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간 옛날 우리들 모두 반듯한 직장이 있었고 경기도 좋았을 적엔 카운터앞에서 술값이나 식사대를 서로 자기가 내겠다고 다투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러나 거의 모두가 직장에서 은퇴한 요즈음엔 "제발 내가 돈좀 내게 해주라."는 애걸조의 발언은 그 누구의 입에서도 듣기 힘든 말씀이 되었다. 사실 이런 현상은 극히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현상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이 글의 제목도 내가 여러분에게 할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일부 인사들이 극히 유감스럽게 생각하겠지만 말이다.
월말이 되어 아파트관리비와 공과금을 내려고 했더니 집전화요금 청구서가 눈에 띠지 않는다. 와이프가 지로용지를 받은 기억이 없다고 하면서 전화회사에 전화를 건다. 상담원에 연결되는 라인을 지시에 따라 눌러대지만 마지막에 들리는 대답은 지금 빠빠서 받을 수 없다는 소리이다. 만약 단 번에 상담원에 연결된다면 전화를 끝낸 즉시 호운이 사라지기 전에 나가서 복권을 구입하는 편이 좋다. 볼이 부운 주부는 전화회사를 바꾸어 버려야겠다고 으르렁댄다.
나는 있는 청구서들만 챙겨서 동네 은행에 나가 요금을 납부한다. 전화요금은 어떻게 내야하나라고 생각하니 찜찜하다. 이런 일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몇 달전에도 케이블텔레비젼 요금을 못내서 고생을 좀 했다.
나는 와이프보단 IT시대에 잘 적응한 문명인이므로 무턱대고 상담원을 찿지 않고 청구서재발급으로 통하는 번호를 누르고 나니 고객님의 주민등록번호를 누르랜다. 아차! 누구 이름으로 신청했었지? 전화를 끊고 확인을 해보니 둘째 이름으로 신청되어 있다. 주민등록등본을 찿아 번호를 확인하고 다시 漢中을 향했다. 저쪽 여자 목소리의 기계가 지시하는 대로 보턴을 누르니 마지막으로 "청구서를 보낼 주소는"이라는 말이 들린다. 이게 무슨 지시인가하고 기다렸더니 잠시후 버즈음이 나면서 통화가 끝나고 만다. 약간 이상하지만 어쩧거나 다시 보내라는 뜻은 전달됐을 테니 됐다라고 생각하고 잊어버렸다.
그런데 그날 밤 잠이 들기 전 이런 저런 잡생각이 오락가락하는데 전화의 그 지시가 다시 생각났다. 혹시 그 말은 내가 그 물음에 답하여 내 주소를 말하고 그것이 녹음이 되는 것은 아닐까? 아니 그렇다면 "청구서를 보낼 주소를 말해주세요."라고 지시를 해야지 갑자기 무슨 괄호넣기냐? 여하튼 다음날 아침 전화를 다시 걸어 지시대로 보턴을 한 차레 누르고 마지막엔 내 주소도 말했다.
그래놓고 아침을 먹으며 경위를 가족에게 보고하자 큰 놈은 무언가 오류가 생겼을거라는 의견이고, 가만히 듣고 있던 와이프는 남편이 하는 대로 놔두었다간 케이블티브이가 보내는 중국무협드라마를 시청못하게 되기 딱 알맞겠다라고 생각했는지 케이블티브이회사에 전화를 걸어 수 차례 시도끝에 통화중이라는 완강한 장벽을 뚤고 상담원과 대화를 하는데 성공했다. 주부가 확인해 보니 청구서재발급신청은 되어 있지 않았다. 문명인인 내 체면이 여지없이 구겨졌다. 주부는 으리딱딱거리는 어조로 청구서를 즉시 재송부하라고 명령하고 납부기한이 넘었지만 연체료도 받지 말라고 요구해서 상대방의 동의를 얻어냈다. '몇 푼된다고 저러나?'
며칠후 나는 재발급된 청구서를 받았다. 연체료가 부가된 청구서였지만 아내에겐 청구서가 왔다고만 말하고 요금을 냈는데 며칠후 재발급된 청구서가 또 도착했다. 이번엔 연체료가 부가되지 않은 청구서였다. 요 청구서는 아내가 요구해서 보낸 것임에 틀림없는데 그러면 앞에 온 것은 누가 신고한 걸까? 혹시 내가 신고한 것이 제대로 작동한 것은 아닐까?
자동이체를 하도록 하면 이런 번거로움이 없을 줄은 알지만 아직 해킹에 의한 금융사고에 대한 방어책이 완비되지 않은 현재수준의 기술에서 자동이체란 어째 곳간키를 남에게 맡긴 듯한 찜찜함이 느껴져 이렇게 구닥다리 방법에 의존하고 그리하다보니 돈을 못내서 안타까와 하게된다. 그런데 과연 해킹에 대한 완전한 방어가 가능하기는 한건가? (끝)
첫댓글 2달 마다 내는 상.하수도 요금을 지지난달에 은행 창구에서 이체신청을 했으니 자동으로 되겠지 생각하고 두었다, 체납청구서와 함께 단수경고를 받았다. 문서 기록은 없고 내 기억이 시원치 않으니 창구에서 여직원과 시비를 가릴 수도 없고. . .
자동이체 신청하면 신청서 사본을 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