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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전례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인류의 빛이신 주님께서 모든 민족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신 날입니다. 주님의 별을 보고 예물을 가지고 경배하러 온 동방 박사들처럼, 우리도 주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며 사랑의 실천으로 주님께 맞갖은 예물을 드립시다.
본기도
하느님,
오늘, 별의 인도로 성자를 이민족들에게 드러내 보이셨으니
믿음으로 하느님을 알게 된 저희도 자비로이 이끄시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을 직접 뵈옵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제1독서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60,1-6
예루살렘아, 1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2 자 보라, 어둠이 땅을 덮고 암흑이 겨레들을 덮으리라.
그러나 네 위에는 주님께서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
3 민족들이 너의 빛을 향하여,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
4 네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아라. 그들이 모두 모여 네게로 온다.
너의 아들들이 먼 곳에서 오고 너의 딸들이 팔에 안겨 온다.
5 그때 이것을 보는 너는 기쁜 빛으로 가득하고
너의 마음은 두근거리며 벅차오르리라.
바다의 보화가 너에게로 흘러들고 민족들의 재물이 너에게로 들어온다.
6 낙타 무리가 너를 덮고 미디안과 에파의 수낙타들이 너를 덮으리라.
그들은 모두 스바에서 오면서 금과 유향을 가져와
주님께서 찬미받으실 일들을 알리리라.
제2독서
<지금은 그리스도의 신비가 계시되었습니다. 곧 다른 민족들도 약속의 공동 상속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3,2.3ㄴ.5-6
형제 여러분,
2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나에게 주신 은총의 직무를
여러분은 들었을 줄 압니다.
3 나는 계시를 통하여 그 신비를 알게 되었습니다.
5 그 신비가 과거의 모든 세대에서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계시되었습니다.
6 곧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복음
<우리는 동방에서 임금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12
1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2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
4 헤로데는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5 그들이 헤로데에게 말하였다.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사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6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
7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고서는,
8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9 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10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11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12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주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원하는 이들이 가진 것, 황금과 유향과 몰약
오늘은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세상에 당신 자신을 드러내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특별히 동방의 세 박사가 먼 길을 걸어 태어난 메시아를 만나러 온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들은 왜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그러한 희생과 투자를 했을까요? 그분을 만나기 전에는 다른 일은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서바이브’는 2020년 개봉한 영화입니다. 외딴 눈 덮인 산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에서 살아남은 두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이야기는 아버지의 자살로 극심한 우울증과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여주인공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주인공은 비행기 추락 사고를 당해 남자 동료와 함께 눈 덮인 외딴 산에 좌초된 자신을 발견하면서 극적인 전환을 이룹니다. 남자 주인공은 자신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여자 주인공에게 힘과 지지의 기둥이 됩니다.
영화의 결정적인 순간은 남자 주인공이 그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쳐 궁극적인 희생을 합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생명을 자신의 생명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사실에 그녀는 자신의 가치와 생명 자체의 가치를 재평가합니다. 여자는 다쳐 더는 걸을 수 없는 남자를 살리기 위해 혼자 산에서 내려옵니다. 남자는 버티지 못하고 죽었지만, 여자는 어린 자신과 화해하고 의욕 있게 살아갑니다.
사람은 나 때문에 죽은 이가 아니라 나를 ‘위해’ 죽은 이가 필요합니다. 그가 나의 메시아, 구원자가 됩니다. 이러한 체험을 위해서는 나를 사랑하는 존재와 머무는 시간을 견뎌야 합니다. 그 시간을 견디기 위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 필요합니다. 인간은 영과 혼과 육으로 되어있습니다. 성막으로 치자면 지성소와 성소, 그리고 뜰입니다.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이 세 군데서 참다운 예배가 일어나야 합니다.
영은 ‘원하는 능력’인데, 십계명을 황금 대신 원해야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또 자기 생각과 기억, 의지를 주님께 바치는 향이 바쳐져야 합니다. 뜰에서는 주님을 만나기 위해 광야에서 40일간 단식했던 예수님처럼 자기 육체를 죽이는 몰약이 바쳐져야 합니다. 이 세 예물이 없다면 주님과 머물며 그분이 나의 삶의 의미가 되게 할 수 없습니다.
가톨릭 성화 작가인 심순화 가타리나 화백은 어느 날 매일 성당에 다녀오고 작업에만 매달리며 은둔자처럼 생활하고 성화 작업만 하는 데 지쳐 폭발하면서 비명을 질렀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의미가 있느냐고, 다른 사람들이 의미 있게 바라보냐며 그때 비명을 지르자 마음속에서 아주 잔잔하게 “의미가 있지! 너는 나를 그리고 있단다. 내가 가는 길은 끝이 없단다.”라는 조용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 침묵의 소리를 듣는 순간 커다란 폭풍이 멈추고 잔잔한 호수가 된 것처럼 평화로워져서 죽을 때까지 성화 작업을 하겠다는 마음이 생겼다고 합니다.
또 한 번은 수원 교구 매주 주보에 실을 그림을 그리는데 1년을 그리고 나서 2년을 더 그려야 한다는 생각에 버거워하고 있었습니다. 코로나가 걸려서 그림에 차질이 생기면 안 돼서 사람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때 꿈에서 커다란 보따리를 들고 절벽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거의 힘이 빠져 혼자 힘으로는 보따리를 들고 오를 수 없어 “도와주세요!”라고 지친 목소리로 말하자 키 큰 아저씨가 위에서 보따리를 들어주었고 두 손이 자유로워진 심 작가는 온 힘을 다해 끝까지 올라가 바닥에 쓰러지자 키다리 아저씨는 절벽을 끝까지 올라야 한다고 말하였는데 예수님이었습니다. 이것이 너무도 생생하여 바로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이렇게 더 살아야 할 이유, 포기하지 않을 힘을 주시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분과의 만남은 그러나 내가 육체와 생각과 마음이 전부 주님을 만나고 싶은 것 하나로 모일 때 가능합니다. 그분 아니면 죽는 편이 낫다고 여길 때 그분을 만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7)라고 하신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그래서 황금은 십일조로, 유향은 광야에 나와서, 몰약은 육체를 절제하며 오직 그분만을 바래야 합니다. 이때 주님께서 만나주시고 그러면 우리는 자신 있게 “나는 메시아를 만났소.” 하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빛은 어둠과 공존할 수 없습니다. 내가 완전히 봉헌되지 않은 채 그분을 만나면 그분은 우리에게 이용 당하십니다. 그러니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들고 꾸준히 그분께 나아갑시다.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저에게는 꽤 많은 만년필이 있습니다. 총 27자루의 만년필을 가지고 글을 씁니다. 만년필의 필기감을 좋아하는 이유도 있지만, 오랫동안 쓰지 않으면 펜촉(닙)이 굳기 때문에, 계속해서 글을 쓰기 위해 많은 만년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잘 나오지 않는 만년필이 한 자루씩 늘어갔습니다. 매일 사용하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지나면 잉크가 조금씩 굳어서 나오지 않게 되는 만년필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잘 나오지 않는 만년필을 다시 잘 나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세척하면 됩니다. ‘만년필 세척 도구’를 이용해서 세척하면 처음처럼 다시 잘 나오게 됩니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으면 세척이 잘되지 않습니다. 그때에는 미지근한 물에 하루 정도 담가두면, 그 안에 있던 잉크들이 흘러나오면서 막혔던 부분이 뚫리게 됩니다. 2023년을 보내면서, 가지고 있는 만년필 모두를 세척했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잘 나오는 만년필을 보면서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죄도 이렇지 않을까 싶더군요. 우리 안에도 죄의 찌꺼기가 계속 쌓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미사를 통해 소죄는 사해지지만, 죄들이 쌓이고 쌓여서 미사만으로 부족하게 되지요. 그래서 고해성사를 봅니다. 하지만 고해성사를 통해 깨끗해지자마자 또 곧바로 죄를 짓는 우리의 나약함을 보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의 더 큰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만년필의 잉크가 굳으면 하루 종일 물에 담가 두는 것처럼, 우리 역시 오랫동안 주님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이런 노력 없이 주님과 함께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아닌 죄에 찌들어 있다면, 불안함으로 인해 세상 안에서 기쁨의 삶도 살 수 없게 됩니다.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인류의 빛이신 주님께서 모든 민족들에게 당신 자신을 공적으로 드러내 보이신 날입니다. 이 주님 공현 대축일에 우리는 주님의 별을 보고 예물을 가지고 경배하러 온 동방 박사들을 만나게 됩니다.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만나기까지 어려움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지금처럼 교통이 편한 것도 아니었고, 예수님에 대한 어떤 정보가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동방의 별만을 보고서 먼 여행을 떠났던 동방 박사들의 노력을 우리는 주의 깊게 봐야 합니다. 그에 반해 헤로데는 동방 박사의 말을 듣고는 깜짝 놀라고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경배하는 것이 아닌 없애버리려고 합니다. 죄에 찌들어 있는 삶에 더 큰 죄를 더하는 모습입니다. 실제로 그는 무죄한 아이들을 죽이는 엄청난 죄를 더하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합니까? 죄가 아닌 선을 따르는 삶, 언제나 주님 안에 머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나 자신의 삶은 물론 다른 사람의 삶을 삶답게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정성과 마음을 다하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레프 톨스토이). |
첫댓글 오늘은 창세기 26-28장 읽었습니다.
베텔, 하느님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