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기도
주님,
주님 백성의 간절한 기도를 자애로이 들으시어
저희가 해야 할 일을 깨닫고 깨달은 것을 실천하게 하소서.
제1독서
<주님께서 한나를 기억해 주셨기에 한나는 사무엘을 낳았다.>
▥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입니다.1,9-20
그 무렵 9 실로에서 음식을 먹고 마신 뒤에 한나가 일어섰다.
그때 엘리 사제는 주님의 성전 문설주 곁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10 한나는 마음이 쓰라려 흐느껴 울면서 주님께 기도하였다.
11 그는 서원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만군의 주님, 이 여종의 가련한 모습을 눈여겨보시고 저를 기억하신다면,
그리하여 당신 여종을 잊지 않으시고
당신 여종에게 아들 하나만 허락해 주신다면,
그 아이를 한평생 주님께 바치고
그 아이의 머리에 면도칼을 대지 않겠습니다.”
12 한나가 주님 앞에서 오래도록 기도하고 있는 동안에
엘리는 그의 입을 지켜보고 있었다.
13 한나는 속으로 빌고 있었으므로, 입술만 움직일 뿐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엘리는 그를 술 취한 여자로 생각하고
14 그를 나무라며,
“언제까지 이렇게 술에 취해 있을 참이오?
술 좀 깨시오!” 하고 말하였다.
15 그러자 한나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나리!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닙니다.
저는 마음이 무거워 주님 앞에서 제 마음을 털어놓고 있었을 따름입니다.
16 그러니 당신 여종을 좋지 않은 여자로 여기지 말아 주십시오.
저는 너무 괴롭고 분해서 이제껏 하소연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17 그러자 엘리가 “안심하고 돌아가시오.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당신이 드린 청을 들어주실 것이오.” 하고 대답하였다.
18 한나는 “나리께서 당신 여종을 너그럽게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는
그길로 가서 음식을 먹었다.
그의 얼굴이 더 이상 전과 같이 어둡지 않았다.
19 다음 날 아침, 그들은 일찍 일어나 주님께 예배를 드리고
라마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엘카나가 아내 한나와 잠자리를 같이하자
주님께서는 한나를 기억해 주셨다.
20 때가 되자 한나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한나는 “내가 주님께 청을 드려 얻었다.” 하면서,
아이의 이름을 사무엘이라 하였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1ㄴ-28
카파르나움에서,
21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22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23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소리를 지르며 24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25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26 더러운 영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27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라,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 하며
서로 물어보았다.
28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곧바로
갈릴래아 주변 모든 지방에 두루 퍼져 나갔다.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말에 힘이 있는 사람들의 특징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에 ‘권위’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권위란 ‘영적인 권위’임을 말하기 위해 더러운 영을 쫓아내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히틀러 같은 경우도 말에 권위는 있었습니다. 그것은 악령의 도움이었습니다. 말의 권위는 그 말이 미치는 영향력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죄를 없애시는 말씀입니다. 더러운 영을 이기는 권위가 아니면 말에서 좋은 권위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말엔 힘이 있었을까요? 말에 표징이 얹혔기 때문입니다. 말에 힘을 주는 성령님은 또한 병을 고치고 마귀를 쫓아내는 힘이시기도 합니다. 물론 성령께서 말에만 표징을 주시는 일도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경우입니다. 기적을 일으키지 못해도 그의 말에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같은 사람들은 내가 일으키는 외적인 표징들로 나의 말을 더 확신하게 됩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모델이 된 인물이 있습니다. 템플 그랜딘입니다. 그녀는 동물 과학 분야의 연구뿐만 아니라 자폐증 옹호자로서도 매우 영향력 있는 인물입니다. 템플 그랜딘은 어린 나이에 자폐증 진단을 받았고 의사는 이 아이가 말도 못 할 것이고 공부도 못할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그녀를 일반 학교에 보냅니다. 그녀의 어머니 믿음대로 템플은 말도 하고 대학도 들어갑니다.
그녀는 소가 압착 슈트에 안겨 있는 방식에서 영감을 받아 자폐인의 과민성을 진정시키기 위해 설계된 장치인 압착 기계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소의 움직임을 파악해 지금 북미에서 많이 사용하는 소 사육장을 설계하였습니다. 여러 책과 강연으로 그녀는 한 때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위 안에 들어가기도 하였습니다.
꼭 기적을 행해야만 표징이 아닙니다. 표징이란 성령께서 일으키시는 일인데 세상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줍니다. 이 놀라움을 주지 않으면서 말씀에 권위를 지닌 인물은 없습니다. 헬렌 켈러의 선생님인 설리번 선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 또한 지독한 어둠 속에서 실명까지 하고 독방에 오래 갇혀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어둠에서 나온 경험이 있기에 그 어둠에 있는 헬렌 켈러에게 말로써 영향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저의 유튜브 중 성체조배에 관한 것만 매우 조회수가 높습니다. 영향을 가장 많이 준 동영상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체조배를 통해 저 자신과 이웃이 변화되는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음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나의 말에 능력이 있음을 스스로 믿지 못하면 말에서 확신이 떨어집니다. 그러나 그 내용에 대한 표징을 나 자신이 보았을 때는 그 주제에 대해서는 말에 힘이 실립니다. 자신도 모르게 실리는 그 힘을 듣는 사람은 느끼고 반응하게 됩니다.
표징과 함께하지 않는 말의 권위는 없습니다. 공부가 부모 자신들은 변화시키지 못했으면서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한다면 아이들은 그 말을 잘 들을까요?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 먼저 그 말이 나를 변화시키고 이웃의 삶을 변화시키게 해야 합니다. 그것을 보면 내 말에도 힘이 실릴 것이고 권위도 실릴 것입니다. 표징과 함께 하지 않는 말에는 어떤 권위나 도 있을 수 없습니다.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우연히 옛날 사진 한 장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신학교 입학할 때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한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자그마치 35년 전의 사진입니다. 우선 지금과 달리 너무 젊었습니다. 그리고 나름 멋을 내려고 했는지 머리카락에 신경을 썼다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또 상당히 말랐습니다. 하긴 당시에는 60kg도 되지 않았습니다.
이때 가졌었던 생각도 떠올려졌습니다. 좋은 신부가 되겠다는 다짐,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겠다는 마음 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걱정도 많았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학교 공부에 힘들어했고, 열심히 공부해도 향상되지 않는 제 모습에 대한 실망이 너무 컸습니다. 저의 부족함을 많이 느꼈던 시간이었고, 그래서 과연 신부가 될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아마 신학생 때, 실패의 경험이 가장 많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수학과 과학을 좋아했던 제가 암기 중심의 철학과 신학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나름으로 열심히 하려고 했지만, 계속되는 좌절에 저의 미래를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실패의 내용이 사진 한 장에서 쫙 펼쳐졌습니다. 그렇다면 실패를 경험했던 그 시간이 잘못된 시간일까요? 만약 그 실패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입니다. 괴롭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지나고 나니 주님께서 얼마나 나를 사랑으로 이끌어 주신 것인지를 깨닫는 감사의 시간이었습니다. 또 주님께서 얼마나 대단하신지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부족했던 저도 바꿔 쓰시는 그분의 힘에 감탄하게 됩니다.
과거의 제 모습을 보며, 현재의 모습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포기, 좌절의 단어를 담아 사는 것이 아니라, 계속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 노력에 전지전능하신 주님의 사랑이 합해져서 과거보다 더 나은 나를 만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과 그 큰 힘에 대해 오늘 복음은 증언합니다. 회당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지요. 그는 “나자렛 사람 예수님,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마르 1,24)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에 대해 잘 모르던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과 달리 예수님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마르 25)라고 꾸짖으십니다. 더러운 영의 말은 아예 들으려고 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직 그분은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 자체에만 관심이 있으셨습니다.
더러운 영들도 복종할 수밖에 없는 주님의 권능과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 사랑을 전혀 보지 못해서 주님께 의탁하지 못하고, 자기 멋대로 쉽게 판단하고 스스로 좌절과 절망 속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의 명언: 이 세상 사람들 모두 잠들고 어둠 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 들 때 홀로 일어난 새벽을 두려워 말고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정호승).
사진설명: 예수님께서는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다.
첫댓글 오늘 말씀 읽기는 32-35장 입니다.
이사악의 나이는 백여든살이었다.이사악은 노인으로, 한껏 살다가 숨을 거두고 죽어 선조들 곁으로 갔다.
(35,39)
평생을 어릴적 제물로 바쳐질뻔한 트라우마 속에 살고, 레베카와 야곱에 속아 축복해주고..
조용히 지켜만보며 살았던 이사악의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