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데워지는 가마솥의 개구리 이낙연 신당만 저지하면 민주당의 승리가 보장된다는 착각이야말로 유권자를 너무 우습게 본 것이다. 조기숙(이화여대 교수) 페이스북
1. 더불어민주당 의원 100여 명이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신당 창당 중단을 촉구하는 연서명에 이름을 올렸다고 한다. 이들은 "이 전 대표는 2020년 7월 당대표 후보 출마 선언문에서 '민주당에서 20년 넘게 혜택을 받은 민주당에 헌신으로 보답하겠다'고 민주당원과 국민 앞에 약속했다"며 '그때의 민주당과 지금의 민주당은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당원은 대선 패배 이후 백만여 명이 더 유입된 것으로 보도됐다. 이재명 후보를 민주당의 대표로 만들고 이재명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입당한 당원이 절반이라는 말이다. 그들을 등에 업고, 대선과 지방선거 패배에 책임을 져야 할 이 대표는 오히려 당규를 바꿔가며 자신의 방탄을 위해 민주당을 사당화했다. 이 대표는 총선을 앞두고 반대가 심했던 전당대회 룰까지 바꿨다. 공천에 목숨 거는 의원들의 약점을 이용해 손쉽게 자신의 권력 강화를 위해 정당의 기존 제도를 허문 것이다. 다른 나라 전형적인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의 전철을 밟은 셈이다. 2. 지금의 민주당은 그 때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내 책에도 썼지만 민주당의 기둥은 이미 무너졌다. 만일 민주당이 총선에 패해 이재명 대표가 물러난다 해도 과거의 민주당으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이미 당내 규칙이 강성당원에 휘둘리도록 세팅됐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 이후 민주당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극소수 의원들 외에는 제대로 된 반대의 목소리조차 없었다. 이재명의 민주당은 침묵으로 동조한 의원들에 의해 완성됐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은 민주당에서 '더불어'는 물론 '민주'가 사라지게 만든 현역의원들의 침묵을 설명하는데 딱 맞는 용어다. 나는 그동안 "현재 민주당으로는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 여당은 사용할 카드가 수없이 많고, 반드시 제3당이 등장할 거"라고 지속적으로 경고해왔다. 하지만 그들은 서서히 온도가 올라가는 가마솥의 개구리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제껏 침묵하다 갑자기 한 개인의 행동을 막기 위해 단체행동이라니….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정작 가마솥의 온도를 올려온 게 자신들이란 성찰은 생략됐다. 당내 다양한 목소리를 억압하던 방식으로 이낙연 신당만 저지하면 민주당의 승리가 보장된다는 착각이야말로 유권자를 너무 우습게 본 것이다. 3. 이명박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도 속에 정부심판, 정권교체의 여론이 50%가 넘는 가운데 민주당은 2012년 총선, 대선에서 모두 패했다. 그 때에도 나는 수없이 경고했지만 민주당은 듣지 않았다. 2012년 총선 민주당의 패배는 40대의 낮은 투표율에 기인한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매우 평가적이라 충성도가 낮은 게 특징이다. 기권할지언정 민주당이 민심을 제대로 대변하지 않으면 표를 주지 않는다. 그런 평가적 유권자가 2012년에 비해 지금은 압도적으로 증가했다. 두 가지 증거만 보자. 첫째, 이준석 신당에 국힘보다는 민주당 지지층의 이탈이 더 높게 나타난다는 초기 여론조사 결과다. 둘째, 오늘 발표된 리얼미터 조사결과에 따르면 신당창당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48.3%에 달한다. 아직 신당에 대한 담론이 만들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나온 결과다. 신당의 모습과 명분이 갖춰지면 국민적 지지는 더 올라갈 것이다. 4. 민주당 의원들은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를 심판하는 게 시대정신이라며 이대로만 가면 승리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주장한다. 어떤 중간 선거도 당연히 정부를 평가하는 기능을 한다. 하지만 시대정신은 특정시기의 국민들의 욕구와 불만이 분출할 때 만들어진다. 내가 보는 시대정신은 신당창당에 있다. 그냥 신당이 아니라 정치혁명을 가져올 정도의 신당이 출몰하길 기대한다. 윤석열 정부도 싫지만, 민주당도 마찬가지로 기대가 없다는 게 다수 유권자의 여론이다. 남 탓하는 민주당 의원들이 할 일은 스스로 성찰하고 혁신하는 것이다. 물론 이제 와서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러나 양심이 있다면 그 동안 해오던 침묵이나 계속 하기 바란다. 타인의 실존적 결단을 집단행동으로 막으려는 발상 자체가 전체주의적이고 시대착오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