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현 장자의 일대기(李通玄 長者)
구례 화엄사(華嚴寺)는 불교의 죄상경인 화엄경(華嚴經)의 전체적인
구성과 내용을 어림할 수 있게끔 절의 규모가 짜여져 있다. 세상에서
놀라워 하는 윤회의 비밀이라고 증언하는 책자들의 그 실증적 유물로도
유명한 각황전(覺皇殿)은 지금도 우람하고 웅장하고. 불가사의한 대각
(大覺)의 세계를 열어보인 화엄경(華嚴經)을 알기에 앞서 앞에서 소개한,
화엄경(華嚴經)을 부처님 대신 설한 아난존자와 아울러 그 경론(經論)을
중국어로 집필하신 이통현(李通玄) 장자(長者)의 인간적인 면과 영적인
높은 차원을 알아둠이 좋겠다. 모든 경전속에 있는 뜻이, 어떠한 인간을
통하여 전해져 왔는가에 대하여 다소라도 알면 경전을 신뢰하고 이해
함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도말로 되어 있는 경전을 중
국어로 번역하여 그 뜻을 논(論)하고, 어려운 단어들을 풀이한 소(疎)를
쓰신 이통현 장자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자.
이야기는 당(唐)나라 현종(玄宗) 27년 3월 그믐께 있었던 일로써 시
작된다. 과객이 지팡이를 끌며 어깨에는 책상자를 잔뜩 걸머지고 어디
론가 걷고 있었더, 한참 후 걸음을 멈추고 당도한 곳이 태원우현(太原盂縣)
이라는 곳이었다. 객이 머물고 서 있는 마을의 이름은 대현(大賢)이라는
동네였다. 그 마을에는 고산노(高山奴)라고 하는 덕(德)을 베푸는 어진
분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항상 덕을 숭상하고 훌륭한 선비나 도사님들을
사모하여 기회만 있으면 그런 분들을 모셔다가 고경히 대접 하기를
게을리 함이 없었다고 한다. 이통현 장자가 바로 이 고산노의 집으로
들어섰다. 고산노는 차림이야 허름하지만 범상한 분이 아님을 한 눈에
직감하고 예(禮)로써 맞아들였다. 숱한 명인 달사들을 많이 접견해 온
고산노의 관찰력도 대단했던 모양이다.
기록에 의하면 장자의 키는 일곱척 두촌(七尺二寸)이며 광미(廣眉)라,
눈 길이보다 반달같은 눈썹이 더 길었고 눈빛은 맑고 푸르며 입술의
붉은 빛은 부처님의 입술과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긴 수염이 보기좋게
윤택하였으며 머리카락빛은 검푸르고 터럭 끝은 좌측에서 우측으로 누
웠으며 살결이 곱고 부드러워 아름답기 비할 데가 없었다고 한다. 또한
팔이 무릎밑까지 내려와 수하슬하상(手下膝下相)이며 긴 팔이 둥글고
곧아서 원직상(圓直相)이었다. 코는 높고 곧게 둥글어 고상한 기품이
수미산 같고 넓은 이마와 깨끗한 연꽃잎 같은 눈 모습하며, 사자의 턱,
사자의 어깨, 기품과 자태가 특이하여 묘색이 구족치 않은 곳이 없었다고
하니, 이장자(李長者)야 말로 전설적인 보살님들의 상(相)인 삼십이상
(三十二相)과 팔십종호(八十種好)를 두루 다 갖추신 분임을 기록을 통하여
어림할 수 있겠다.
머리에는 벗나무 껍질로 만든 관을 쓰고 삼베로 만든 옷을 이으시고
긴 하의와 너른 소매로 허리띠를 하지 않아 늘상 허리를 풀고 걸으시며
평소에는 신발을 벗고 다녔다고 전한다. 일상 생활에 있어서는 손님이
온다고 하여 마중하지도 않고, 간다고 하여 배웅하지도 않아 사문(寺門)
에서 쓰는 문자처럼 퍽이나 유유자적 하였던 모양이다. 모든 것을 인간의
천심에 맡기고 한없이 너그럽게 보아주고 조금도 남에게 이래라 저래라
충고하심이 없었다 하니, 실로 대 자유를 실천하신 분이시며 참으로 바른
깨달음을 얻으신 성자였던것 같다.
고산노는 거룩한 현자임을 전신으로 느끼고 지극한 정성으로 모셨다.
고산노 자신이 이러한 현서을 오래도록 흠모해 왔고 친히 봉야코자 함이
소원이었기에, 이장자를 별당에 특별히 모셔서 편안히 머무르게 하였다.
이장자의 식음은 속인과 달라서 아침 한 끼만 드시는데, 그것도 큰 대추
열개와 잣나무 잎사귀를 음건(陰乾)하여 가루로 만든 것을 섞어 떡으로
만들어 잡수셨다. 소일하심에 있어서는 일체 외인과는 사귀지 않고 문을
닫고 홀로 머무르기를 즐겼으며 글을 쓰는데 있어서 조금도 시간을
허송함이 없었다. 이와같이 3년 동안 고산노의 집에서 집필하시다가,
어느날 아침에 고산노의 집을 하직하고 무심한 표정으로 길을 떠나셨다.
그 길로 남쪽으로 50리를 가다가 마씨(馬氏)라는 사람이 경영하는
고불당(古佛堂)에 이르셨다. 장자께서 손수 고불당 곁에 토굴(土窟)하나를
얽어 만드시고 그 곳에서 단정히 앉아 고요히 침묵하시기를 십년(十年),
어느 날 다시 경서(經書)와 필수품을 챙겨 어디론가 길을 떠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