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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3/5 사순 제1주간 목요일
에스테르 왕비는 죽음의 위협을 느끼며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한다. 궁중 옷을 벗고 화려한 장식들을 떼어 낸 뒤 재를 몸에 뿌렸다. 그러고는 고뇌와 슬픔으로 주님께 기도했다. 자신과 동족 이스라엘의 구원을 청하는 기도였다(제1독서). 간절한 기도는 주님께서 들어주신다. 많은 이들은 문을 두드리다가 중간에 그만둔다. 인내의 부족이다. 부모는 자식의 애원을 모른 체하지 않는다.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도 우리의 청원을 외면하지 않으신다. 인내심을 갖고 기도하면 반드시 들어주신다(복음).
<주님, 당신 말고는 도와줄 이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을 것이다.>
게으른 아들을 둔 부모가 있었습니다. 고생하며 재산을 모았건만 아들은 일을 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는 아버지께 말합니다. “그렇더라도 이제는 재산을 물려줘야 하지 않겠어요?” 아버지는 답합니다. “자기 힘으로 돈을 벌기 전에는 재산을 주지 않을 작정이오.”
◆“남자와 여자는 서로에게 바라는 바가 무엇일까?” 내가 어느 모임에서 이렇게 물었던 적이 있다. 참석자들은 대개 서로에게 인정과 신뢰를, 또 관심과 이해받기를 원한다고 대답했다. 오늘 복음에서 “남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는 말씀도 각 사람 안에 있는 존엄성, 거룩함에 대한 인정과 존중을 담은 시선과 태도를 의미한다. 배미애 수녀(착한목자수녀회)
3월 5일 사순 제 1주간 목요일 - 마태오 7,7-12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을 것이다." <다급해지다보니> 요즘 한 며칠 아이들을 위해 집중적인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평소에 "열심히 사는 게 기도지", 그게 아니면 "고통을 견뎌내는 것이 기도지"하면서 기도를 소홀히 했었는데, 다급해지다보니 어쩔 수 없이 가장 원시적인 청원기도를 하게 됩니다. "꼭 돌아오게 해주세요.", "하느님 이 부탁은 꼭 들어주셔야만 하겠습니다." 등등 어린애가 떼를 쓰듯이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순간, 참으로 묘한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자신의 건강을 위한 기도, 제 성취를 위한 기도, 나 자신의 유익을 위한 기도는 제대로 먹혀 들어간 적이 거의 없었는데, 타인을 위한 기도, 특히 방황하는 아이들이나 절박한 이웃을 위한 기도는 거의 90% 이상 OK되는 특별한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기도하는 자세에 대해서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청 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8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늘 흔들리는 우리에게 참 으로 큰 위로와 희망을 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도하기에 앞서서 무엇을 구할 것인가를 식별하는 일은 기도에 못지않게 더 중요한 일인 듯싶습니다. 적어도 너무 터무니없는 청원기도를 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로또 복권을 한 장 샀으면 그저 한번 추첨시간의 그 짜릿함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사야지, 꼭 1등에 당첨되도록 기도하기 위해서 산다면 너무나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이겠지요. 하느님을 마치 무당 대하듯이 대해서도 안 되겠습니다. "어느 쪽 땅이 빨리 그린벨트가 풀릴 것인지 하느님, 족집게로 집듯이 알려 주십시오"와 같은 기도를 드린다면 하느님께서 얼마나 처신하기 곤란하시겠습니까? 하느님은 누구 말은 들어주고 누구 말은 외면하는 편애의 하느님이 절대로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느님 앞에 드리는 기도가 보다 보편적인 기도, 보다 이타적인 기도, 보다 폭넓은 기도가 되면 좋겠습니다. 나 자신의 유익이나 내 가족의 안녕도 중요한 기도거리겠지만, 중동의 평화를 위한 기도, 아프리카의 난민들을 위한 기도, 이 땅의 모든 고통 받는 청소년들을 위한 기도, 아직도 사망여부조차 확인 받지 못해 애태우고 있는 대구 참사 실종자 가족들을 위한 기도 등, 세상과의 연대를 위한 기도에도 게을리 하지 않는 우리의 기도이면 좋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가톨릭성가 40번 / 구하시오 받으리라
2009년 3월 5일 사순 제1주간 목요일 Do to others whatever you would have them do to you.
(Mt.7.12) 제1독서 에스테르기 4,17(12).17(14)-17(16).17(23)-17(25)
복음 마태오 7,7-12
철학과의 두 학생이 심하게 다투고 있었습니다. 평소에도 사이가 좋지 않아 곧잘 다투던 두 사람이었지요.
그날은 바람이 많이 불던 날이었는데 철학과 학생답게 특이한 문제로 논쟁이 붙은 것입니다. 두 사람은 은행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은행나무의 가지가 흔들리자 그 중 한 학생이 말했어요. “바람이 세차게 부니까 나뭇가지가 움직이는구나.” 이때다 싶어 옆에 앉아 있던 친구가 반박을 했습니다. “넌 그것도 모르니?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 바람이 움직이는 거라고.” “무슨 소리! 그건 바람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거야, 이 바보야.” 양보 없이 서로가 옳다고 우겨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같이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던 다른 친구들까지도 그 논쟁에 가세했습니다. 여러분들은 누구의 의견이 맞는 것 같습니까?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것일까요? 아니면 바람이 움직이는 것일까요? 이 문제에 대한 말다툼으로 언성이 점점 높아지자 지나가던 교수님께서 자초지종을 물었고, 두 학생은 서로가 옳다면서 시비를 가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나뭇가지가 움직이건 바람이 움직이건 그건 살아가는데 별 중요한 일이 아니야. 삶에 있어 중요시 여겨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지금 자네들처럼 자신만 옳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마음의 움직임이야. 그 바람이 너무 세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 십상이지. 중요한 것은 언제나 자신들의 마음이 어느 방향으로 부는가 헤아려 보는 일이지.” 교수님의 말씀처럼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생각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것.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의 나라인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함께 어울려 살기보다는 자기의 뜻만을 주장하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세요.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고, 상대방의 뜻대로 행동해주는 것. 이것이 바로 사랑이며,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인 것입니다. 그런데 내 자신은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인 사랑을 얼마나 실천하고 있었을까요? 이 은혜로운 사순시기에 우리 모두 깊이 반성해 볼 문제입니다. 설사 당신의 친구가 당신을 배신하는 행동을 해도 당신은 친구의 욕을 남에게 해서는 안 된다. 오랫동안의 우정이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싱) 소심한 정치가(‘행복한 동행’ 중에서) 어떤 호텔에 한 세일즈맨이 들어왔다. 그가 문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고 지배인이 말했다.
“손님, 빈 방이 딱 하나 있기는 하지만 내드리기가 곤란합니다.” “이유가 뭐요? 왜 방이 있는데 줄 수가 없다는 거요?” 지배인은 말했다. “바로 밑의 방에 거물급 정치가가 머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신경이 아주 예민해서 작은 소리에도 화를 낸답니다. 만약 손님이 그 방에서 어떤 소리라도 낸다면 그는 법석을 떨 겁니다. 그러니 다른 호텔을 찾아보세요.” “다른 곳을 모두 둘러봤지만 빈 방이 없어요. 나는 하루 종일 시내에 나갔다가 밤에나 돌아와 잠만 자고 바로 떠날 테니 걱정할 것 없소. 아무 소리도 안 내겠다고 약속하지요.” 그는 간신히 방을 얻었다. 그리고 시내에 나가 일을 보고 밤중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녹초가 된 그는 의자에 걸터앉아 한쪽 신발을 벗다가 그만 마룻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신발은 ‘텅!’ 소리를 내며 마룻바닥을 울렸다. 순간 그는 아래층에 있는 정치가에게 방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주 조심스럽게 나머지 신발을 벗어 바닥에 소리 없이 내려놓았다. 그리고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갑자기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방문을 여니 그 거물급 정치가가 몹시 화가 나서 서 있는 게 아닌가. 그는 당황해서 물었다. “제가 잠결에 무슨 소리라도 질렀나요?” 그러자 정치가는 말했다. “그게 아니라, 도대체 한쪽 신발은 어떻게 된 거요? 나머지 한쪽 신발이 떨어져야 잠을 잘 거 아니오? 나는 한 시간 동안이나 그 소리를 기다렸소!” 정치가의 말에 세일즈맨은 속으로 웃으며 생각했다. ‘쯧쯧, 이 정치가에 비하면 마음 놓고 푹 잠들 수 있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곧 떨어질 거요.” The Swooning of Es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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