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마타
-늘임과 멈춤 사이
이은숙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을 향해 가는 순례길
오선지 위 활보하는 음표들이 아침을 깨운다
소리 좀 내
음들은 호흡이 짧아
모든 걸 내려놓은 듯 묵직한 저음은 원 박자보다 두세 마디 이상 늘어지지
불규칙 홀수 마디
나 운동 좀 해
자신감에 찬 이들은 금세 다리 이상이 와 중간에 길을 포기해야지 돼
관광객이 아닌 순례자의 핵심은 완주 한다는 목표를 내려놓는 것이라고 했다.
오선지 위 소나기처럼 막 퍼붓듯 걷다가는 순례길에 채 스며보지 못하고 사라져
그만, 그만인 듯 걸어야 순례길에서 악센트를 가져갈 수 있지
a는 5회 b는 3회
곡이 끝나도 악센트는 살아 있어
즐거운 듯 급히 밀고 나가는 a 느려지는 b의 만류 그리고 오선지의 작용
센 마디, 여린 마디, 낱낱의 마디는 다른 무게를 가지지
언제나 둘째 마디가 첫째 마디에 비해 무거운 이유는
둘째 마디가 항상 악구를 일단락 짓기 때문이야.
페르마타
특정 음표 위에서 악곡의 감정을 생각하는 음의 길이를 본 적 있지
어디에 위치하는지에 따라 여기서 끝 혹은 두 배 세 배 늘어질 것
끝나지 않고 오래도록 늘어질 것 같던 음이 겹세로줄 위에서 그만 끝내라고, 멈추라고 하는데 그럴 땐 자클린의 첼로 음이 떠올라, 버리지 않기 위해 나를 버리는 것이 나을까?
나를 버릴 수 없으면 어떻게 하지? 자클린의 첼로는 사람 목소리처럼 엉엉거리는데.
곡이 표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박자의 운동을 잠시 멈추고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는 기호는 없어
a는 5회 b는 3회
주의할 것, a가 서로 다른 마디에서 선율이 전혀 다름에도
(첫째 마디에서 도약하고 둘째 마디에서 하행)
특색을 가진 악센트와 음의 반복
즐거운 듯 급히 밀고 나가는 우세한 선율 a, 그리고 만류하듯 느려지는 b
오선지 위에서 낱낱의 마디는 서로 다른 무게를 끌고
겹세로줄 위에서 아침을 맞이한다.
웹진 『시인광장』 2024년 8월호 발표
이은숙 시인
2017년 계간 <시와산문> 신인문학상 으로 등단. 현재 계간 <시와산문> 편집장. 도서출판 다시문학 편집위원. 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