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은 한국 역사에서 생소한 종교였다. 그러나 역사적 흔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통일신라 시대의 원성왕(8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괘릉 옆에 무인석상이 서 있다. 무인석상은 곱슬머리와 곱슬 수염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머리에는 무슬림의 전통 복장인 터번을 쓰고 있다. 그 모습은 중동이나 중앙아시아인으로 추정할 수 있다. 신라의 스님 혜초가 727년에 쓴 왕오천축국전에 의하면,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를 방문한 기록을 볼 수 있다.
이를 토대로 볼 때 통일신라 시대에 이미 중동 사람이나 중앙아시아인들과 교류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고려 시대에도 수도인 개경(오늘날의 개성)에 이슬람 사원 격인 예궁(禮宮)이 있었으며, 정기적으로 이슬람 예배가 진행되었다.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역법에는 이슬람력(Islamic calendar)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또한 조선 세조 때에는 투르크-페르시아계 무슬림 거주 지역에서 수출하는 도자기 안료인 회청이 수입되었다. 그러나 이슬람은 한국 사회에 정착하지 못하고, 일부는 한국 문화 속에 동화되었다.
이슬람이 다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 약 2만 명의 산업연수생이 한국에 들어오면서부터다. 그 때부터 무슬림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현재 한국에는 무슬림이 약 25만 명, 비공식적으로는 약 40만 명에 달한다. 이제 이슬람은 한국에서도 중요한 종교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미래학자 최윤식 박사는 2050년에는 한국의 이슬람 인구가 300-400만 명이 될 것이며, 이슬람은 불교, 천주교에 이어서 3번째 큰 종교가 되고 기독교는 그 뒤를 이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따라서 이제는 기독교인들이 이슬람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과거 중동이 비잔틴 기독교 제국이었지만 지금은 이슬람 국가들로 바뀌었고, 종교개혁이 일어났던 유럽이 이슬람화되어가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이제 기독교인들은 이슬람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1. 타하리프(Tahrif): 성경은 변질되었다
이슬람에는 성경이 변질되었다는 교리가 있다. 구약은 유대인들에 의하여, 신약은 기독교인들로 인하여 변질되었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변질된 성경을 읽어서는 안 되고, 변질된 내용 가운데 꼭 필요한 부분은 꾸란에 올바르게 정리되어 기록되어 있다고 가르친다.
성경이 변질되었다고 주장하는 핵심을 세 가지로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꾸란에는 무함마드라는 예언자가 올 것이라고 예수님이 예언했는데, 지금 성경에는 그 내용이 없다. 둘째, 꾸란에는 예수님에게 신성이 없다고 가르치는데, 성경에는 예수님의 신성이 기록되어 있다. 셋째, 꾸란에는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죽었다가 부활했다는 내용이 없는데, 성경에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사건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성경은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성경의 원본에는 꾸란과 일치되는 내용들이 있었지만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이 타락하여 그 내용을 변질시켰기 때문에, 알라께서 하늘에 있는 원본인 꾸란을 무함마드를 통하여 직접 계시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슬람에서 주장하듯이 정말 성경은 변질되었을까? 만일 성경이 변질되었다면 성경이 변질되었다는 내용이 꾸란에 있어야 한다. 꾸란에는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이 타락했다는 기록은 있어도, 성경이 변질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꾸란에는 계시에 의심이 생기면 ‘성서의 백성’들에게 물어 보라고 말하고 있다(꾸란 10:94). 꾸란에는 꾸란 이전에 계시된 모세와 예언자들에게 내린 율법을 믿으라고 기록되어 있다. 무함마드 이전에 성경이 변질되었다는 내용이 꾸란에 없는데, 언제 변질되었다는 것일까?
성경은 변질되지 않았다. 구약성경은 A.D. 90년에 팔레스타인의 얌니아 종교회의를 통하여 확정되었다고 하지만, 이미 B.C. 400년경 말라기서가 기록된 이후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되었으며 수백 년 동안 유대인들에 의하여 사용되었다. 무엇보다도 구약의 권위를 예수님께서 인정하셨다(마 4:4; 막 14:27). 기독교에서도 구약 39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여 사용했다. 신약성경은 최종적으로 A.D. 397년 기독교 3차 카르타고 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즉, 무함마드가 태어나기 200여 년 전까지, 성경은 이미 오늘날 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경전으로 확정되어 사용되고 있었다. 1947년 이스라엘의 사해 근처에 있는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사본은 늦어도 A.D. 1세기에 만들어진 것임에도, 오늘날과 동일한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꾸란은 무슬림들이 성경을 믿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믿는 자들이여 알라와 선지자 그리고 선지자에게 계시된 성서와 너희 이전에 계시된 성서를 믿으라 했거늘 알라와 천사들과 성서들과 선지자들과 내세를 부정하는 자 있다면 그는 크게 방황하리라(꾸란 4: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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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도 이슬람 사원이 세워져 있다. 이슬람 사원에서는 사막을 지나는 나그네가 예배할 수 있다. ⓒFIM 국제선교회 |
2. 타끼야(Taqiyya): 위장 혹은 기만전략
이슬람에는 많은 교파가 존재한다. 그러나 크게 두 교파가 있는데 수니파와 시아파이다. 본래 이 교리는 시아파에서 “기만”을 의미하는 이함(Iham)이라는 교리인데, 수니파에서도 ‘타끼야’라는 교리로 받아들였다. 타끼야라는 아랍어에는 거짓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슬람의 도덕적 딜레마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것은 거짓말이 허용된다는 것이다.
“너희의 맹세 속에 비의도적인 것에 대하여는 책망하시지 아니하나 너희 심중에 있는 의도적 맹세는 책망하시느니라 알라는 관용과 은혜로 충만하심이라(꾸란 2:225)” 이 내용은 이슬람 초창기에 이슬람을 반대하는 메카의 쿠라시쉬(Quraish) 부족에게 잡힌 무슬림이, 이슬람을 믿지 않겠다고 거짓말을 하고 풀려나서 무함마드에게 와서 고백했을 때 받은 계시이다. 무함마드의 언행록(Hadith)에 의하면 세 가지의 경우에는 거짓말이 허용된다. 첫째,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하는 거짓말, 둘째, 평화 또는 화해에 영향을 끼치기 위하여 하는 거짓말, 셋째, 여성을 설득하기 위하여 하는 거짓말이다. 윌리엄 와그너가 지은 ‘이슬람 세계 변화 전략’은 이슬람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두 가지 거짓말을 추가한다. 여행 중에 하는 거짓말, 즉 무함마드 당시 모든 여행은 상업적인 여행이었다. 따라서 아랍 상인들이 상업을 위하여 하는 거짓말, 마지막으로 누군가를 이슬람으로 개종시키기 위하여 하는 거짓말이 포함되어 있다.
3. 나스크(Naskh): 나중에 받은 계시에 의하여 먼저 받은 계시는 취소되었다
꾸란은 무함마드가 A.D. 610년부터 죽기까지 23년 동안 받았다는 내용이다. 꾸란 안에 같은 주제에 대하여 서로 다른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면 꾸란 2장 240절에 의하면 과부는 1년 이후에 재혼이 가능하다. 그런데 같은 꾸란에 남편이 죽으면 4개월 10일 이후에 재혼이 가능하다는 내용도 있다. “너희 중에 누가 죽어서 과부를 남기면 과부들은 재혼하기 전에 4개월 10일을 기다려야 한다. 그들이 이 정해진 기간을 지키면 그들이 스스로 선택한 것을 너희는 비난하지 말 것이다(꾸란 2:234).” 그렇다면 남편이 죽고 언제 재혼이 가능하가? 이것을 보완하기 위하여 나스크 교리가 생겼다. 꾸란에 기록된 계시는 바뀔 수 있으며, 계시가 바뀔 때는 나중에 받은 계시가 먼저 받은 계시를 취소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먼저 받은 계시는 이슬람 신학에 의하면 취소된 구절이 된다. 이에 대하여 꾸란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만일 우리(알라)가 원하였다면 우리가 너에게 계시한 것을 없앨 수 있다(꾸란 17:86).”, “우리가 어느 한 구절을 다른 구절로 대체할 때 알라는 그가 보내는 것을 더 잘 알고 있다(꾸란 16:101).”
그래서 꾸란은 메카에서 12년 동안 받은 메카 계시, 그 이후에 메디나에서 10년 동안 받은 메디나 계시로 나뉜다. 메카에서는 무함마드가 무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서 “종교에는 강요가 없나니(꾸란 2:256)” 종교는 강요되어서는 안 되고 자유가 보장되었다. 그런데 이 내용이 메디나로 오면서 바뀌게 된다. 메디나로 온 무함마드는 2년 7개월이 지난 후부터는 칼을 들게 된다. 그리고 메카로 가는 대상들을 공격하기 시작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종교에 강요가 없다던 ‘평화의 계시’는 ‘칼의 계시’로 바뀌었다.
“이교도를 발견하는 대로 살해하라(꾸란 9:5)”, “불신자를 만나거든 목을 쳐라(꾸란 8:12)” 따라서 평화에 관한 계시는 나중에 받은 칼의 계시에 의하여 취소되는 것이다. 유대인과 기독교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메카에서는 종교의 다름을 인정하였고, 평화를 이루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무슬림은 같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주장했다(꾸란 29:46). 그러나 메디나에 오면서 다음과 같은 구절로 바뀐다.
“알라와 내세를 믿지 아니하며 알라와 메신저가 금기한 것을 지키지 아니하고 진리의 종교를 따르지 아니한 자들에게 비록 그들이 성서의 백성이라고 하더라도 항복하여 지즈야를 지불할 때까지 지하드를 하라 그들이 스스로 저주스러움을 느끼리라(꾸란 9:29)”
“소동이 없어질 때까지 그리고 종교가 알라에게로 귀의할 때까지 그들과 싸움을 계속하라(꾸란 8:39)” 이 구절들에 의하여 기독교인과 유대인에 대한 태도가 바뀐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은 바뀌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 진리는 바뀌지 않기 때문에 진리인 것이다. 그런데 이슬람의 진리인 꾸란의 계시는 상황에 따라 계속 바뀌어 갔다.
이슬람 초기에 무함마드가 사탄의 계시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것은 메카의 쿠라이시 부족과 타협하기 위하여, 메카의 부족신이였던 알라에게 세 명의 딸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계시였다. 그러나 그 계시가 돌연 취소되었다. 무함마드 자신이 사탄의 계시를 받았기에 알라에게 혼이 나고 그 계시가 취소되었다는 것이다. 이 내용을 가지고 인도계 영국 작가였던 살만 루시디(Salman Rushidy)가 ‘악마의 시(Satanic Verses)’라는 책을 썼는데, 그로 인하여 무슬림들에게 20년 이상 살해의 위협 속에 지내게 되었다. 또 그 책을 번역한 사람들이 일본과 이탈리아에서 암살을 당하였다.
유해석 선교사
FIM국제선교회 대표
‘우리 곁에 다가온 이슬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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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유익한 정보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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