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워할때 미워 하더라도 진실은 거짓일수 없다 🟠🟢
“한강을 보면서 전두환 대통령을 그리워한다”
서울 시민들은 물론이고,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
조차 한강의 경관에 찬탄을 금치못하는것을 볼수가 있다.
아름다운 한강공원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 중에서 “이게 누구의 작품이지?” 하고 생각하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밝힌다. 이 작품은 바로 “전두환 대통령의 역작이다!”
경부고속도로 건설공사 현장에 드러누워 훼방 놓고도 완공되고 나자 먼저 고속도로
를 질주했던 김대중 김영삼 등 다 열거하기도 싫은 무지몽매한 자들이 많지만, 그들도 한강개발은 긍정적이었다.
1981년 2월 2일 전두환 대통령은 레이건과 정상회담을 했다.
"레이건 대통령 각하, 저는
두 가지 목적으로 각하를 만나러 왔습니다.
하나는 각하의 당선을 축하하는 일이고, 둘째는 각하에게 도움을 드리려는 것입니다."
한국 대통령이 손을 벌리지 않고 도와주겠다? 동행한 각료들까지도 눈을 크게
뜨고 의아해 했다.
"각하, 캘리포니아가 연간 GNP가 얼마인지 아십니까?"
레이건 대통령은 대답하지 않았다.
"800억 달러입니다. 한국의 GNP는 600억 달러입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국가가 이렇게 작아? 모두가 놀랐다.
"한국은 그 중에 무려 6%를 떼어 공산주의와 맞서 국방비로 쓰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경제가 어렵습니다. 한국이 무너지면 각하의 국방전략은 물론이고 자유진영이 무너지지 않겠습니까?
일본의 GNP는 1조1,600억, 한국의 20배입니다.
그런데도 국방비는 GNP의 0.09%만 쓰고 있어서 안보의 무임승차입니다.
나는 미국의 돈을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일본이 한국에 돈을 지원토록 도와주시면 그 돈으로 각하의 국방정책도 강화하고 미국에서 전투기와 탱크도 살려고 합니다."
결국, 전두환 대통령은 안보차관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일본으로 부터 40억 달러를 얻어냈다.
그 중 10억 달러 (1.3조)를
뚝 떼어 냄새 진동하는 시궁창 물을 정화시켜 오늘의 아름 다운 한강 앙상블을 조각하고 손수 진두지휘했다.
그래서 한강을 보면 전두환 대통령이 그리워진다.
그는 42%의 물가도 2.3%로 낮췄다.
천재적 발상과 종교적
신념 이었다.
개미허리 중산층을 맹꽁이배처럼 불렸다. 중소기업 육성은 그의 종교였다.
기술자를 합숙시켜 가면서 한국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전자식 교환기를 개발하여 통신 일등국도 만들었다.
그것이 우리나라가 오늘 세계1등 IT와 스마트폰의 기초가 되었다. 레이건보다 10년 앞서 IT, 반도체, 컴퓨터 산업을 진두지휘했다.
나라 발전의 큰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1980년에 88올림픽 유치권을 따냈고, 그것이 2002월드컵의 바탕이 되었다.
그의 참모들에게도 너무나 무모해 보였다고 한다.
올림픽 사상 처음, 동서가 다 참가하는 완전한 올림픽을 치렀다. 기업을 국제시장으로 내몰아서 기업체질을 강화시켰다.
TV 시장, 핸드폰 시장, 반도체 시장을 우리가 장악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야간통행금지도 과감하게 없앴다.
교복과 두발도 자유화, 심지어는 자유를 억압한다며 연좌제도 없앴다.
누구도 찬성하지 않은 저돌적 혁명,창의를 꽃피게하는 자유
의 토양을 과감하게가꾸었다.
원전 연료를 국산화하고 한국형 원자로를 개발한 것은 무용담의 대상이다. 주부들을 위해서 코끼리 밥솥을능가하
는 밥솥을 만들게 했고,
야간에도 여자 혼자서 시내를 활보할수있는 치안을 확보
했고, 기업들에게 세계에서 통하는 1등제품을 만들 것을 강조하였는데, 전자제품, 자동차, 세계시장의 50%를 점령한 손톱깎이, 중절모자 등도 그 일환이었다.
예술의전당을 기획하여 만들고, 국립미술관,국립중앙 도서관 등 현존하는 문화공간 모두가 그의 작품이다.
평생 총칼만 알았던 그의 머리에서 어찌 그런 구상이 나왔는지 그저감탄할 뿐이다.
전두환은 자신의 부족한 머리를 인정하고 과감하게
꼭 필요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선임하여 배치하였고, 엘리트들과 토의를 하면서 토의가 뽑아낸 지혜로 국가를 지휘했기 때문일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의 통큰 리더십 때문에 호남 출신 장세동을 비롯해 한번 전두환 대통령의 사람이 된 사람들은 끝까지 충성을 다했다.
미국 육사 교과서로 공부한 최초의 엘리트인 그는 독서와 학습과 사색을 즐겨했다.
이 세 가지 습성이 있었기에 그는 잘 할수가 있었다.
전두환이 쌓아놨던 우리나라 역사적 과업과 삶의 수준이 그 후부터는 계속 발전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대학교수를 비롯한지식인들
은 물론 일반서민들까지 습관처럼 한결같이 말하는 내용이 있다.
"단군조선 이래로 우리나라는 단 한번도 '태평성대'라는게 없었다.
굳이 '태평성대'를 꼽으라고 하면, 전두환시대를 꼽을수 밖에 없다.
그때는 경제, 안보, 치안, 스포츠, 문화, 사회적 인프라, 물가 등 모든 부문이안정되고 발전되어 그때가 사람살기 가장 좋았다."고 많은 사람들이 입들을 모은다.
그런데도 몽매한 사람들의 반대로 서거 후 대한민국 어디에도 분향소 하나 없고, 국립묘지 안장은 커녕 '유골함'을 이순자 여사가 집에 모시고 있다.
너무 심하기도 하지만 기가 찰 일이 아닐수 없다.
5.18진압이 원인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한번 쯤은 생각해볼 문제가 아닐까?
대낮에 무기고 탈취하여
나라를 향해 총을 쏘는 전쟁상황에서 나라는 그냥 방치해야만 했을까?
나라와 국민을 지켜내야 했을까?
판단은 각자 알아서 하길 바라고, 언젠가 역사의 바른 판단이 있길 기대하면서, 다시 한번 전두환 대통령의 명복을 빈다.❤️~~~
豫備役 陸軍少將 崔景朝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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