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스캔들>의 원작이 서간 소설, <위험한 관계>인지는 몰랐다.
그러고 보니 영화 <발몽>도 이 책을 원작으로 해서 만들어진 것 같다.
자연스럽게 잘 읽혔다.
아무것도 주장하거나 끈적거리지 않고, 오히려 냉정하게 잘 썼다.
십 여명의 사람들이 주고받는, 총 175통의 편지로 이루어진 560여 쪽이 넘어가는 이 책의 주인공은, 발몽 자작이 아니다. 메르테유 후작 부인이다.
그러니까 배용준이 아니라 이미숙이 주인공인 것이다.
(영화 속에서도 이미숙은 딱이었는데, 배용준은 어쭈구리~ 재주 피울 줄도 아네..... 하는 생각만 들었었다. 나는 남자 연기자중에 특이하게도 이쁜 척 하는 연기를 하는 사람을 배용준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스캔들에서는 그 모습이 없었던 거디었다^^)
메르테유 후작 부인은 악마적 이브, 1782년 프랑스의 지니아라고 보면 된다.
책 뒤에 보면 나와있다.
1782년이면 영조 6년, 우리나라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동인. 서인. 남인. 북인. 노론. 소론으로 갈려 당파싸움이 일어나고, 그 여파로 천주교도 탄압과 학살의 즈음이라고.
그러나 같은 시기, 프랑스의 사교계에선
먹고 살 걱정 없는 소집단이 지들끼리,
명찰같은 작위 하나, 기사라는 명함 하나씩 지참하고서,
자기들만의 공간에 모여 눈짓, 손짓, 표정 하나 하나의 디테일까지 리허설을 거쳐 서로에게 공연하며 놀고 있다.
그 시대 여자들은 잘도 기절했다.
나는 이제 그것을 이해하겠다.
별로 넓지 않는 누구 누구댁의 살롱에서, 정신적 긴장과 미묘하게 뒤섞인 기류들은 곧잘 정체되어 지독한 향수냄새에 섞이고,
사람을 죽이는 눈초리들 속에서 자신을 지탱하자니,
간이 평범한 사이즈인 여성이 끝까지 우아와 고상을 유지하기가 어디 쉽겠는가.
하나의 감정에 수십 가지의 묘사방법을 낳는,
하루종일 자신의 깃털을 폈다 접었다 정리하는 공작새들처럼 회의하지 않고,
한 달..... 십 년..... 평생을 보내는 그런 삶에서
심미주의와 퇴폐주의, 악마주의가 탄생하지 않는다면 비정상일 것 같다.
이들의 행동과 대화 방식은 왈츠 같다.
철저히 계산되어 잡고 돌고 지나치지 않을 만큼 접촉하고(다른 사람의 눈이 있으니까)
다시 파트너를 바꾸어 잡고 돌고...... 물론 학습을 통해 완전히 춤의 기교를 습득하고 나면,
그 동작 속에 자기만의 감정을 넣어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성찰의 왈츠가 있거나 말거나.....
그 춤동작은 박자와 동세의 약속에 의한 것이 듯.....
미모사들의 숲에 방울뱀 한 마리와, 방울뱀을 도와주는 구렁이 한 마리가 있다.
구렁이는 자기가 몸이 훨씬 크고 힘이 세니, 당연히 스스로 제왕이라고 알고 있으나(발몽)
방울뱀(메르테유 후작부인)의 먹이가 겁에 질려 도망치는 길목을 막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끝까지 모른다.
방울뱀의 꼬리 떠는 소리에 조종되는 피에로라는 것을 구렁이는 모른다.
구렁이가 먹는 먹이는 방울뱀의 묵인 하에, 동조 하에 먹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나는 놈 위에 순간 이동하는 놈......
미모사들만 접었다 폈다 죽어난다.
이성과 상상력, 창의력, 술수와 기만에 의한 감정의 피드 백,
모사와 술책의 간교함, 그 모든 에너지를 사랑 놀음에 바치는데,
어떻게 심리학이 되지 않을 수 있으며, 예술에 미치지 못하겠는가 싶다.
물론 이 소규모 사회(사교계) 안에도,
첫눈처럼 순결하고 순수한 이제 막 입문한 그들의 자손들이 있다.(15살- 세실, 20살- 당스니)
그 둘은 서로 사랑한다. 순수하고 열렬하게.
그러나 세실은 발몽을 스승으로 맞이하게 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당스니는 메르테유 후작 부인을 스승으로 맞이하게 된다.
여기서의 스승은, 연애의 정신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에 대한 스승을 말한다.
아이들은 체험 학습으로 그 세계의 룰과 쾌락을 배운다.
거짓과 술수를 배워 열심히 자신을 합리화시키며, 스승의 세 치 혀에 면죄 받았다 느끼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입힌다.
그러다 파탄이 난다.
권선징악의 어떤 사회적 기대치의 원리에 의해 파탄 나는 것이 아니라,
메르테유 후작 부인과 발몽의 자존심 싸움으로 그렇게 된다.
발몽은 당스니에게 칼 맞아 죽고,
당스니는 몰타 섬으로 들어가 기사가 되고,
세실은 수녀원으로 돌아가 수녀가 되고,
정조의 화신이'었'던 투르벨 법원장 부인은 미쳐서 죽고,
메르테유 후작 부인은 자신의 손바닥이었던 발몽을 내침으로 모든 것이 들통나
사교계에서 개망신을 당하고 난 후, 천연두를 앓아 얼굴이 귀신처럼 되며, 그 평판으로 인해 유산 문제 법정 소송에서 만장일치로 패배하여,
귀금속 몇 점 가지고 야반도주한다.
메르테유 후작 부인은 모든 것이 들통나고 자기들의 사회에서 배척받게 되자(끝장나게 되자),
이 여자의 주특기인,
감정 얼굴에 드러내지 않기, 표정 마음먹는 대로 변조하기가 안팎이 뒤집혀,
모든 생각이 얼굴에 나타났다고 한다.
매번 찍은 대로 성공했던 연애와 술수의 비결은, 약간의 영특함과 조금의 어여쁨에 더해진 그것이었다.
스스로의 얼굴 가면화.
모든 것의 게임화.
속마음 드러내지 않기.
그럼 대체 왜?
무엇을 얻기 위해?
어떤 욕망이 스스로를 시물레이션화 하는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사람들 사이에 미묘하게 존재하는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서라는 것.
이렇게 두꺼운 연애편지들과 악마적 지략의 당당한 피력을 읽다보니까,
맘만 먹으면 연애의 달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론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