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축구의 거장 보비 롭슨 경(74)은 지난 14일 영국 신문 ‘선데이 메일’에 특별한 칼럼을 실었다. 그는 계약기간 5년에 총수입 1억 2800만 파운드(2343억원), 다시 말해 연봉 463억원, 매주 9억원, 하루 1억 3000만원, 한 시간에 540만원을 받는 고액 몸값에 미국 LA갤럭시로 이적한 데이비드 베컴(32·레알 마드리드)의 화려한(?) 발걸음을 ‘전진’보다는 ‘후퇴’로 총평했다.
“베컴은 미국행을 통해 ‘수지맞는 절반의 은퇴’(Lucrative Semiretirement)를 택했다. 분명한 것은 베컴이 더이상 더 높은 수준에 도전할 욕구나 동기가 없다는 것이다.”
베컴의 결정이 반은 은퇴를 뜻한다는 롭슨 경의 말은 다소 섬뜩하게 느껴진다. 한편으로는 축구선수로서 영원히 상징화되기를 고대했던 팬들의 바람을 그대로 대변하는 듯하다. 실제로 베컴의 결정을 둘러싼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것도 맞다.
그가 미국행을 결정한 뒤 내세운 ‘미국 축구의 흥행몰이’에 대한 기대도 장밋빛으로만 채색되지는 않는다. 일부 언론은 미국 프로축구 명칭인 ‘메이저리그 사커’(Major League Soccer) 대신 ‘메이저리그 샤커’(Major League Shocker)로 빗대 표현하며 베컴과 사인한게 아니라 베컴 브랜드와 계약했다고 비아냥댔다. 펠레, 프란츠 베켄바워, 조지 베스트, 그리고 월드컵도 실패했던 미국 축구의 부흥을 베컴이 이끌어낼 지가 의심이라는 말도 들린다.
또한 날카로운 프리킥과 크로스만 내세울 수 있는 베컴이 축구 발전 측면에서도 팀 전술과 기술을 변화시킬 수 있는 파급력을 갖췄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오히려 높은 몸값 때문에 다른 선수들의 시기와 질투를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내놓았다.
베컴은 레알 마드리드와 2년 계약에 합의해 놓고도 주전 자리를 보장해 달라며 실랑이를 벌이는 와중이었고 또 이탈리아 세리에A의 AC밀란과 인테르 밀란과도 얘기가 오갔던 상황에서 미국으로 행선지를 급선회했다. 미국행을 통해 30대를 넘어서 은퇴로 가는 길의 연착륙을 택했다. 유럽 무대에서 족히 2~3년은 뛸 수 있지만 안정적인 돈이 확보되고 사생활이 보호되는 미국에서 마무리를 하겠다는 의중이다.
물론 베컴이 선수 몸값을 통해 가치를 발현하는 프로스포츠의 생리상 지극히 충실한 계산을 통해 미국행을 결정한 것에 잣대를 갖다대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어쩌면 그는 점점 쇼 비즈니스화되고 있는 프로스포츠의 판도를 꿰뚫는 결정을 내렸다. 그는 새로운 도전(Challenge)보다는 하나의 선택(Choice)에 초점을 맞췄을 뿐이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루이스 피구(35)가 이탈리아 인테르 밀란을 떠나 사우디아라비아의 알이티하드를 선택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