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바야흐로 무더위를 식히려고 빙수를 찾는 계절입니다.
장맛비 속에 왠 빙수 이야기냐고 하실지 모릅니다만...
‘방정환씨는 빙수를 어찌 좋아하는지 여름에 빙수점에서 파는 빙수 같은 것은 보통 대여섯그릇은
범 본 사람이 창구녕감추듯 하고...’ 월간지 ‘별건곤’(1931년4월호)에 난 기사를 보앗기 때문입니다.
소파 방정환(1899~1931)은 소문난 빙수광이었습니다.
잡지 ‘어린이’를 내던 개벽사에서 함께 낸 월간지 ‘별건곤’에 ‘빙수’라는 제목으로 두차례나 글을 남겼을 정도였지요.
‘사알ㅡ사알 갈아서 참말로 눈같이 간 고운 얼음을 사뿐 떠서 혓바닥위에 가져다놓기만 하면
씹을 것도 없이 깨물것도 없이 그냥 그대로 혀도 움직일 새 없이 스르르 녹아버리면서
달콤한 향긋한 찬 기운데 혀끝이 환ㅡ해지고 입속이 환ㅡ해지고 머리속이 환ㅡ해지면서
가슴속 뱃속 등덜미까지 찬기운이 돈다.’(1928년 7월호)
수다스럽게까지 보이는 소파의 빙수예찬입니다.
‘빙수는 혀끝에 녹고 녹이거나, 빙수물에 혀끝을 담그고 시원한 맛에 눈을 스르르 감으면서 기뻐하는
유치원 아기들같이 어리광피우며 먹어야 참맛을 아는 것이다’라는 묘사에서
천진난만한 아이 같은 소파의 성정이 느껴집니다.
소파는 이글에서 ‘한 그릇먹고는 반드시 또 한 그릇을 계속하는 것이 버릇이 됐다’면서
‘몇 그릇이든지 자꾸 이어 먹을것같다’고 아쉬워합니다.
‘여름에 얼음을 먹는다는 것은 지금 와서 퍽 평범한 이야기지오만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우리 인류가 여러 천년 동안 여러 가지의 격난을 걲어온 것이랍니다.’
빙수가 유행하던 1930년대엔 ‘빙수의 내력’을 소개하는 기사가 실렸다.(1936년7월10일 ‘빙수의 내력을 들어보소!’)
조선에서도 서빙고가 있었지만,
‘한껏해야 궁중 즉 대궐안에서나 자시었고, 좀 더 내려와야 높은 벼슬아치들이나 자시었지
지금처럼 누구나 먹게 된 것이 아니다’고 했습니다.
이 기사는 아이스크림과 아이스크리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아이스크리’는 마구 만들어 싸게 파는 것(아이스케키)이고 ‘아이스크림’은 고급 양식점에서 모양있게 만든 것이랍니다.
그는 ‘딸기빙수’파였다네요.
‘빙수에는 바나나물이나 오렌지물을 쳐먹는 이가 있지만은
얼음맛을 정말 고맙게 해주는 것은 새빨간 딸기물’ (별건곤 1929년 8월호)이라고 썼습니다.
‘눈이 부시게 하얀 얼음 위에 유리같이 맑게 붉은 딸기 물이
국물을 지을 것처럼 젖어있는 놈을 어느때까지던지 들여다보고만 있어도 시원할 것같은데
그 새빨간데를 한술 떠서 혀 위에 살짝 올려놓아보라.
달콤한 찬 전기가 혀끝을 통하야 금시에 등덜미로 또르르르 달음질해 퍼져가는 것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분명히 알 것이다.’
소파가 온 몸으로 빙수의 맛을 느끼며 쓴 ‘딸기 빙수’ 리뷰입니다.
‘써억써억 소리를 내면서 눈발 같은 얼음이 흩어져나리는 것을 보기만 하여도 이마의 땀쯤은 사라진다.’
방정환은 앞의 딸기빙수 예찬에서
‘사랑하는 이의 보드라운 혀끝 맛 같은 맛을 얼음에 채운 맛! 옳다, 그 맛이다.
그냥 전신이 녹아 아스러지는 것같이 상긋하고도 보드랍고도 달콤한 맛이니.’라고도 썼습니다.
김동식 인하대 국문과 교수는
‘빙수와 에로티시즘을 연결지을 정도로 섬세하면서도 격렬한 취향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으로 방정환을 평가했는데요.
덧붙이자면, 앞의 월간지 ‘별건곤’은 소파가 설탕도 무척 좋아했다고 소개했습니다.
’15전짜리 냉면에 10전짜리 설탕 한 봉을 넣지 않고는 잘 못자신다.’
한때 어린이나 젊은이중에도 우유나 콜라에 밥말아먹는 기호를 가진 것처럼,
소파는 냉면에 설탕을 봉지째 넣어먹는 독특한 취미를 가졌던 모양입니다.
내일이 초복날이니 더위를 식힐 요량으로 가게에서 파는 팥빙수 하나라도 드시면서
소파 방정환 선생의 빙수 사랑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우리말123^*^드림
첫댓글 몸속으로 얼음이 들어가는 그 서늘한 느낌!
잠자다가 더울 땐, 팥빙수 먹는 상상만으로도 견딜만해질 것 같습니다.
그런데 벌써 초복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