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든 가시는 빼면 그만이지만 가슴에 박힌 가시는 뺄 수가 없다.
어쩌면 평생 그 가시로 인해 고통을 받으며 살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서울에서 선생님이 오셨다.
와우! 진짜-무지-진짜-예쁘셨다.
환장하게 더 좋은 소식이 하나 더 있었다.
예쁜 여선생님이 우리 반을 맡는다는 것이다.
소풍 갈 때면 비가 내려 재수 없는 학교라고 각인된 생각들이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우리학교 좋은 학교, 예쁜 선생님이 우리 반에 오시면,
십리를 번개같이 달려서라도 절대로 지각하지 않고 변소 청소도
잘할 것이라고, 학교 뒤 월출산 천왕봉을 바라보며 다짐했다.
마을에 하나 뿐인 라디오로 외부 소식을 접했던 시절,
서울서 오신 선생님은 천왕봉 아래 시리도록 푸른 선녀탕으로
하강하신 선녀가 잠시 길을 잃었거나, 어느 무지렁이가 나무하러
갔다가 웃을 감추었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닐까 라는 의견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까지 우리는 그토록 뽀얀 피부를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다. 어머니를 따라나선 이 십리 오일장이 전부인 나의
눈에 각인된 여자상이라고는.
호박 구덩이에 부으려고 똥물을 이고 가는 여자.
땀에 절고 귀퉁이가 너덜거린 수건을 머리에 쓴 여자.
뜨거운 햇볕을 피하려고 우정 콩밭으로 기어드는 여자.
부엌에서 점심을 먹고 나뭇단에 기대서 잠꼬대하는 여자.
월출산 더덕을 장에 내려고 손톱이 검도록 껍질을 벗기는 여자.
어린 아이를 대들보에 허리를 묶어놓고 뒤돌아보며 들일 나가는 여자.
힘든 농사일에 갈라진 손과 발, 못 먹어서 검버섯 핀 얼굴 밖에
못 보았던 우리들은 선생님을 본 순간 푸른 달빛아래 초가지붕
위의 박꽃처럼 그 신비로움에 넋을 잃고 말았다. 뒷산에서
금방이라도 소쩍새 울음소리가 들려 올것 같았다.
“야! 우리 선생님 화장실 가게, 안 가게?” 이렇게 묻는 칠성이 놈에게
‘무엄하고 싸가지 없는 놈’이라고 누가 먼저 날 것도 없이 개구리 잡고,
뱀 밟아 죽이던 손과 발을 동원하여 몰매를 안겼다. 놈은 비오는 날 먼지
나도록 맞고서도 선생님께 고자질도 못하고 소리 내어 울지도 못했다.
선생님이 옆을 지날 때마다 은은한 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선생님의 향기를 간직하려는 깜냥으로 깊게 숨을 들이
마시는 바람에 정신이 몽롱하고 어지럽기까지 했다.
그때부터 하라는 공부는 뒷전이고 “어떻게 하면 선녀 같은
선생님의 관심을 끌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시간은 자꾸 가는데 내 마음을 전할 길 없어 머리에 쥐가 날 즈음,
드디어 월출산에 보름달이 떠오르듯 두둥실 그 기회가 떠올랐다.
오늘 아침이었다. 선생님이 새 슬리퍼를 신고 오신 것을 발견했다.
등교하면 머리에서 발끝까지 부엉이 눈으로 선생님을 살핀 결과였다.
<굳이 비교하자면, 김동인 작가의 “발가락이 닮았다”의 주인공 어린시절>
이런 좋은 기회를 그냥 넘길 수 없지. 암 절대로….
‘통개통개’ 뛰는 마음을 꺼낼 기회를 노리는데 선생님이 내가 앉은
곳으로 걸어 오셨다. 선생님의 슬리퍼에서 울리는 ‘달그락’ 소리를
가늠하면서 목소리를 라디오서 흐르던 성우처럼 다듬었다.
“선생님! 쓰리빠 무쟈게 이쁘요 이.”
지나가던 선녀 선생님이 내 책상 옆에서 딱 멈추었다.
사위는 쥐 죽은 듯 하고 내 가슴은 터질듯이 방망이질을 했다.
스치던 향기가 이번에는 나의 온몸을 휘감고 도는데 45도로
내려다보던 선생님의 앵두 입술이 오직 나를 향해 열렸다.
“야! 까불지 말고 공부나 해”
아이는 정수리에 돌 맞은 개구리처럼 다리를 떨며 뻣뻣하게 경직되어 버렸다.
브라질 나비의 날갯짓이 텍사스주에 토네이도를 일의 킬 수 있다는데 선녀
선생님의 한마디는 토네이도가 휩쓴 자리처럼 참혹하게 아이의 가슴을
할퀴고 내일로 넘어가 버렸다.
그 뒤 나의 별명은 (까불지 말고 공부나 해)로 결정 났고,
억장이 무너진 귀에 딱지가 앉도록 사방에서 파고들었다.
빛나는 졸업장을 받을 때까지.
사건은 하루아침에 학교 전체에 퍼졌다. 상급생들은 싸움을 붙였다.
장난처럼 날아오는 주먹 속에는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인데 이놈이”
라는 연적에 대한 날카로운 가시가 숨겨 있어서 속으로 멍이 들었다.
부추기는 놈과 당하는 놈 간의 주먹과 발길질로 꽁보리밥만 먹던 놈들이 흘린
코피는 또 몇 종지나 되었을까. 여자의 머리카락 하나가 능히 황소도 끈다더니
겨우 코 흘리게 면한 꼬맹이들이 뜬금없이 흑기사 백기사로 변신해서 하굣길
논두렁에서 치고받았다.
핏물이 튄 옷은 헤지도록 빨아도
지워지지 않아 집에 도착하면 작은형 주먹을 불렀다.
“왜 싸웠는지 말해” 작은형이 내 코앞에 주먹을 흔들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설맞은 멧돼지처럼 거친 숨만 내쉬었다.
“얌마, 이유가 있을 것 아녀? 쌍코피 터지게 쌈한 이유 말야”
그래도 말이 없는 나에게 “엇쭈, 이놈 봐라 묵비권을 행사해야”라고 한 대,
형을 우습게 본다고 한 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반항한다고 또 터졌다.
평소에 역성을 들어주던 누나들도 이제는 막내 놈 피 묻은 옷 빨기에 질려서.
“저놈 이상해졌다. 맨날 쌈질이야”라고 뇌까리며 작은형 주먹질을 외면해버렸다.
그렇다고 “야, 까불지 말고 공부나 해”라는 타다만 사랑의 희나리가
되어버린 멍든 속을 양말처럼 홀랑 까 보일 수도없는 노릇이었다.
형 주먹에 내가 맞아 죽을지라도.
육십 명 안팎 친구들 앞에서 가슴에 대못을 박아 십자가에 메달아 버린 선생님은
옛 사람이 되었지만, 선생님이 남긴 한마디는 마을 상공을 배회하는 솔개처럼
내 곁을 맴돌다가, 어쩌다 맘에 든 상대에게 한마디 건네려고 다가서면,
귀신처럼 떠억 등장하셔서 나를 말더듬이로 만들어버린다.
결코 단 한 번도 청하지 않았는데도, 선생님은 꿈속에서도 뽀얗고 예쁜 옛 모습
그대로 나타나신다. 선생님을 사랑한 죄로 아이는 전교생과 싸워 쌍코피 터지고,
집에서도 사가지 없는 말썽쟁이 자식 취급을 당했는데도 말이다.
국화 밭을 뛰어놀던 노루 새끼처럼 유순하던 놈이 어느 날부터 귀신에 씐 듯
벌건 눈으로 피를 흘리며 돌아왔으니 어머니의 상실은 또 얼마나 크셨을까.
파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서도 나는 그것이 못내 사무치도록 억울하다.
같은 값이면 과붓집 머슴살이고,
뺨을 맞더라도 옥가락지 낀 손이라지만,
내 첫사랑은 이렇게 ‘쫑’을 치고 말았다. 초등 2년이었다.
“내가 당신을 지금 그대로 대한다면, 당신은 그 모습 그대로 머물 것이다.
하지만 내가 당신의 가능성을 보고 그에 따라 대한다면 당신은 반드시 그렇게 된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첫댓글 첫사랑.........
누구나 있었던..
좋은 추억이지요
산사나이7님도 서리서리 갈무리 해 놓은
사연이 있을듯합니다. 함 펼쳐 놓으시지요. ^^
오산에서 친하게 지내는 후배 시인은
신춘문예 당선으로 시조시인으로 등단하여
활동하고 있는데
초등학교 4~5학년 때
오산에 와서 공연(노래)하는 김세레나를 처음 보고는
사랑했었다(첫사랑)는 얘기를 듣고
웃은 적이 있습니다.
신춘문예 문을 두드려야 겠습니다.
후배 시인보다 하테스가 2년 더 빨랐으니.
진즉 알았으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건데요..^^
아련한 옛 추억이 고스란히 드러난 아름다운 글
잘 읽고 갑니다.
색바랜 하얀 손수건 같은 이야기 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_()_
초등 2년 눈에 박혀 마음 병 앓았다니 여리고 순한 머스마 였나부다 ㅎㅎ 남자들의 덜 여문 시야에 곱고 맑은 것은 그냥 예쁜 것으로 귀착되나벼
사랑이 선생님의 흰 얼굴만큼
맑았던 시절 일급수 사랑을 저 나이때 했다는건 로맨시스트의
유전인자 수가 바글바글 했다는 거 하테스님 글 속에 흐른다는거
알겠네요
아녀요. 맘에든 여자만 보면 파르르 벙어리가 된다닌 깐뇨.
컴은 다행히 비대면이라서 부끄러운 솜씨로 덤벙댑니다.
관심 어린 답글 감사드립니다. 쪽지 보내겠습니다.
순수한 첫사랑의 가슴앓이...
답글 감사드려요.
그것이 생각보다 오래가네요.
보리님이 밉상으로 보일때쯤이면 사라질려나.^^
땅이 큰 미쿡 가면 모든것이, 특히나 배포가 커지나 봅니다.
스무해를 나의 입맛을 책임지던 현지 처자가 언니들
등살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삽니다.
베트남은 진통제도 션찮어 라는 푸념을
듣더니 타이레놀 10병을 보내왔네요..
대물려서 먹겠습니다...하하
@하테스 잊기는 텃음...
나를 밉상으로 볼때까지면....ㅋㅋㅋㅋ
삭제된 댓글 입니다.
답글 감사드려요.
궁이님도 첫 사랑 펼쳐 놓으시지요.^^
여선생님의 달그락 거리는 슬리퍼
소리만 들어도
심장에서 방망이질을 해댔을 거란
생각에
쯧쯧
소나기는 업어나 보았지만
길고 높고 깊은
월출산의 정기를 받았을
첫사랑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ㆍ
"소나기는 업어나 보았지만" 하하 맞습니다 맞고요.
밤늦도록 퇴고 하다가 조탁하듯 딱 맞은 글을
찾아서 연결하고 환희작약 하듯합니다.^^
물소나라 아침을 빛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자 선생님 짝사랑했단 말은 많이 들었는데...
여자 선생님을 한번도 겪어 보질 못해서 샘도 납니다 ㅎ
아하 그렇군요.
- 조병준의《따뜻한 슬픔》중에서 -
".. 그런 기다림의 시간을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것은 형벌의 시간이며 동시에 축복의 시간이다."
그때는 그랬지요~~~ ^^
선생님은 변소에도 안가는줄 알았던...... ㅎ
깡촌 학교로 부임한 여선생님 한분이
촌뜨기들의 혼을 쑥빼놓은 사건이었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그것은 다음 편으로 넘기겠습니다.
허연달님이시네요. 오늘 아침에도 본 낯달은 유명한
일본 엔카 가수 미소리 히바리가 곡마당 단장에게 맞고
하늘을 보니 허연낯달이 슬퍼서 울었답니다는 사연을 연상케 했어요.
괴테의 명언이 맘에들긴하지만
괴테도 뇌당김이 약해져서 미쳤으요 ㅎ
너무늦게 첫사랑 스토리는 안쳐줍니다 ^
조금만 기다리세요.
귀국하면 사방으로 싸돌아 다녀
기필코 늦은 사랑을 물어오겠습니다.
뇌당김이 약하다는 표현에 오래 머믐니다.
하테스도 뇌당김이 약해져서 교과서에 글 하나
오릴 수 있다면 만들 남은생 무슨 미련이 있겠습니까.
삭제된 댓글 입니다.
허걱! 그렇네요.
바로 맥을 짚어버리는 바람에 하테스 이마를 딱 쳤습니다.
"선생님 무쟈게 이쁘요이"라고 해야 했는데..ㅉ
칠판 앞...억울해서지요. 앞으로 라도
선녀 선생님 이중성에 속지 말자는 다짐입니다..^^
선생님 쓰리빠 무쟈게 이쁘요 이~~~^^
오메 고맙다^^....해주셔도 될텐디
어찌 그리 대못을 쾅~~~치셨당가요. 쌤의 자질 빵점!!
2학년 다운 고백이셨습니다^^
아버지 나들이옷 두드리던 리드미컬한 누나의 방망이 소리 장단삼아
유순한 노루처럼 어린 마음이 국화 밭에서 뛰어놀 나이 아닙니까요.
빈말이라도 강자갈 선생님처럼 “오메 고맙다.”한마디 내려 놓았더라면,
아이는 하늘의 무지개를 얻은 듯이 세상을 바라보면서, 험한 세파를
헤쳐 나가는데 선녀선생님을 바닥짐으로 간직하였을 것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세상에는 아버지가 두 분 계십니다. 나를 존재하게 해 주신
아버지와 세상의 이치와 삶의 지혜를 알려주신 사부님이시죠.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의 탄신일을 스승의 날로 정한 것에는
그토록 큰 의미를 상기하자는 의미일 것이다.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매를 맞으면, 집에 와서 무조건 또 맞아야 하는,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으면 안 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았지요.
그래서 일까. 선녀 선생님은 내 가슴 깊은곳에 ‘트라우마’라는
똬리를 틀고 떠날 줄을 모릅니다.
통찰력 깊으신 삼족오님께 감사드립니다.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
여위열기자용(女爲悅己者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