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호 2350 글쓴이 부쒸깽이 조회 1510 점수 176 등록일 2006-7-20 17:45 바둑 대문 0 톡톡 0
<조훈현의 프로 바둑기사 이창호론>
번쩍임이 없는 天才
昌鎬(창호)를 처음 만난 것은 1984년 여름이었다. 田永善(전영선) 7단이 우량아 소년을 데리고 왔다. 全州(전주)에 사는 아이인데, 棋才(기재)가 있는 것 같으니 테스트를 해보고 제자로 받아 주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昌鎬는 1975년생이니, 그때 아홉 살, 초등학교 3학년인가 그랬다. 나는 서른한 살이었다. 昌鎬는 어렸고, 난 젊었다. 만 18년 전, 그러고 보니 벌써 20년이나 되었다.
昌鎬를 만나기 전부터, 전주에 바둑 神童(신동)이 나타났다는 소문은 나도 몇 번 듣고 있었다. 듣고는 있었지만, 관심이 크게 갔다든가 하는 것은 아니었다. 신동이란 말 자체가 그렇게 믿을 만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천재이고 신동이었다가 秀才(수재)가 되고, 수재에서 凡才(범재)가 되는 경우는 비일비재 아닌가.
昌鎬를 보는 순간 나는 내 생각이 역시 크게 빗나가지는 않았음을 느꼈다. 昌鎬에게 천재의 이미지는 별로 없었다. 보통 상식으로는, 천재라면 아무튼 뭔가 번쩍이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昌鎬는 번쩍이지 않았다. 오히려 보통의 소년보다도 덜 번쩍였다. 다만, 어린아이답지 않게 아주 과묵하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면 인상적이었다.
요즘은 우리나라 어린이들도 말을 또랑또랑 잘하지만,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어른 앞에서는 대개 말을 잘 못 했다. 수줍음을 타는데다가 말하는 훈련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昌鎬는 그 이상이었는데, 한 가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것은, 昌鎬의 경우 수줍음을 탄다거나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그런다거나 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어린아이의 수줍음만은 아니었고, 어린아이의 어눌함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과묵이었다. 어떤 수련 같은 것을 통해 체득한 과묵이었다. 말하고 싶은데 참는 것, 아는 데도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는 것, 거기에는 의지의 작용이 있다. 그런 의지가 발동되려면 깊은 생각과 오랜 훈련이 필요한 것일 텐데 말이다.
바둑을 두어 보았다. 바둑도 그랬다. 번쩍이는 것은 없었다. 그러나 자기 나름으로 바둑을 꾸려 가려는 모습이 보였다. 독창성이라고 할까, 「꿍심」이라고 할까, 그런 게 엿보였다. 昌鎬는 內弟子(내제자)가 되었다. 선생의 집에서 동거하면서 배우는 제자를 내제자라고 한다. 일본 바둑의 徒弟(도제)문화 같은 것이었다.
당시 우리 집은 大식구였다. 부모님이 생존해 계셨고, 여동생도 출가 전이었다. 시부모 모시랴, 시누이 챙기랴 정신이 없었을 텐데, 거기다 昌鎬까지 들어오게 되어 나는 은근히 집사람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아내는 한 마디 불평도 없이, 기꺼이 내 의견에 따라 주었다.
한국 기원 주변에서 여러 가지 소리가 들려왔다. 『조훈현이 이제 겨우 서른둘인데, 벌써 무슨 제자냐』 하는 것에서부터, 창호네가 전주의 알부자라더라, 조훈현이 아마 돈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매달 상당액의 수업료를 받고, 입단을 하면 별도로 거액의 사례금을 받기로 했다더라 등등. 일일이 대꾸할 수가 없을 정도였고,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昌鎬가 들어오면서 연희동으로 이사를 했다. 강서구청 맞은편 국민주택 규모의 작은 단층집에서는 昌鎬에게 내 줄 방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연희동집은 괜찮은 집이었다. 그러자 거액을 받은 것이 사실로 굳어지는 것 같았다. 은행 융자를 받고, 빚을 얻은 속사정을 사람들이 알 리 없었다.
나는 아홉 살에 프로 입단대회를 통과하고 이듬해 열 살 때 日本 유학을 떠났다. 세고에 겐사쿠(瀨越憲作) 선생의 內제자가 되었다. 선생 댁에서 10년을 머물면서 가르침을 받았으나 나는 수업료 한 푼, 월사금 한 번 낸 적이 없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內제자란 원래 그런 것이었다. 나는 내가 선생님으로부터 거저 받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거저 돌려 준다는 생각뿐이었다. 은혜를 거저 받았으니, 거저 베풂으로써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것은 기본적인 양식이자, 도리요, 의
무였다.
과묵이 天性
昌鎬는 노력파였다. 번쩍이는 모습 대신 묵묵히 노력하는 모습을 昌鎬는 보여 주었다. 나도 日本에 있을 때는 그래도 공부를 했다. 놀기도 열심히 놀았지만, 공부도 남들 만큼은 하느라고 했다.
물론 남들 이상 열심히 해 본 기억은 없는데, 昌鎬는 분명 남들보다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였다. 까불지도 않았다. 집을 떠나 있으니 가끔은 아빠 엄마가 보고 싶다는 소리를 할 법한데, 그런 말도 없었다. 밥 먹을 때가 아니면 방에서 나오는 일도 별로 없었다. 그저 바둑판 앞에서 바둑돌을 놓아 보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 싫고 좋은 것을 표출한 적도 없었다. 처음에는 선생님 집이라 어려워서 그런가 보다 했으나 그것도 아니었다. 과묵은 천성인 것 같았다.
나도 성격은 밝은 편이고 아내도 그렇다. 昌鎬는 어둡다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아무튼 가볍지는 않은 분위기였다. 우리 집 분위기가 昌鎬에게는 다소 이질적인 분위기였을 텐데, 昌鎬는 불편해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昌鎬는 도무지 학교 가고, 갔다 와서 바둑 놓아보고 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세상 일에는 관심도 흥미도 없는 것 같았다.
우리 집에서 불이 가장 늦게 꺼지는 방은 昌鎬의 방이었다.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고, 새벽을 밝히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아내는 가끔 『창호가 공부를 열심히 하네』 했다. 잠결에도 「딱, 딱!」 하고 바둑돌 놓는 소리가 들려온 적도 많았다. 어린 시절 듣던 「夜警(야경) 딱딱이」 소리 같았다. 정겨운 소리였다. 그러나 가끔은 막 잠이 들려고 하는 내 의식에 돌연 전구가 밝혀진 적도 있었다. 그러면 몇 분 동안은 뒤척이게 되었다.
아내는 昌鎬를 늘 관심 있게 지켜보며 돌보아 주었다. 그러나 아내는 昌鎬에게 한 가지 불만이 있었다. 무슨 반찬을 좋아하고 무슨 반찬을 싫어하는지, 저녁에 밥을 먹고 들어오는지 그냥 들어오는지, 그런 것은 좀 말해 주면 좋으련만 昌鎬는 그러질 않았다. 昌鎬를 위해 솜씨를 발휘해 別食(별식)을 준비한 날도 있었다.
그런 날 들어오는 昌鎬에게 『밥은?』 하고 물으면, 『먹고 왔는데요』 하고 짧게 답 했다. 그럴 때면 아내의 얼굴에도 슬쩍 짜증의 그림자가 지나갔다. 昌鎬도 미안하기는 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안함도 표현되지는 않았다. 昌鎬의 얼굴만 보아서는 미안해 하는지, 아닌지를 알 수가 없었고, 천상 말을 해야 할 것인데 과묵했으므로 알 도리가 없었다. 昌鎬는 과묵한데다가 표정도 없었다. 하긴 무표정과 과묵은 한 세트로 묶이는 것이리라.
공부는, 昌鎬가 낮에 연구생실에서 둔 바둑을 복기해 보이면, 한두 가지 이상한 수를 지적해 주는 식이었다. 昌鎬는 가끔 낮에 자신이 둔 바둑의 수순을 헷갈려하기도 했다. 나로선 이해가 좀 안 되는 일이었다. 日本에서 공부하던 시절, 프로기사의 공식 對局(대국) 기록을 맡는 것은 연구생들의 일 가운데 하나였다. 나는 세 판을 동시에 기록하기도 했다.
師弟 대결
昌鎬는 우리 집에 들어온 지 2년 만인 1986년에 입단을 했다. 예상보다 약간 빨랐다. 재주가 좋아서라기보다는 노력의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1988년에는 속기 타이틀을 따냈다. 예상보다 조금 더 빨랐다. 속기 타이틀이란 것도 조금은 의외였다. 昌鎬가 빠른 것과는 거리가 있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1989년에는 나의 타이틀을 하나 빼앗아갔다. 다시 예상보다 더 빨랐다. 昌鎬는 나의 예상을, 그 시기를 점점 단축하고 있었다. 모두 아주 좋아하는 것 같았다. 師弟 대결이 재미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지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주위 사람들은 이제 스승과 제자가 아니라 타이틀 매치의 상대가 되었으므로 昌鎬도 우리 집에서 나올 때가 되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나도 아내도 부담스러웠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昌鎬는 좀더 머물렀다.
昌鎬가 우리 집에서 독립한 것은 1991년의 일이었다. 昌鎬는 충암중학교 3학년이었다. 나는 서른여덟 살이었다. 헤어지면서, 나는 평창동으로 이사를 했고, 昌鎬는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앞 아파트로 갔다. 남북으로 갈라진 셈이었다.
그후, 昌鎬와 나는 더욱 자주 만났고, 나는 계속 졌다. 유리한 바둑도 지고, 불리한 바둑도 졌다. 昌鎬는 나의 타이틀 대부분을 가져갔다. 사람들은 내가 제자를 너무 빨리 받아들였던 것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하긴 서른한 살이면 한창 승부할 나이지, 제자를 가르칠 나이는 아니었으니까.
內的 天才
昌鎬는 특히 끝내기가 강했다. 昌鎬 덕분에 한국 바둑이 끝내기가 강해졌다는 얘기도 있지만, 반은 맞고 반은 그렇지도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끝내기의 중요성, 계산의 중요성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킨 정도일 것이다. 昌鎬의 장점은, 끝내기가 강한 것이 아니라-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그런 끝내기를 할 수 있는 부동심, 혹은 평정심이었다. 프로라면 끝내기의 기술이나 계산에서는 대개 비슷하다고 보아야 한다.
기술과 계산력은 모두 갖추고 있다. 그러나 부동심, 혹은 평정심은 아무나 가지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었으니, 나이 어린 昌鎬의 불가사의는 거기에 있었다.
아직도 나는, 昌鎬는 일반적이고 전형적인 天才의 유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생각이 조금 바뀐 것은 있다. 부동심과 평정심이 뛰어난 것도 천재라고 한다면, 거기에는 동의한다는 것이다. 혹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昌鎬는 겉으로 드러나는 천재가 아니라 안으로 감추어진 천재다. 굳이 말을 만들자면 「內的(내적) 천재」다. 內的 천재가 外的 천재보다 더 무서운 천재인지도 모른다.
昌鎬도 요즘 조금씩 변모하고 있다. 전에는 주로 기다렸고, 지켰고, 모험을 시도하는 일이 드물었으며, 확실히 이긴다는 판단이 서면, 안전하게 이기는 그 선까지는 죽죽 물러나 주었다.
수가 나는 것처럼 보일 때, 수를 내면 열 집은 이길 것 같은데 약간의 위험 요소가 있는 것 같고, 그냥 수를 내지 않고 안전하게 마무리하면 한 집 반이나 반 집은 확실히 이긴다는 판단이 서는 그런 경우라면, 昌鎬는 슬며시 안전하게 반 집을 이기는 길로 사라져 버리곤 했다.
진 사람은 반 집에 땅을 치지만, 그런 상대를 보고 창호는 오히려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물러서서 그런 건데, 억울해 하실 것이 없는데?』 하면서 말이다.
나 같은 보통 사람과 昌鎬가 다른 점이 그것이었다. 나는 수가 나는 것처럼 보이면 결행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인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대개의 프로기사들이 그럴 것이다. 수가 보이는 데도 외면하는 것은, 수를 만들고 수를 내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프로기사로서는 정말 힘든 일이다. 나 같은 보통 사람은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결국은 넘어가는 것이고, 昌鎬는 유혹을 떨치고 오던 길로 계속 가는 것이다.
昌鎬의 감각은, 아예 유혹이라는 것에는 철저히 닫혀 있는 것 같다. 그런 昌鎬가 변하고 있는 것이다. 과격하기도 하고 격렬하기도 하며, 먼저 싸움을 걸기도 한다. 최근 지는 것이 약간 늘어난 것도 그러한 새로운 시도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昌鎬는 아직 완성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원해서든, 주변 상황에 의해서든 앞으로도 꾸준히 변모를 거듭할 것이다. 昌鎬의 나이로 보아 그것이 오히려 당연하다. 바둑 외적으로도, 異性(이성)과의 결혼과 家庭(가정)이라는 것도 있다. 청춘의 요동 같은 것도 있을 것이다.
이변이 없는 한 10년 정도는 頂上을 지켜낼 것
나는 스무 살이 될 때까지 日本에 있었고, 돌아와서는 곧장 생활인이 되어야 했기에, 청춘의 요동이고 뭐고를 경험할 계제가 없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昌鎬의 경우, 그 과정에서 어떤 갈등을 겪고, 그 갈등을 어떻게 극복하는지가 문제일 것이다. 지금까지 보아온 昌鎬라면, 그 정도의 부동심과 평정심이라면 나와는 다른 이유에서 청춘의 요동 같은 것은 없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 사람 일이란 모르는 것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변이 없는 한 昌鎬는 앞으로도 10년 정도는 頂上을 지켜낼 것이다. 李世乭(이세돌) 3단이 「포스트 李昌鎬」, 혹은 「李昌鎬의 라이벌」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재목으로 지목받고 있으나 속단하기는 어렵다. 핵심은 李昌鎬를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다 한 판 이기는 것을 갖고 「포스트 李昌鎬」, 「李昌鎬의 라이벌」 운운하는 것은 短見(단견)일 수가 있다. 타이틀이라면, 3번기에서 한 판을 이기고, 5번기에서 두 판을 이기고 하는 것도 결정적 단서는 되지 못한다.
공식 對局이라면 자주 이겨야 하고, 타이틀이라면 빼앗아야 한다. 그게 고비다. 그 고비를 넘지 못하는 한 「포스트 李昌鎬」, 「李昌鎬의 라이벌」 운운은 흘러가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이 승부, 혹은 승부세계의 요체다.
李世乭의 가능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로선 李世乭이 昌鎬에게 가장 접근한 적수임에 분명하다. 더욱이 기풍과 스타일이 정반대라는 점에서 李世乭의 가능성이 가장 큰 것도 사실이다.
昌鎬와 비슷한 기풍, 유사한 스타일로는 昌鎬를 따라잡기 어려울 것이다. 昌鎬를 이기려면 昌鎬에게 없는 그 무엇을 무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相剋(상극)의 원리요, 승부나 技藝(기예)의 분야에서 통용되는 격세유전의 법칙을 대입해도 그렇다. 그런데 昌鎬에게 없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부처처럼 과묵했던 어린아이, 알면서도 모르는 척 관심의 중앙에서 변두리로 물러나던 어린아이, 세상 풍물에 도통 호기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던 어린아이, 남들은 평생 걸려서도 얻기 힘든 승리의 월계관을 수없이 차지하면서도 기쁜 내색조차 보이지 않았던 어린아이, 사물의 핵심을 직관하고 있는 것 같은데도 그 눈빛을 감추기 위해 눈을 내리깔던 어린아이, 불확실한 大路(대로)보다 확실한 오솔길로 숨어들어 사람들로 하여금 어이없는 웃음을 웃게 만들던 어린아이,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아내면서도 어디까지나 우연이었다는 듯, 그 신비의 능력을 갈무리하던 어린아이, 그 아이가 지금 스물일곱 살의 청년이 되어 있다. 외적 천재를 능가하는 내적 천재.
외적 천재는 번쩍임으로 사람들을 매료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 빛에 스스로 취해 산화하기도 하는데, 내적 천재는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사람들을 매료시키지도 않고, 대신 산화하는 일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드는데, 과연 어떨지. 외적 천재든, 내적 천재든, 천재가 행복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고, 고통은 있을 것이고, 있다면 그 부피도 우리 같은 보통 사람보다 훨씬 클 것 같기도 한데, 그런 점은 또 어떨지.
조훈현 - 1953년 전남 목포 출생. 日本 신메이지 중학교 졸업.
1962년 세계 최연소 프로바둑 입단(9세). 1963년 日本으로 건너간 뒤 1972년 귀국.
1982년 9단 승단(한국 최초). 최고위전 우승(제 14~19회, 21~28회, 32회),
1980년 한국 모든 타이틀 제패(9관왕),
1000승 달성(1995년),
기왕전 우승(1996년), 한국기네스협회 선정 최다 연승 및 최다 타이틀 획득(1996년).
저서로는 「조훈현 바둑 입문」ㆍ「조훈현의 추억의 승부」ㆍ「조훈현 실전바둑 시리즈」ㆍ「조훈현
과의 대화」(칼럼집)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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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부쒸깽이 작성일 2006년7월20일 17시51분
바둑의 기초적인 이론을 글로 쓰려 시도를 했습니다.
'초끄네끼'님 바둑으로 유인하려는 음모의 일환으로...ㅎㅎㅎ
초급강좌를 읽고 계시다니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하고...
바둑에 관한 뒷이야기나 재미있는 칼럼 같은것을 퍼올리는 작업을 하는것이
더 보람된 일일것 같아는 생각이 들어서 위 글 퍼왔습니다.
'싸울아비'님이 연재하시는 '樂"시리즈와 어울릴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길지만 읽어보면 조훈현 사범님의 철학과 이창호님의 신비한 실력과 불가사의한 모습이
진솔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2/16] ㄱㄷㄹ 작성일 2006년7월20일 18시32분
이창호의 성품을 이렇게나 찬찬히 뜯어볼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조훈현!
돌부처의 한자어가 석불인줄로만 알아 왔지만,
이제서야 내적천재를 가름하는 말인 줄은 첨 알게 되었네요.
감사~
[3/16] 초끄네끼 작성일 2006년7월20일 18시46분
차범근씨의 글을 읽다보면 느껴지는 것이 고수 또는 마음이 큰 사람이 가진 따뜻한 사랑입니다.
조훈현씨의 글을 처음 읽어보는데 마찬가지 느낌이 오네요.
담담한, 또는 냉정한 톤을 유지하면서도 그가 가진 사랑만은 감출 수 없는 그런 글입니다.
바둑은 여전히 거의 모르지만, 제자에 대한 스승의 평, 경쟁자에 대한 경쟁자로서의 평, 관전자 또는 해설가로서 보는 객관적인 평 등이 언뜻 저의 일상에 대입하고픈 그런 내공을 보여줍니다.
당구를 처음 배울 때, 책을 펴도 당구대, 강의실 칠판도 당구대, 잘려고 누워 천장을 봐도 당구대로 보이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바둑 한 판 제대로 두지 않고 초보강좌만 읽고 있는 지금이지만.. 어제 화장실에서 볼 일 보는데.. 화장실 바닥의 사각 무늬가 갑자기 바둑판으로 불쑥 떠오르더라고요.
이 음모에 관계된 분들은 나중에 제가 찾아다니면서 벌주를 얻어먹을 겁니다.
[4/16] 지완 작성일 2006년7월20일 20시36분
글의 내용 중 절대 동의 할 수 없는 말이 있습니다.
'나같은 보통사람'....
당신은 절대 보통사람이 아니지요...
[5/16] 굿럭 작성일 2006년7월20일 20시40분
지완님/
과공비례라고 하지요.(우리집 컴퓨터는 한자 입력이 잘 안되는데 왜그런지 누가 알려주셨으면 ..)
지나친 공손은 예가 아니다
[6/16] 부평사람 작성일 2006년7월20일 20시52분
조훈현님의 글은 그야 말로 기풍이 풍겨 나오는거 같습니다.
부쉬깽이님이 힘드셔서 유턴 하시는듯 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낚시는 성공한 것 같습니다 오바.
초끄네기님의 아이뒤가 초끈이이야기에서 나온 거 맞지요.
만물이론인가 하는책에서 걸쭉한 물이야기만 하다 끝나던데
그걸 아이디로 삼으신걸 보면
님은 두레박으로 퍼 올리시려는게 넘 큰게 아닌가 합니다.
거기에 음모에 휘말려
바둑까지 퍼 올리시려면 새털같이 많은 날도
어느새 누드통닭이 되어 있을터
참 안타깝습니다.
전 안 거들었으니 벌주생각일랑 마사이다.
고백하자면
저는요 아직까지 한 번도 벽지나 타일이 바둑판으로
보인적이 없습니다.
[7/16] 김진형 (rlaxkrrn2) 작성일 2006년7월20일 22시15분
우와 정말 재미있군요.
글도 너무 잘 쓰십니다 제 우상 조훈현님이...
이창호는 너무도 속이 깊어 인간이 아닌것처럼 착각 일으킬때가 많습니다.
그중 제일 놀라고 저 어린 친구에게 매료된 대회가 있습니다.
혹시 제 1회 춘란배 결승 3국 보신분들 계십니까??
그 대국 저는 자신의 은사에게 보은했던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창호답지않은 떡수가 가끔있었고 그것을 놓칠정도의 조훈현님은 아니셨습니다.
2대1 조훈현 승
그로써 중국이 자국의 바둑 부활을 위해 뻔히 한국에서 쓸어갈것을
알면서도 개최 하였던 춘란배가 사제대결로 압축되어 선생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세계기전 후지쓰배도 몇해 동안을 계속
조센징들에게 빼았기는것이 너무도 속상해 없애버릴까 하다가도
마땅한 핑계가 없어 할수없이 끌고가고있는 일본에 비해
역시 때국놈들 답게 질때는 질깝세 자국선수들의 많은 참여와 사기진작을 위해
열었던 제 1회 춘란배에있어 이창호의 결승선착은 너무도 당연했지만
기력 다한 퇴물로 간주한 조훈현이 미래의 꿈나무 6소룡을 하나씩 제압하며
올라오리라곤 생각못하였고 저우허양 혹은 창하오 등이 이창호와 대적 하는
모습정도는 어느정도 예상했던 중국였지만 두 사제 대결로의 결승전은
흥행면에서도 실패로 끝날거 같은 생각인지 시무룩 했으나 국적을
안따지는 중국 바둑계에서는 고정팬을 많이 확보했던 두기사의 대국이
의외로 빅카드 였으며 중국 전지역 관심의 촛점이었습니다 .
그당시 이창호는 그 바둑을 이기고 응창기를 이기면 세계기전
그랜드 슬램의 위업을 달성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였는데 ...
누구도 그 가능성이 너무도 농후해 보였던 절정의 기량을 보이던 이창호가
그것도 단판도 아닌 3번기 승부는 ...
물이 오를데로 오른 천하무적 초 절정고수와 어떻게 어떻게 갠신히 올라온
마지막 몸부림의 갸날퍼 보이는 옛 은사의 모습이었던겁니다.
선생님을 짱꼴라들이 지켜보는데서 까지 망신드릴수는 없다는 판단과
안그래도 담배까지 끊으면서 절치 부심 부활하고자 몸부림치는 분께
전혀 티 안나게 승리를 안겨 드리며 결정적인 순간에 보은을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속여도 내눈은 못속입니다.
나는 아마추어 강 8급이니까~
아 ~ 오늘도 넷마블에서 놀겁니다. 부쒸갱이님 글 잘보았습니다
[8/16] 孤狼[무성진영] (wolface) 작성일 2006년7월21일 00시36분
오늘은 인사만 하고 평소의 바둑에 대한글을 좋아 비슷한 내용의 글을 많이 접하면서 우리의 님이 써주신글을보니 더욱 반갑습니다
[9/16] 골피 작성일 2006년7월21일 07시09분
대항마싸나이님,
새털같이 많은 날도
어느새 누드통닭이 되어 있을터
참 안타깝습니다.
썬글라스싸나이님 말마따나
5학년2반, 4학년9반 수준으로
풀어서 설명 좀 해 주이소, 대항마싸나이님.
[10/16] 부평사람 작성일 2006년7월21일 10시18분
골피님 제가 어줍잖은 수사를 썼나 봅니다
군대에서는 세월이 좀 먹냐?
시간 많이 남아 있으니 천천히 하자 대게 그럴 경우에 많이 씁니다.
세월에는 좀(곰팡이)이 안 낀다는 거지요. 좀이 쓸다.좀이 끼다. 좀이 먹다 이렇게 쓰는 거 같습니다.
맞나 모르겠네.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 새털 같이 많은 날이라는 말을 쓰는 경우를 보면
새털 같이 많은 날에 하루도 근심 없는 날이 없다.
새털 같이 많은 날 오늘은 그만하고 낼 하자.
세월이 좀 먹냐?
새털 같이 많은 날
둘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는 말입니다.
그 많은 새의 깃털도 하나씩 뽑히고 나면 전기구이 통닭처럼 누드가 되지 않겠습니까?
많은 날도 바둑을 배우고 익히다 보면 다 가고 말 것입니다.
초끄네기님 처럼 재주 많으신 분이 바둑 때문에 행여 할 일을 하지 못하시는 부분이 많이 생기실거 같아서
안타깝다는 이야기 입니다.
세월도 좀이 쓸고
새털 같이 많은 날도
한 줄기 바람에 날려가니
문득 깨어나는
일장춘몽에
머리맡의 자리끼를 더듬어 찾는다
지난 밤비에도
풀이 한 웅큼 자랐다.
[11/16] 부평사람 작성일 2006년7월21일 10시37분
경마장에 가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원수를 갚으려면 원수를 경마장에 데려오라
인간의 머리 속에는 괴물이 한 마리 또는 서너 마리 살고 있습니다.
이 놈들이 날뛰기 시작하면 암 처럼
증식하면서 끝내 자기가 살고 있는 사람의 몸까지 망치고 말지요.
바둑이 행여 초끄네기님 안에 있는 괴물을 깨울까봐 걱정입니다.
음모는 성공하였으되 결과가 아름답지 않으면
술도 사 줘야 하고 이래저래 손해 막심일 거 같아서
저는 미리 발뺌한 댓 글이었습니다.
지나치지 않다면 좋겠지만 초끄네기님의 성정상 지나치지 않기가
영 힘들어 보입니다.
아이디만 봐도 무시무시 한데
거기다 삼라만상의 이치와 변화를 담고 있는 19로에
뛰어 들면 뭔 일이 일어날지
명인이 나올라나?
흐흐흐
[12/16] 골피 작성일 2006년7월21일 10시47분
대항마님
친절한 설명 감사합니다
그런 식으로 해 주시니 좀 알겠습니다 ^^
어찌 그리
그 때 그 때 시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십니까 그려
원래 시인이셨든 가
국문학쪽을 하신 분이신 것 같기도 하고..
부럽습니다.
초끄네끼님은 중급정도의 수준까지 별 어려움 없이 느실 것 같습니다.
그렇게 죽자사자 바둑만 파지 않아도 중급정도 수준은 많이들 올라가시잖아요?
중급정도는 기본가라꾸 아니겠습니까?
그 이후에 손을 떼도 바둑이란 게 한번 배워 놓으면
평생 잊어먹을 일을 없을 것이고요.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지나치게 바둑에 완존히 미치면
그 거야 곤란해지죠. 제 생각에는 현명한 초끄네끼님이
무엇이든 과하면 좋지않다는 생활의 지혜정도는
저보다는 훨씬 몸소 터득하고 계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13/16] 부쒸깽이 작성일 2006년7월21일 11시50분
부평사람님의 음모가 훨씬 고단수 이신걸 깨닫습니다.
말리는척 하면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울타리를 치시는 모습이..
발을 빼는척 하면서 바짓가랭이 잡고 늘어지시는 모습이..
아마 '초끄네끼'님이 어느정도 바둑을 배우시고 술한잔 얻어먹어야 겠다고
나서시면 아마 부평사람님이 맨처음 술도 사실듯...
음모의 주범이신 '골피'님이야 캐나다에 계시니 ...
지는 당연지사 2등으로 한잔 사지요.
'죤'님이 걱정을 많이 하시는데...
제 생각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바둑을 배울때는 워낙 얻어 들을 수 있는 고수들도 거의 없었고,
바둑책이라는 것이 일본바둑책 해적판 몇권정도 였습니다.
그러니 갈증을 풀데가 없어서 여기저기 찾아다니면서 고수들과
한판 두려고 밥도사고 술도 사고...
지금이야 바둑책 하면 우리나라판이 제일 아닙니까?
언제든지 저녁먹고 컴앞에만 앉으면 동수와 때론 상수와 한판 둘 수 있으니
하는일 다 팽개치고 몰입할 수 없는 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그리고
'초끄네끼'님의 글을 읽으면서 느낀점이 매우 실용적인 분이라는 느낌을..
먹사니즘에 영향을 줄정도의 몰입은 아마 없을거라고 단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