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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종 성**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차 례 1. 글머리
2. 헝가리의 창세신화 및 민족기원신화
2.1. 창세신화
2.2. 민족기원신화
3. 헝가리 신환의 형성과 재편
3.1. 훈족과 머저르 족의 신화적 설정과 의미
3.2. 니므릇과 민족의 원류, 그리고 중세보편종교
4. 결언에 대신하여
<논문개요>
헝가리의 창세신화와 민족기원 신화는 머고르Magor라는 존재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 헝가리 민족의 신화는 신화사에 있어 관심의 대상인 ‘신화의 형성과 재편 양상’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본고에서는 헝가리 민족이 유럽세계에 정착하고 국가를 성립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주변 국가들과의 충돌을 극복하는 방편으로 선택한 중세보편종교의 수용과 신화의 재편 양상에 관하여 살폈다. 고대 앗시리아 지역의 니므롯(Nimrod) 신화와 헝가리 민족기원신화가 성서를 매개로 신화를 재편한 양상을 검토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민족기원을 훈 족과 관련시키지 않으면서 신화에서는 특별하게 훈 족과의 관련성을 강조하는 양상과 원인에 관하여 검토했다. 동방의 이민족이 유럽세계에 진출하여 국가를 성립시키고 지속시켜온 이면에 주변 민족들과의 관계가 중요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중세보편종교인 기독교의 磁場 안으로 자발적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판단된다. 기독교를 수용하면서 중세보편종교를 국교로 삼은 유럽의 다른 국가와 이질적이지 않은 점을 분명히 하면서, 한편으로 헝가리 민족의 오랜 역사적 경험을 투영하여 야벳과 니므롯의 혈통과 성격을 변화시켜 개별성을 드러내는 방식을 신화를 통해 구체화한 것으로 보인다. 훈 족과의 친연성을 유독 강조하는 신화적 발상은 주변 국가들과 자국 내의 귀족 세력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방편에 기인하는 것일 수 있고, 한편으로 훈 족과 머저르 족이 혈통적으로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역사적 사실을 반영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동방의 異民族으로서 유럽에 정착하여 생존을 지속하기 위하여 기독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성서에 등장하는 니므롯을 자신들의 조상으로 견인한 것은 이와 같은 복합적인 까닭이 있어서 그랬다고 생각된다. 헝가리의 오랜 역사적 경험을 근거로 판단하면 이민족의 정착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하나의 방편이 신화의 양상으로 나타났다고 판단되는 것이다.
<주제어> : 창세신화, 민족기원신화, 형성, 재편, 중세보편종교, 성서
1. 글머리
세계 어느 민족이든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인간 세상과 자기네 민족의 기원에 관한 근원적인 물음을 갖고 있으며 創世神話나 民族起源神話 따위와 같은 방식으로 그 해답을 마련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신화는 그저 신성하기만 하면 될 따름이어서 개별 민족이나 집단사이에 특별한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편에 대응하여 논쟁을 일삼는 것은 부질없다. 創世神話나 民族起源神話는 막연하게 신성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민족의 역사적 경험이나 자연환경, 경제적 기반 따위를 놀라울 정도로 흡착시켜 형성된다. 그런 양상들을 적극적으로 해명하여 신화에 접근하는 관점이 타당하다는 사실은 이론의 여지가 없어 신화의 다각적인 연구의 중요한 축을 담당한다.
이 글은 동유럽의 민족들 가운데 헝가리의 창세신화와 민족기원신화를 신화 형성 혹은 재편의 양상과 요인을 고찰함으로써 신화의 형성과 재편에 관한 하나의 사례를 보이고자 한다. 헝가리 신화는 이러한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헝가리 신화의 형성 혹은 재편의 과정에 중세보편종교의 영향과 주변 민족과의 관계, 헝가리 민족의 이동과 정착의 역사적 경험 따위가 복합적으로 관여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창세신화와 민족기원신화가 별개로 전승되면서 한편으로 연계되기도 하여 창세신화를 민족기원신화와 함께 다룰 수 있는 대표적 사례에 해당한다.
이 글은 헝가리 신화의 신화소에 대한 해석을 가급적 배제하고 신화의 재편 과정에서 짚어볼 수 있는 전승 민족의 역사적 경험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2. 헝가리의 창세신화 및 민족기원신화
2.1. 創世神話
가. 天地創造의 由來
위대한 천상의 아버지가 금관을 쓰고 앉아 있고, 그 옆에 위대한 천상의 어머니가 앉아 있었다. 그들 앞에 아름다운 금빛 곱슬머리의 아들, 太陽神 머고르가 서 있었다. 소년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언제 인간 세상을 창조하나요?” 아버지 신은 심사숙고 한 뒤, 마침내 결정을 내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아들아, 인간들의 세상을 창조하고, 너의 아들들이 그 곳에 살도록 하자꾸나”라고. “어떻게 세상을 창조하나요?”라는 아들의 물음에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영원의 푸른 바다 깊은 곳에 있는 잠자는 눈(씨)이 있단다. 바다로 들어가 그 눈을 깨워 세상을 창조하자.”
아들은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금빛 새, 금빛 오리로 변했다. 그리고는 끝없는 바다를 향해 날아 내려갔다. 바다로 들어가자 숨이 막혀 바닥까지 내려 갈 수가 없었다. 다시 물 위로 올라온 그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온 힘을 다하여 잠수하여 바다 바닥에, 어둠 속에 있는 잠자는 눈을 밖으로 가지고 나왔다. 이 눈(씨)가 깨어나면서 생명체가 태어나게 되었다.
나. 은하수신화
여전히 훈의 제국은 강성했지만 고트족과 비잔틴과 계속 전쟁을 하고 있었다. 비잔틴의 명문가 후손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처버는 소모된 카르파티아 분지를 버리고 동쪽 민족과 연계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새 거주지를 찾기 위해 힘을 키운 다음, 어틸러의 검이 신비한 힘을 회복하도록 순환하는 바다의 물결에 검을 씻었다. 그는 3000명의 군사를 외르메드주르(Őrmedzur)에게 맡기고, 국경을 지키게 했다. 그들은 더머첵(Damacsek) 神에게 경배하고, 둘 중의 하나에게 위험이 닥치면 곧 돌아와 도울 수 있도록 자연의 힘이 알려주도록 청하였다. 처버 일행이 카르파티아 산맥을 넘어서기도 전에 쎄켈족의 이웃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자 땅이 흔들리고, 소나무 꼭대기가 흔들려서 처버에게 위험한 일이 생겼음을 알렸다. 그들은 곧 다시 되돌아가서 민족을 구했다. 1 년 뒤 계곡에서 거주하는 민족이 침공해 오자, 강물이 소식을 전해주었다. 3년 뒤 세켈 족이 다시 적에게 포위 당했다. 처버 일행은 이 때 그리스에 있었기 때문에, 소식을 전할 방법이 없어 애를 태우고 있었다. 그러나 폭풍의 날개가 고향 소식을 전해 주는 것을 감지한 처버는 고향으로 돌아와 민족을 구했다.
처버가 자기 백성과 어머니를 데리고 스키티아로 가게 되었을 때, 훈의 귀족들은 그가 순수한 훈의 혈통이 아니고 심지어는 다른 민족의 여인과 결혼했다고 그를 무시하였다. 그러나 처버 일족은 스키티아의 종족이 되었고 아르파드 왕가의 헝가리로 돌아가고자 희망하는 업버(Aba)족을 이루게 되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트랜실바니아 지역은 러본(Rabon)의 지배를 받는 새 왕국이 건설되었다. 이민족이 침략해 오자 죽은 쎄켈의 별이 옛 맹세를 기억하고 불타는 빛으로 지상에서 천상으로 올라가 처버에게 알려 주었다. 침공이 거의 성공하기 직전 처버가 하늘에서 내려와 민족을 도와 승리하게 해 주었고, 과거에 민족을 도왔던 용사들도 함께 돌아와 싸워 주었다. 그들은 눈이 덮인 하늘에 솟아 있는 산을 타고 조용한 정령의 모습으로 줄지어 내려 왔다. 적은 이것을 보고 혼비백산하여 흩어지고 말았다. 이들은 아직도 하늘에 무리 지어 남아 있는데, 그들의 말발굽이 빛나는 모습이 한 밤중에 보이는 은하수이다. 이 우유 빛 줄무늬는 처버와 용사들의 영혼이 타고 있는 말발굽이 빛나서 나타나는 무늬이다.
대지를 만들어 내는 요소인 흙을 전달하는 기능을 가진 존재(the earth bringer)의 양상은 중앙아시아 여러 민족들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된다. 야쿠트 族이나 알타이의 신화에 등장하는 제비(swallow) 형상의 새와, 보굴(Vogul) 族의 신화에서 입 속에 땅의 일부를 감추고 있는 물새(water fowl) 따위는 최초에 대지를 창조하는 데에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예니세이 오스티악 族의 신화에서도 역시 바다 속에 있는 땅의 한 조각 곧 흙을 백조(swan)나 여타의 물새가 가져와서 창조신에게 전달하여 대지를 창조하게 했다는 내용이 전승된다. 같은 語族에 속하는 핀-우그르系의 민족인 핀란드의 ‘칼레발라’ 서사시의 서두에도 흰뺨오리의 알에서부터 세계가 창조되고 물의 어머니로부터 배이네뫼이넨이 태어나 농경신(경작신)인 샴프샤와 더불어 천지만물의 생장을 주관하는 내용이 노래로 불려진다. 태초에 이 세상에는 물뿐이었는데, 석가모니와 마이다르, 그리고 에세게 보르항 셋이 앙가트 새를 시켜서 땅을 만들고, 다시 그 흙으로 남녀 두 사람을 만들었다고 전하는 몽골의 창세신화에서도 ‘앙가트’라고 하는 새가 등장한다. 이렇게 보면, 헝가리의 창세신화는 의심의 여지없이 중앙아시아 창세신화의 영역 내에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천상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등장하여 창세신화에 이미 부모의 혈통을 구체화한 점이 특별한데, 적어도 창세신화가 후대에 형성된 것임을 알게 하는 표지이다. 일반적으로 창세신화에는 창세의 신에 부모의 혈통을 구체화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혈통이 확정되고 구체화되는 것은 적어도 고대의 국가 성립 시기의 산물로 파악할 수 있어 헝가리의 창세신화가 후대적 변천을 이미 경험한 단계의 양상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또한 천상의 아버지가 금관을 쓰고 있다고 하는 설정이 특별하다.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그 하나는 신화의 후대적 형성의 표지로 이해하여 헝가리 민족의 특별한 역사적 경험과 연계된 양상으로 판단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헝가리 민족의 계통과 관련하여 자기네 민족의 개별적 특징을 신화 속에 포용한 결과로 이해하는 것이다.
헝가리에서는 ‘성 이슈트반 왕관(A sazent korona)’이란 것이 있어 신성의 대상이 되고 있다. 기독교 왕국을 국가 체제의 근간으로 삼아 헝가리 왕국의 기반을 다져놓은 이스튜반 1세가 교황 실베스터 2세로부터 즉위식 때 받은 왕관이 그것인데, 그 眞僞 여부를 떠나 헝가리 국민들의 신성 대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천상의 아버지가 쓰고 있는 금관이, 기독교 국가 건설을 확립한 이슈트반 1세의 왕관과 이어질 때 헝가리 민족의 창세신화는 카톨릭 신앙과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으며, 민족기원 신화가 성서에서 가져온 것으로 시작하는 양상과도 자연스럽게 부합된다.
한편으로 헝가리 민족이 훈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훈족이 스키타이 문화의 자장 내에 있었던 민족이라면 저 유명한 스키타이 문화의 금관이 천상의 아버지가 쓰고 있는 금관과 이어질 수 있다. 헝가리 민족의 자랑스런 문화적 전통과 이전의 강력한 세력에 대한 자긍심이 어우러져 창세의 至高神이 동일한 모티브의 금관을 지닌 신으로 설정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이어 논의할 민족기원 신화에서 확인되듯이 헝가리 민족의 기원은 훈족과 분리되어 나타날 수 없고, 훈족 또한 스키타이 문화를 짊어지고 서유럽으로 이동한 민족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헝가리 창세신화의 금관은 두 가지 관점을 포괄한 이중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된다. 한편으로 이전의 문화적 전통을 자랑스럽게 드러내면서, 다른 한편으로 카톨릭 국가로서 유럽 세계에 터전을 삼은 역사적 내력을 함께 자랑하기 위하여 스키타이를 거쳐 훈족의 어틸러 왕국에 이어진 금관의 찬란한 전통이 카톨릭 국가 확립의 징표로 신성시되는 이슈트반 1세의 왕관에까지 이어져 창세신의 형상을 이런 방식으로 설정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헝가리 내에서 이슈트반 1세의 왕관이 신성시되는 이면에 이러한 이중의 함의가 介在해 있다고 판단된다.
헝가리 창세신화는 민족기원신화와 연계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요인을 지니고 있다. 천상 父神인 창세신의 명을 받아 인간세상을 창조해낸 태양신 머고르는 곧 헝가리 민족기원 신화의 머고르, 곧 머저르 족의 시조가 되기 때문에 헝가리 민족의 기원이 창세신화와 맞물려 있음이 뚜렷하게 확인되는 것이다. 따라서 민족기원신화를 창세신화와 함께 다루어야 헝가리 신화의 특징이 어느 정도 드러날 것으로 생각한다.
창세신화와 민족 기원신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사례는 두 가지 사례에서 확인된다. 우선은 신화의 전승 자체가 해당 민족의 공식적인 경로, 곧 역사 기술로도 전승되는 동시에 口碑傳承되기도 하는 경우가 아니라 단지 구비전승에 의해서, 특히 민간신앙과 관련한 신화 전승의 경로를 통해서 이루어질 때 흔히 나타난다고 생각된다. 다른 하나는 이른 시기에 온전한 국가를 형성하지 못한 민족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파악된다. 고대국가 형성의 역사적 경험을 가지지 못한 민족들이 천지만물의 창조에 이어 자기네 민족이 시작되었다고 하는 설정을 통하여 민족 기원의 오랜 내력을 부각시키는 양상이 우선 확인되고, 다음으로 고대국가 형성의 경험이 있으나 그 시기가 주변 민족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늦어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역사 기술을 통하여 공식화하는 양상이 확인된다. 전자는 주로 중국 내 소수민족들에게서 쉽게 확인되며, 후자는 일본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헝가리는 창세신화와 민족기원신화가 하나의 신화로 전승되지 않고 개별적인 전승을 지속시키면서 연계되어 있는 사례에 해당하여 창세신화와 민족기원신화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은하수 신화>의 영웅인 처버는 어틸러의 막내아들로서, 이름 자체가 목동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는 양 따위의 동물을 지키는 목동이 아니라, 헝가리 민족을 지키는 목동으로서 지위를 갖는데, 은하수에 관한 신화를 살펴보면 처버가 어떻게 헝가리 민족을 지키는 목동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453년 어틸러가 죽자 맏아들 얼러다르(Aladár)가 왕위를 계승하였으나 게르만의 폭동으로 살해된다. 그의 동생 덴게직(Dengezik)이 반란을 진압하고 드네프르 강과 드니페르 강 사이의 지역을 다스리게 되었다고 하는데, 처버의 영웅적 행위는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통상 한국을 비롯하여 동북아시아에서는 은하수가 하늘을 가로질러 흐르는 천상의 시내로 형상화되어 있고, 견우와 직녀의 유명한 전설이 덧보태져 다양한 전승양상을 보인다. 그런데 헝가리의 은하수는 헝가리 민족을 수호하는 처버 王子와 그의 勇士들이 타고 다니는 말의 발굽이 빛나는 것이라 설정했으니 전형적인 騎馬民族의 특징을 간직하고 있다고 하겠다. 한국과 중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은하수의 유래는 태초의 시절이 아니라 후대의 특별한 사연을 간직한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는데, 헝가리 역시 처버 왕자라고 하는 인물과 그의 용사들의 행적과 역할에 이어져 있다. 한국과 중국의 경우에는 은하수의 유래가 대체로 역사적으로 확인되기 어려운 인물들, 곧 불특정 인물이거나 전설적 인물들과 연계되어 있으나 헝거리의 경우는 신화의 문면에서 보면 역사적 인물이 분명한 처버 왕자와 관련되어 있다. 흔히 어틸러 왕의 아들로 알려진 처버가 헝가리 민족의 수호신으로 그 역할을 지속시키면서 은하수가 그 증거물 노릇을 하고 있으니 역사적 인물과 별자리의 유래가 결합되어 그 진실성이 강화되는 효과가 있다.
처버 왕자에게 위험을 알려주는 매개는 땅과 나무의 搖動, 강물, 폭풍과 같은 자연의 힘이다. <그림1, 2>를 참조하면 이들 신화에 땅과 강, 나무, 폭풍과 같은 자연적 요소가 특별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이는 현재의 헝가리 지역에 정착하기까지 후노르와 머고르가 이동한 경로와 관련된 자연환경, 그리고 이주의 과정에서 접촉하고 융합된 이민족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처버 왕자의 일파가 스키티아의 종족이 되었다고 하는 설정은 어틸러 왕국의 훈 족이 스키티아와 문화적 측면에서 혹은 민족의 기원이라는 측면에서 특별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한편으로 헝가리 최초의 왕국인 아르파드朝와 연결되어 헝가리의 국가 형성에도 직접적인 영향관계가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양상은 헝가리 민족의 기원과 국가형성에 있어 그들의 역사적 경험을 반영한 결과로 판단된다.
2.2. 민족기원신화
가. 헝가리 민족의 기원 1
아주 오래 전, 수 천 년 먼 아시아에 한 때 크고 강력한 왕국이 하나 있었다. 북으로는 높은 산과 남으로는 남쪽 바다와 경계를 이룬 곳이었다. 산으로부터, 큰 두 줄기 강이 흘러 내려 바다를 향해 남쪽으로 흐르면서 평평한 저지대에 물을 대 주고 있었다.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은 예술, 과학, 지혜로 유명했다. 그들은 아주 풍요롭고 비옥한 곳에서 살고 있었다.
대홍수가 난 다음 북쪽 산악지대에서부터 사람들이 이곳으로 이주해 와서 새 땅을 건설했다. 이 땅의 왕은 거인 사냥꾼인 니므롯(Nimrod)으로, 위대한 왕 에터너(Etana)왕의 조상이었다. 니므롯 왕은 홍수가 난 뒤 201년 후에 바빌론에 홍수방지용 대형 피라미드를 세우고, 큰 건물과 신전을 짓고 도시를 건설했다. 니므롯은 용감한 전사로 그의 제국을 북과 동으로 확장하며 그리로 이주하여 살았다. 이 땅은 후에 동 페르시아라고 불리며, 인도 북부와 근접한 곳이다. 여기서 그는 첫 부인 에네드(Eneth)와 결혼하여, 그녀가 후노르(Hunor)와 머고르(Magor)라는 쌍둥이 아들을 낳았다. 아들들은 그의 자랑거리였고, 많은 시간을 아버지와 보내며 궁에서 자라났고, 후에는 사냥에도 함께 나가게 되었다. 니므롯은 사냥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한 번은 그가 아들과 함께 사냥을 나가게 되었다가, 사냥을 계속하려는 두 아들들과 떨어지게 되었다. 사냥감을 찾는 아들들에게 놀라운 짐승, 거대한 뿔을 가진 암 사슴이 나타났다. 사슴의 뿔은 형형색색의 빛을 내며 밝게 빛나고 있었다.
이 사슴에 매혹된 아들들은 뒤를 쫓기 시작했다. 그 동물은 그들을 서쪽의 빈터와 숲으로 인도했다. 땅거미가 질 무렵 동물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사냥꾼들은 야영을 하게 되었다. 동이 트자 암사슴이 다시 나타났고, 그들은 다시금 뒤쫓게 되었다. 낯선 땅을 통과하여 어드젬(Adjem) 산맥을 넘은 곳으로 가게 되었다. 메오티스(Meotis)의 거칠고 위험한 늪지대를 통과하여 아름답고 풍요로운 땅에 들어서게 되었다. 여기서 암사슴은 그들을 호수로 인도하더니, 그리로 뛰어들어 사라져 버렸다. 이 질척거리는 땅은, 메오티스라고 불리는 곳이었는데 단 한 면만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었다. 땅에 연결된 한 면도 질퍽거리는 늪지대여서 외부에서 안으로, 쉽게 들어올 수 가 없는 곳이었다. 이 곳에는 새와 물고기와 사냥감이 풍부하였고, 페르시아와 경계를 이루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다. 두 젊은이는 암사슴을 잃어버린 것을 아주 섭섭해 하면서 후회하였다. 그들은 아버지에게로 돌아와 그들이 반성하고 성찰하면서 자신들을 연마할 수 있는 사원을 세워주기를 간청했다. 그들은 사원에서 5 년을 살았다, 그리고 6 년째 되는 해에, 스승이 와서 위대한 왕이 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을 때 세상으로 돌아오기를 갈구하게 되었다. 그들과 그들의 병사들은 사원을 떠나, 가까운 지역을 정찰하였다.
야영을 하면서 밤을 지내고, 아침이 되어 그들은 음악 소리에 깨어나게 되었다. 음악은 숲의 개간지에서부터 울려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뿔의 축제를 즐기며 춤추고 노래하는 젊은 아가씨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암사슴의 이름은 헝가리어로 “뿔을 지닌 자”였고 아가씨들은 암사슴을 기념하는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개간지에 있는 아가씨들은 알란(Alan) 족의 딸들이었고, 가운데에 있는 두 아름다운 아가씨는 그들의 지도자 둘러(Dula) 왕의 딸이었다. 두 젊은이는 첫 눈에 공주에게 반했고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그들과 군사들은 여인 모두를 납치하여서 그들의 전통에 따라 혼례를 올렸다. 그들은 호수 가운데에 있는, 방어가 잘 되는 섬에 정착하였다. 그들의 후손은 불어났고, 이웃으로 이주해 가서 스키티아의 108 민족을 이루게 되었다.
후노르의 후손은 훈족이 되었고, 머고르의 후손은 머저르 족이 되었다. 스키타이 민족의 땅은 흑해의 북쪽에서부터 중앙아시아의 샤마칸에 이르는 곳이었다. 그들의 제국은 아버지의 제국과 북과 동에서 접경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니므롯의 왕국은 서쪽의 낯선 지배자의 손에 넘어갔다. 이 나라가 후일 페르시아가 되었다.
나. 헝가리 민족의 기원 2
오래 전에 이 세상에 죄가 만연하여 사람들이 야수처럼 살아가자 신은 그들을 벌하려고 지상에 큰 홍수가 나도록 했다. 홍수는 사람들을 모두 죽게 했고 오로지 노아와 그들의 가족만이 살아 남았다. 노아에게는 셈, 함, 야벳이라는 세 아들이 있었다.
홍수가 끝난 뒤 이 세 아들에게서 72개의 민족이 유래했다. 세 아들에서 유래한 민족들은 서로 다른 곳에서 살았다. 셈의 후손은 아시아에, 함의 후손은 아프리카에, 야벳의 후손은 유럽에 살았다. 프랑스인들은 야벳의 맏아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프랑스 인들은 트로야를 함락한 후에 나중에 머저르 족의 조국이 되는 파노니아로 제일 먼저 왔다. 프랑스 인들은 퍼노니아에 씨컴브리어라는 도시를 건설했다. 그러나 동쪽의 민족들이 침입할 까 두려워 서쪽으로 물러났다. 서쪽 세느 강변에 정착했고, 그들의 새 조국을 자신들의 지도자 프런치오의 이름을 따서 프랑스라고 불렀다. 야벳의 막내 아들로부터 멘로트라는 거인이 생겨났다. 거인은 신이 세상에 또 다시 홍수를 내리면 홍수 때 피난갈 수 있도록 거대한 탑을 쌓으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탑을 완성할 수가 없었다. 신이 사람들의 말을 모두 바꾸어 놓아 친척들끼리도 말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멘로트의 민족은 세상의 곳곳으로 흩어졌다. 멘로트 자신은 언어가 섞인 이후 페르시아로 갔다. 여기서 에네라는 아름다운 아가씨를 알게 되었다. 암사슴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에네를 아내로 맞았다. 에네는 아들 둘을 낳았다. 한 아들은 후노르이고 다른 아들은 머저르라고 했다. 그들에게서 훈 족과 머저르 족이 생겨났다. 오랜 시간 습지에서 살다보니 거대한 민족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땅이 너무 비좁고 식량도 부족했다. 그래서 시처국으로 정찰병을 보냈고, 계속해서 오랫동안 정찰하도록 했다. 그리고 나서 전 민족이 함께 일어나 새로운 조국 시처국을 향해 나아갔다. 시처국의 땅은 비옥했다. 나무와 숲 풀이 무성했고 야생동물도 많았다. 볼가 강에서 카우카수스 산맥에 이르는 거대하고도 광활한 제국이었다. 시처국에는 볼거 강과 돈 강도 발원하고 있었다. 아주 오래 전 시처 족은 매우 현명하고, 친절했었다. 농사를 짓지 않고 아무 죄도 저지르지 않은 채 순결하게 살았다. 검소하게 살았기 때문에 집도 없이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천막에서 생활했다. 시처 족은 고기, 생선, 우유, 꿀을 먹었다. 또 여러 짐승을 길렀다. 담비나 다른 야생 동물의 털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 귀족만이 아니라 소치기, 돼지치기와 양치기도 털옷을 입었다. 시처 족은 금, 은, 진주를 돌처럼 여길 만큼 흔하게 생각했다. 그 나라의 강바닥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쳐 족에게는 모든 것이 풍족해서 다른 사람의 것을 넘보지 않았다. 게다가 가축도 많이 쳤고 먹을 것도 풍부했다. 결혼을 신성하게 여겨 모든 시처의 사람에게는 한 사람의 아내만 있었다.
시처 족을 정복한 지배자는 아무도 없었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왕이 쳐들어 왔으나 시쳐 족은 간단히 격퇴했다. 왕은 8만의 군사를 잃고 걸음아 날 살려라하면서 페르시아로 되돌아갔다. 또 다시 페르시아의 치루시 왕이 쳐들어왔으나 재가 되고 말았다. 시쳐 족은 33만의 군대를 이끌고 온 왕을 물리쳤다. 바로 이 시쳐 족이 여러 나라를 정복했던 너지 샨도르 왕도 무찔렀다. 시쳐 족은 모든 침공을 용감히 막아냈다. 군인들은 용감했으며 전사들은 뛰어났다. 모욕을 당하는 일이 생기면 복수를 하기 전에는 결코 마음이 편해지지 않았다. 씨처 족이 전쟁에서 승리할 때 전혀 약탈을 하지 않았다(오늘날의 후손과 달랐다). 그들은 전투에서 명예를 찾았다. 이렇게 해서 모든 민족이 그들을 두려워했다. 다리우스와 치루시, 너지 샨도르를 제외하면 세상의 다른 어떤 지도자도 그들의 땅으로 쳐들어올 엄두를 내지 않았다.
시처 족은 전투에서는 용감하고 말을 타고 바람처럼 빨리 달렸다. 머리에 모자를 쓰고 활과 화살을 들고 다니며 세상의 어떤 민족보다도 잘 싸웠다. 이렇게 해서 그들의 후예인 머저르 인들도 용맹하다고 인정받았다. 시처 족의 이웃에 베세네이와 백인 쿤 족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북해 주위와 맞닿은 곳에서부터 수스덜 국까지는 그저 넓은 광야가 펼쳐져 있고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원시림의 지역이었다. 일년에 아홉 달은 안개가 가득 차고 6, 7, 8월에만, 그것도 하루 중 몇 시간만 해를 볼 수 있는 지역이었다. 시처의 울창한 산악지대에서 크리스탈이 발견되었고, 숲에서는 독수리가 둥지를 틀고 허어가리에서 케레츠라고 부르는 야생 매가 부화하였다. 후노르와 머저르의 후손이 시처국으로 밀려 들어왔을 때 민족은 108개의 부족으로 나뉘어졌다. 그래서 이 거대한 제국은 108개의 영역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다. 헝가리 민족의 기원 3 (신비한 사슴과 훈 족과 머저르 족의 기원)
옛날에 후노르와 머저르가 사냥을 하다가 먼 곳까지 가게 되었다. 메오티스의 습지 사이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 때 갑자기 암사슴 한 마리가 그들 앞에 나타자, 그들은 곧장 사슴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사슴은 달렸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추격하는 사람들의 눈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한참을 찾았으나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사슴을 찾느라고, 그들은 습지 가운데로 들어가게 되었다. 습지에는 짐승들이 많아서 사냥에 적합했다. 그들은 자기들 아버지에게로 되돌아 와서 메오티스 습지로 이주해 가기를 청했다. 메오티스의 땅은 페르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사방이 바다였고 오로지 좁은 저지대 하나가 있어서 그 길로만 드나들 수 있었다. 강은 전혀 없었고 풀과 나무와 새, 물고기와 야생동물이 가득했다. 들어가고 나오기가 어려웠다. 후노르와 머저르의 민족은 메오티스의 습지로 이주했고 5 년간 전혀 이동하지 않았다. 6년이 되던 해에 출발하여 광야에서 우연히 베라르 왕의 아들들의 부인과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남편 없이 천막에 머무르고 있었다. 만나자마자 그들은 곧 피리를 불며 잔치를 열었다. 음악 소리에 맞춰 춤을 췄다. 그들을 붙잡아, 가산까지 모두 함께 지고 메오티스 습지로 데리고 왔다. 얼론 족의 족장인 둘라의 두 딸을 붙잡아 한 딸은 후노르가, 다른 한 딸은 머저르가 아내로 삼았다. 모든 훈 족과 머저르 족은 이 여인에게서 유래하였다.
라. 어틸러의 神劍 신화
훈 족과 머저르 족이 스키타이를 정복하고 나서 자신들을 수호해 준 신에게 검을 바쳤다. 그 후 모든 민족들은 이 검을 찾으려고 애썼다. 이 검을 찾게 되는 사람은 신의 축복을 받아 백전백승하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각 민족의 선지자들이 모여 삼일 밤과 삼일 낮 동안 논의를 한 끝에 드디어 결정을 내렸다. 한 눈 먼 사람이 이 검을 들고 일곱 번 돌린 다음 던지기로 했다. 만약 서쪽으로 떨어지면 훈 족이 주인이 되고, 동쪽으로 떨어지면 헝가리 민족이 소유하기로 하였다. 모두 이렇게 하기로 동의하였다. 그러나 앞 못 보는 사람이 일곱 번을 돌리고 손에서 검을 떨어뜨리자 무시무시한 회오리바람이 불어오더니, 신의 검을 낚아채 갔다. 검은 빙빙 돌면서, 서 쪽으로, 서쪽으로 바람에 밀려갔고, 어느 순간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 광경을 본 어틸러가 이렇게 말했다. “신께서 우리가 서쪽으로 가기를 원하신다. 검 때문에 슬퍼하지 말아라, 우리가 발견하게 되든지, 너희들이 발견하게 되든지 일단 소식을 보내자.” 이렇게 약속하고 두 민족은 길을 떠났다. 어틸러의 뒤를 따라 훈 민족이 모두 따라 나섰는데, 맨 앞에는 늙은 문드주크(Mundzuk)가 서고, 그의 옆에는 어틸러와 부더(Buda)가 섰다. 그 뒤로 수많은 사람들이 걷거나 말을 탄 채 뒤따랐다. 그들은 거대한 숲을 지나, 깍아 지른 듯한 벼랑을 넘어 아주 오래도록 걸어 두너(Duna)와 티서(Tisza) 강 사이에 이르렀다. 이 지역은 그들 모두의 마음에 꼭 들었다. “자 우리 여기 남아서, 살고, 죽자!” 그들 모두가 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지역에 살고 있는 민족들은 두려움에 벌벌 떨었고, 화들짝 놀라 데트레(Detre)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는 곧 수만 대군을 이끌고 왔고, 두 민족의 병사들은 두 덩어리의 검은 구름처럼 서로 엉겼다. 피가 흘러 들어, 두너 강은 넘쳐 났고, 마침내 두너와 티서 사이의 지역은 훈 족의 땅의 되었다. 그들은 이 곳에서 오랫동안 평화롭게 살았다. 더 이상 전쟁을 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틸러는 전 세계를 정복하고 싶은 꿈으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아비가 말했다. “아들아, 신검을 찾기 전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말아라. 신이 너와 함께 계시지 않는다면 네가 제 아무리 용맹하다고 해도 아무 쓸모가 없다.” 하지만 어틸러의 머리에는 신검에 관한 생각뿐이었다. 아버지가 죽고 훈 족은 만장일치로 가장 용감하고, 가장 지혜로운 어틸러를 왕으로 선출했다. 그러나 그는 신검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목동 소년이 손에 반짝이는 검을 들고 와 말했다. “위대하신 왕이시여, 평원에서 이 검을 발견해서, 여기로 가지고 옵니다. 사람들이 신검이라고 하는 검입니다.” 어틸러는 검이 진짜인지 즉시 시험해 보았다. 소리가 울려 나오는 지 보기 위해, 칼집의 네 모서리를 세 번 쳤다. 그러자 “이게 그거야, 바로 이거야”라는 소리가 들려 왔다. 왕은 기뻐하며 불을 피워 훈 족에게 검을 되돌려 주신 신에게 예배드리게 했다. 이렇게 하여 어틸러가 세계를 정복하리라는 제사장들의 예언이 완성되게 되었다.
헝가리 민족의 기원 신화 셋은 동일한 내용을 전승하고 있는 각편들이다. 핵심적인 요소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① 大洪水 이후에 巨人神的 存在(니므롯/멘로트)가 ‘암사슴’의 뜻을 지닌 女人 에네드/에
네와 결연했다.
② 둘 사이에서 후노르와 머저르(머고르)라는 쌍둥이 兄弟가 태어났다.
③ 후노르와 머저르가 암사슴의 인도로 메오티스 늪지대를 거쳐 비옥한 땅으로 갔다.
④ 그 지역 근처에서 암사슴을 기념하는 축제를 벌이고 있던 알란(Alan) 族 둘러(Dula)王
의 두 딸을 만났다.
⑤ 두 공주를 납치하여 婚禮를 올렸다.(掠奪婚)
⑥ 후손이 번성하여 스키티아(스키타이)의 108개 민족이 형성되었다.
⑦ 후노르의 후손은 훈 族이 되고, 머저르의 후손은 머저르 族이 되었다.
헝가리 민족의 기원이 인류의 대홍수 이후에 비롯되었다고 하는 설정은 中央아시아에서 東北아시아 일대뿐만 아니라 세계의 여러 곳에서 보편적으로 확인되는 양상이다. 大洪水에 이은 제2차 人世創造가 시작되면서 헝가리 민족이 더불어 비롯되었으니 그 내력이 대단히 오래되었다고 자랑할 만하다. 암사슴에 대한 관념이 예사롭지 않아 중앙아시아 일대의 사슴 숭배와 특별한 관련을 맺는 것도 헝가리 민족의 기원이 어디인지를 말해준다.
헝가리의 민족 기원에 관해서는 크게 두 가지 학설이 제기되어 있다. 하나는 헝 가리가 훈 족의 후예라는 것이고 다른 하 나는 투르크系의 一派에서 헝가리 민족이 형성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바이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부정되고 있다. 우선 훈족이 중앙아시아에서 西進하여 기 원 후 4세기 경에 어틸러(Atila) 왕국을 건설한 후 5세기 중반에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헝가리 민족이 서유럽 세계에 비교적 국가적 면모를 갖추어 모습을 드러낸 것이 기원 후 9세기 경이기 때문에 둘 사이의 계통적 관계를 설정할 수 있는 시기상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다. 또한 “Hungary"라는 나라 이름이 훈 족의 ”Huns"에서 유래했다고 하지만 이는 훈 족의 멸망 이후 뒤늦게 등장한 헝가리 민족이 여러 측면들에서 이전의 훈 족과 유사하다고 서유럽 세계에서 판단했기 때문에 “Huns"와 견인한 결과라는 것이다. 실제로 헝가리의 언어학자들은 “Hungary”가 투르크語의 “on + ogur” 곧 “열 개의 화살”이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하고, 후에 서유럽 세계에 의해 훈 족의 일파로 오해를 받아 “h"가 붙여져 “Hungary"가 되었다고 보고 있다. 기원 후 5세기 경에 이주해 온 ‘오노구르(Onogur)’가 투르크系 유목민족의 일파라고 한다면 역사상 확인할 수 있는 직접적인 헝가리의 민족 기원은 적어도 ‘오노구르’와 밀접하게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헝가리 민족이 西進을 계속하면서 주변의 여러 민족들과 접촉을 거듭하게 되는데, 그 가운데 이란系의 알란(Alan) 족으로부터 당시로서는 높은 수준의 토지 경작술과 농경기술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 사정이 헝가리 民族起源神話에서 母系로 설정되어 뚜렷하게 제시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민족기원신화에서 훈 族과 머저르 族이 쌍둥이 형제로 설정된 점이다. 머저르 족이 훈 족과 같은 혈통을 이어받은 형제임을 자랑스럽게 드러내는 신화의 내용과 실제 역사학자들이 주장하는 훈 족과의 非連繫性은 상반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머저르 족이나 훈 족이나 그 시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 투르크系의 일파이거나 혹은 민족이동의 과정에서 경험한 두 민족 사이의 공통적인 요인-신화의 문면에 제시된 스키타이와의 관련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훈 족과 머저르 족과의 관계가 전혀 부당한 것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3. 헝가리 신화의 형성과 재편 - 훈과 머저르, 중세보편종교, 민족기원의 標識 니므롯(Nimrod)
3.1. 훈 족과 머저르 족의 신화적 설정과 의미
헝가리의 역사학자들은 훈 족 기원설을 적극적으로 부정하고 굳이 투르크계의 오노구르에서 기원했다는 논리를 전개한다. 이런 사정은 헝가리 민족기원신화에서 훈 족과 머저르 족을 형제 관계로 설정하여 전승시킨 양상과 어긋난다고 하겠는데, 그 연유가 무엇인지 의문이다.
흔히 “신비의 사슴(A csodasarvas)”으로 널리 알려진 민족기원신화는 헝가리 왕실에서 대귀족들을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왕실 史家들에 의하여 1283년경 공식 사료로 편찬된 역사서인 헝가리사(Gesta Hungarorun)에 기록하도록 하여 이 신화를 공식화했다. 왕권 강화를 위해서 훈 족과의 관계를 구체화하고 공식화한 이면에 훈 족의 어틸러 왕이 지녔던 강력한 왕권의 역사가 당시에 필요했었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민족의 기원과 관련하여 공식적으로 인정하기 힘든 후노르 쪽을 견인하여 자신들이 훈 족의 후예라고 하지 않고, 후노르를 머저르와 형제 혹은 쌍둥이 관계로 설정하여 실제 민족의 기원을 머저르에 두는 쪽을 인정하는 설정을 택했다. 훈 족을 민족의 직접적 기원으로 설정하지 않아도 머저르와의 형제 관계로 설정됨으로써 훈 족과의 개별성과 친연성을 동시에 부각시키는 이중의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판단된다.
두 민족의 기원 신화가 동일한 부모의 혈통 아래에서 비롯되었지만 실제 역사적 경험은 두 민족이 서로 달라 신화에서 형제 관계를 강조하고, 실제 역사적 기술에서는 왕국의 기원을 따로 설정하는 이중적 관점이 성립할 수 있다. 이런 사정이 있어 <어틸러의 신검 신화>와 같이 두 민족이 형제로서 스키타이를 함께 정복한 내력을 자랑스럽게 드러내고, 한편으로 훈 족의 어틸러 왕국이 유럽 세계의 강자로 부상한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여 신검의 행방이 종국에는 어틸러에게 돌아갔다고 하는 설정을 함으로써 두 민족 사이의 구별을 명확하게 하기도 했던 것이다. 훈 족과 머저르 족이 西進을 하게 된 필연적 연유가 회오리바람에 의해 서쪽으로 날아가 사라져 버린 神劍을 찾기 위해서이니 이는 곧 신의 섭리인 셈이다. 역사적으로 훈 족과 머저르 족의 西進이 같은 시기에 동시에 행해지지 않았으나 신화를 통하여 역사적 정황과 다르게 설정하여 두 민족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부각시켰다. 헝가리 민족기원신화에 “신비의 사슴(A csodasarvas)”과 다른 내용으로 “투룰(Turul)”이 등장하는 신화가 널리 전승되는데, 알모시의 출생신화가 그것이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819년의 일이다, 머고그(Magog) 왕의 후손이 스키티아 지방의 왕가인 에네드-벨리아의 딸과 결혼하였다. 그녀의 이름은 에메세(Emese)였다. 그녀가 첫 아들을 낳으니 그의 이름이 알모시(Álmos)였다. 아이의 이름이 알모시가 된 것은 어머니가 꾼 태몽 때문이었다. 꿈에 하늘에서 투룰(Turul) 한 마리가 내려와 그녀의 자궁 속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그러더니 그녀에게서 큰 샘이 솟아나 서쪽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샘물은 점점 더 많아지더니 눈이 덮힌 산을 쓸고 넘어서서, 건너편의 아름다운 저지대로 흘러가는 급류가 되었다. 그 곳에서 물이 멈추더니 물에서부터 황금 가지를 지닌 아름다운 나무가 자라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기의 아이가 유명한 왕이 될 것이며, 현재의 지역만이 아니라 그녀의 꿈에 나타난,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저 먼 나라의 지배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기 819년, 머고그王(현전하는 앗시리아 기록들에 의하면, 성서의 스키티아王 머고그는 아슈르-바니팔이라는 앗시리아王의 통치시기에 北메소포타미아지역에 살았다)의 후예이며 스키티아 지역의 귀족 지도자인 우기옉은 에메쉬라 불리는 에네드-벨리아의 딸과 결혼했다. 그녀로부터 첫아들 알모시가 태어났다.(현대 헝가리어에서 알모시라는 이름은 ‘잠자는 자/꿈꾸는 자(꿈에 취해있는 자)’라는 뜻인데, 꿈이라는 단어의 고대 웅가리語 형태는 아돔, 아담이었다. 키에프 연대기에서는 그를 올마라 부른다) In the year of our lord 819, Ugyek, the descendant of King Magog (The Scythian King Magog of the Bible lived in Northern Mesopotamia during the reign of the Assyrian king, Ashur-banipal, according to surviving Assyrian records.) and a royal leader of the land of Scythia, married the daughter of Ened-Belia, whose name was Emeshe. From her was born their first son Almos.(In modern Hungarian the name Almos means sleepy/dreamer, the ancient Ugrian form of the word dream however was ADOM, ADAM. The Kiev Chronicles called him Olma.)
알모시는 ‘잠자는 자/꿈꾸는 자’라는 뜻으로 고대 우그르語의 꿈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익숙한 아돔(Adom) 혹은 아담(Adam)이라는 것이다. 투룰은 매 혹은 독수리 형상을 한 맹금류의 일종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투룰은 흔히 유라시아 대륙의 遊牧騎馬民族들의 신화에 등장하는 일종의 토템으로 알려져 있는데, 헝가리 민족의 경우에도 그런 전통이 있어 민족기원신화의 한 형태로 전승을 지속했다고 할 수 있다. 투룰에 관한 부연적인 설명은 아래를 참고한다.
헝가리 신화에서 신의 전령사인 ‘투룰’은 거대한 신화적 猛禽(송골매)으로, 새의 형상으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의 다른 영혼과 함께 생명의 나무 꼭대기에 앉아 있다. 그녀는 종종 생명의 나무 그림에 태양으로 대체되기도 한다.('투룰‘이라는 단어는 터키의 ’토굴‘이며, 알타이계 언어에서는 대머리 독수리이고, 수메르어에서는 ‘두구드’라는 독수리로 사자의 머리를 지닌 거대한 새이다. 아시아의 전설들에서 투룰은 여인 에메쉬를 최초로 사제자로 만들었으며, 그리고 다산의 원인이 되는 그의 아들이 사제자가 되게 했다. 그들의 후손들은 최초의 사제들인 함이며 그는 천상과 별들로부터 신의 뜻을 읽어낼 수 있다. 투룰은 헝가리의 아르파드 왕조뿐만 아니라 어틸러 가문의 상징이기도 하다. (The "Turul" is a giant mythical falcon, a messenger of god in Hungarian mythology, who sits on top of the tree of life along with the other spirits of unborn children in the form birds. She is often replaced by the sun in illustrations of the tree of life. (The word "Turul" is common with the Turkic "Togrul". In the Altaic languages it is a vulture, and in Sumerian it is called the im- "Dugud" eagle, which is a lion headed giant bird.) In Asian legends the Turul brings the priesthood first to the woman Emeshe (EMESH means priestess in Sumerian, Anton Diemel, "Sumerich-Akkadisches Glossar, pg 92) and her son by causing her to be fertile. They and their descendants are the first priests (KHAM), who can read the will of god from the heavens and stars. The Turul is also the symbol of the house of Atilla as well as the Hungarian Árpd dynasty kings of Hungary).
투룰(Turul)의 신화는 저 유명한 프레이저의 황금가지(The Golden Bough)가 신화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프레이저가 일찍이 확인하지 못한 소중한 신화의 모습이 헝가리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황금가지가 무엇이던가? 터너(Turner)가 그린 ‘황금의 가지’가 신화적 근원적 의식을 형상화하였던 것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황금의 가지가 뻗어나는 성스러운 神樹는 신화의 원천인 동시에 신앙의 근원대상으로 기능하기에 헝가리 투룰 신화는 주목을 요한다. 生命樹(Életfa)는 헝가리 민족에게 있어 인간세계의 모든 존재를 설명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나무의 뿌리는 惡의 세력이 사는 곳이고, 줄기와 가지는 현세의 인간과 가축들의 세계이며, 잎사귀 부분은 인간의 내세를 이끄는 선한 정신의 영역으로 설정하여 인간세상의 기본적인 이치를 생명수 하나에 담아 전승하는 양상을 보인다.
현몽한 투룰과의 의도하지 않았던 결연으로 알모시라는 영웅이 태어났다. 에메시라는 여인은 투룰이 그녀의 자궁 안으로 들어온 뒤 생겨난 샘물은 급류가 되어 흐르다가 멈추었다고 했다. 곧 호수가 된 것이다. 그 물 속에서 황금의 가지를 지닌 나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했다. 바로 작은 산의 호수에 자라난 황금가지를 가진 나무, 프레이저가 지적한 황금가지의 모습 그것이다. 터너의 그림과, 프레이저의 시선이 고정되어 버린 그 나무가 바로 헝가리의 신화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에메세(Emese)에게서 나온 샘물이 서쪽으로 흘러갔다고 하는 설정을 통하여 머저러 족이 西進을 거듭하여 헝가리 왕국을 성립시킨 필연적 연유를 함축적으로 드러내고 있어, <어틸러의 神劍神話>에서 西進의 연유를 신검의 행방과 연계시킨 방식과 다르지 않은 양상을 보인다.
투르크系의 신화적 동물이면서 훈 족의 어틸러 가문의 상징이기도 한 투룰은, 수메르에서도 확인된다고 한다. 투룰과 같은 신성한 매를 숭배하는 전통이 중앙아시아 일대에 대단히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사정이 있어 헝가리 최초의 王家인 아르파드(Árpd)家의 선조인 알모시(Álmos)의 胎夢談에 결부되어 헝가리 민족의 독자성을 유럽 세계에 드러내는 중요한 방편이 되기도 했다. 투룰의 경우에도 다른 민족기원신화와 다르지 않게 직접적으로 훈 족과 연결되고 있어 적어도 신화를 통한 헝가리 민족의 정체성은 훈 족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형성되고 있음이 뚜렷하다고 하겠다. 검토한 헝가리 신화는 어느 쪽이든 훈 족과 머저르 족이 동일한 기원을 갖고 있거나 동일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것으로 설정하고 있음이 확인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헝가리가 중세보편종교인 카톨릭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서유럽 국가의 일원이 되기 위하여 非유럽적인 요소들을 탈색시키고 있었던 시기에 유럽세계에 공포의 대상이었던 훈 족과 계통관계를 공식화하는 작업이 가능했겠는가 하는 점이다. 유럽 세계에 등장하여 주변의 여러 국가들로부터 이질적인 민족으로 인식되어 수다한 침략과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카톨릭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헝가리에서 다시 훈 족과의 관계를 공식화하는 역사기술이 가능할 수 있었다면, 그 이면에 헝가리 민족의 생존을 위한 이중의 방어 전략에 그 이유의 일단이 있었다고 판단된다. 카톨릭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유럽 세계의 일원이 되는 작업을 가속화하고, 한편으로 5세기 경 유럽 세계에 큰 세력을 형성했던 훈 족을, 신화를 통하여 공식화함으로써 주변 민족에 대응하는 강력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양면 전략을 구사했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내부적으로는 왕권에 위협이 될 만한 대귀족 세력을 제어하기 위하여, 강력한 왕권을 행사한 훈 족의 어틸러(Attila) 왕국을 견인함으로써, 왕권 강화를 통한 내부적 안정을 확보하려는 다각적인 의도가 개재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훈 족과의 직접적인 계통관계를 부인하면서도, 신화적으로는 끊임없이 훈 족과의 계통관계를 부각시키는 어긋난 전략은 적어도 헝가리 민족의 경우, 특별한 對內外的 사정에 따라 신화를 재편한 결과가 아닌가 한다. 5세기 경에 자취를 감춘 훈 족의 어틸러 왕국에 이어 3-4세기 후에 유럽 세계에 모습을 드러낸 머저르 족이 같은 투르크系의 일파였던 훈 족의 어틸러 왕국의 찬란했던 전통을 자기네 쪽으로 가져와 유럽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정신적 방편으로 삼은 결과가 이어져 헝가리 왕국의 성립 이후 단절되지 않고 전승을 거듭했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신화를 통해서는 훈 족과 머저르 족은 형제인 셈이어서 역사적 사실관계를 문제삼지 않고 혈통적 친연성을 강화시키는 방식이 인정될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 헝가리 신화의 다면적 양상을 이해하는 차선의 관점일 수 있다.
3.2. 니므롯(Nimrod)과 민족의 원류, 그리고 중세보편종교
헝가리 신화의 뚜렷한 특징 하나는 전술한 대로 중세보편종교와의 관계이다. 민족기원신화의 시작이 철저하게 聖書의 내용을 그대로 가져온 것에서 이런 점이 분명하게 확인된다. 우선 거인 사냥꾼으로 설정된 니므롯(Nimrod)이 주목된다. 니므롯(Nimrod)이 누구인가?.
聖書와의 관계를 보기로 한다. “오래 전에 이 세상에 죄가 만연하여 사람들이 야수처럼 살아가자 신은 그들을 벌하려고 지상에 큰 홍수가 나도록 했다. 홍수는 사람들을 모두 죽게 했고 오로지 노아와 그들의 가족만이 살아 남았다. 노아에게는 셈, 함, 야벳이라는 세 아들이 있었다.”로 시작되는 헝가리 민족 기원 신화의 설정은 여지없이 聖書의 그것이다. 야벳의 막내아들인 니므롯이 노아의 시절에 있었던 대홍수가 다시 일어날 경우에 대비하여 높은 탑을 쌓으려 했다고 하고 그 일이 실패로 끝나고 각각 언어가 달라져 세상에 니므롯의 후손들이 흩어졌다고 했다. 대홍수에 대비하려 한 점은 비난의 대상이 되지 못하지만, 인간 세상에 대한 신의 징벌로 나타나는 대홍수를 방비하기 위한 행위라는 점에서 보면 신의 징치에 대항하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어 언어가 나뉘어진 새로운 징벌을 받을 만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양상은 성서를 가져와 기본적인 설정을 하고 구체적인 내용은 성서의 내용과 달리 설정함으로써 보편종교인 기독교와 상충되지 않는 방식으로 신화를 재편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니므롯을 견인하여 헝가리 민족의 기원을 자랑할 수밖에 없는 이면에 니므롯이 페르시아 쪽으로 갔다고 하고, 니므롯의 왕국이 후일에 페르시아가 되었다고 한 신화적 설정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는 헝가리 민족의 원류를 짚어보는 데에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니므롯에 관한 성서의 전승은 구약성서 <창세기 10장․11장>에 나타난다. 그 내용을 소개한다.
(창 10:1)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창 10:2) 야벳의 아들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디라스요
(창 10:3) 고멜의 아들은 아스그나스와 리밧과 도갈마요
(창 10:4) 야완의 아들은 엘리사와 달시스와 깃딤과 도다님이라
(창 10:5) 이들로부터 여러 나라 백성으로 나뉘어서 각기 방언과 종족과 나라대로 바닷가의 땅에 머물렀더라
(창 10:6) ○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창 10:7) 구스의 아들은 스바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삽드가요 라아마의 아들은 스바와 드단이며
(창 10:8)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창 10:9)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창 10:10) 그의 나라는 시날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창 10:11)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아
(창 10:12)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이는 큰 성이라}을 건축하였으며
(창 10:13) 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밈과 르하빔과 납두힘과
(창 10:14) 바드루심과 가슬루힘과 갑도림을 낳았더라 {블레셋이 가슬루힘에게서 나왔더라}
(창 11:1)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창 11: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창 11: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창 11:4)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창 11:5)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창 11:6)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창 11: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창 11:8)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 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창 11: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니므롯에 관한 성서의 전승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니므롯은 함의 후손인 구스의 아들로 이 세상 최초의 英雄(英傑)이요 특이한 사냥꾼이다.
② 니므롯이 시날 지역을 중심으로 앗시리아 왕국을 세우고 니느웨와 갈라(Kalah) 등 도시와 성을 건설 했다. : 니므롯은 앗시리아 왕국의 건국시조이다.
③ 니므롯의 왕국인 시날에서 노아의 후손들이 만나 하늘에 닿는 성과 대를 쌓아 흩어짐을 면하고자 했 다. : 니믈롯의 왕국에서 바벨을 쌓기 시작했다.
④ 야훼가 언어를 혼잡케 하여 성 쌓기를 못하게 하고 그들을 온 세상에 흩어지게 했다. : 언어가 다른 여러 민족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성서에 이미 니므롯에 관한 예사롭지 않은 전승이 기록되어 등장하는 것은 고대 근동지역에 니므롯의 전승이 대단한 전승력을 지니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니므롯에 대한 평가도 히브리 전승과 달리 부정적인 기술이 문면에 직접적으로 제시되어 있지 않으며, 바벨탑을 쌓는 행위는 노아의 후손들이 함께 한 것으로 되어 있다. 히브리의 전설에 의하면 니므롯은 시나르(시날)의 왕으로 아담과 이브의 옷을 소유함으로써 세계의 통치권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 가죽 옷은 인간의 선조에게 준 야훼의 선물로, 동물들도 그 옷을 입은 인간의 권위를 인정했으며, 전투에서 그 옷은 언제나 승리를 보장했다고 한다. 니므롯은 신격화되어 숭배의 대상으로 격상되었으나 만족하지 못하고 하늘에 이를 수 있는 바벨탑을 쌓도록 했다. 그 계획을 안 야훼가 시나르(시날)의 언어를 뒤섞어 적대적인 집단이 되어 분쟁을 일으키도록 했다고 한다. 성서와 달리 히브리의 전설이 니므롯에 대해 부정적인 설정을 한 이유는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다. 우선은 니므롯의 不敬함이 극에 달아 그 스스로가 신격화되기를 원했다고 하는 설정을 덧붙여 니므롯 전승의 성격을 변화시키고 그 결과 니므롯이 바벨탑을 쌓으려는 주체가 되게 했다. 따라서 그가 야훼의 징치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는 설정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아브라함의 후손인 히브리 민족들은 바벨탑을 쌓은 죄에서 한 발짝 물러나야 했으니 니므롯이 바벨탑을 쌓은 죄인임을 확정하고자 했던 의도의 결과가 부정적인 히브리 전설의 니므롯 전승을 형성시킨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고 판단된다.
다음으로, 야훼를 유일신으로 하는 히브리 중심의 종교가 당시에 니므롯 전승을 배제하고서는 근동아시아 지역의 보편종교로 성립하기 어려운 상황이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니므롯 전승이 오랜 구비전승의 전통(Oral Tradition)을 간직하고 있어서 그 지역 일대의 여러 민족들에게 널리 전승되었기에 히브리의 유일신 신앙이 보편종교로서 확장하는 데에 있어, 한편으로 포용하면서 한편으로 배제하는 양면적인 수용태도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판단된다. 니므롯의 전승을 포용하는 방편으로 니므롯이 세계 최초의 英傑이요 특이한 사냥꾼이었다고 했다. 야훼 앞에서는 ‘특이한’ 사냥꾼이라 하여 특별한 수식어를 결합시켰다. ‘특이한 사냥꾼'이란 히브리어 뜻으로 ‘용맹한 사냥꾼'이라는 뜻으로 해석이 되니 니므롯이 야훼 앞에서도 대단한 능력을 발휘하는 존재라고 하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런 대단한 영걸을 노아의 후손으로 견인하여 니므롯이나 그를 신앙하는 민족들 역시 야훼를 신앙하는 같은 민족이었다고 함으로써 니므롯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면서 한편으로 야훼의 아래에 두는 설정을 통하여 니므롯을 포용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볼 수 있다. 니므롯 전승을 배제하기 위해서는 야훼의 권위에 도전하기 위하여 쌓아올린 바벨탑이 니므롯의 왕국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하여 니므롯을 직접적으로 거론하지 않으면서 야훼의 징치를 받는 대상으로 설정했다. 히브리 전설에서 니므롯을 직접적인 징치의 대상으로 설정한 것과 달리 성서에서 함축적인 방식으로 니므롯에 대한 징치를 드러낸 것은 니므롯에 관한 전승을 恣意的으로 裁斷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전승력이 대단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 판단된다. 헝가리 신화에서 후노르와 머고르가 말을 타고 사냥을 하는 인물로 설정된 것 역시 이들 민족의 오랜 신화적 전통-니므롯의 계승과 왕으로서의 자질을 신화적으로 드러내는 전통-과 무관하지 않을 터이고, 더욱이 그런 생활방식을 영위했던 민족이기에 그 전승력은 약화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니므롯은 히므리 민족에게 있어서는 부정적 대상이었지만 성서에서는 이 세상 최초의 영걸이요 용맹한 사낭꾼으로 古代앗시리아 왕국을 건설한 건국영웅인 셈이다. 그런 사정이 있어 헝가리 민족의 기원으로 니므롯을 설정한 것이 중세보편종교인 기독교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방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성서에서는 니므롯이 야벳의 후손이 아니라 함(Kham)의 후손으로 되어 있다. 야벳의 후손은 브넥(Phenech), 셈의 후손은 욕단(Joktan)이다. 그런데 헝가리 신화에서 니므롯을 야벳의 후손으로 달리 설정한 것은 유럽 세계와의 관계 때문으로 보인다. 곧 헝가리 신화의 문면에서, 야벳의 후손으로 프랑스인과 머저르 족이 동일한 혈통을 지녔다고 설정한 연유가 있을 터인데, 이를 주변 민족과의 관계에서 접근해 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야벳의 맏이가 프랑스인의 선조라 설정하고 자신들은 야벳의 막내아들이라 설정하여 프랑스와의 특별한 관계를 신화를 통해 드러내었다. 그런데 야벳은 그리스 신화의 거인족 야페토스(Iapetus)와 동일시되기도 하여, 그에게서 프로메테우스가 나고 프로메테우스가 진흙으로 인간을 빚어 만들었다고 하는 내용이 전한다.
그런 이유로 그리스인들은 야페토스를 인류의 조상으로 여겼는데, 히브리인들은 그리스인이 포함된 인류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한편 투르크족의 기원을 성서적으로 해석한 이슬람 口傳에 따르면 자신들의 조상을 노아의 아들인 야벳과 연결시키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니므롯은 머저르족의 조상인 동시에 터키인의 조상이면서 또한 프랑스인의 조상이기도 하고 그리스인의 조상이기도 한 존재가 된다. 결국 현재 헝가리가 위치해 있는 중부 유럽지역이 문화적으로 영향을 받은 그리스, 프랑스, 터키 등 주변 민족들이 하나의 조상에서 비롯한 같은 혈통의 후예들인 셈이다. 헝가리의 역사에서 기독교 문화는 보혜미아와 독일의 수도승, 신부, 기사들에 의하여 전해졌지만 문학과 예술의 수용과 발전은 주로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양식을 따라 이루어진 사정이 있어 야벳의 맏이로 프랑스인을 설정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더욱이 독일의 하인리히 1세(Heinrich Ⅰ)에 의하여 헝가리군이 패퇴한 일과, 신성로마제국을 건설한 오토 1세(Otto Ⅰ)의 군대에 의하여 헝가리 부족 연맹체의 세 번째 실력자(harka)인 불추(Bulcsu)가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죽임을 당한 일 등 독일과의 군사적 충돌로 패배를 경험한 역사적 사정이 있어 독일이 아닌 프랑스와의 관계를 신화를 통해 새롭게 설정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고려할 수 있는 것이 머저르족의 모계로 설정된 이란의 알란족과의 관계이다. 민족기원신화에서 후일에 니므롯의 왕국이 페르시아가 되었다고 하였으니 이곳이 바로 이란이다. 이란의 한 분파가 머저르의 모계 혈통으로 설정된 것은 역사적 사실과도 부합하는 측면이 있어 니므롯 왕국을 페르시아와 연계시키는 신화적 발상은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알란 족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스키타이와의 관련성을 구체화시킨 다른 신화가 전승되어 민족기원과 관련한 다양한 양상을 제시하고 있다.
앞서 살핀 민족기원신화에서 모계로 설정된 에네드 혹은 에네가 <투룰 神話>에서는 에네드-벨리아의 딸인 에메세이다. 에네드 혹은 에네는 에메세와 같은 스키티아 계통의 母系 血統이기 때문에 동일계통 신화의 다른 전승인 셈이다. 어느 신화이든 머저르 족의 기원과 관련된 母系는 ‘스키티아-에메세-알란’과 깊은 관계가 있다. 알란 族의 성격이 어느 정도 확인되면 머저르의 族源的 性格도 함께 드러나 니므롯을 민족기원의 시조로 설정한 하나의 연유를 짚어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란계 알란 족의 기원과 성격이 뚜렷하지는 않으나 대체로 이란계 북방 유목민족의 일파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란계 북방 유목민족으로 사르마트 族이 널리 알려져 있는데, 알란 족은 사르마트 족의 한 일파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들 사르마트 족은 기원전 3세기 후반 경에 러시아 초원에 들어가 스키타이를 크리미아 쪽으로 몰아내기도 하였는데, 스키타이 역시 이란계 북방 유목민족의 일파이거나 족단 구성원 가운데 다수를 이란계 유목민족(사르마트, 알란)이 차지한 민족으로 파악된다. 아울러 스키타이 지역의 북부에 헤로도투스가 안드로팍(Androphag)․멜란클렌(Melankhlen)․잇세돈(Issedon)이라는 이름으로 기록한, 스키타이가 아닌 핀-우그르系가 거주하고 있었다고 하는 역사적 정황에서 스키타이와 알란, 그리고 핀-우그르系 語族에 속하는 머저르 族이 다각적으로 접촉한 사정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알란 족은 서기 374년경 돈 江의 서쪽 지역에 거주하다가 훈 族에 의해 복속되기도 하고 그 일파는 다시 西進하여 서부 게르만에 동참하기도 하고 나머지는 스페인 갈라시아의 수에비 혹은 바시고트와 복합적인 종족요소를 구성하여 카탈로니아(고트-알란)라는 이름을 낳게 한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헝가리 신화에서 머저르 족의 모계로 설정된 알란 족이 스키티아(스키타이)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사정은 알란 족의 족원 관계와 역사적 정황에 따른 역사적 반영의 결과로 판단된다. 따라서 헝가리 신화에서 알란 족이 메오티스 부근 지역에 거주했다고 하는 기술과 니므롯이 페르시아로 가서 알란 족의 여인을 만나게 되었다고 하는 내용은 역사적 사실로 보아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메오티스는 페르시아 왕국과 경계지역이기 때문이다.
한편,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거인족 ‘야벳-야페토스’는 그리스와 메소포타미아 두 지역신화의 通典性라는 측면에서 그 개연성을 짐작할 수 있고, 한편으로 이른바 기원전 2-1세기 경의 ‘그리스-스키타이의 동물 사실주의 문화’와도 일면적으로나마 연계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아울러 초기 스키타이 문화가 고대 앗시리아-바빌로니아적인 주제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함께 고려하면, 고대 앗시리아-바빌로니아에서 스키타이(알란/사르마트)그리고 그리스 쪽으로 넘어갔을 가능성이 있는 야벳을 상정해 볼 수 있을 듯 하다.
더불어 후술하게 될 코마게네(Kommagene) 왕국의 동서양 문화와 종교의 혼합적인 성격에서도 고대 그리스와의 친연성이 거듭 확인된다. 후노르와 머저르 쪽에서 신화를 통하여 성서의 계보와 다른 방식으로 굳이 야벳과 니므롯을 견인하여 민족기원을 설명한 이면에 스키티아와 알란, 그리고 유럽 세계와의 동질성을 포괄적으로 확보하려는 전략이 개재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유럽 세계에 헝가리라는 국가를 성립시킨 주체가 자기네 민족의 원류에 관한 사실을 소중하게 전승시킬 필요가 있어, 신화의 전승에 있어서는 니므롯을 민족의 시조로 확정했다고 하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데에 있다. 근동아시아에 니므롯의 전승과 역사적 실체는 어느 정도 확인된다. 구약성서에서 이미 니므롯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니므롯은 이미 이 지역에 널리 전승되던 신화의 중요한 존재로 인정된다. 구약성서가 어느 순간에 갑자기 완결된 형태의 경전으로 등장한 것이 아니라 근동아시아 지역에 오랜 전승을 거듭하고 있던 다양한 신화와 전설들을 포괄하여 형성된 것이기에, 니므롯 전승의 오랜 내력을 짐작할 수 있다.
구약성서 외에 역사적으로 니므롯이 확인되는 것은 新앗시리아 王國의 앗수르-나시르-팔(Asshur-nasir-pal) 2세(기원 전 883-859) 시기이다. 주변 민족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되면서 한편으로 성읍과 신전들을 건축하고 운하를 만들고 군대를 개편하였는데, 특히 새로운 수도인 칼라흐-니므룻(Kalah-Nimrud)을 건설했다. 앗수르-나시르-팔(Asshur-nasir-pal) 2세가 앗시리아 왕국을 재건하면서 새롭게 건설한 수도의 이름이 칼라흐-니므룻(Kalah-nimrud)라는 사실은 이 시기에도 여전히 니므롯에 관한 신화가 대단한 전승력을 지녔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니믈롯 전승의 실체는 古代 터키 지역의 코마게네(Kommagene) 왕국의 안티오쿠스 1세(Antiochus Ⅰ theos)의 무덤과 신전 유적지에서도 확인된다. 이 왕국의 유적은 특이하게도 2천1 50m 높이의 네므룻 山(Mt. Nemrud) 정상에 있는 안티오쿠스 1세의 무덤을 중심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네므룻 유적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네므룻 산 유적Ⅰ> <네므룻 산 유적Ⅱ>
코마게네 왕국은 기원 전 80년에서 기원 후 72년까지 터키 동남쪽 아드야만을 중심으로 성립되었던 고대국가로 알려져 있다. 어머니인 라오디케(Laodike)로부터 알렉산더 대왕의 피를, 아버지 미트리다테스(Mithridates)에게서는 다리우스 1세(Darius Ⅰ)의 피를 물려받은 안티오쿠스 1세(Antiochus Ⅰ theos)는 네므룻 山을 중심으로 자신이 만든 종교를 문명화된 세계 모든 곳에 퍼져 나가기를 원했다고 한다. 따라서 그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자신을 스스로 神(theos)이라 부르고, 한편으로 자신을 '어머니를 사랑하는 자'라고 부르며 어머니를 자신과 더불어 신들의 반열 사이에 두어 女神(thea)이라고 부르며 제우스의 좌측 편에 자신을, 제우스의 우측 편에 어머니인 女神(thea)를 앉혔다고 전한다. 결국 코마게네(Kommagene) 왕국은 그 위치가 터키의 동남쪽이어서 터키의 고대왕국으로 볼 수 있으나, 부계의 혈통이나 신화적 전승에 있어서 新앗시리아 왕국의 계승국으로 판단된다.
이렇게 보면 니므롯의 전승은 고대 근동아시아에 대단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어, 창세기 형성 이전에는 위대한 勇士로, 고대 新앗시리아 王國에서는 首都의 이름으로, 고대 코마게네 왕국에서는 신비로운 왕의 무덤과 제사유적을 모신 성스러운 산의 이름으로 생명력을 지속시키면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음이 확인된다고 하겠다.
헝가리의 신화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면, 민족기원을 니므롯에 두는 신화적 설정이 결국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니므롯 전승과 연결되고
있어서 머저르 족의 기원을 신화의 전승을 통하여 지속시키고 있다고 판단된다. 니므롯의 전승을 지속시키는 중심은 앗시리아系 민족들이었겠는데 신화적 전승이 대단한 전승력을 확보하여 스키타이나 이란계 북방유목민족, 그리고 터키系의 여러 민족들에게 퍼져나간 사정이 있었다고 추장할 수 있다. 머저르 족이 헝가리 자국 내 역사학자들의 견해대로 투르크系의 일파라고 한다면 그들은 코마게네 왕국의 일원으로 있다가 왕국의 멸망 이후에 유럽세계로 西進한 민족으로 추정하는 편이 가장 자연스러운 해석의 관점일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은 투르크系일 수도 있고, 앗시리아系일 수도 있고, 스키타이의 한 일파일 수도 있을 것이며, 투르크와 앗시리아와 밀접하게 연관된 훈 족의 일파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어느 한쪽이라고 단정해서 말하기 어렵다. 이런 사정은 헝가리 민족의 오랜 역사적 경험이 단순하지 않아서 주변 민족들과의 다각적인 접촉과 융화를 거쳤기 때문이고 헝가리라는 국가를 성립시킨 세력들이 하나의 민족이 아니라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겠다.
4. 결언에 대신하며
헝가리 민족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있을 수 있다. 훈 족과 머저르 족이 별개의 민족이라고 하는 헝가리 자국 내의 역사학자들의 평가가 존중되어야 하나, 신화적 측면에서는 훈 족과 머저르 족이 동일한 혈통에서 기원한 점을 분명하게 확정하고 있어 둘 사이의 관계를 재확인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다.
훈 족과 머저르 족이 모두 스키타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이란계 북방 유목민족의 일파인 알란 족이 母系의 혈통으로 확정되어 있다. 또한 스키타이이든 알란 족이든 고대 앗시리아-바빌로니아와 문화적으로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헝가리 민족기원신화의 성격이 단순하게 해명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동방의 이민족이 유럽세계에 진출하여 국가를 성립시키고 지속시켜온 이면에 주변 민족들과의 관계가 중요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중세보편종교인 기독교의 磁場 안으로 자발적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판단된다. 기독교를 수용하면서 중세보편종교를 국교로 삼은 유럽의 다른 국가와 이질적이지 않은 점을 분명히 하면서, 한편으로 헝가리 민족의 오랜 역사적 경험을 투영하여 야벳과 니므롯의 혈통과 성격을 변화시켜 개별성을 드러내는 방식을 신화를 통해 구체화한 것으로 보인다. 훈 족과의 친연성을 유독 강조하는 신화적 발상은 주변 국가들과 자국 내의 귀족 세력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방편에 기인하는 것일 수 있고, 한편으로 훈 족과 머저르 족이 혈통적으로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역사적 사실을 반영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어느 쪽이 타당한지는 단언할 수 없으나 적어도 이런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유연한 접근태도라 생각한다.
동방의 異民族으로서 유럽에 정착하여 생존을 지속하기 위하여 기독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성서에 등장하는 니므롯을 자신들의 조상으로 견인한 것은 이와 같은 복합적인 까닭이 있어서 그랬다고 생각된다. 헝가리의 오랜 역사적 경험을 근거로 판단하면 이민족의 정착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하나의 방편이 신화의 양상으로 나타났다고 판단되는 것이다.
특히 19세기에 들어 헝가리 내에서 이른바 近代民族主義의 발흥과 더불어 헝가리 민족만의 독자성을 널리 알리고 내부적 결속을 다지는
데에, 재편된 결과로서의 신화를 포함한 이전의 신화적 전통이 큰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수 있었고, 이에 헝가리 민족신화의 전통을 계승하는 움직임은 탄력을 받을 수 있었다고 판단된다.
헝가리 신화를 고찰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스키타이, 알란, 투루크와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신화적 연계성을 검토해야 할 필요성을 확인하게 되었다. 니므롯과 관련된 신화가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전승되었는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해야 할 것으로 본다. 니므롯의 신화가 메소포타미아 지역뿐만 아니라 주변의 여러 민족들에게 널리 전파되어 당시에 어떠한 양상으로 전승되었는지를 종교와 역사, 유적 등을 통하여 살피는 과제가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헝가리 신화는 민족의 기원과 대이동, 유럽 세계에서의 정착 등과 관련하여 다양한 신화적 층위를 지니고 있다. 신화의 형성과 재편의 양상이 비교적 선명하여 비교신화학의 중요한 매개적 역할을 담당할 만한 잠재력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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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난 왜 '머저리족'으로 보이는걸까(..)
성서랑 상당히 유사한 면이 있네요. 아니면 그대로 차용한 건지.
신앙과 민족성이 상반됨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으로 다양하게 융합을...음.. 역시 문화란 대단한 것 ;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