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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점:
김희선주장 : 두 아들 데리고 3남2녀의 자식이 있는데 시집 갔다(5남2녀)==========> 7명
김학규장군 : 아버지가 죽고 6남매(4남2녀)를 남겼다==========================> 6명
전봉애주장 : (번복전) 애를 하나 데리고 시집왔다.그리고 김학규를 낳았다.=======> ?명
◆위 말을 참고하면 김성범은 의성김씨에 남겨 두고(호적상?)
혼자 재가를 해서 3남2녀 + 1(김장군)===>4남2녀======>6명(안동김씨)
옛날 풍습으로 애를 데리고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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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9.17 ---------->전봉애 증언 번복함
왜!........ 여기서
오늘 전봉애씨는 자기남편(김일현)을 뜸금없이 갑자기 의성김씨로 둔갑 시키나요?
이게 무슨 씨나락 까먹는 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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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희선씨 너무하십니다! 글쓴이 쥬피터(jupiterbumb)
긴글이 될지 모르겠으나 김희선씨의 회견문에 대해 조목조목 되짚어 보기로 하겠다.
회견문을 보면 자신의 부친이 독립운동했다는 근거는 그어디에도 없다는것이다. 또한 자신이 독립운동가 후손이라고 말할수 있는 근거도 그어디에도 없다. 내용도 도대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인지 짚어보겠다.
①이 자리에 계신 김학규장군의 아들 김일진에 따르면 , 증조모 선우순이 재가할 당시 안동김씨 김기섭은 본처와의 사이에서 2남과 2녀를 두고 있었으며, 김학규 장군의 '규'자가 김기섭의 본처 소생인 인규와 석규가 사용하는 안동 김씨집안의 돌림자 '홀 규(圭)'가 아니라, 의성김씨에서 사용되는 '별이름 규(奎)자'라는 사실이 김학규가 의성김씨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첨부1 : 김학규장균 제적등본)
<김희선은 선우순씨가 두 아들을 데리고 3남2녀의 안동김씨 집안으로 시집 갔다고 했슴>
***김학규의 제적등본에 의성김씨로 되어 있는가?? 김학규의 아들이 의성김씨라고 했는데 김학규는 안동김씨 아들은 의성김씨인게 말이나 되는가??***
②김성범의 장녀 김일신이 생전 작성한 회고록에 따르면 1910년 12월 김성범의 일가 (김성범, 오병희, 김일선, 선우순)가 만주로 이동했을때 김학규가 안동김씨 형제들과 함께 잇지 않고 의성김씨 김성범을 따라 이동했다는 사실이 두 사람이 친형제간이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첨부2 : 김일신 회고록)
***김일신의 회고록은 믿을수 있고 백파자서전은 믿을수 없는것인가? 그럼 김학규가 회고록에 거짓말을 적어 놓았단 말인가? 김학규의 백파자서전은 그럼 뭘로 설명할수 있는가??***
③김성범의 아들 일선(一銑), 일련(一鍊), 일호(一鎬), 일건(一鍵), 일룡(아명 :일갑 '一岬')과 김학규의 아들 일진(一鎭)이 모두 의성 김씨의 돌림자 '일(一)'자를 사용하고 있으며 쇠금(金)변이 들어 간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김성범과 김학규가 친형제간이었으며, 그 아들들이 같은 집안의 4촌 형제간이라는 점을 증명합니다. (첨부3 : 의성김씨 족보)
④1931(소화6년). 10. 31자 조선일보의 기사에 따르면 "김일선은 국민부외교부장 김학규(金學奎)의 조카로서 소화오년이월에 국민부하야 동명학원의 교사로 잇든중…"이라고 하여 김성범의 장남 일선을 김학규 장군의 조카로 보도하고 있습니다.(첨부4 : 조선일보 신문 사본)
***여담으로 하자면 조선일보는 허위날조 신문이라고 하면서 조선일보 기사를 증거로 채택하고 있군요...
⑤김성범의 5남인 김일룡의 결혼식때 김학규장군과 그의 처 오광심, 아들 일진이 함께 찍은 가족사진과 김학규 장군의 장례식때 나이 어린 김학규의 아들 일진을 대신 김성범의 장남인 김얼선이 상주역할을 하면서 장례식장에서 오광심, 일진과 함께 찍은 사진등이 김학규 장군과 김성범의 자식들이 친족관계에 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첨부5 : 김일룡 결혼식 사진, 첨부6: 김학규 장례식 사진)
***사진속에 같이 있다고 김학규가 갑자기 친할아버지가 됩니까??***
⑥이 자리에 계신 한국광복군 제3지대 출신 김은석 옹에 따르면 1956~57년경 주화대표단(駐華代表團)으로 활동하던 중 김학규 장군의 비서격이었던 한독당 조직부차장 이시찬 선생이 김성범의 차남인 김일련을 소개하면서 "한국에서 돌아왔다, 서로 알고 지내라. 백파 김학규 장군의 조카다"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첨부7 : 김은석 옹의 공적조서)
***해방후에 독립운동했다니 정말 대단하신 분입니다.***
⑩의성김씨 족보에 김순옥의 사망시기가 1897년이고 김학규의 출생이 호적상 1900년으로 기재되어 있는 부분은 저도 정확히 알지 못하나 그 당시 족보든 호적이든 정확한 것이 있겠는가? 다만 김혁규의 자서전에 김학규가 장형인 김성범과 15년 터울로 나타나 있고 의성김씨 족보에 김성범이 고종임년(1882년)생이므로 김학규가 1897년 경에 출생하셨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김성범의 2녀 김일신의 회고록에 1910년 가족들이 만주로 이동할 당시 김학규가 13살이었다는 기록이 부분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불리한것은 모두가 의심의 눈으로 보고 있다. 족보, 호적 모두가 정확하지 않다는 가정으로 출발한다면 그럼 정확한 족보와 호적이 있는사람들은 뭐가 되나? 족보, 호적 만드는 사람들이 자기들 멋대로 조작해서 올리는가? 말도 안되는 소리 이다. 김일신이 몇년생 인가? 참으로 신기할뿐이다. 김학규가 13살적에 김일신은 많아야 4-5살정도일텐데 4-5살 아이의 기억은 믿고 족보 호적은 못믿겠다는 건가??***
III-2. 김일련이 독립군이라는 근거
①작은 아버지 일건의 증언
이 자리에 계신 작은 아버지 김일건에 따르면, 형님 김일련은 10대시절부터 만주 봉천 유하현 산원포에 최초로 정착하여 땅을 일구면서 독립운동가들의 부족한 식량을 해결해 주었고 독립군을 조직하고 훈련시켰던 아버지 김성범을 따라 다니면서 일을 도와드렸고, 1936년 아버지가 돌아 가시자 아버지 뒤를 이어 농사를 지으면서 계속해서 작은 아버지 김학규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고 합니다.
***일련은 1920년생이다. 일련은 학교도 안다니고 농사만 지었는가? 무슨 신화를 쓰는것도 아니고 오늘날로 치면 초등학교에 다닐 아이가 독립운동가들의 식량을 해결해 주었다니 그시절 독립운동가들은 피도 눈물도 없었던 사람들인가? 초등학생이 농사지은식량으로 연명을 했다면 이사람들을 독립운동하는 사람들?볼수 있는가? 그리고 초등학생이 얼마나 농사를 많이 지었으면 자기식구들도 아니고 독립운동하는 사람들식량까지 생산했다는건가? 그리고 김성범이 독립군조직하고 훈련시켰다면 당연히 독립유공자 반열에 올라야 하는데 왜 못올랐을까? 정말 미스테리 이다. ***
그리고 해방 후에도 형님은 한독당 특별당원으로 작은 아버지 김학규와 함께 활동했으며, 한국으로 들어오신 후에 일련 형님은 한독당의 특명으로 정보 수집차 상인을 가장하고 자주 중국땅을 내왕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김철수라는 분과 함께 중국 대련의 한 여관에서 투숙하던 중 형님 일행을 수상히 여긴 여관 종업원이 소련군에 밀고를 하여 체포되었고, 형님이 체포되던 당시에 남한의 거물급 간처블 체포했다며 시가행진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후 일련형님은 정치범이 되어 시베리아 땅의 형무소로 갔다고 합니다. 작은 아버지 김일건은 형님 김일련의 행방에 대해 김학규 작은 아버지에게 들었다고 합니다.
***언제는 비밀당원이라고 하더니 이젠 특별당원이군요.아버지가 왜 소련까지 갔는지 모른다고 할때는 언제고 이젠 아주 상세히도 알고 있군요. 가족들도 참 야박하군요 환갑이 된 조카에게 이런얘기를 그동안에 한번도 안해줬다니 기가찰 노릇 입니다.***
또한 한국전쟁 중에 포로로 잡혔다가 1954년 집으로 돌아온 김일건 작은아버지는 집에 도착하니까 어머니 오병희가 일련 형님이 베르호얀스크에서 보낸 엽서를 보여주셨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눈물을 글썽이시면서 형무소에 들어가면 나오기 힘들다며 형님의 엽서를 당신께서 가지고 계시다가 복자에게 주겠다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엽서에 독립운도의 근거가 남아 있나요? 제가 본바로는 그런말은 한줄도 없던데 말입니다. 김희선은 이엽서가 평택에 살때 자신에게 배달되었다고 했지 않습니까? 여러번 반송되어서 도장이 많이 찍혀있다고 거짓말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근데 수령자가 오병희군요. 당신의 할머니. 자신이 받아서 어머니가 죽을때까지 어머니에겐 보여주지 않았다고 했지 않습니까? 이건 어떻게 된겁니까?***
②김일련의 한독당 동지인 김은석옹의 증언
이 자리예 계신 김은석옹에 따르면, 1946~47년경에 해군대위 출신의 신某가 동북 주화대표단 총 반사처에 들어와서 활동을 하였는데 얼마후 병으로 사망하자 곧바로 김일련(당시 가명:김평우)이 주화대표단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병사한 신某씨의 임무를 대신하러 왔음을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김학규장군의 비서였던 조직부차장 이시찬선생은 김일련을 소개하면서 "한국에서 들어왔다. 서로 알고 지내라. 백파 김학규장군의 조카다."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해방후에 무슨 독립운동을 하셨다는겁니까? 그리고 가명은 오영일 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엽서에 발신인이 왜 오영일이냐고 하니깐 그것은 김일련의 가명이라고 했지 않습니까? 가명을 무척 많이 가지고 계셨나 보지요??***
그 후 김은석옹은 김일련이 서상욱이라는 사람과 함께 지령을 받고 봉천으로 왔고 무슨 임무인지는 모르나 그 임무를 다 마치고 귀국하던 중에 영구나 대련에서 잡혔으며, 소련 쪽으로 붙들려 갔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합니다.
***김철수는 누구고 서상욱은 누구 입니까? 위에서는 김철수하고 함께있다가 잡혔다고 해놓고선 여긴선 서상욱이라는 사람이 등장하는군요.???***
③김희선의 아버지 김일련에 대한 기억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으나, 제 아명이 복자(福者)로 된 것이 아버지와 관련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태어나던 1943년 아버지 김일련을 비롯하여 저희 가족이 살고 있던 만주 봉천의 동네 사람들이 일본 수사들과 헌병들에 의해 잡혀가 모진 고문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 당시 어머니 뱃속에 있던 저를 두고 동네사람들이 '뱃속에 있는 이 아이가 복(福)이 있으면 일련이와 동네 사람들이 풀려날 것이다'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가 태어나고 난 후 아버지와 동네 사람들이 풀려나자 '복이 있는 아이다'라 하여 복자(福子)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차라리 북한의 김일성 신화를 믿으라고 하는게 맞는말일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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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진이 찾아와 앞으로는 의성김씨요] 라는 말 한마디에 족보고 뭐고 필요 없음.
전 여사는 "최근 남편 김일현의 동창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김창우란 분이 찾아와 반갑게 맞았다"며 "이때 한분이 따라왔는데 '조선일보 기자인 오 선생'이라고 소개받았다"고 말했다.
전 여사는 "기자가 '김 장군이 어디 김씨냐'고 묻길래, 안동김씨라고 답했다"며 "내가 시어머니를 35년간 모시고 살았는데, 시어머니나 우리 양반(남편 김일현)도 그리 얘기하고, 호적에도 그렇길래 그런 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전 여사는 "그런데 이후 김일진이 찾아와서 '형수, 아버지는 의성김씨입니다'라고 했다"며 "난 안동김씨인 줄 알았는데, 이제 와선 온 친척들이 '그게 아니고 의성김씨니까 그리 알라' 해서 그렇구나, 우리가 잘못 알았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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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조선 "인터뷰 이후 김희선이 전봉애여사 불러 식사"
이같은 증언은 당초 전 여사가 월간조선 인터뷰 때 밝혔다는 내용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월간조선은 16일 전봉애 여사의 증언을 인용, △열린우리당 김희선 의원의 부친 고(故) 김일련(金一鍊) 씨는 독립군이 아니라 일제하 만주국 경찰이었다 △김희선 의원은 김학규 장군과 족보상 남남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었다.
해당 기사를 쓴 월간조선 오동룡 기자는 17일 동아닷컴과의 전화 통화에서 "지난 9월 2일경 전 여사를 인터뷰했는데, 일주일쯤 뒤인 9월 10일경 김희선 의원이 전 여사와 전 여사의 딸을 초청해 식사를 했다"며 "이날 곧바로 전 여사의 딸이 전화를 해와 '인터뷰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며 비보도를 요청해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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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김희선이 치킨 사줬나??
아뇨 보신탕
나 의성김가인데..저런년은 울 족보에 없습니다..
끝까지 버팅기네 아주 꽨씸한욘
ㅎㅎㅎㅎㅎㅎㅎ 웃긴다용
1967년 9월21일 조선일보에 김장군의 사회장 부고문에 안동김씨로 되어 있던데.....그럼 국립묘지의 묘비에 안동김씨에서 의성김씨로? 엥? 모야!
미친+ 기막힌+ 주제에 무슨 과거를 청산한다고 늙은할망구가 우리의 박정희대통령을...
어찌하야..기자 회견을 구케귀빈식당?....구케 에서 한말은 귀책사유?...눈가리고 아웅하는 꼴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