽대전(레드클리프)’입니다. 이 전투는 위나라 조조가 남하해 오나라 손권을 공격하려 했던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 동맹의 요청 : 조조의 남하에 위기감을 느낀 손권의 가신·노숙이 유비에게 동맹을 제안합니다.
- 철저한 저항 결심 : 약해진 손권에게 공명과 손권의 가신 주유가 "조조의 군대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설득했습니다.
이렇게 조조를 맞서 싸우겠다는 결심이 굳어지고, 유비와 손권, 즉 촉과 오의 동맹이 성립한 것입니다.
● 압도적인 병력 차이를 뒤집은 요인 4배의 군대를 거느리면서도 고전하는 조조
남하한 조조군은 약 40만 명(전선에 나온 것은 약 20만 명 정도)이라고 전해지는 대군이었습니다. 이에 맞서는 손권·유비 연합군은 겨우 10만 명 정도였으며, 단순히 계산하면 4대 1이라는 압도적인 병력 차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조는 초반부터 예상치 못한 고전을 겪게 됩니다. 그 주요 이유는 다음 두 가지입니다.
- 수상전투에 익숙하지 않음 : 수군에 능한 오와에 비해, 북쪽을 거점으로 하는 위나라 군대는 수상 전투에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 전염병의 확산 : 조조 군 내부에 전염병이 퍼져 병사들의 전투 의지가 크게 떨어졌습니다.
- 불바다로 변한 수군과 조조의 패퇴
정말 ‘약한 상황에 재앙이 겹친다’는 말이 딱 맞는 상황에서, 명장이라 여겨졌던 조조가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오의 유력 무장에게서 받은 ‘가짜 항복장’을 쉽게 믿어버렸습니다. 오의 무장은 교묘한 함정을 설치했습니다.
- 기름을 적신 장작을 쌓고, 막으로 덮은 10척의 작은 배를 준비한다.
- 항복을 가장하고 남쪽 해안에서 북쪽 해안의 조조군을 향해 배를 나아간다.
- 배에 불을 붙이고 그대로 돌진한다.
그날은 강한 동남풍이 불고 있었습니다. 수상전이 서툰 병사들을 위해 배들을 사슬로 연결해 두었던 조조의 수군은 도망칠 곳이 없어 순식간에 불바다에 휩싸이고 말았습니다. 대부분의 함대와 병력을 잃은 조조는, 소수의 부대와 함께 진흙탕 같은 험한 길에 고통받으며 목숨을 걸고 북쪽으로 도망쳐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 왜 명장·조조는 함정을 눈치채지 못했을까?
조조의 대패는 촉·오 연합군의 뛰어난 작전 덕분이지만, 동시에 조조 자신이 가짜 항복장을 진짜라고 믿어버린 것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독보적인 전략가로 높이 평가받는 그가 왜 이렇게 단순한 함정에 빠졌을까요.
그 배경에는 현대 심리학 이론에서 말하는 ‘인지 편향’이 작용하고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 인지 편향이란?
인지 편향이란 강한 스트레스·압박·정보 부족 등으로 인해 인간의 정상적인 판단력이 상실되고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게 되는 심리 상태를 말한다.
인간은 ‘손실을 피하고 싶다’는 강한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에, 때때로 합리적인 사고가 왜곡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경영난에 빠진 경영자가 평소엔 눈도 뜨지 않을 의심스러운 투자 이야기에 뛰어들어 큰 손해를 보는 것도, 이 인지 편향이 원인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조조도 역시 이 함정에 빠졌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수상전에서의 고전, 전투 중 감염병 확산, 그리고 병사들의 전투 의지 저하. 이처럼 극심한 압박 속에서 오의 무장으로부터 항복 명령을 받았을 때, “더 이상의 패배와 손실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이 편리한 이야기에 타고 싶다”는 판단을 무의식적으로 내렸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잘못된 의사결정을 피하기 위한 교훈
그렇다면, 우리가 비즈니스와 일상에서 ‘인지 편향’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효과적인 대책으로는 다음 두 가지가 있습니다.
- 큰 호흡을 하고나서 판단한다 : 들어온 정보나 편리한 이야기에 대해 즉각적인 판단을 피하고, 시간을 두고 차분히 생각한다.
- 제3자의 의견을 구한다 : 자신보다 객관적인 입장에 있는 타인의 시각을 받아들여 자신의 판단 왜곡을 인식하고 수정한다.
압박을 받는 어려운 상황일수록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데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고, 타인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이렇게 하면 인지 편향으로 인한 치명적인 오류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습니다.
※ 본 글은 『리더는 세계사에서 배워라』(다이아몬드사) 저자가 직접 쓴 특별 원고입니다.
마스다 켄사쿠
【三国志に学ぶ】なぜ名将・曹操は単純な罠にハマった? 現代人も陥る「意外な心理」
【三国志に学ぶ】なぜ名将・曹操は単純な罠にハマった? 現代人も陥る「意外な心理」/ 3/3(火) / ダイヤモンド・オンライ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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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追い込まれた時の「即断即決」はNG…40万の大軍が10万に負けたワケ
【悩んだら歴史に相談せよ】好評を博した『リーダーは日本史に学べ』(ダイヤモンド社)の著者で、歴史に精通した経営コンサルタントが、今度は舞台を世界へと広げた。『リーダーは世界史に学べ』(ダイヤモンド社)では、チャーチル、ナポレオン、ガンディー、孔明、ダ・ヴィンチなど、世界史に名を刻む35人の言葉を手がかりに、現代のビジネスリーダーが身につけるべき「決断力」「洞察力」「育成力」「人間力」「健康力」と5つの力を磨く方法を解説。監修は、世界史研究の第一人者である東京大学・羽田 正名誉教授。最新の「グローバル・ヒストリー」の視点を踏まえ、従来の枠にとらわれないリーダー像を提示する。どのエピソードも数分で読める構成ながら、「正論が通じない相手への対応法」「部下の才能を見抜き、育てる術」「孤立したときに持つべき覚悟」など、現場で直面する課題に直結する解決策が満載。まるで歴史上の偉人たちが直接語りかけてくるかのような実用性と説得力にあふれた“リーダーのための知恵の宝庫”だ。
● なぜ「赤壁の戦い」に勝てたのか?
諸葛孔明(181〜234年)は、蜀の軍師であり政治家である。本名は諸葛亮であり、孔明は字(あざな)。後漢王朝(25〜220年)の末期に生まれた。若くして「晴耕雨読」(晴れた日には耕作し、雨の日には読書する)の生活を送っていたが、後漢末期の混乱のなかで台頭してきた劉備から三度の訪問を受けたことで、その軍師となる(いわゆる「三顧の礼」)。当時中国北部を支配し実権を握っていた曹操の南下に対抗するため、揚子江以南を支配していた孫権と同盟を結び、赤壁の戦いで曹操軍を破るという大功を上げた。その後、「天下三分の計」を進め、曹操、孫権、劉備の3勢力で中国を分割する構想を実現させる。劉備は蜀を建国し皇帝に即位するが、223年に死去。その後、諸葛孔明はその息子である劉禅に仕えた。魏(曹操の息子、曹丕が建国)の打倒を目指し北伐を行うが、志半ばの234年、五丈原で病没。諸葛孔明は参謀の理想像として、現代に至るまで高い人気を誇る人物である。
● 孔明の「天下三分の計」と 蜀・呉同盟の成立
諸葛孔明が劉備に提案した「天下三分の計」は、中国大陸を魏・呉・蜀の三国に分割し、蜀と呉が同盟を結んで魏を打ち破るという壮大な戦略でした。当時の劉備の置かれた状況を考えれば、非常に遠大な計画に思えたことでしょう。
しかし、孔明が劉備に仕え始めて間もなく、この戦略が現実味を帯びる出来事が起こります。それが、映画の題材としても有名な「赤壁の戦い(レッドクリフ)」です。この戦いは、魏の曹操が南下し、呉の孫権を攻めようとしたことから幕を開けました。
●同盟の要請:曹操の南下に危機感を抱いた孫権の家臣・魯粛が、劉備に同盟を申し入れます。
●徹底抗戦の決意:弱気になっていた孫権に対し、孔明と孫権の家臣・周瑜が「曹操の軍は恐るるに足りない」と説得しました。
こうして曹操を迎え撃つ決意が固まり、劉備と孫権、すなわち蜀と呉の同盟が成立したのです。
● 圧倒的な兵力差を覆した要因 4倍の軍勢を擁しながら苦戦する曹操
南下してきた曹操軍は約40万(前線に出たのは20万程度)といわれる大軍でした。対する孫権・劉備の連合軍はわずか10万程度であり、単純な数では4対1という圧倒的な兵力差がありました。
しかし、曹操は序盤から思わぬ苦戦を強いられます。その主な理由は以下の2点です。
●水上戦への不慣れ:水軍に長けた呉に対し、北方を拠点とする魏の兵は水上の戦いに不慣れでした。
●疫病の蔓延:曹操の軍内部で疫病が流行し、兵士たちの戦意が著しく低下していました。
● 火の海と化した水軍と曹操の敗走
まさに「弱り目に祟り目」とも言える状況下で、名将であるはずの曹操は決定的な過ちを犯してしまいます。呉の有力武将から送られてきた「偽の降伏状」をあっさりと信じ込んでしまったのです。呉の武将は巧妙な罠を仕掛けました。
●油を染み込ませた薪を積み、幕で覆った10艘の小船を準備する。
●降伏を装い、南岸から北岸の曹操軍へ向けて船を進める。
●船に火を放ち、そのまま突撃する。
折しも、当日は激しい東南の風が吹いていました。水上戦に不慣れな兵士のために船同士を鎖で連結していた曹操の水軍は逃げ場がなく、あっという間に火の海に飲み込まれてしまいます。大半の船団と兵力を失った曹操は、わずかな手勢とともに、ぬかるんだ悪路に苦しみながら北方へと命からがら逃げ帰ることになりました。
● なぜ名将・曹操は罠を見抜けなかったのか?
曹操の大敗は、蜀・呉連合軍の優れた作戦によるものですが、同時に曹操自身が偽の降伏状を本物だと信じ込んでしまったことが最大の要因です。類まれな戦略家として高く評価される彼が、なぜこれほど単純な罠に引っかかってしまったのでしょうか。
その背景には、現代の心理学理論で言うところの「認知バイアス」が働いていたと考えられます。
● 認知バイアスとは?
認知バイアスとは、強いストレスやプレッシャー、情報不足などによって、人間の正常な判断力が失われ、非合理的な意思決定をしてしまう心理状態のこと。
人間には「損失を避けたい」という強い心理が働くため、時に合理的な思考が歪められてしまいます。例えば、経営難に陥った経営者が、普段なら見向きもしないような怪しい投資話に飛びついて大損してしまうのも、この認知バイアスが原因である可能性があります。
曹操もまた、この罠に陥っていました。慣れない水上戦での苦戦、陣中での感染症の蔓延、そして兵士の戦意低下。こうした極度のプレッシャーの中で呉の武将から降伏状を受け取った際、「これ以上の敗北や損失を避けるためにも、この都合の良い話に乗りたい」と、無意識のうちに判断してしまった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 誤った意思決定を避けるための教訓
では、私たちがビジネスや日常で「認知バイアス」を避けるためには、どうすればよいのでしょうか。有効な対策として、以下の2つが挙げられます。
●一呼吸置いてから判断する:飛び込んできた情報や、都合の良い話に対して即断即決を避け、時間を置いて冷静に考える。
●第三者の意見を求める:自分より客観的な立場にいる他者の視点を取り入れることで、自身の判断の歪みに気づき、修正する。
追い詰められた厳しい状況にあるときほど、重要な決断には十分な時間をかけ、他者の意見に耳を傾けることが不可欠です。そうすることで、認知バイアスによる致命的な誤りを未然に防ぐことができるのです。
※本稿は『リーダーは世界史に学べ』(ダイヤモンド社)の著者による特別原稿です。
増田賢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