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샹피오나 리그 1 20라운드가 진행된 현재 17위를 달리며 클럽 창단 이래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있던 프랑스의 명가 파리 생제르맹이 결국 기 라콤(Guy Lacombe, 51) 감독을 전격 경질하는 한편 그의 후임으로 전 레인저스, 올림피크 리옹 사령탑을 지낸 폴 르 갱(Paul Le Guen, 42) 감독을 임명하였다는 소식이다. 팀 성적이 곤두박질을 치던 이때까지 라콤 감독의 유임을 지지하여왔었던 구단주 알랭 케이작은 그러나 지난 발랑시엔 戰 패배를 직후로 구단 대주주들의 압력이 가해지자 끝내는 라콤을 처단하는 ‘극약 처방’을 단행하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PSG의 90년대 황금기를 이끌었던 모기업 카날 플뤼(Canal Plus)가 구단 지분을 해외 콘소시엄에 매각한 뒤 ‘새로운 시대’를 표방하며 야심 차게 2006/07 시즌을 맞이하였었던 PSG. 그러나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한가운데서 이제는 1부 리그 잔류를 위해 처절한 생존 경쟁을 벌여야만 할 PSG가 과연 새로운 감독과 함께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 벌써부터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끝내 실패로 돌아간 PSG의 「Méthode Lacombe」
‘명가 부활’의 사명을 짊어지고 지난 2005년 12월, 로랑 푸르니에의 뒤를 이어 PSG의 제 21대 감독으로 혼돈의 한복판에 자리하였던 라콤 감독. 칸, 갱강, 그리고 소쇼와 같은 중소규모 클럽들에서 어린 인재들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한편, 특유의 강단으로 선수단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그간 명망 받는 지도자로 프랑스 내에서 경력을 쌓아오고 있었던 그의 부임은 당시 챔피언스 리그 출전권 획득을 갈망하고 있던 PSG에게 있어 ‘검증된 실험’과도 다름없이 여겨졌다.
하지만 선수 개개인을 중시했던 전임 푸르니에의 지도 철학과는 달리 ‘단체주의’를 표방하며 절대적인 통제력을 발휘하려 했던 라콤의 독선적인 지도 방식은 머지않아 거부감을 일으키며 팀내 스타 선수들과 충돌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PSG의 로쥬 훈련장(Camps des Loges)에는 단 한시도 바람 잘들 날이 없었다. 프랑스 프로축구 역사상 초유의 ‘해고 사건’을 일으키며 추하게 양자 관계를 청산했던 비카쉬 도라수와의 힘겨루기를 정점으로 하여 그 동안 라콤 감독은 제롬 로텡, 마리오 예페스, 보나방튀르 칼루를 비롯한 팀내 고액 임금 선수들과 극심한 갈등을 겪어왔는데 이럴 때마다 그는 가차없이 ‘2군 통보’라는 방법을 꺼내 들어 상황을 타개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선수들의 불만을 더욱 가중시키는 결과만을 낳았다. [사진: 라콤의 '철권 통치'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전술적인 운용에 있어서도 라콤 감독은 그 동안 수 많은 비판에 노출되어왔다. 4-2-3-1, 4-4-2, 4-3-3, 5-4-1, 그리고 가장 최근에 선을 보였던 4-3-1-2에 이르기까지 라콤 감독은 그 동안 여러 가지 도안을 바탕으로 지난 1년간에 걸쳐 전술적인 밑그림을 그려왔으나 PSG는 오늘 이때까지도 일관성 없는 포메이션과 함께 매 경기를 치러왔었다. 라콤 감독이 동일한 선발 라인업을 가동한 사례가 올 시즌 단 한차례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러한 사실을 가장 잘 뒷받침하는 단서. 원정경기에서 많게는 6명의 수비수들을 그라운드에 배치했던 극단적 수비 지향 전술 역시 팬들의 환영을 받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선수들의 기용 문제에 있어서도 라콤 감독의 선택은 많은 의문을 자아내었는데 센터백 출신의 다비트 로제날은 시즌 초반 수비형 미드필더로 경기에 출전해야 했으며 중앙 미드필더를 본직으로 삼고 있는 에두아르 시세의 경우 한 동안 베르나르 망디를 대신해 라이트백의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왼발잡이 로텡을 오른쪽에서, 오른발잡이 칼루를 반대로 왼쪽에서 목격하는 일 또한 비일비재하게 늘어났으며 대개의 경우 이러한 실험은 역효과를 불러들이곤 했다. 이러한 극단적인 전술 운용 역시 기존의 선수들이 제 역할만 이행해주고 있었다면 애당초에 존재하지 않았을 터, 이는 곧 라콤 감독이 지난 여름이적시장에서 돈을 허비하였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라콤 감독은 지난 여름이적시장에서 6명의 선수를 영입하는데 총 1,100만 유로 가량의 금액을 지출하였지만 이 중에서 제 몫을 다하고 있는 선수는 오직 하나뿐으로, 그 역시 자유계약으로 영입에 성공했던 골키퍼 미카엘 랑드로에 지나지 않는다. 경기에 출장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알베르 바넹, 다비 엘레빅, 사미 트라오레 등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많은 전문가들은 적재적소의 전력보강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 시즌을 맞이했던 라콤 감독의 판단 미스가 결정적인 패착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지난 4월 더비 라이벌 올림피크 마르세유를 상대로 드라마틱한 프랑스컵 우승을 일구어내며 한때 샹젤리제 거리를 팬들의 환희 속에 물들이기도 했었던 라콤 감독은 그러나 뒤이은 성적부진, 관중 폭동, 서포터 총격 사건 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팬들의 신망을 잃고 끝내는 «Lacombe, démission!» (“Lacombe, out!”) 이 나날이 울려 퍼지던 파르크 드 프랭스 경기장을 뒤로 한 채 전임자들과 마찬가지로 클럽의 문을 나서게 됐다.
르 갱, ‘The Messiah’?
PSG의 90년대 전성기를 주도했던 수비형 미드필더에서 이제는 지도자로 친정팀의 제 22대 사령탑을 역임하게 된 르 갱 감독은 그러나 취임사를 통해 “자신은 그 어떠한 묘책도 지니고 있지 않으며, PSG가 1부 리그 잔류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하나되어 팀을 재건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하지만 새로운 감독의 부임은 PSG에게 있어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변혁을 가져올 수 있다.
무엇보다도 르 갱이 지휘봉을 잡음으로써 PSG는 이제 흩어진 선수단의 재정비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는데, 라콤 전 감독과 상극을 달리며 좀처럼 출장기회를 엿보지 못했던 선수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제 다시 르 갱의 휘하에서 ‘새로운 동기’를 부여 받고 팀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전망. 코칭 스태프와 불화를 겪으며 한 동안 이적설에 휘말렸던 로텡의 경우 역시도 르 갱 체제 하에서 다시 한 번 핵심전력으로 간주를 받을 가능성이 큰 인물이다. [사진: 르 갱의 부임 소식을 가장 반가워하고 있을 인물, 제롬 로텡.]
르 갱이 리옹, 레인저스와 같은 명문클럽들을 두루 거치며 ‘큰 선수’들을 다루어본 경력이 있다는 점 또한 긍정적인 요소. 라콤의 경우 부임 당시 PSG와 같은 소위 ‘대형 클럽’에서의 지도 경력이 일천하였지만, 르 갱만큼은 이 레벨에서 검증 절차를 밟은 인물이라고 봐도 큰 무리가 따르지 않는 까닭이다. 소쇼 시절의 경험을 떠올리며 선수들에게 호통을 치기에만 급급했던 라콤의 모습은 분명 PSG가 원하는 감독상(像)과 거리를 두고 있었던 게 사실. 이미 바히드 할리호지치를 통해서도 이와 같은 실패를 한 차례 경험하지 않았던가.
혼돈의 한복판에서 구세주와도 같이 강림하게 된 르 갱이 과연 쓰러져가는 명문을 어떻게 재건할 수 있을 것인지, 벌써부터 그 귀추에 파리지앙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기 라콤 (2005/12~2007/1) - Assessment
- 리그 1: 38전 8승 14무 16패 - 유럽 대항전: 6전 2승 3무 1패 - 프랑스컵 우승 (2006) - 리그컵 16강 (2007)
◈ 폴 르 갱 (2007/1~) - Managerial Career
- 2002: 트로페 샹피옹 우승 (리옹) - 2003: 르 샹피오나 우승 (리옹) - 2003: 트로페 샹피옹 우승 (리옹) - 2004: 르 샹피오나 우승 (리옹) - 2004: 트로페 샹피옹 우승 (리옹) - 2005: 르 샹피오나 우승 (리옹)
첫댓글 무링요 딩크인줄 ㅋ
패장이라고 했는데 무링요가 떠오르는건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