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7. 載嶽山 증거 72건 중❶표충사삼층석탑.개수비.층위별 불상 ❷1295년 山立 인각사보각국존비음기 문헌❸비음기 集字<1> 작성중
가. 載嶽山(載岳山). 載嶽寺 (載岳寺)등이 기록된 지리문헌 72건 ❶아래에는 載嶽山(載岳山) 산명의 증거가 무려 72건이 있습니다. ❷심지어는 일본의 지리문헌에도 있습니다 ❸載嶽山(載岳山) 증거 제목 연명부 (아래 72건)는 본문의 끝에 있습니다.
①도재국.손흥수 등이 34년간 재악산(載嶽山=載岳山) '증거를 찾아낸 년도 순서별'로 작성된 연명부를 ②'증거의 발생 순서별'로 하여 그 방대한 증거의 내용을 함께 이 게시판에 다시 편집.수록을 하여 카페를 방문하는 분들께 널리 알리고 ③또 앞으로 책을 발간할 형편이 되면 본 내용과 함께 해당 사진을 첨부하여 다시 편집할 것입니다. ④내용이 방대하여 여러 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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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7. 載嶽山(載岳山) 증거 72건 중❶표충사삼층석탑.개수비.층위별 불상 ❷1295년 山立 인각사보각국존비음기 문헌❸인각사보각국존비음기 集字<1> 작성중
■■■1. [신라시대] ○시대 : 통일신라 9세기 대(代) 표충사삼층석탑 및 출토유물 中 개수탑기비. 층위(層位)를 달리하는 불상류 ○✔표충사삼층석탑 사진 게재 ○✔재악산영정사삼층석탑개수비 사진 게재 ○✔불상류 사진 게재 ○출토유물 中 '보물 제 1944호' 지정 : 28건 34점 ●삼층석탑과 개수탑기비 ●층위를 달리하는 신라시대 불상류
[ 내 용 ] ○문화재청에서【표충사삼층석탑에서 출토된 성보문화재 28건 34점을 국가보물 제1944호로 지정】하면서 평가한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적습니다. ○'시대별 층위(層位)를 가진 불상이 다량으로 봉납된 사례는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드문 경우입니다. 또한 이는 통일신라 9세기 대에 건립된 석탑이 이후에도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음을 말해주는 실증적 자료이기도 합니다 라는, 평가는 신라시대부터 제1봉이 載嶽山(載岳山)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출처 : 전자관보 고시 > 제19121호 (2017.10.31) 보물 제1944호, 밀양 표충사 삼층석탑 출토유물 일괄(개수탑기비등 28건 34점) 지정 관련
=== 다 음 === ①보물 제1944호 “밀양 표충사 삼층석탑 출토유물 일괄”은 그 수량이 불.보살상 20점과 개수탑기비 1점 등 28건 34점이며, 불상 높이는 4.2 ~ 16.8cm, 상평통보 2.3cm, 개수탑기비(정식명칭 : 載岳山靈井寺三層石塔改修碑, 이 載岳山은 제1봉을 말함) 68×59×10cm이다. 재질은 금동.동.철.석조이며. 조성연대는 통일신라 ~ 조선시대입니다
②“밀양 표충사 삼층석탑 출토유물 일괄”은 1995년 실시된 삼층석탑의 해체보수 과정에서 기단 적심부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이들 유물은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에 이르는 20구의 금동불상과 탑에 봉안된 여러 공양물, 석탑 보수를 알려주는 조선 초기의 <개수기비>(1491년) 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불상 중에는 머리와 대좌 등이 파손되어 완전하지 못한 것도 있으나 출토지가 분명한 곳에서 시기를 달리하는 많은 불상이 일괄로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습니다. ③석탑 내 사리장엄구 이외에 불상을 봉납한 사례는 통일신라시대 석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례이지만 이렇게 다양한 형태와 양식, 그리고 시대별 층위를 가진 불상이 다량으로 봉납된 사례는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드문 경우입니다. 또한 이는 통일신라 9세기 대에 건립된 석탑이 이후에도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음을 말해주는 실증적 자료이기도 합니다.④표충사 삼층석탑에서 출토된 금동불상 및 청동탑편, 개수탑기비(改修塔記碑), 상평통보 등은 금동불상 연구와 석탑의 공양의식, 중수사례 연구에 귀중한 자료라고 판단되므로, 일괄로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하였습니다 ⑤위 지정 사유에서 【통일신라 9세기 대에 건립된 석탑에서 여러 층위(層位)를 가진 불상이 다량으로 봉납되었다】라는, 것은 【1491년에 제작된 개수탑기비(改修塔記碑)의 맨 앞줄에 제목 격(格)으로, 또 선언적으로 새겨진 '명재악산영정사야 [ 名載岳山靈井寺也, 이 산의 이름은 載岳山(제1봉)이고, 이 절의 이름은 靈井寺이다 ] ' 즉, 재악산(載岳山,제1봉) 산명의 사용 시대가 통일신라 9세기 대(代) 로 거슬러 올라간다】 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⑥1491년에 삼층석탑에서 출토된 비문에 『재악산 영정사』 라는, 배산과 사명이 확인되었고, 고려후기 『산립의 인각사비문』과 연결 지어 탑이 최초 건립된 신라시대 때부터 1491년까지는 절의 이름을 추정해 보면 ⑦신라시대에는 『재악산 재악사』였고, 이 명칭은 인각사에서 일연 스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존속되었다고 봅니다., ⑧고려시대에는 인각사의 일연 스님의 비문에 적힌 대로 『재악산 재악사』였고 ⑨조선초기에는 개수탑기비에 새겨진 대로 『재악산 영정사』로 변하였고 ⑩조선중기 및 후기로 내려오면서 『재악산 영정사』, 『재악산 재악사』 등 의 명칭이 지리문헌 등에 번갈아 나타나고 있으며 ⑪조선후기인 1839년에는 월파천유 주지에 의해 『재약산 표충사』로 산명이 조작되고 절의 명칭은 삼대사의 임진왜란 의승장 활동의 공에 의해 『표충사』로 변경되었습니다.
■■■2. [고려시대] ○시대 : 1295년 63 ◎498 ★153. 재악사(載嶽社)가 최초로 기록된, 載嶽山 최고 증거인 '보각국존 일연 스님 관련, 1295년 산립의 인각사보각국존비음기(麟角寺普覺國尊碑陰記) ●삼국유사의 고장 ⌈보각국사일연(普覺國師一然) 문헌자료집⌋ 김상균. 황인규. 승원(承垣) 편저 ○군위군 발행
●군위군 발행 ⌈보각국사 일연(普覺國師 一然)⌋책 표지 사진(위) ※아래 2와 중복이 되나 비음기(碑陰記)에 대한 기록으로서 증거임
[ 내용 ] ★1335(1354). ★153. 재악사(載嶽社)가 최초로 기록된, 載嶽山 최고 증거인 '보각국존 일연 스님 관련, 1295년 산립의 麟角寺普覺國尊碑陰記
★1335(1354). ★153. 재악사(載嶽社)가 최초로 기록된, 載嶽山 최고 증거인 '보각국존 일연 스님 관련, 1295년 산립의 麟角寺普覺國尊碑陰記|★★★載嶽山증거★★★
도재국 | 등급변경▼ | 조회 29 |추천 0 |2015.10.29. 22:14 http://cafe.daum.net/historymiryang/9fnZ/498 //
★153. 재악사(載嶽社)가 최초로 기록된, 재악산(載嶽山) 최고의 증거인 '보각국존 일연 스님 관련, 1295년 산립(山立)의 인각사보각국존비음기(麟角寺普覺國尊碑陰記)'
(주)도재국 삼국유사(三國遺事)는 김부식(金富軾)이 편찬한 《삼국사기(三國史記)》와 더불어 현존하는 한국 고대 사적(史籍)의 쌍벽으로서, 《삼국사기》가 여러 사관(史官)에 의하여 이루어진 정사(正史)이므로 그 체재나 문장이 정제(整齊)된 데 비하여, 《삼국유사》는 일연 혼자의 손으로 씌어진 이른바 야사(野史)이므로 체재나 문사(文辭)가 《삼국사기》에 못 미침은 사실이나, 거기서 볼 수 없는 많은 고대 사료(史料)들을 수록하고 있어 둘도 없이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문헌입니다 출처 : 네이버 > 두산백과 > 삼국유사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09101&cid=40942&categoryId=33382
우리는 일반적으로 삼국유사를 집필한 분을 '일연 스님'이라 부릅니다 '일연 스님'의 최고의 존호는 '보각국존 일연'입니다 즉, 보각국사 일연입니다
경상북도 군위군에서는 인각사에서 보각국사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탈고한 역사적인 일을 기념하기 위해서 군위군청에 '삼국유사 담당' 직제를 신설하고, 인각사 진입도로를 '삼국유사路'로 지정하고 인각사를 대대적으로 정비하는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일연 스님의 문헌자료집 중에서, '산립(山立) 인각사보각국존비음기(麟角寺普覺國尊碑陰記)'에는 밀양 표충사의 전신인 재악사(載嶽社)에 선사(禪師) 선염(禪燄) 스님께서 주석하신 기록이 있고 이 기록은 재악산(載嶽山)을 증명하는 가장 오래된 불교사(佛敎史)의 문헌으로 지금의 표충사가 1295년에는 재악사(載嶽社)로 불렀고, '재악사(載嶽寺)의 고적(古跡)으로는 가장 오래된 귀중한 자료'이므로 경상북도 군위군에서 발간한 문헌자료집인 '보각국사(普覺國師) 열연(一然)'에서 발췌합니다
군위군에서 편찬한 문헌자료집인 '보각국사(普覺國師) 열연(一然)'은 일연 스님에 대한 모든 것이 방대하게 수록되어 있습니다
밀양 표충사 관련 이야기에는 '일연 스님이 밀양 영정사(표충사)에서 삼국유사를 탈고했다' 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헌자료에는 '일연 스님이 밀양 영정사(표충사)에서 삼국유사를 탈고했다' 라는 기록이 없습니다
저(도재국) 이 문현자료중에서 '산립(山立) 인각사보각국존비음기(麟角寺普覺國尊碑陰記)'를 옮겨 적어면서 일부 한문 단어는 한글음을 보충하고, 구분을 쉽게 하기 위해 ★표를 삽입합니다
이 자료는 표충사의 최고의 고적(古跡)으로서 사적(事跡) 및 사적(寺跡)입니다
본 자료는 밀양의 향토사학자이며, 변호사인 박순문 선생으로부터 입수하였습니다
박순문 변호사는 '載岳社'의 '社'에 대해 다음과 같은 주석을 붙이고 있습니다 1295년에 寶鑑國師 混丘는 一然스님의 ' 麟覺寺寶覺國尊碑陰記'를 작성하였다. 그 陰記의 말미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항상 國尊을 따르고 親附하여 가르침을 얻거나 骨體를 얻거나 불법을 도운 모든 스님과 실무를 담당한 제자, 아울러 스님의 法乳를 받은 卿과 士大夫의 이름을 갖추어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그러면서 大禪師의 이름을 열거한 후 禪師의 이름중에 ' 載岳社의 禪燄'을 들고 있다. 비록 載岳寺라고 되어 있지 않지만 이 곳의 載岳은 분명히 密陽의 載岳을 가리킨다고 본다. 社란 보통 信仰結社中心體로 존재하다가 나중에 寺로 바뀐다고 본다. 그러므로 高麗때에도 載岳이라는 명칭으로 불려지고 있었다는 한 증명이 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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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재악사(載嶽社)가 최초로 기록된, 재악산(載嶽山)의 최고의 증거가 되는 문헌자료집 '보각국존 열연(普覺國尊 一然)'중, '산립(山立)의 인각사보각국존비음기(麟角寺普覺國尊碑陰記)'
펴낸 날 : 2012년 11월 5일 펴낸 곳 : 경상북도 군위군 엮은 이 : 김상영.황인규.승원(承垣) -------------------------------- <표지>  이 책은 모두 673 페이지 분량입니다 - - - - - - - - <36 페이지> <前略> ☆ '山立 麟角寺普覺國尊碑陰記' 飜譯文 '산립 인각사보각국존비음기' 번역문 ☆ 普覺國尊碑의 陰記 ☆ 元貞 원년(★146) 을미년(고려 충렬왕 21, 1292) 8월 일에 글씨를 쓰고, 운문사 주지 통오진정 선사 山立(★147)이 글을 짓다. 새 천자(★148)가 즉위한 (원정) 元 -------------------------------- ☆ (★146) 원정원년 : 고려 충렬왕 21년(1295)이다
(★147) 이 비문 내에 통오진정(通奧眞靜)이라는 시호를 쓰는 승려가 청분(淸玢)과 산립(山立) 등이 보이는데, 이들은 보감국사(寶鑑國師) 혼구(混丘)이며,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무극(無極)으로 나오는 같은 인물이다. 이들은 각각의 인물로 본 견해가 있으나, 같은 시기, 같은 비문 내에서 통오진정(通奧眞靜)이라는 시호를 쓰는 두 사람의 인물이 존재한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다. 시호는 국가에서 고신(告身)을 통해 대선사(大禪師)의 직함을 내리면서 공식적으로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36 페이지 끝> ----------------------------------------------------------------------------------
<37페이지 시작> 정 乙未 초여름 4월 초에, 인각장로(麟覺長老)가(★149)가 나를 찾아와 부탁하기를 “선사(先師)께서 열반하신지 홀연히 6.7년이 지났습니다.(★150)
그러나 조정의 은례는 조금도 변함이 없어 거듭 신에게 명하여 선사의 비문을 지어 옥석(★151)에 새겨 본원(本院) 인각사에 세우고 이어 조칙을 내려 문도들이 대를 이어 향사(享祀)를 받들게 하는 것으로 식종(飾終)의 예를 마치게 하였습니다.
스님의 문도를 비(碑)의 뒷면에 열거하여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읽도록 하여(★152) 원래의 사연이 있었음을 알게 하려는데, 이 일은 오직 스님만이(★153) 우리들을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이오.“ 라고 하므로, 나는 이를 받아들여 그리하겠다고 말하였다 ☆ 나는(山立) 국존(國尊)께서 살아계실 때, 인연이 없어(★154) 스님의 문도(門徒)의 열에 서지 못한 것을 항상 한으로 생각했었는데, 다행히 불후(不朽)의 부탁을 받았다.
이에 역시 내세에서라도 스승으로 모실 인연이(★155) 맺어지기를 바라고 있는 터인데, 어찌 감히 하명(下命)을 받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삼가 손을 모아 머리를 조아려 두 번 다시 절하면서 이르되, “화상(和尙)의 문풍(門風)이 광대하여 실로 모든 것을 갖추어서 어떠한 말과 생각으로도 표현할 수 없습니다” 라 하였다. 이를 줄여 한 마디로 말하면 국존은 모든 사람의 스승입니다. 모름지기 존경하고 추앙할 스승으로 모실 뿐입니다. 그러한 사정은 마치 개미떼(★156)나 바구미(★157)처럼 국존의 덕을 사모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과 같으며, 또한 -------------------------------- (★148) 신천자(新天子) : 원(元) 성종을 가리킨다
(★149) 인각장로(麟角長老) : 일연(一然)의 문인(門人)으로 입비(立碑)의 일을 주관하였으나, 어느 인물인지는 알 수가 없다
(★150) 홀홀육칠년(忽忽六七年) : 보각국사가 입몰(入沒)한지 홀연히 이미 6.7년이 지났다는 말이다
(★151) 완염(琬琰) : 아름다운 옥(玉)의 이름이다. 여기서는 돌로 된 비석(碑石)을 가리킨다
(★152) 락송부묵(絡誦副墨) : 락송(絡誦)은 암송(暗誦)이고, 부묵(副墨)은 글이란 뜻이다
(★153) 자능(子能) : 자능(子能)이란 자(子)는 부자(夫子), 공자(孔子), 맹자(孟子) 등과 같이 상대를 존칭하는 말이니, 선생(先生)이란 뜻이나, 여기서는 비문을 청하는 인각장로(麟角長老)가 산립(山立)을 지칭하는 말
(★154) 차탈(差奪) : 기회를 잃었다는 뜻이다.
(★155) 반부(攀附) : 번연하여 의부(依附)하려는 뜻이다. 곧 어떤 흠모하는 사람을 의지하여 뒤쫓아 간다는 의미이다
(★156) 해혜(醢醯) : 젓갈이나 식혜에 개미떼가 모여든다는 말이니, 학덕이나 도덕이 높으면 사방으로부터 학인(學人)이 모여든다는 비유이다
<37 페이지 끝> ---------------------------------------------------------------------------------
<38 페이지 시작>
국존께서 (살아계실 때) 실천하심이 독실하여 한결같이 하셨기 때문입니다. 곧 생사거래(生死去來)를 마치 꿈꾸는 것과 같이 하시고, 이에 (스님의) 지혜와 자비심, 실천과 원력, 환희심에 감응하게 된 것입니다 ☆ 지금 국존의 행장(行狀)을 살펴보니, 임종할 때 대중(大衆)을 모아놓고 말씀을 남기시고 눈을 감아 숨을 거둔지 한참 되었다. 이에 선원사(禪源社) 정(頂) 스님(★158)이 어찌할 바를 몰라 말하기를 “탑비(塔碑) 세울 장소를 여쭈어볼 겨를도 없었으니, 장차 어찌할꼬”라 하여 대중(大衆)과 함께 탄식하고 있었다.
이 때 스님께서 적정(寂定) 중에 조용히 깨어나, 대중을 돌아보고 이르시기를, “여기서 동남쪽으로 4.5리쯤 지나 숲이 있는데, 지형의 높낮이가 무덤과 같으니 이곳이 참으로 좋은 땅으로서 탑(塔)을 세우기에 적합한 곳이다” 라고 하고는, 다시 처음과 같이 눈을 감고 돌아가셨다. 일이 너무 괴이하므로 비문(碑文)에는 모두 생략하였다. ☆ 옛날 광복선자(廣福禪者)(★159)라는 스님이 입적하고서도 다비를 위해 준비한 섶나무 위에서 다시 일어나 유나(維那)에게 당부하여 절의 실무자가(★160)가 (당신이) 남겨 둔 쌀과 돈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였다는 전승이 말하여지는 것으로 보아, 이를 감히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 (국존의) 다비를 마치고 장차 (사리를) 탑 속에 안치하려 할 때에 현 운흥사(雲興사) 인공(印公)(★161)이 암자에 있을 적에 마침 꾼 꿈 이야기를 하였다.
곧 국존이 찾아오니 맞아들여 묻기를 “다비를 하려는 순간 다시 일어났으니, 이는 무슨 도리입니까?” 하니, 국존께서 대답하시기를 “죽지 아니한 이치이니라” 하였다.
또 묻되 “그렇다면 불이 능히 태우지 못한 것입니까?” 하니 대답하시기를 “그러하느니라” 라 하였다
또 묻되 “내일 탑을 세우는데 스님께서 다시 안들어 가십니까?” 하니, 국존께서 “들어갈 것이니라” 하였다 나아가 또 묻기를 --------------------------------
(★157) 예취(蚋聚) : 젓갈이나 노린내 나는 고기가 있으면 개미나 바구미 등에 모여든다는 말이니, 덕성이 높으면 부르지 아니하여도 많은 사람이 찾아드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158) 선원정공(禪源頂公) : 선원사(禪源寺)의 정(頂) 스님으로 일연(一然)의 문도인 듯하다
(★159) 광복선자(廣福禪者) : 어떤 스님인지 알 수 없다
(★160) 람행자(藍行者) : 람(藍)이 사찰을 의미하기에 사찰의 실무자라는 뜻이다
(★161) 운흥인공(雲興印公) : 운흥사의 인(印) 스님인데, 어떤 스님인지 알 수가 없다
<38페이지 끝> --------------------------------------------------------------------------------
<39 페이지 시작>
“그러시다면 탑이 죽었다. 살았다 합니까?” 라 하니 화상께서 답을 하였으나 (여기에) 기록하지 않는다.
또한 묻기를 ”꿈과 생시가 같습니까?” 라고 하니, 대답하시길 “같다“고 하였다
(운흥사) 인공이 깨어나 이상하게 여겨 말하되, ”다비한 다음 다시 돌아오고 탑을 세움에 곧 탑속으로 들어간 것이 마치 시원한 바람이 불고 흰구름이 출몰하는 것과 같으니 그 어찌 지인(至人)의 경지가 아니겠는가?“ 라 하고 곧 찬사를 지어 추모하였다 ☆ 또 나는(山立) 이러한 기연(機緣)을 보고 자못 기이하고 심상하게 생각하였다. 이는 범부의 경지로서는 도저히 이르지 못하는 것이니, 국존은 깨달음의 어느 위치에 이르렀는가 하고, 항상 의심이 풀리지 아니하였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꿈에 옛 절에 이르니, 여기에 보연화(寶蓮花)로 꾸민 자리를 베풀었는데, 국존께서 그 위에 앉아 계시다가 잠시 후 휴식하기 위해 자리에서 내려와 느린 걸음으로 마당을 거니는 것을 보았다. 이에 나는 인흥사의 선린(禪麟) 스님(★162)과 함께 뒤를 따랐다.
이때 인흥사(仁興社) 선린 스님이 나에게 이르기를 “스님은 우리 스승이 이미 성과(聖果)를 증득한 까닭에 맨발로 다녀도 발바닥이 전혀 상(傷)하지 않았던 행적으로 보았소” 라고 말하였다. 그제야 나는(山立) 마음으로 공경하여 이전에 가졌던 의심이 얼음 녹듯 풀렸다
이와 같이 마지막 입적할 때의 여러 가지 인연(因緣)(★163)에 의거하건데 비록 공자의 담장이 몇 길이나 된다고 하더라도(★164) 또한 그것과 방불함을 엿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한 번 왔다 가는 것은 마치 꿈에서 깨어나는 것과 같은 것이며, 지혜와 자비심, 실천과 원력, 환희심에 감응할 뿐이다.
또한 부병(府兵)이라 칭한 신장(神將)이 국존을 맞이하여 위호(衛護)하며, 산령(山靈)이 단월에게 고하여 식량 -------------------------------
(★162) 인흥인공(仁興麟公) : 인흥사(仁興社)에 있었던 선린(禪麟)을 가리키며, 일연(一然)의 문도로 필사에 능한 인물이다. 그는 『인천보감(人天寶鑑)』발문(跋文)을 썼는데. 일연스님이 살아계실 때 스님의 뜻에 따라 이 책을 바로 간행하지 못한 죄를 언급하고 있다
(★163) 최후인연(最後因緣) : 마지막 입적할 때 인연이니, 예컨대 눈을 감고 입적하였다가 다시 깨어나 탑비를 세울 장소를 지정해 준 것과 다비(茶毗)할 때 거화(擧火)하기 직전 섶나무 위에서 절로 가는 유나(維那)에게 쌀과 돈을 부탁한 것과, 화장후 영골(靈骨)을 입탑(入塔)할 때 시원한 바람이 불고 흰 구름이 나는 등과 같은 것을 가리키는 의미이다
(★164) 부자지장수인(夫子之牆數仞) : 부자[夫子(공자)]의 담장이 높아 몇 길이나 된다는 말이다
<39 페이지 끝> --------------------------------------------------------
<40 페이지 시작>
을 준비하였다. 그리고 화장(火葬)할 때 단정히 앉아 있었으니, 화염이 반대쪽으로 불었고, 임종할 때 금당(金幢)이 땅에 떨어진 일 등 이러한 영험한 발자취와 기이한 상서로움음 모두 성스러움에는 쓸데없는 일에 속하는 것이므로(★165) 이들은 모두 끌어 기록하지 아니한다
혹자는 말하기를 “위의 몇 가지(영험한) 일들을 모두 세상 사람을 혼란시키는 몽상이라” 하거나, 어떤 이는 불자(拂子)나 방망이를 들고 크게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어느 날 저녁 보통 꿈을 꾸어 50일 만에 한 번 깨어난다고 하며(★166) 깨어난 때를 허(虛)로 삼고, 꿈꿀 때를 보(寶)이라” 고도 하였다. 이와 같이 이러한 깨어남과 꿈꾸는 것, 허와 실은 역시 쉽게 정할 수 없다. 또한 우리 국존께서는 삼세(三世)가 환몽(幻夢)과 같은 경지를 몸소 증득(證得)하셨고, 태어남과 죽음에 드시는 것을 몽환(夢幻)과 같이 하였다(★167).
불사 또한 이와 같으며, 국존께서 자비로 중생(衆生)을 교화하였다. 비록 능히 이러한 경지에 이른다 해도 어찌 회의할 수 있겠으며, 어찌 그 사이 에 의심하기를 이르겠는가. 이 모두가 승려와 신도들이(★168) 국존을 애모하여 귀부(歸附)하는 까닭이다. 이는 아무리 강제로 시킨다고 하더라도 능히 하겠는가. 항상 국존을 따르고 친부(親附)하여 가르침을 얻거나 골체(骨體)를 얻었거나, 불법을 도운 모든 스님과, 실무 일을 담당한 제자, 아울러 스님의 법유(法乳)(★169)를 받은 경(卿)과 사대부(士大夫) 등의 이름을 갖추어 다음과 같이 열거(列擧)한다(★170) -------------------------------
(★165) 개성말변사(皆聖末邊事) : 영종(靈踨)과 이단(異端)은 성인의 분상에 있어서는 모두 쓸데없는 일이라는 뜻이다. 곧 신통이나 기적들은 보편적인 진리가 못 된다는 뜻이다
(★166) 상몽오십일일각(常夢五十日一覺) : 한 번 꿈을 꾸면 50일이 지나서야 깨어난다는 말이다
(★167) 상행몽환불사(常行夢幻佛事) : 모든 법이 환몽과 같은 이치를 깨달은 이는 꿈꿀 때나 깨어 있을 때를 가리지 않고, 항상 환몽불사(幻夢佛事)를 행한다는 의미이다
(★168) 흑백(黑白) : 흑(黑)은 먹물 옷[치의(緇衣)]을 뜻함이니, 스님을 지칭함이고, 백(白)은 힌옷을 입은 일반 백성을 의미한다
(★169) 법유(法乳) : 법화(法化)의 의미이다. 제자를 가르치는 것을 마치 어머니의 젖으로 아이를 양육함에 비유한 것이다
(★170) 이하 문도와 그들이 머문 사찰, 그리고 관직자 개인에 대해서는 주목되는 사항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언급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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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사(大禪師) 영각사(靈覺寺)의 굉훈(宏訓) 보경사(寶鏡寺)의 신가(神可) 가지사(迦智寺)의 혜림(慧林) 마곡사(麻谷社)의 수예(守倪) 법흥사(法興寺)의 조운(早雲) 인흥사(仁興社)의 선린(禪麟) 가지사(迦智寺)의 월장(月藏) 운흥사(雲興寺)의 동우(洞愚) 주륵사(朱勒寺)의 영이(永怡) 용암사(龍巖寺)의 연여(淵如) 화장사(花藏社)의 육장(六藏) 무위사(無爲寺)의 수정(守精) 보제사(普濟寺)(★171)의 법류(法流) 해룡왕(海龍王)(★172)의 경분(勁芬) 천룡사(天龍社)의 곡지(谷之) 인각사(麟角寺)의 청분(淸玢)(★173) 성주사(聖住寺)의 혜여(慧如)
★선사(禪師) 견암사(見巖社)의 각령(覺靈) 도원사(挑源社)의 자일(慈一) 조암사(祖嵓社)의 지순(之純) 등억사(登億寺)의 대인(大因) 묘덕사(妙德寺)의 선연(禪演) 재악사(載岳社)의 선염(禪燄) 월성사(月星寺)의 입기(立其) 향산사(香山寺)의 천이(天怡) 용화사(龍華寺)의 여환(呂桓) 오어사(吾魚社)(★174)의 계잠(戒岑) 도봉사(道峯寺)의 수탐(守探) 중령사(中嶺寺)의 충오(冲吾) 사자원(師子院)의 지우(志于) 심산사(深山寺)의 서연(庶淵) 경암사(瓊嵓寺)의 수연(守淵) 형암사(兄巖寺)의 자인(慈忍) 청원사(淸源寺)(★175)의 인응(仁應) 영원사(瑩原寺)(★176) 신구(信丘) 보문사(普門社)의 회희(灰喜) 거조사(居祖社)의(★177)의 천고(天杲) 인각사(麟角寺)의 정생(定生) 지론사(智論寺)의 현안(玄安) 운주사(雲住寺)의 청원(淸遠) 불일사(佛日社)의 영숙(英淑)
★수좌(首座) 홍화사(弘化寺)의 선인(宣印) 법연사(法緣寺)의 인서(印西)
★산림(山林) 원응(元應), 심분(心賁), 선랑(禪朗), 천박(天朴), 시수(時守), 지회(知恢), 도연(道淵) 행이(行伊), 가월(可月), 선련(禪璉), 대미(大迷), 문일(門一), 송지(松智), 조남(祖南) -------------------------------
(★171) 보제사(普濟寺) : 개경에 있던 선종의 중심 사찰이다. 이곳에서 담선법회(談禪法會)를 개최하였다
(★172) 해룡왕(海龍王) : 해룡왕의 “王”은 “寺”의 오자인 것 같다
(★173) 이 글을 지은 보감국사(寶鑑國師) 혼구(混丘) 곧 산림(山林)이다
(★174) 오어사(吾魚社) : 경상북도 영일군 오천면 항사리(恒沙里) 운제산(雲梯山)에 있는 절
(★175) 청원사(淸源寺) : 어디에 있었던 절인지 알 수 없으나, 지눌(知訥) 스님이 수행차 머문 기록이 있다
(★176) 영원사(瑩原寺) : 경상남도 밀양에 폐사지로 남아 있는 절로, 뒤에 보감국사 혼구의 하산소이기도 하였다
(★177) 거조사(居祖社) : 거조암(居祖庵)과 같은 절로, 경상북도 영천군 청통면 신원동 팔공산(八公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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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山林) 인조(仁照), 열여(悦如), 계숭(戒崇), 설기(雪其), 지인(志因), 자신(孜信), 선식(旋息), 영기(瑩其) 심찬(心贊), 육환(肉幻), 신한(神閑), 몽현(夢玄), 원희(元希), 환운(幻雲), 선홍(宣弘), 조한(祖閑) 굉지(宏智), 홍령(弘令), 유기(由己), 가항(可恒), 죽허(竹虛)(★178), 태선(兌宣), 신일(神日) 천굉(天宏), 일비(日卑), 영인(英印), 마가(摩訶)
★삼중(三重) 심문(心聞), 지자(智慈), 유장(由壯), 신영(神英), 서거(西去), 경이(景伊), 효청(曉廳), 가천(可千) 대휴(大休), 성현(性賢), 잠지(湛之), 자송(自松), 태인(太印), 자여(自侶), 인정(仁正), 찬영(贊英) 양지(良之), 몽유(夢由), 월주(月珠), 대진(大眞), 종자(宗資), 조선(祖宣)
★대선(大選) 현지(玄智), 덕수(德守), 신령(信令), 도한(道閑), 홍조(弘調), 조운(祖云), 중계(中契), 영인(令印) 탄홍(坦弘), 녹지(鹿之), 성통(性通), 지환(智桓), 조송(祖松), 일환(日桓)
★입선(入選) 홍민(弘敏), 가관(可觀), 가열(可悅), 가안(可安), 굉우(宏右), 법상(法常), 지영(知永), 조순(祖詢) 영월(令月), 행장(行莊), 영세(令世), 각생(覺生), 지현(智玄), 승원(昇遠)
★참학(參學) 일회(日廻), 죽지(竹之), 지온(志溫), 가홍(可弘), 성회(性廻), 인소(印昭), 익현(益玄), 백여(白如) 신찬(神贊), 각현(覺玄), 수눌(守訥), 영규(令規), 인환(仁渙), 한세(閑世), 효대(孝大), 회정(廻正) 선평(善平), 명계(明戒), 이성(已成), 득심(得心), 신여(信如), 인원(仁元), 지안(志安), 법기(法奇) 혜견(惠見), 현조(玄照), 학산(學山), 원선(遠宣), 중세(中世), 진안(眞眼)
★일품(一品) 문하시중판한림원사(門下侍中判翰林院事) 이장용(李藏用)(★180) 첨의중찬상장군(僉議中贊上將軍) 홍자번(洪子藩)(★181) -------------------------------
(★178) 본비(本碑) 앞면의 왕희지 글씨를 집자(集子)한 스님이다
(★179) 입선(入禪) : 고려 때 승과(僧科)의 초시 곧 종선(宗禪)에 합격한 승려를 가리킨다
(★180) 이장용(李藏用) : (1201-1272) 고려 때의 문신, 초명은 인기(仁祺), 자는 현보(顯甫), 본관은 인천(仁川), 시호는 문진(文眞), 경전(經典)도 깊이 연구하여 불심(佛心)이 돈독하였다. 선가종파도(禪家宗派圖)를 지었고, 화엄추동기도 윤색하였다
(★181) 홍자번(洪子番) : (1237-1306) 고려 때의 문신, 자는 운지(雲之), 본관은 남양(南陽). 시호는 충정(忠淸).경상(慶尙).전라(全羅) 3도의 안찰사(按察使), 호부시랑(戶部侍郞), 판전리사사(判典理司事) 세자사(世子師), 좌복사(左僕射), 참지광정원사(參知光政院使) 등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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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품(一品) 첨의중찬판전리사(僉議中贊判典理事) 원전(元傳)(★182) 첨의중찬상장군(僉議中贊上將軍) 송송례(宋松禮)(★183)
★이품(二品) 첨의찬성수문전대학사(僉議贊成修文殿大學士) 임익(任翊)(★184) 첨의찬성사수문전대학사상장군(僉議贊成事修文殿大學士上將軍) 정가신(鄭可臣)(★184) 문하시랑평장사보문각대학사(門下侍郞平章事寶文閣大學士) 김구(金坵) (★186) 첨의찬성사집현전대학사(僉議贊成事集賢殿大學士) 박항(朴恒) (★187) 대광첨의찬성사상장군(大匡僉議贊成事上將軍) 염승익(廉承益) 지첨의시랑찬성사(知僉議侍郞贊成事) 김연(金璉) 참지정사상장군(參知政事上將軍) 이응소(李應韶) 참지정사상장군(參知政事上將軍) 박송비(朴松庇) (★188) 지첨의사대학사상장군(知僉議事大學士上將軍) 김주정(金周鼎) 지첨의사보문서대학사(知僉議事寶文署大學士) 장일(張鎰) (★189) 지첨의사보문서대학사(知僉議事寶文署大學士) 주열(朱悅) (★190) 지밀직사좌상시상장군(知密直事左常侍上將軍) 최엄(崔渰) (★191) --------------------------------
(★182) 원전(元傳) : (?-1287)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원주(原州), 시호는 문순(文純). 충렬왕 초에 판군부사사(判軍簿司事)가 되었다
(★183) 송송례(宋松禮) : 고려 때의 문신, 본관은 려산(礪山), 시호는 정렬(貞烈)
(★184) 임익(任翊) : (?-1301)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정안(定安)
(★185) 정가신(鄭可臣) : (?-1289) 초명은 흥(興), 자는 헌지(獻之), 본관은 나주(羅州), 시허는 문정(文靖) 고려 역대 왕의 사적을 기록한 금경록(金鏡錄)을 찬집하였다
(★186) 김구(金坵) : (1211-1278) 고려 학자, 초명은 백일(百鎰), 자는 차산(次山), 호는 지포(止浦) 본관은 부령(富寧), 저서는 지포집(止浦集), 북왕록(北往錄) 등이 있다
(★187) 박항(朴恒) : (1227-1281) 고려 문신, 춘천박씨(春川朴氏)의 시조 초명은 동보(東甫), 자는 혁지(革之), 시호는 문의(文懿)
(★188) 박송비(朴松庇) : (?-1278) 고려 때의 장군, 덕원(德源 : 경북 영해)의 향리에ㅓ 출발하여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이르렀다
(★189) 장일(장일) : (1207-1276) 고려 후기의 문신, 초명은 민(敏), 자는 시지(弛之 ), 시호는 장간(章簡)
(★190) 주열(주열) : (?-1287)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이화(而和), 시호는 문절(文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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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품(二品) 부지밀직사사상장군(副知密直司事上將軍) 박지양(朴之亮) (★192) 부지밀직사사상장군(副知密直司事上將軍) 나유(羅裕) 부지밀직사감찰대부(副知密直司監察大夫) 민훤(閔萱) (★193) 부지밀직사사상장군(副知密直司事上將軍) 김군(金頵) (★194) 부지밀직사상장군(副知密直司上將軍) 이덕손(李德孫) (★195)
★삼품(三品) 판비서보문서학사(判秘書寶文署學士) 공문백(貢文伯) (★196) 상장군(上將軍) 오예(吳睿) 상장군(上將軍) 정수기(鄭守祺) (★197) 상장군(上將軍) 이영주(李英柱) (★198) 보문서학사(寶文署學士) 김지(金砥) 국자제주지제고(國子祭酒知制誥) 최녕(崔寧) (★199) 위위윤(衛尉尹) 최자혁(崔資奕) --------------------------------
(★191) 최유엄(崔有渰) : (1239-1331)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시호는 충헌(忠憲), 최자(崔滋)의 아들임
(★192) 박지양(朴之亮) : (?-1292) 고려 후기의 장군
(★193) 민훤(閔萱) : (?-1310)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시호는 양경(良敬), 1280년대 초반 경상도 안찰사(按察使), 경주부윤(慶州府尹)을 역임했다
(★194) 김군(金頵) : 언양김씨(언양김씨)로 김취려(金就礪)의 손자임, 충렬왕 7년(1281) 안동부사로 충렬왕을 환대한 적이 있다. 그의 가계(집안)에서 가지산문의 승려를 몇 명 배출한 기록이 보인다
(★195) 이덕손(李德孫) : (?-1301) 고려의 문신, 본관은 합천(陜川), 시호는 장숙(莊淑), 충렬왕 7년 왕이 경주로 행차했을 때 동경유수(東京留守)였다
(★196) 공문백(貢文伯) : 다른 기록으로는 충렬왕 13년(1287) 8월에 경주부윤(慶州府尹)이었다는 기록이 유일하다
(★197) 정수기(鄭守祺) : 생몰년 미상, 고려 후기의 무관, 본관은 초계(草溪), 친종장군(親從將軍).만호 등의 무관직을 역임하였다
(★198) 이영주(李英柱) : 생몰년 미상, 고려 후기의 폐신(嬖臣), 처음에 스님이 되었으나 환속하여 관성현령(管城縣令)이 되었다
(★199) 최녕(崔寧) : 류경(류경0에 의해 발탁된 인물로, 고종 46년(1259) 4월 왕이 병들어 일어나지 못하므로 중외(中外)의 이죄(二罪) 이하의 죄수를 사면하고, 또 최녕(崔寧)과 허홍(許洪)을 보내어 바다를 따라 산 물고기를 놓아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44 페이지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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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품(三品) 비서윤지제고(秘書尹知制誥) 오한경(吳漢卿) 사재윤(司宰尹) 류옥거(流玉居)
★사품 이하(四品 以下) 금오위장군(金吾衛將軍) 박□□(朴□□) 전리총랑(典理摠郞) 김원구(金元具) 근시중랑장(近侍中郞將) 김용검(金龍劒) 낭장(郎將) 최유□(崔有□) 좌랑(佐郞) 이세기(李世祺) 지후(祗侯) 윤혁(尹奕) 박사(博士) 김원상(金元祥) 한림(翰林) 김□□(金□□) 조봉랑(朝奉郞) 김지(金旨) --------------------------------------------------------
麟角寺普覺國尊碑陰記 (原文) 인각사보각국존비음기 (원문)
元貞元年乙未八月日書字 원정원년을미팔월일서자
普覺國尊碑陰記 雲門寺住持通奧眞靜大禪師 山立述 보각국존비음기 운문사주지통오진정대선사 산립술
新天子卽祚元年乙未 夏四月初 麟角長老過曰 禪師入滅 忽忽六七年矣 國朝 신천자경조원년을미 하사월초 인각장로과왈 선사입멸 홀홀육칠년의 국조
恩禮 不渝命重臣撰碑 勅諸琬琰樹于本院 乃勅門徒 替代相承 以奉享祀 飾終之 은례 불투명중신찬비 칙제완염수우본원 내칙문도 체대상승 이봉향사 식종지
禮畢矣 列公徒于碑之陰 使後世 知絡誦副墨 元有由緖 子能爲吾輩記之乎 余頷 예필의 열공도우비지음 사후세 지락송부묵 원유유서 자능위오배기지호 여암
之曰善 지왈선
國尊在世時 山立以因緣差奪 未獲詣門徒之列 常以爲恨 辛託不朽之囑 庶亦不 국존재세시 산립이인연차탈 미획예문도지열 상이위한 신탁불후지촉 서역불
結當來攀附之 不承命 謹稽首拜手再拜言曰 和尙門風 廣大悉備 不可得而思儀 결당래반부지 불승명 근계수배수재배언왈 화상문풍 광대실비 불가득이사의
也 則止 曰一 國尊之衆人師之可也 然尊之焉 師之焉 未必不由醢醯 而蚋聚要其 야 칙지 왈일 국존지중인사지가야 연존지언 사지언 미필불유해혜 이예취요기
但履踐篤實一去來 同夢等彼己 智悲行願喜 有所感而致之耳 今案行狀於其終也 단이천독실일거래 동몽등피기 지비행원희 유소감이치지이 금안행장어기종야
辭衆歛目氣絶己久 今禪源頂失聲曰 立塔之所 未暇諮稟悔 將何及 衆辭皆同 사중감목기절기구 금선원정실성왈 입탑지소 미가자품회 장하급 중사개동
師從寂定中安祥而起 顧謂衆曰 此東南行四五許里 有林麓起伏隱若古塚 是眞吉 사종적정중안상이기 고위중왈 차동남행사오허리 유림록기복은약고총 시진길
詳之地 可安置也 復歛目如初 撼之已逝矣 事涉怪異 碑文略之 昔有廣福禪者 臨 상지지 가안치야 복감목여초 감지이서의 사섭괴이 비문약지 석유광복선자 임
茶毗於柴棚上 復起囑維那 藍行者米錢 史傳稱又何漁疑也 다비어시붕상 복기촉유나 람행자미전 사전칭우하어의야
又茶毗將入塔 今雲興印公 住庵時適夢 師知迎勞聞所曰 茶毗而復起此理如何 우다비장입탑 금운흥인공 주암시적몽 사지영로문소왈 다비이복기차리여하
■■■社에 대한 자료 조사 내용 위 載岳社의 社(사찰 : 절)는 고려시대에 寺(사찰 : 절)와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고 특히 寺 보다는 社가 보편적으로 더 많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것이 아래 번 글의 내용과 같다
569 ★203. 白羊寺 1차 轉藏法會 ['재악산(載岳山) 재악사(載岳社)'의 '사(社)'와 관련된 자료 <2>] 레나 16.01.09 6 0 http://cafe.daum.net/_c21_/bbs_read?grpid=1BHFK&mgrpid=&fldid=9fnZ&page=1&prev_page=0&firstbbsdepth=&lastbbsdepth=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contentval=0009Bzzzzzzzzzzzzzzzzzzzzzzzzz&datanum=569&listnum=20
568 ★202. 白洋寺 역사 자료 ['재악산(載岳山) 재악사(載岳社)'의 '사(社)'와 관련된 자료<1>] 레나 16.01.08 5 0 http://cafe.daum.net/_c21_/bbs_read?grpid=1BHFK&mgrpid=&fldid=9fnZ&content=N&contentval=0009Azzzzzzzzzzzzzzzzzzzzzzzzz&page=1&prev_page=0&firstbbsdepth=&lastbbsdepth=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datanum=568®dt=&favorRegdate=&favorMode=&listnum=20
567 ★201. 修禪社 역사 자료 ['재악산(載岳山) 재악사(載岳社)'의 '사(社)'와 관련된 자료] 레나 16.01.08 3 0 http://cafe.daum.net/_c21_/bbs_read?grpid=1BHFK&mgrpid=&fldid=9fnZ&content=N&contentval=00099zzzzzzzzzzzzzzzzzzzzzzzzz&page=1&prev_page=0&firstbbsdepth=&lastbbsdepth=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datanum=567®dt=&favorRegdate=&favorMode=&listnum=20
566 ★200. '재악산(載岳山) 재악사(載岳社)'의 '사(社)'와 관련된 자료 목록(제목) http://cafe.daum.net/_c21_/bbs_read?grpid=1BHFK&mgrpid=&fldid=9fnZ&content=N&contentval=00098zzzzzzzzzzzzzzzzzzzzzzzzz&page=1&prev_page=0&firstbbsdepth=&lastbbsdepth=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datanum=566®dt=&favorRegdate=&favorMode=&listnum=20

★210. 인각사 보각국사 비첩 「재악사 載岳社 선염 禪燄」 탁본(왕희지 필체 집자) http://cafe.daum.net/_c21_/bbs_nsread?grpid=1BHFK&fldid=9fnZ&contentval=0009Kzzzzzzzzzzzzzzzzzzzzzzzzz&datanum=578&searchlist_uri=%2F_c21_%2Fcafesearch&search_ctx=VnKaQtKZsJZB2Q6rEnyTQNJLYJ1BLByrXH6apwnmUgOL5YegifEsd1cqZ7i531ig3w2toea-N1mAA6d1zFE6ns3Qo_V3N8es9KZOoVp1vQN68Pu4jZbAkuXQ5R1twzXbF95Qe_Krekl-to.vxf4.vhtUW1ZqSrAaOzD24n_uUV.TDjfFEmpKxVe_tOVIjUqMnMA.Befxt8bujSLIJH_cLvpn7_8F8epoxCWwGtKFddffQAxDsdQ9.oOJupFduwMqxgt.G71iMI90
■■■3. [고려시대] ○시대 : 1295년 66 ◎578 ★210. 인각사 보각국사 비첩「재악사 載岳社 선염」 탁본(왕희지 필체 집자) ●왕희지 필체 집자 사진(표지.내용.간기)
※위 2번과 중복이 되나, 탁본된 고문헌(古文獻)으로서의 증거임.
[스크랩] ★210. 인각사 보각국사 비첩 「재악사 載岳社 선염」 탁본(왕희지 필체 집자)
●인각사보각국사비첩(麟角寺普覺國師碑帖) 표지 ○중앙승가대학불교사학연구소편(中央僧家大學佛敎史學硏究所編)
★210. 인각사 보각국사 비첩 「재악사 載岳社 선염 禪燄」 탁본(왕희지 필체 집자)
이 글을 만든 목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영남알프스의 주산(主山)인 재악산(載嶽山, 載岳山 : 해발1189.2미터)은 원래의 산명입니다 ② 이 재악산(載嶽山, 載岳山, 사자봉 獅子峰, 제1봉)을 1925년에 일제(日帝)가 천황산(天皇山)으로 조작했습니다 ③ 제1봉인 재악산(載嶽山, 载岳山 = 사자봉 獅子峰)을 위와 같이 조작하고, ④ 제2봉인 수미봉(須彌峰)은 '역사적 근거와 증거가 없는 재약산(載藥山)'으로 억지로 만들었습니다. ⑤ 본 블로그와 카페는 제1봉인 천황산(天皇山)을 재악산(載嶽山, 載岳山)으로 복원하고, 제2봉인 재약산(載藥山)을 수미봉(須彌峰)으로 변경하기 위해 ⑥ 재악산(載嶽山, 載岳山) 산명(山名)의 증거를 찾아 글과 사진을 올리고, 재악산(載嶽山, 載岳山)의 정당성을 홍보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글과 사진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⑦ 재악산(載嶽山, 載岳山)을 많이 홍보해 주시기 바라오며, 많은 지도,편달,성원을 부탁드립니다 블로그 및 카페 운영자 도재국(都在國, 닉네임 레나, 소나무바다) 올려드립니다
---------------------------------------------------------------------------------------------- '인각사 보각국사 비첩 「재악사 載岳社 선염 禪燄」 탁본(왕희지 필체 집자)'는 두 개의 크다란 보물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하나는 황희지 필체의 글자를 가장 많이 모아 놓은 비문(비첩)이고 또 하나는 그 비문 속에 표충사 뒷산의 명칭과 사찰의 명칭이 재악(載岳)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선명하게 증명시켜주는 것이다 즉, 전자(前者)는 중국을 필두로 한 한자 문화권인 동양의 보물이고 후자(後者)는 표충사의 역사(古跡)을 밝히는 중요한 성보문화재로서의 보물인 것이다
'인각사 보각국사 비첩 「재악사 載岳社 선염 禪燄」 탁본(왕희지 필체 집자)'는 왕희지의 본국인 중국에서 조차도 없는 즉, 왕희지 필체를 가장 많이 모아놓은 것이다 그래서 옛부터 중국의 사신(고관)이 우리나라에 오면 인각사의 왕희지 필체 음기를 탁본해 가는 것이 그들의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였다고 전해져 온다
재악산(載岳山)의 증거인 「재악사 載岳社 선염 禪燄」 즉, 사찰 명칭과 선사님 법명을 왕희지 필체로 집자, 음각, 탁본한 것이 선명하다
재악산(載岳山)의 증거가 이렇게 명확한데도 아니라고 우기고
재약산(載藥山)이다 천황산(天皇山)이다 하는 사람들은 이제 그만 우겨야 한다
○집자(集字) 사진 게재 사진 제공 : 박순문 변호사
■■■보각국사비첩 普覺國師碑帖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23187
●문헌 명칭 : 보각국사비첩(普覺國師碑帖)
○요약 보각국사비명(普覺國師碑銘)의글씨를 탁본하여 만든 첩.
○시대 고려 ○성격 서첩 ○유형 유물 ○분야 예술·체육/서예
○내용 보각국사비는 고려 후기의 승려 일연(一然)을 기념하여 세운 것으로 탑과 함께 군위 인각사(麟角寺)에 세웠다.
일연의 비문은 전면의 본문은 민지(閔漬)가 짓고, 후면의 음기(陰記)는 산립(山立)이 지어
서성(書聖)이라 불리는 왕희지(王羲之)의 글씨를 집자(集字 : 문헌에서 필요한 글자를 찾아 모음)하여 세웠다.
이 때문에 후대에 왕희지의 글씨를 얻기 위해 수많은 탁본이 만들어졌고,
이 과정에서 비가 손상을 입어 현재는 일부분만 파손된 채 인각사에 남아 있다.
탁본은 원래의 형태를 그대로 전하지 않고 원비의 한 줄을 여러 개로 나누어 떼어 붙여 첩(帖)으로 만들었다.
비문의 전면은 탁본을 통해 전문(全文)을 알 수 있으나,
비의 후면 음기는 완전한 탁본이 없어 본래 내용을 정확히 알 수 없다.
전면은 37행에 1행 69자이며, 음기는 36행에 1행 71자로 추정된다.
중앙승가대학(中央僧伽大學)에서 발행한 《인각사보각국사비명첩 麟角寺普覺國師碑銘帖》에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본·박영돈(朴永弴)본· ○일본 천리대(天理大)본· ○전보삼(全寶三)본I·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본· ○황수영(黃壽永)본· ○서울대학교 규장각(奎章閣)본· ○영남대학교 동빈문고(東濱文庫)본· ○고려대학교 화산문고(華山文庫)본· ○전보삼본Ⅱ· ○대동금석첩(大東金石帖)본· ○국사편찬위원회본의 12종 탁본이 실려 있다. ○이후에 간송문고(澗松文庫)본이 추가로 공개되었다.
내용에 논란이 많은 음기의 복원본으로 《인각사보각국사비명첩》에 실린 ○푸른마을회 복원본과 박영돈 복원본이 있다. ○보각국사비명의 전면은 일연의 생애를 상세하게 서술하였고, ○음기는 일연의 몇 가지 인연담에 이어 일연의 문도들을 나열하였다.
문도는 세 가지 부류로 나누어 ○전법(傳法)제자인 부법제덕(副法諸德)과 ○수법(受法)제자인 집사(執事)제자와 ○재가단월(在家檀越)인 경사대부(卿士大夫)로 분류하였다.
현재 복원된 자료에 따르면, ●부법제덕은 ○대선사와 선사가 42인, ○산림(山林)이 18인, ○삼중(三重) 19인, ○대선(大選) 19인, ○입선(入選) 20인으로 모두 118인이고,
●집사제자인 참사(慘事)가 54인이다.
●제자 부류와 승계에 따라 ○현재 172인 정도의 문도 이름을 알 수 있는데, ○선사와 산림 사이에 수좌(首座) 승계가 자리잡아야 하나 인원은 확실히 알 수 없다.
●재가단월 중에서 ○2품 이상의 재추(宰樞:문무의 고관대작을 통틀어 일컬음)는 ○이장용(李藏用)·홍자번(洪子藩)·원부(元傅)·송송례(宋松禮)·임익(任翊)·정가신(鄭可臣)·김구(金坵)·박항(朴恒)·염승익(廉承益)·김련(金璉)·박송비(朴松庇)·이응소(李應韶)·김주정(金周鼎)·장일(張鎰)·주열(朱悅)·최유엄(崔有淹) 등 16인이 있다.
●3품으로는 재추인 박지량(朴之亮)·나유(羅裕)·민훤(閔萱)·김군(金頵)·이덕손(李德孫)·공문백(貢文伯)·오예(吳睿)·정수기(鄭守祺)·이영주(李英柱)·김지(金砥)·최녕(崔寧)·최자혁(崔資爀)·오한경(吳漢卿)·유거(柳琚) 등 14인이 있으며,
●4품 이하로는 9인 정도를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의 정치적 성향은 다양하여 ○무인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이장용·박송비·이덕손·주열·송송례 등도 있고, ○원의 일본정벌에 참여하였던 홍자번·김주정·박항·박지량·나유 등도 있으며 ○삼별초 진압에 참여한 인물과 ○충렬왕대의 측근 무인, ○충선왕의 개혁정치에 참여한 정가신·임익, ○권세를 부려 탐학한 관리로 지목받은 이덕손·염승익·민훤·이영주·김원상 등도 있다.
참고문헌
『인각사보각국사비명첩』(중앙승가대학 불교사학연구소, 1992)
「보각국존일연에 대한 연구」(채상식, 『한국사연구』 26, 1979)
「린각사 보각국사비 음기 재고」(김상현, 『한국학보』 62, 1991)
「신자료를 통해서 본 인각사보각국존비음기」(박영돈, 『비블리오필리』 3, 1992)
「일연 비문의 단월」(정병삼, 『한국학연구』 5, 1995)
「군위 인각사 보각국존 정조탑 비문」(이지관, 『가산학보』 5, 1996)
■■■載嶽山(載岳山) 증거 72 건을 도재국.손흥수 등이 34년간 찾아낸 년도 순서별로 작성된 글의 연명부 - - - - - - - - - - - - - - - - - - - - - - - - - - - ■1 : 본 글의 연번 ◎226 : 게시판 내의 재악산 관련 전체 글의 연번 ★1 : 게시판 내의 재악산 글의 중요한 증거 글 연번 - - - - - - - - - - - - - - - - - - - - - - - - - - - ■1 ◎226 ★1. 밀주징신록(密州徵信錄) (春夏)에 기록된 재악산(載岳山)
■2 ◎228 ★2. 점필재 김종직 선생 시문(1)에 기록된 밀양 재악(載岳)
■3 ◎229 ★3. 점필재 김종직 선생 詩文(2)에 기록된 밀양 재악(載岳)
■4 ◎230 ★4. 밀양지명고(密陽地名攷) 단장면 지세와 연혁條에 지금의 표충사를 옛날에는 재악사(載岳寺)로 기록
■5 ◎231 ★5. 동국여지승람 판심에 첨부된 동람도(東覽圖)에 기록된 재악산(載岳山)
■6 ◎232 ★6. 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밀양도호부 山川 條에 재악산(載嶽山) 기록
■7 ◎233 ★7.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밀양도호부 山川 條에 재악산(載嶽山) 기록
■8 ◎234 ★8. 밀주지(密州誌)에 기록된 재악산(載岳山) 漢文本, 河載裕 藏書, 밀양문화원 향토사료집)
■9 ◎235 ★9. 밀주구지(密州舊誌)에 기록된 재악산(載岳山), (戊戌重陽獲撛, 밀양문화원 향토사료집)
■10 ◎236 ★10. 밀주읍지(密州邑誌)에 기록된 재악산(載岳山), 밀양문화원 향토사료집
■11 ◎237 ★11. 교남지(嶠南誌) 밀양군편 山川 및 校院 條 재악산(載岳山), 화동(華洞) 전寫 소장(所藏)
■12 ◎238 ★12. 천태종통기(天台宗統紀) 기록 재악산(載岳山) 영정사(靈井寺) 개간(開刊)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권제일(卷第一)
■13 ◎240 ★14. 국역신증동국여지승람 경상도 '밀양도호부'편 山川 條 재악산(載嶽山)
■14 ◎241 ★15.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 밀양군편 산천조(山川條) 재악산(載嶽山)
■15 ◎242 ★16. 영지요선(嶺誌要選)券之一 밀양 山川條 재악산(載嶽山)
■16 ◎243 ★17. 교남지(嶠南誌) 부산시립도서관 소장 밀양편 산천條에 기록된 재악산(載嶽山) [밀양도호부(密陽都護府) (번역문)]
■17 ◎2 ★18. '단장면 리동가(里洞歌)'에도 불려진 재악산(載嶽山)
■18 ◎246 ★20. 점필재 김종직 선생 시문(3)에 기록된 밀양 재악(載岳)
■19 ◎247 ★21. 밀주징신록(密州徵信錄) (秋冬)에 기록된 재악산(載岳山)
■20 ◎249 ★23. 밀양 명문가(名門家) 평산신씨(平山申氏) '송계선생실기(松溪先生實記)'에 기록된 재악산(載岳山)
■21 ◎12 ★24. 밀주승람[密州勝覽 1928~1929 편찬 추정, 丁卯年 손병현(孫秉鉉) 전사(電寫)]에 기록된 재악산(載岳山)
■22 ◎251 ★25.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기록된 재악산(載岳山)
■23 ◎252 ★26. 청구도(靑邱圖) 곤(坤)에 기록된 재악산(載岳山) 사진첨부
■24 ◎253 ★27. 대동지지(大東地志) 산수(山水) 條에 기록된 재악산(載岳山)
■25 ◎254 ★28. 국역 밀주지(지리편) 재악산(載岳山) 기록, 밀양문헌집람 제1호, 2001년 밀양문화원 발행, 이익성家 소장본)
■26 ◎255 ★29. 동여도(東輿圖)에 재악산(載岳山) 기록, 경기도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 소장 : 최병운 선생 민원서류 첨부
■27 ◎256 ★30. 1906년 인쇄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산천조(山川條) 재악산(載岳山), 서울 국회도서관 소장, 최병운 선생 민원서류 첨부
■28 ◎67 ★31. 국역신증동국여지승람 청도군 山川 條, 밀양 단장천을 재악천(載嶽川)으로 기록
■29 ◎264 ★38. 밀양 명문가(名門家) 일직손씨 세보(1612년)에 기록된 재악산(載嶽山)
■30 ◎265 ★39. 동강집(東江集, 밀양부사 신익전 찬, 1652년)에 기록된 재악산(載嶽山)
■31 ◎274 ★41. 오기팔도(五畿八圖) 조선국세견전도(朝鮮國細見全圖 : 全國圖)에 기록된 재악산(載岳山), 일본인 제작
■32 ◎275 ★42.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22권 여지고(輿地考) 산천(山川) 밀양(密陽) 342페이지, (재악산.載岳山)
■33 ◎276 ★43. 한국지리지총서 읍지1권(경상도읍지 10책 1832년경) 487페이지 지도(재악산載岳山 영정사靈井寺)
■34 ◎277 ★44. 한국지리지총서 읍지2권(영남읍지 7책 1895년경) 323.325페이지(재악산.載岳山 영정사.靈井寺)
■35 ◎278 ★45. 한국지리지총서(韓國地理志叢書) 읍지4권(영남읍지 3책 1871년경) 168페이지(재악산.載岳山 영정사.靈井寺)
■36 ◎285 ★48. 밀양부읍지(密陽府邑誌) 인물(효자)條 재악산(載岳山)
■37 ◎286 ★49. 2006년 밀양지(密陽誌) 탁영당지(濯纓堂址) 재악산(載嶽山) 기록
■38 ◎287 ★50. 밀주지[密州誌, 박수헌 저작, 1932.8.1 밀양군향교 발행, 재악산(載嶽山), 재악사(載嶽寺) 기록]
■39 ◎293 ★56. 부산시립도서관 소장 해동지도(海東地圖) 밀양부(지지+지도) 18세기 중엽 '재악산(載岳山) 및 재악사(載岳寺)'로 기록
■40 ◎294 ★57. 부산시립도서관 소장 팔도지도(八道地圖 : 경상도)에 기록된 재악(載岳)
■41 ◎299 ★62. 고지도[古地圖, 재악산(載岳山) 영정사(靈井寺), 출처 : 밀양문화원 향토사료집]
■42 ◎300 ★63. 천년고찰 표충사[表忠寺] : 문헌과 고지도 등에 [재악산(載岳山) 영정사(靈井寺)] 또는 [재악산(載岳山) 재악사(載岳寺)]로 기록
■43 ◎301 ★64. 밀양 지리지 '미리벌의 얼' 1983.9 밀양군 발행, 503페이지 재악산(載岳山) 기록
■44 ◎302 ★65. 도별도(道別圖 : 경상도) '해좌승람(海左勝覽)'에 기록된 밀양 재악산(載岳山)
✔■45 ◎303 ★66. 밀양 표충사 삼층석탑에서 나온 '재악산(載岳山) 영정사 개수비문' 에 재악산(載岳山) 산명 기록
■46 ◎304 ★67. 밀양 표충사 경내 비석걸에 있는 '경자갑보월비문(庚子甲補月碑文)'에 재악산(載岳山) 산명 기록
■47 ◎314 ★74. 여지도서(輿地圖書) 지도, 산천조, 사찰조에 재악산(載岳山) 기록
■48 ◎315 ★75. 밀양유감(密陽儒鑑) 서문(序文)에 동천(東川) 발원지 재악산(載岳山) 기록
■49 ◎316 ★76. 단군봉안록(檀君奉安會案錄) 일람표(一覽表)에 재악산(載岳山) 기록
■50 ◎317 ★77. 오횡묵(吳宖默)의 경상도(慶尙道) 고성총쇄록(固城叢瑣錄)에 재악산(載岳山) 기록
■51 ◎318 ★78. 범우고(梵宇攷) 밀양 사찰편에 재악산(載岳山) 기록
■52 ◎319 ★79. 천하지도(天下地圖)중 경상도(慶尙道) 71官에 밀양 재악산(載岳山) 기록
■53 ◎322 ★80. 일본지리대계(日本地理大系) 조선편(朝鮮編)에 나오는 재악산(載岳山)
■54 ◎326 ★81. 천유가 1839(己亥) 삼대사 신위 봉안후 56년째인 1894년 밀양군수 겸관했던 오횡묵이 사명대사 관련 글에 ”재악산(載岳山)으로 기록
■55 ◎334 ★87. 524년 만에 드러난 '재악산(載岳山) 영정사(표충사) 삼층석탑 개수비문'의 탁본과 삼층석탑 해체,중수 과정 업무보고서
■56 ◎336 ★88. 김종직 선생의 동국여지승람 발문(跋文)에 임금이 강조한 산천(山川)
■57 ◎428 ★116. “선총(禪摠) 계심(戒心) 대선사(大禪師)님”께서 1491년 건립(改修)하신 載嶽山靈井寺삼층석탑개수비 (【도재국】, 국보 지정 당위성 강조)
■58 ◎445 ★123. 옛 지리서의 산천(山川)은 군현별(郡縣別) 편찬, 재악산(載嶽山)은 언양현(彦陽縣 : 울산)이 아닌, 밀양도호부(密陽都護府) 소속
■59 ◎462 ★135. 재악산(載岳山) 영정사(靈井寺)에서 1661년 개판(改版)한 기록이 있는 경전『김해 보현사 전적(典籍) 원각경(圓覺經) 개요』
■60 ◎468 ★140. 군수(郡守) 추천(鄒川) 손영재의 아들 손기륜이 재악산(載嶽山)에서 노모를 구하고, 무참하게 왜적의 칼을 맞다
■61 ◎487 ★150. 동국여지승람보다 먼저 간행된 「해인사 장경(藏经)」을 인쇄하여, 1458년 배부할 때「재악사(載岳寺)」로 기록
■62 ◎488 ★151.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 '1458년 해인사 장경(海印寺 藏經) 50부 인쇄하여 배부시', 배부처에 '재악사(載岳寺)에 1부 주라' 로, 기록
✔■63 ◎498 ★153. 재악사(載嶽社)가 최초로 기록된, 載嶽山 최고 증거인 '보각국존 일연 스님 관련, 1295년 산립의 인각사보각국존비음기(麟角寺普覺國尊碑陰記)
■64 ◎512 ★162. 국립중앙도서관 고지도(108번), 조선전도 밀양 재악(載岳), [ 1894년 인쇄, 조선총독부 고서, 동경, 일본 육군참모국 ]
■65 ◎565 ★199. 여암(旅菴) 신경준(申景濬 : 1712-1781) “산수고(山水考), 산위(山緯)' 밀양부(密陽府)에 기록된 재악산(載嶽山)
✔■66 ◎578 ★210. 인각사 보각국사 비첩「재악사 載岳社 선염」 탁본(왕희지 필체 집자)
■67 ◎649 ★257. 속리산 국립공원 홈페이지에는 '속리산 天王峰으로 되어 있어, 울산측의『오주연문장전산고』에 실렸다는 天皇峰과 내용이 다르다
■68 ◎655 ★260. 조선 중기, 재악산(載岳山)으로 가면서 지은 시(詩)
■69 ◎658 ★261. 재악산(在岳山)이라고 적힌 일제강점기
■70 ◎687 ★279. 재악산(載岳山) 영정사(靈井寺)에서 발간한 원각경(圓覺經)
■71 ◎1268 ★597(621). 전선명승고적(全鮮名勝古蹟) 밀양군(密陽郡) 편 재악산(載嶽山) 기록
■72◎동계집 【密陽 載岳山 靈井寺 前後 創建記】와【載岳山記】는 조선시대에 영정사에 주석했던 【경일동계(敬一東溪) 선사(禪師)】가 지은【東溪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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