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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6:1-28절) 진정한 천국잔치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갈릴리의 굶주린 사람들에게 진정한 천국잔치를 베풀어주셔서 배부르도록 실컷 먹이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호숫가에서 말씀을 가르치실 때,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오천 명 이상 되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따라다니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천국잔치를 베푸시려고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미리 사람들을 계산(計算)도 않고, 또 음식을 준비하시기 위해 시장을 봐서 음식재료를 준비하는 일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 예수님께서는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다가 제자들과 몇 마디 나누신 후에 한 소년이 바친 작은 음식 즉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즉석에서 잔치를 베푸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잔치는 기적(奇蹟)의 잔치였습니다. 보통 우리들이 결혼식이나. 회갑 잔치에서 경험하는 것과 같은 다양한 맛있는 음식이 있거나. 술이 있는 잔치가 아니라, 예수님의 기적 자체가 잔치의 주 메뉴(menu)였던 것입니다.
생각지도 못했다가 갑자기 예수님의 기적의 잔치를 체험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기적이 너무나도 좋아서 예수님에 대하여 열광(熱狂)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아예 예수님을 붙잡아서 억지로 자기들의 왕(임금)을 삼으려고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무리들을 떠나셨고, 결국 그 무리들도 예수님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먹고 배부른 것은 진정한 천국잔치가 아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먹는 욕구(慾求)를 채워주고, 눈으로 보는 욕구(慾求)를 채워주는 것은 아무리 재미가 있고. 신기하고. 좋아도 그것은 썩는 잔치 밖에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요6:27절)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고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이 주시는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이것이 영생(永生)하도록 있는 양식(糧食)인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를 천국잔치의 자리로 인도하셨습니다. 이 천국잔치는 세상의 많은 일들처럼 우리의 감각(感覺)을 흥분(興奮)시키고, 우리의 입을 즐겁게 하고, 눈을 즐겁게 하는 잔치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고. 우리가 그 말씀의 은혜에 푹 잠겨서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로 내 마음을 가득 채우는 이것이 진정한 천국의 잔치인 것입니다.
Ⅰ.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무리들 1-2절)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 이러라” 갈릴리 호숫가에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사람들의 큰 무리가 있었습니다. 나중에 계산해 본 바에 의하면. 남자 어른만 오천 명이었으니까 여자나 어린아이들까지 포함하면, 약 만 오천 명에서 이만 명은 족히 되었을 것입니다. 이 정도의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모릅니다.
지금도 정치적(政治的)인 집회가 아닌, 종교적(宗敎的)인 집회에서 만 명이나 이만 명이 모였다는 것은 대단한 인원이 모인 것이지만, 예수님 당시는 이 정도라면. 엄청난 인원이 모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든 것은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는 기적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기적의 능력으로 병자들을 고치는데, 그것이 너무나도 신기하고. 놀랍고. 재미가 있어서 그것을 보기 위해서 그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것입니다.
오직 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든 것은 병을 고치는 기적 때문이었습니다.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는 치료될 수 없는 중환자(重患者)들이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나. 혹은 만져주심만으로 병(病)이 치료되어 벌떡 벌떡 일어나는 것을 보니까 신기한 구경거리였던 것입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오고.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것은 하나님의 기적의 간접 체험이었습니다. 즉 자기가 병에 걸렸거나. 자기가 병이 나은 것은 아닐지라도 다른 사람들이 병이 낫고. 다른 사람들이 일어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신기하고.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 자기 개인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나. 기적을 체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단지 예수님의 능력이 신기해서 자꾸만 따라다니는 것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살아있는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한 채. 신앙생활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런 분들은 신앙생활은 오래 했지만, 하나님이 진짜 살아계신 지, 아닌지도 확신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부흥회(復興會)같은 어떤 집회에 가서 기도 받는 중에 다른 병자들이 기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고, 또 신앙을 핍박하던 자에게 하나님의 저주(咀呪)가 임하는 것을 볼 때,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보고‘아, 하나님이 살아계시기는 계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하나님에 대한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 이것 자체가 얼마나 충격적인 일인지 모릅니다.
좀 지나친 분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금까지 신앙 생활한 것은 모두 엉터리고, 지금 여기만 진짜라고 떠들어대면서 거기에 완전히 푹 빠져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침체된 상태에 있던 분들이 하나님의 기적을 다른 사람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체험하면서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느끼는 것도 대단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다른 사람의 은혜를 간접적으로 옆에서 보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은혜는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거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기적과 능력을 직접적으로 체험을 하고 믿음을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직접 자기가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그 능력을 몸으로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병을 낫는 기적이라는 것은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기적을 체험하고 싶어도 체험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도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기적을 체험할 수 있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이 곧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기적에 앞서 먼저 제자들 중 한 사람인 빌립과 그 많은 사람들을 먹이시는 것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5-7절)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 하리이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제자 중, 빌립에게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이려면. 떡이 얼마나 있어야 하겠는지?’고 물어 보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하필이면. 빌립에게 이것을 물으셨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아마 빌립이 제자들 중에서 가장 계산적(計算的)이어서 시험적(試驗的)으로 그렇게 하셨을 수도 있고, 아니면 빌립이 먹는 것을 담당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빌립은 그 많은 사람들을 눈으로 대충 흩어 본 후에 ‘조금씩 준다고 해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때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들의 하루 품값인데. 요즘으로 치면 8-9만 원 이상 되는 가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빌립은 예수님께 요즘 돈으로 8-9백만 원의 떡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돈은 어디서 구하며. 설사 돈이 있다 해도 이 많은 사람의 떡을 어디서 한꺼번에 구워내겠습니까? 라는 식으로 대답한 것입니다.
즉 빌립이 아무런 돈도 없고, 준비도 없이 지금 당장 이 많은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이것은 빌립이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의 대답일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이런 질문을 하신 것은 6절)...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test)하고자 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이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먹이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것은 기대했지만, 먹을 것을 주시는 것은 아무도 기대를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은 거기에 있는 제자들이나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이 병(病)을 고치시는 데는 능력이 있으실지 몰라도, 다른 부분까지 능력이 있으신 것은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 무리 사이의 긴장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굶주린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먹이고 싶어 하지만, 거기에 비하여 제자들은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지금 돈도 없고. 떡을 만들어 놓은 것도 없는데,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어떻게 갑자기 먹이겠습니까? 이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며, 예수님도 지금 안 되는 일을 생각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비하여 거기에 모인 많은 사람들은 이제 돌아가야 할지, 아니면 좀 더 거기에 있어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 중입니다.
즉 지금 배가 고프고. 해가 지려고 하기 때문에 거기에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아니 지금 그냥 가더라도 배가 너무 고파서 가면서 쓰러질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직 그들에게 가라고 하지 아니하십니다.
즉 모든 것이 이제 다 끝났으니까 더 늦기 전에 빨리 집으로 가라고 하지 않으시고. 무엇인가 아직 있는 것처럼 사람들을 붙잡아 놓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많은 사람들을 먹이려면. 얼마나 떡이 있어야 하느냐? 고 물으시고. 제자들은 돈도 없고. 떡도 없다고 했고. 또 사람들은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
이때 팽팽한 긴장을 깨트린 것은 소년의 보리떡이었습니다. 8-9절)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예수님의 천국잔치는 아주 작은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즉 빌립처럼 전체 인원을 계산(計算)해보고 난 후‘인원을 보아하니 몇 백 데나리온의 떡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도저히 안 되갰습니다.’라는 계산(計算)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奇蹟)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한 소년의 순수한 감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소년이 제자들에게 이 보리떡과 물고기를 내어놓은 이유가 어디에 있었을까?
그 많은 사람들을 먹이려고 한 것이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恩惠)를 받고 예수님이 좋았던 것입니다. 복음 송 1056장 *예수님이 좋은 걸*
우리는 아이들이 설교를 듣고. 은혜 받는 것을 믿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이들 중에서 놀라울 정도의 집중력(集中力)으로 말씀을 듣고. 아주 기쁨에 충만한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굳이 모든 말씀을 다 알아듣는다 해서 은혜(恩惠)받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거룩한 분위기라든지, 혹 말씀과 함께 임하는 성령의 역사에 은혜를 받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 소년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恩惠)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에 자기의 것을 예수님에게 드리고 싶었습니다. 만약 어른들 같으면. 이 작은 것을 드린다는 것은 창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자기들에게는 대단한 것이기 때문에 주어도 부끄럽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벌써 어른이기 때문에 계산(計算)을 하고 있었습니다. 즉 안드레는 그것이 이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되겠는가? 라고 하면서 한심하게 생각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들을 앉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후, 하늘을 보시고. 이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 후에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조금씩 주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원하는 대로 주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기적(奇蹟)이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떡과 물고기는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떼어도 계속 떡이 생겨났고, 물고기도 계속 생겨났습니다. 예수님은 남은 것을 버리지 말고 다 모으라고 하셨는데, 나중에 계산을 해보니까 소년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먹고 남은 부스러기가 열 두 광주리나 되었습니다.
이것이 곧 예수님이 행하신 천국잔치였습니다. 예수님의 이 잔치는 소(牛)를 잡거나 양(羊)을 잡은 거창한 잔치는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기적의 잔치였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모두가 하나님의 기적을 눈으로 보았고, 그 기적을 먹고. 이제는 배까지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볼록한 배가 곧 기적의 배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잔치 주 메뉴(menu)는 기적이었습니다.
Ⅱ.사람들의 반응 14절)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이 사건은 엄청난 은혜요 축복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는 것임과 동시에 하나님의 위로를 체험하는 것이었습니다. 배가 고픈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일 것입니다. 돈이 없어서 여러 날 굶은 사람을 데리고 가서 따뜻한 국밥 한 그릇 사주면, 아마 그 사람은 감격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배가 그 사랑을 증거 하기 때문입니다.
굶주린 사람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하나님의 위로를 동시에 체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군중들은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통해서 엄청난 보물(寶物)을 찾았습니다. 그들의 기분은 금광(金鑛)을 찾은 느낌이었고, 유전(油田)을 발견한 느낌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드디어 하나님의 능력을 찾았습니다.
만약 우리가 엄청난 규모의 금광(金鑛)을 갑자기 찾았다면, 얼마나 흥분할까? 또 우리가 엄청난 규모의 유전(油田)을 발견하게 되었다면, 아마 엄청나게 흥분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군중들이 본 것은 엄청난 하나님의 능력의 금광(金鑛)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기적(奇蹟)에 대하여 구경꾼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병(病)을 치료하는 이상한 능력을 갖고 계셨고, 그들은 그것만 보고서도 흥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보는 앞에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즉 병도 고치고 기적으로 사람들을 먹이신다면, 예수님이야말로 복(福)덩어리였던 것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오직 예수님만 붙잡으면. 이 세상의 모든 어려움은 다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 부류의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고, 예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주 자주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치기만 하면, 예수님의 생각보다는 자기들의 계산(計算)이 먼저 나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능력 앞에서 자기들의 계산(計算)은 여지없이 깨졌고, 말도 안 되는 것 같았던 예수님의 말씀이 승리하는 것을 본 것입니다. 이때 제자들은 다시 한 번 우리들의 믿음이 이것 밖에 안 되는구나. 우리는 너무 많이 예수님의 능력을 깎아내리고. 무시하고. 있었구나. 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무조건 계산(計算)부터 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생각을 물어보아야 한다는 것을 배운 것입니다. 즉 계산(計算)은 나중에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먹이기도 전에‘된다. 안 된다’하는 것이 아니라, 먹이시고 난 후에‘아 이 만큼 많은 사람들을 먹이셨구나.’는 것을 계산(計算)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자기 능력으로 할 수 있는가 보려고 계산(計算)부터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것을 영광 돌리기 위해서 계산(計算)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소년입니다. 이 소년은 무조건 예수님이 좋아서 자기 도시락을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 도시락을 많은 사람들 앞에 펼쳐 놓으시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하시더니. 사람들에게 막 나누어주셨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기적이 일어나면서 모든 사람들이 그 떡을 먹고. 배가 불렀습니다. 즉 무조건 예수님께 감사하고 바친 것이 기적이 나타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셋째, 당시 이 떡을 먹은 많은 군중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보고. 그야말로 하나님의 능력의 원천(原泉)을 찾았다고 기뻐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예수님을 억지로 왕(임금)으로 삼으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15절)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사실 이들이 예수님의 능력을 보고 무엇인가 엄청난 것을 붙잡았다고 생각한 것은 옳았습니다. 그런데 그 끝에서 그들이 무엇인가 잘못된 방향으로 벗어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천국잔치를 보여 주신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말씀을 믿도록 하기 위한 것이지, 기적 자체를 믿게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진리(말씀)를 구경만 않고, 자신의 것으로 붙잡는 것이었습니다. 머지않아 예수님은 그 모든 능력을 갖고. 십자가로 가셔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실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는 영광은 결코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을 붙잡아서 십자가 없는 왕(임금)으로 삼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급히 호수(湖水)로 보내시고, 자신은 급히 산(山)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 흥분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 인간적인 흥분이었기 때문입니다.
대개 하나님의 큰 은혜(恩惠)가 임할 때, 인간적으로 흥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결코 하나님의 축복(祝福)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소리를 지르고 웃고 떠드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恩惠)가 저질스러운 것으로 보이게 하고, 결국 하나님의 축복(祝福)의 문(門)을 닫히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恩惠)와 축복(祝福)이 나타날 때, 인간적인 흥분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을 자제(自制)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대하고, 잠잠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높여드릴 때, 그 축복(祝福)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Ⅲ.제자들과 군중들을 구분하심 예수님은 제자들을 서둘러서 배를 타고. 그곳을 떠나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도 그 런 분위기에 감염(感染)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군중들이 흥분하는 것만 보면. 너무나 신앙적인 것 같고, 진정한 부흥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심(中心)은 이기적(利己的)인데 있었지, 예수님의 말씀에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식의 종교적(宗敎的)인 흥분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제자들을 군중으로부터 분리시켜서 호수(湖水)건너편으로 보내고, 예수님은 산(山)위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신 이유는 역시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도 사람들이 기뻐하고 좋아하는 것을 보았을 때, 얼마든지 기분이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예수님이 원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산(山)위에서 제자들을 보시니까 제자들이 호수(湖水)위에서 아주 고전(苦戰)을 하고 있었습니다. 16-17절)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갈릴리 호수(湖水)는 호수(湖水)면이 지면(地面)보다 많이 낮기 때문에 지상에서 바람이 불 때는 돌발적으로 물이 끓는 것 같은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때가 아주 위험하다고 합니다. 제자들은 어두운데 호수 위를 노를 저어 가는데. 아마 이런 좋지 못한 볼라벤 태풍을 만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쩔쩔 매고 있었을 뿐 아니라, 예수님이 보시기에는 이 바람이 더욱 심해질 가능성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만약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그냥 두신다면. 제자들이 물에 빠져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능력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병자(病者)를 고치시고. 귀신(鬼神)을 쫓아내신다 하더라도, 심지어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신다 하더라도, 사람이 물 위를 걸어오는 것은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제자들마저도 예수님을 보고 유령(幽靈)이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제자들은 언제나 믿음이 부족했습니다. 평소는 믿음이 있는 것 같이 보였지만, 막상 현실에 부딪치면. 계산(計算)을 했고, 걱정을 했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을 사랑하셔서 호수(湖水)위를 거의 뛰다시피 달려오셔서 그들을 위로해 주셨고 도와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말씀만 붙드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물 위로 걸어온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에게 모든 것을 다 보여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시기를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것을 가장 좋아하십니다. 그러나 기적을 좋아하면. 하나님의 축복(祝福)은 단발(單發)로 끝납니다.
드디어 예수님과 헤어졌던 군중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24-25절)무리가 거기에 예수도 안 계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언제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군중들은 예수님을 거의 로또 복권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병(病)도 낫게 하시고. 굶주린 자를 먹이시는 분이기 때문에 예수님만 붙잡고 있으면, 자기들은 무조건 돈도 벌고. 잘살게 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이 산(山)으로 가신 그곳을 샅샅이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기에 안계셨습니다. 배(船)도 한 척 밖에 없었고, 그 한 척의 배도 제자들이 타고 가 버렸는데. 예수님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님을 찾는 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을 찾으면. 예수님을 찾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도대체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자(성경연구원)을 찾아오면, 예수님을 만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의 잔 머리로는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오신 것은 도저히 알 수 없다 하더라도 좌우지간 제자들이 있는 곳에 오니까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너무나도 반가워서 예수님에게 25절)...언제 여기 오셨나이까? 라면서 물어 보았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고생 고생하면서 예수님을 찾아온 이들을 이렇게 엄청 책망하셨습니다. 26절)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것은 천국잔치였습니다. 그러나 이 천국잔치는 음식이 다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천국잔치의 핵심(核心)은 하나님의 기적적인 능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이 이 기적을 말씀에 대한 표적으로 받아들이기를 원하셨습니다.
즉 이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고. 더욱 더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예수님을 찾는 것은 그들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 받으려고 찾았습니다. 그들은 기적의 떡을 먹고 배가 불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위해서 계속 기적을 행해주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진정한 천국잔치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7절)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印)치신 자니라.”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사람들의 육체(肉體)의 병(病)을 고쳐주셨고, 굶주린 배를 채워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얼마가지 않으면. 없어지는 것들이고, 영원히 우리의 고통을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즉 병(病)이 나았다 하지만. 그 뒤는 또 먹고 사는 문제가 있고, 집(아파트)문제가 있고, 자녀 양육의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한 끼 기적의 떡을 먹고 배불렀다 하더라도 위장에서 썩어 대소변으로 나와 없어지고. 또 그 다음에는 배가 고프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면 기적 자체는 말씀에 따라오는 확인된 도장(圖章)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가 인감도장(印鑑圖章)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역시 중요한 것은 인감도장이 찍히는 문서(文書)일 것입니다.
즉 주택(아파트)매매일 수도 있고,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기적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천국잔치는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 있게 선포되고, 우리가 그 말씀을 아멘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일에 기적과 능력으로 역사하실 것이며, 축복(祝福)의 인(印)을 쳐 주실 것입니다.
결론(決論)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천국잔치를 베푸십니다. 우리는 아직도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예수님의 능력을 의심(疑心)하면서 자기 계산(計算)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 생각에 ‘할 수 있다거나, 할 수 없다는 판단이 아닌지?
이 소년처럼 예수님의 말씀에 은혜(恩惠)를 받고, 그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작은 믿음에 인(印)을 치셔서 기적이 일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것이 천국잔치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엄청난 복(福)덩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욕심(慾心)을 위해서 예수님을 붙잡아서는 안 됩니다. 이제 예수님의 말씀에 우리의 모든 걱정과 염려를 맡기고, 우리의 속마음을 예수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워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에 기적이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찬송가 540장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씨 뿌리는 자 다음카페 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카톡선교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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