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소리에 마음을 빼앗겨 본 적이 있는가? 저홀로 울다가 마음을 두 드리고 어느 순간 자지러지며 핏줄 속으로 흘러들어와 온 몸을 전율하 게 만드는 저 묵직한 연타음에 말이다. 그 북소리에 있어 이나라 첫째 로 치는 국고 김명환. 그의 고향인 곡성의 옥과를 찾아가는 동안 고사 하나가 떠오른다.조조앞에 명고수 미형이 불려나왔을 때 천하명고 미형 은 북채를 쥐기 전 의관부터 훌훌 벗어던져 버리더라는 이야기. 놀란 조조가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지만 미형은 오히려 조조를 향해 "예의 자유도 모르는 무식한 자"라고 일갈하고는 그 자리를 떠버린다.
--------------------------------------------------------------------
사진설명 : (위)푸른 산과 촌락을 감아흐르는 맑은 물과 매화, 산수유, 은어, 그리고 물오리와 개구리.... 봄과 생명의 기쁨을 노래하는 섬진강 가족들.
(아래)김명환은 길이 한자 두치에 둘레 여덟치의 이 소리북을 끌어안고 평생을 살다 갔다.
-------------------------------------------------------------------
예의 자유. 조선 명고 김명환이야말로 일체의 권위와 인습과 타성 을 벗어던져 버리고 유천희해하며 예의 자유경에서 노닐다 간 사람 아 니던가. 칼칼하고 표표한 성품으로 칠십 평생 곁눈질 한번 안주고 북채 하나에만 오로지하여 장엄하고 기백 큰 조선북의 '소릿길'을 열었던 사 람이었다.
그 조선의 미형 김명환의 소리를 키운 섬진강변은 지금 봄기운으로 난리가 났다.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는 매화와 강변 여기저기서 축포처 럼 터지는 산수유꽃,그리고 핏빛으로 흐드러진 자운영, 그 꽃무더기 사 이를 비집고 흘러나오는, 지리산 얼음 녹아 차고시린 강물과 그 물속으 로 미끄러지는 은어떼. 폴짝, 연두빛 풀밭 여기저기서 튀어오르는 개구 리. 귓가로 날아오고 가는 꾀꼬리며 멧새소리들…. 다섯 빛, 다섯 색으 로 퍼진다는 김명환 북의 원음은 바로 이 섬진강변에서 생겨났을 터.
봄햇살은 길과 강에 질펀한데 이 '봄의 소란' 속을 걸어 옥과면 무 창리에 이른다. 무창은 김명환이 『내 북소리를 산으로 막고 물길로 풀 어냈다』고 했던 바로 그 곳. 마을 앞으로는 섬진강 상류가 되는 순자 강 옥과천이 부드럽게 흐르고 뒤로는 임면쪽으로 설산이 성깔있게 뻗어 간 2백여호 가까운 반촌이다. 손주를 데불고 동구에 나 앉아있던 노인 한분에게 청해 어렵사리 김명환 생가터를 찾았지만 그 자리에는 교회가 서있다. 유리창 너머로 아이들 몇이서 성가연습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시골 아이들의 맑고 청아한 노래를 뒤로 하며 마을 뒷산의 묘소로 오르 는 동안 나를 안내하던 노인은 사람들이 심심치않게 서울이나 광주 혹 은 일본에서까지 찾아와 김명환을 '조사해 가는데', 일산 영감이 정말 그렇게 유명했는가고 묻는다.
북을 차고 앉은 모습에서 흡사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팽팽한 살 기가 느껴지고 소리꾼을 쏘아보는 눈에서는 퍼렇게 불이 뚝뚝 떨어졌던 김명환. 제자의 북소리가 시원치 않으면 『치라는 북은 안치고 쇳자국 만 보듬고 앉아있는 저 썩을 놈을 어째야 쓰까』라고 내지르곤 했던 가 파른 성깔. 소리가 영 성에 안차면 『니기미, 소리는 국민학생인데 대 학원생보고 북을 치라허네』라며 팩하고 돌아서던 그도 선산 찾아 다니 러올 때만은 보통 노인과 다름없었던 듯하다. 사실 소리마당에서는 소 리하는 이가 주역이 되고 북은 으레 '소리'에 가리워 잘 드러나지 않는 법이지만 김명환의 경우는 예외였다.
「일고수 이명창」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게 그의 '북'은 거의 늘 '소리'를 리드하고 압도했다. 흐물흐물 곰삭아 터지다가 가슴 미어지고 숨줄 끊어지도록 모질게 몰고가는 기- 경-결-해가 늘 황홀했다. 그러면서도 김명환 북은기백이 크고 서슬이 퍼랬다.
그는 '잘디잔 북' '뼈대없는 북'에는 단박 『저거 예술 아니여. 저러면 쓰간디』하고 손을 내젓곤 했다. '예술인 것'과 '아닌 것'의 경 계에 늘 단호했다. 김명환 북의 기운생동한 맛에 반해 나는 그가 박봉 술,정권진, 조상현, 한애순 같은 명창들과 호흡을 맞추던 「뿌리깊은 나무 판소리감상회」에 뻔질나게 드나들었지만 내 귀에 어렴풋이 그 북 소리의 뼈대가 가늠되어올 때 쯤에 그는 이미 저 세상 사람이었다.소년 '명창'은 있어도 소년 '명고'는 없다고 '좋은 북'은 치는 이나 듣는 이 모두에게 언제나 그리도 더디고 애닯게 오는 것이었는지.
무덤곁 풀섶에 앉아 멀리 굽이돌아 흐르는 섬진강을 다시 바라본다. 매화꽃잎이 점점이 떠가는 저 강에는 지금 은어가 빠르게 물살을 타고 있을 터이다. 가늘고 긴 몸체에 청록과 회백색 자태가 아름답기 그지없 지만 너무 성마르고 깔끔해 잡히면 팔딱일 새도 없이 제가 먼저 숨길을 놓아버린다는 은어. 언제나 맑은 물에서만 놀며 깨끗한 돌자갈 이끼만 먹고 자라 몸에서 수박냄새 같은 향기가 풍긴대서 향어라 불리기도 한 다던가.
문득 오뉴월 염간에도 늘 칼날같이 풀먹인 세모시에 옥색 물들여 날아갈듯 차려입고 나서곤 했다는 북의 가인 김명환이 어쩌면 그가 나 서 자란 저 섬진강 은어의 생태를 그대로 닮았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 글-그림 김병종·서울대미대 교수 ).
'캡션' ◇깨어나는 봄의 섬진강변 푸른 산과 촌락을 감아흐르는 맑은 물과 매화, 산수유, 은어, 그리고 물오 리와 개구리…. 봄과 생명의 기쁨을 노래하는 섬진강 가족들.
◇다섯 색, 다섯 빛으로 울린다는 김명환의 소리북 김명환은 길이 한자 두치에 둘레 여덟치의 이 소리북을 끌어안고 평생을 살 다 갔다.
김명환 누구인가 1913년 전남 곡성의 옥과에서 태어나 1989년 봄 노량진의 한 초라한 연립주 택에서 세상을 떠난 우리 음악사의 가장 위대한 '소리북쟁이'.
곡성의 대지주 아들로 태어나 일본에까지 공부하러 갔지만 혼례치르던 밤 벌어진 소리판에서 『남도 청년이 소리장단 하나 못 짚느냐』는 핀잔에 그 길로 명창 장판개를 찾아가면서 그의 한평생은 길이 한자 두치 둘레 여덟치 의 소리북 안에 갇히게 된다.
송만갑, 임방울, 박녹주 같은 나라 안의 한다하는 명창들이 김명환 북과 함 께 무대서기를 소원했을 만치 최고의 고수(고수)였지만 정작 자신은 전란과 비운에 쫓기는 험한 세월을 살았다. 서울의대 다니던 큰아들의 납북으로 충격을 받아 한때 아편에도 손을 댔고 이를 끊기위해 자진해서 광주교도소 에 들어가기도 했던 그는 만년에 KBS국악대상을 받고 「뿌리깊은 나무 판소 리감상회」가 시선을 모으면서 비로소 세간에 그 존재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