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김홍경의 동양의학 혁명총론이 있기에 소개합니다
아쉬운 점은 그림이 다 지워졌다는 것입니다
2. 태극 음양
1.
周易八卦는 반드시 외워두어야 합니다. 그 까닭은 제가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陰陽觀이 조금 낯설다 하더라도 8괘를 일단 외운 상태에서 서로 연결이 되는 어떤 상황을 추론시키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연결시키는 것이 다소 무리가 있다하더라도 한 번 잘 생각해 보시면 "그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겠구나", "연구자료로써 제공할 정도는 되는구나"하고 인정하시리라 믿습니다. "의학입문" 서문에 '周易을 배운 뒤에라야 가히 의학을 말할 수 있다'고 했으니 의학을 이야기하기 전에 周易을 먼저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陰陽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태극에서 陰陽으로 나뉘고 다시 太陰, 少陽, 少陰, 太陽으로 나뉘어 집니다.
陰에서는 太陰과 少陽이 나뉘고, 陽에서는 少陰과 太陽이 나뉘어져 나갑니다. 陽은 기본적으로 길다랗게 한 개의 선으로 표시하고 陰은 가운데가 빈 선으로 표시합니다. 그런데 太極에는 형상이 없습니다. 太極의 상태란 무엇을 상징한 것인가? 陰陽분리 이전의 상태, 즉 우리 마음의 상태이므로 형상으로 표시할 수 없습니다. 태극 이전을 無極(태극이전의 상태를 가르키는 말)이라 하면 無極 이전은 무엇이겠습니까? 이 모든 것을 다 근본이라고 한다면 아래와 같이 설명할 수가 없겠으나 그래도 상징적으로 표현해 보겠습니다.
坤
艮
坎
巽
震
離
兌
乾
地
山
水
風
雷
火
澤
天
太 陰
少 陽
少 陰
太 陽
陰
陽
太 極
하나는 陽이 나가게 됨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또 한 번 변화를 하여 陽卦가 하나 더 겹쳐 있는 것을 太陽이라고 합니다. 즉 卦象으로는 이렇게 두 번 변화한 것을 太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陽卦를 기본으로 두고 陰卦가 위로 올라가 있는 것을 少陰이라 이름하며, 陰卦가 두 개 겹쳐 있는 것을 太陰이라 하고, 陰卦를 기본으로 하고 陽卦가 있는 것을 少陽이라고 합니다(참고:卦象의 太陽 少陽 少陰 太陰은 經絡學에서의 그것과 전혀 별개의 것입니다).
동무 이제마 선생의 太陽人, 少陰人, 少陽人, 太陰人 등 4가지 분류에 의한 '사상의학'이 탄생한 기본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四象이라고 하는 것은 일생 동안 거의 변하지 않는 어떤 본질 같은 것, 선천적인 것을 뜻합니다.
또 하나, 제가 사암침법강좌를 이끌어가는 기본 이론의 근본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8괘입니다. 陽卦가 연달아 세 개 겹치고 陰과 陽이 다시 분리가 되고, 그리고 陽卦가 아래에 두 개, 陰卦가 위로 하나 이런 식으로 변한 것을 8괘까지 변화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8괘는 각각 곱해져서 64괘가 되는데 이건 매우 어렵습니다.
"사암침법"을 보면 足少陰腎經을 補하면 허리가 낫는다는 것은 이해가 가는데, 腰痛門에 보면 手陽明大腸經이 腰痛을 고친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 생각에 大腸이란 수분을 흡수하는 것쯤으로 밖에 더 생각을 하겠어요? 또 여자들 경도불순에 手太陽小腸經을 쓰라고 하는 데에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아찔할 것입니다.
사암침법의 어려움은, '虛한 것은 補해 주고 實한 것은 깎아주면 된다'는 사암침법의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진단법 상의 어려움을 일컫는 말입니다. 제가 이 강의를 시작할 때 책을 구하려고 행림서원에 갔더니 사암침법 책이 절판이 되었다나요. 이유를 물으니 어려워서 책이 팔리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의학에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 권씩은 다 갖고 있는 이 사암침법 책이 왜 먼지 구덩이 속에 머물러 있었겠습니까? 이까짓 60穴을 가지고 '虛則補其母 實則瀉其子'원칙에 따라 하자면 머리 좋은 사람은 하루면 끝낼 겁니다.
아무튼 여러분 우선 60穴은 다 외워야 합니다. 그런 다음 60穴을 가지고 곱하기 나누기 하는 것은 별로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手陽明大腸經을 補하는데 어떻게 허리가 나을 수 있느냐"는 겁니다. 또 張弓弩弦(머리가 땅에 닿을 듯이 등이 굽는 증세)에 手太陰肺經을 쓰라고 했거든요.
肺는 호흡기인데 어떻게 그런 경우에 쓸 수가 있을까요? 사암침법이 어렵다는 이유는 바로 진단법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진단법! 사암도인이 어째서 그걸 썼는지 진단상의 이해가 가지 않으면 사암침법의 執針法자체가 우습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아무 것도 모르고 썼는데도 기가 막히게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대전에서 개업을 하고 있었는데 아주 멋있는 곳에 간호원을 4명씩이나 두고 종합한방병원의 꿈을 꾸고 있었지요. 갓 졸업한 사람이, 그것도 졸업한 해에 간호원을 넷씩이나 두고 했으니 아주 어린 나이에 시작한 셈이지요. 그런데 요즘 말로 척추 디스크라는 환자가 왔어요(아참! 척추 디스크라는 말이 나왔으니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 한의사들은 양방병명으로부터 자유로와져야 합니다).
그 환자의 요통이 잘 낫지 않아서 답답하던 차에 사암침법 책을 펴 보게 되었어요.
'척추나 근골이 끊어지게 아플 때에는 手陽明大腸經을 써라' 이렇게 써 있더군요.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手陽明大腸經의 補瀉法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아주 가는 일본 침을 대롱에 넣고 쿡 찔러 놓고는 補瀉를 한다고 튕기기도하고 左三三, 右三三 돌려보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대충 했는데도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정말 사흘만에 걸어다니더라구요.
그래서 '아하! 여기에 확실히 무엇이 있는가 보다'하고 그 다음부터는 허리만 아프다 하면 手陽明大腸經을 썼는데 하나도 낫질 않더군요. 그것 참 이상하데요. 그래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사암도인이 스님이었으니 스님노릇하면 가르쳐 주나 보다 하고 얼른 머리깎고 절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아주 행동파였거든요. 일전에 제가 요통환자를 낫게 한것은 소가 뒷걸음 치다가 쥐 잡은 격이었지요.
그런데 사암도인이 쓴 사암침법의 이론이란 것이 어찌된건지 읽으면 읽을수록 혼란뿐이었어요(여기 본과 3, 4학년 되신 분들은 아실겁니다). 한국의 한의학계에 있는 사람들중에 사암침법 책 안 읽어본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몇 장 넘기지 않아서 정지가 됩니다. 예를 들면, 위장병에 足太陰脾經을 쓰는 것은 이해가 가고, 호흡에 이상이 있을 때 手太陰肺經을 씀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 일치되므로 이해가 가는데, 여자월경불순에 手太陽小腸經을 쓰거든요. 바로 이 부분에서 딜레마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신장과 소장의 예를 들어봅시다. 신장의 양방적인 사고방식은 소변을 걸러내고, 어쩌고 하지만 우리 한방에서는 오행상 水라고 6년내내 가르칩니다. 그렇죠? 여러분들이 사암침법의 腎을 補하는 침을 배웠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經渠, 復溜를 補하고 太白, 太谿를 瀉하면 腎經을 補하게 되는 것인데, 腎經을 補함은 몸이 찬 사람에게 써야 될까요? 몸이 더운 사람에게 써야 될까요. 아하! 腎臟은 五行으로 보면 水니까 당연히 건조한 사람, 몸이 더운 사람, 소위 熱性病에 써야 되겠구나! (이거 외우면 큰일 납니다. 뭔가 모순을 제기하기 위한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腎經絡을 補함은 熱性病에 써야 합니다. 그렇지요?
일반적으로 小腸經을 補한다고 하는 것은 소장 자체가 오행상 火니까 거꾸로 이야기하면 寒病에 써야 하겠죠? 그러나 오행상의 성립 논리만으로 상황판단을 하려고 하니까 혼란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가령, 여자들 월경불순에 '小腸正格을 써라'라고 했는데 뚱뚱하거나 말랐거나 간에 하여간 몸이 찬 사람에게 쓰게 됩니다. 그런데 도대체 小腸經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저 그 사람 몸을 좀 더웁게 하자는 것입니까? 腎臟을 補한다면 몸에 물을 넣어주자는 것입니까? 그러한 단순한 오행적인 관점만 갖고는 사암침법 책 몇 페이지도 읽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행적인 관점 외에 六經이라는 것을 대입시켜 풀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外氣를 일컫는 六氣 즉, 風 寒 暑 濕 燥 火는 나중에 대비시켜서 풀도록하고 먼저 육경부터 풀어 나가겠습니다)
인체 경락에서는 厥陰,少陰,太陰,少陽,陽明,太陽이라는 六經이 있는데 그 六經 중 腎臟은 무슨 경락이 될까요? 본과 1학년 이상은 이 六經을 배울 것입니다. 그것은 足少陰입니다. 여기서 일단 足이라는 말을 빼면 少陰이라는 말은 風 寒 暑 濕 燥 火 六氣上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少陰은 君火라고 하지요. 또 小腸은 무슨 경락에 해당합니까? 예과생은 아직 잘 모르시겠지만 小腸은 手太陽小腸經이라고 합니다.
이때의 太陽은 六氣上 寒水에 속하지요. 출석카드의 太陽組를 寒水組라고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足少陰腎經을 예로 들어봅시다. 腎은 오행상 水이고, 경락상 少陰은 君火인데 어떻게 水와 火가 한 경락 안에 공존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足少陰腎經을 補한다고 했을 때 經絡을 補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각 경락의 이름이 붙어 있는 六經(厥陰,少陰,太陰,少陽,陽明,太陽)의 六氣적 지식없이 그저 오행적인 지식만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생각을 하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선 六氣적인 차원, 六經적인 차원을 깊이 공부해 보자는 것입니다.
오행을 중요하게 여기면, 小腸經은 몸이 찬 사람에게 써야 될 것(五行상 小腸은 火이니까)이나 手太陽小腸經에서 만약 太陽寒水라는 말을 중요시한다면 小腸經은 몸이 더운 사람에게 써야 할 것입니다. 또한 足少陰腎經에서도 腎은 오행상 水이므로 腎經은 더운 사람에게 써야 될 것 같은데, 少陰君火로 본다면 腎經은 몸이 찬 사람에게 써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五行적인 관점만 일으키고 六氣적인 관점이 없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신이라는 개념은 오장육부적인 관점 즉 五行적인 관점과, 六氣적이고 六經적인 관점과 상호 교차점이 있는게 아닐까 하는 이야기입니다. 지금까지는 여러분들이 주로 오행적인 관점으로 생각을 해왔기 때문에 오행적인 관점에는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 강의를 일컬어 어떤 교수는 "그것 별거 아니야 六氣강의야! 그 사람 六氣派야!"라고 합니다. 어떻게 우리 한방에 오행파와 육기파가 존재할 수 있습니까? "黃帝內經" 五運六氣篇에 보면, '五行은 形의 盛衰를 의미하고 六氣는 氣의 多少를 일컫는다'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러면 五行적으로 보는 것과 六氣적으로 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사실 같은 것도 아니고 또한 다른 것도 아닙니다.
예를 들어 여기에 컵이 있고 물이 있다고 합시다. 컵은 물을 담기 위한 용기이지요.
하나는 그릇이고 하나는 내용물인 質입니다. 잘 들으세요. 지금 여러분의 陰陽觀과 사고에 혼란이 오게 될지 모르니까 일단 의문을 제기해보자는 이야기입니다.
용기를 표기하려면, 이 유리컵이라고 가정한 것을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木,火,土,金,水 五行 중 무엇으로 할 수 있겠습니까? 土에 가깝습니까? 아니면 金에 가깝습니까? 그러나 이러한 것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니 그냥 土라고 합시다. 그러면 물론 내용물은 水이겠지요? 그런데 컵안에 담긴 質을 설명하기 위해서 質을 담고 있는 컵을 土라 하고, 質을 水라고 한다면 이것을 올바르게 표현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할 수 없이 '컵에 담겨진 물이다'라는 복합적인 표현이 되지 않을 수 없겠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용물인 質인 것입니다. 足少陰腎의 경우 '지금까지는 五行적인 이해만을 해 왔으며 少陰이라고 하는 어떤 質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지 않았나'하는 것이 저의 첫번째 의문이었습니다.
'足少陰腎을 補한다' 몸을 더웁게 한다고 하면, 소음군화로써 더웁게 하는데, 여러분들은 "腎은 오행상 水인데 그게 가능할까? 이건 말도 안돼" 그러시겠지요. 또 手太陽小腸經도 같은 식이라고 앞에서 설명했었지요. 이리하여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이 우리네 학문풍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육기파도, 오운육기파도 아닙니다. 그냥 동의학자 내지는 동의학도일 따름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방법론의 접근에 있어서 너무 五運쪽으로 치우쳐 있기 때문에 저는 六經적인 것을 설명하는데 거의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음양관 중에 '가벼운 것은 陽이고 무거운 것은 陰, 하늘은 陽, 땅은 陰이다'라는 것이 있지요. 여기에 지구가 있고 가운데 축이 있다고 합시다. 축을 중심으로 지구가 도니까 자연히 바람이 일기 시작하지요. 여러분이 지구본을 놓고 돌릴 때 세게 돌리면 바람이 많이 일므로 대기권이 많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살살 돌리면 대기권이 조금 생기구요. 그러니까 '肥人多中風'이라. 뚱뚱한 사람은 조금만 움직여도 바람이 많이 일므로 中風이 많은 것입니다.
지구 가운데를 火로 보고(뜨겁고 더우므로), 양극은 차니까 水로 보고, 지구체를 金, 대기권의 바람을 木(風木이므로)으로 보았으나, 중앙 土는 제가 빼버렸습니다.
이런 식으로 대비를 시키면 입체감각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음양관을 평면적으로 이해하던 사람이 입체적으로 이해하기란 다른 차원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어렵습니다.
점을 0차원이라 한다면 직선은 1차원, 전후좌우가 있는 평면은 2차원, 벽이 생겨서 입체가 된다면 3차원이 되겠지요. 오로지 지상(2차원세계)을 기어다니기만 하는 동물이 있다고 할 때, 공중(3차원세계)의 새가 날아와서 부리로 쪼았다고 한다면, 이 동물로서는 전후좌우 아무리 둘러봐도 무엇이 그랬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4차원의 세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면 3차원의 사람들은 그것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그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보면, 4차원의 세계란 3차원의 세계에 속도가 가미된 것이라고 되어있습니다. 가장 고차적인 동양철학을 기본으로 한 우리 한방이 혹시 그런 정도의 세계가 아닐런지요?
그러므로 우선 여러분들의 평면적인 사고방식을 입체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북방을 水라고 하는데 무엇을 기준으로 하겠습니까? 찬물이 많고, 춥고, 무얼 藏하는 성질이 있는 곳을 북방이라 한다면, 북방은 남극, 북극 양쪽에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늘은 陽이고 땅은 陰이다"라고 이야기하는데, 하늘은 뭔가 가벼워 보이니까 陽이라 하고, 땅은 무거워 보여서 陰이라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원심력을 이야기 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돌을 실에 묶어서 돌릴 때 무거운 것(돌) 일수록 바깥으로 나가고자 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지구의 자전하는 특성 때문에 소위 오존층이 지구보다 훨씬 무거울지도 모를 일입니다...이것은 금오의 역설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지구보다 대기권 부분이 더 무겁다고 여기는 사람입니다. 輕重을 여러분들은 그저 막연하게 형이상학적으로, 육안적(너무나 신빙성이 없는 인간의 눈)으로 가늠하겠지만 실제 질량으로 따져본다면 제 말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어떤 관점에서 보았느냐 하는 것에 촛점을 맞출일이지 막연한 음양관을 갖고 이건 陰이고 저건 陽이다 라고 딱 잘라 단정하지 말라는 얘깁니다.
옛날에 우리에게 周易을 가르쳐주셨던 선생님께서 "하늘은 陰, 땅은 陽"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가 반문하자 "형이상학적으로만 생각지 말고 한의학적으로 생각을 해 보라"하시더군요. 그래서 학생들이 "하늘은 따뜻하고 땅은 하늘보다 더 찬데요"라고 하자"그건 지금 우리가 숨쉬고 있는 요 상황에서만 그렇지 만일 태양이 지구를 덥게 했을 때 높은 산에 올라가면 낮은 곳보다 태양열을 많이 받으니까 더 뜨거워져야 되지 않은가? 그런데 높은 산에 오를수록 더 추워지거든. 그러니까 실제로 寒熱상 하늘은 춥고 땅은 덥다"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따라서 陰陽이라는 것은 편의상 갈라 놓은 것인만큼 천으로 나누든 만으로 나누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므로 어떤 기준을 갖고 나누었느냐 하는 관점을 날카롭게 주시해야 합니다. 같은 물이라 하더라도 수증기처럼 된 물은 陽的이라 할 수 있지만 드라이아이스 같이 냉각되어 있고 기화되는 것은 寒熱적인 차원에서 陰이 되는 것이지요. 이것은 육안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어떤 일도 운동성이 가미되었을 때의 공간적 차원을 상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治病的 차원에서의 腎臟은 六氣적, 六經적 차원에서는 質에 해당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질이라는 것이 유리컵에 담긴 물처럼 器라는 차원과 아주 분리가 된다면 좋은데,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내용물을 좀더 중요시 여기면서, 용기(=器)와 내용물(=質)을 마치 유리컵에 물을 부었다가 따를 수 있는 것처럼 설명을 했지만 우리 인체라는 것은 이렇게 器와 質로 분리시킬 수가 없습니다. 만약 우리 인체를 器와 質로 분리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알기 쉽겠습니까. 그러므로 足少陰腎이라 할 때, 少陰君火와 腎水의 어떤 복합체에 대한 개념, 이 복합체에의 접근방법을 여러분들은 지금부터 공부하셔야 합니다.
나누어질 수 있는 기준을 정하는 즉시 陰陽분리가 되는 것이지 기준이 없으면 陰陽도 없다는 전제조건 하에서,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臟器論은 무형학적인 氣質論과 유형학적인 器로 구분됩니다. 따라서 오행이라는 것은 形의 盛衰이고, 六氣라는 것은 氣의 多少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린 인체가 形과 氣의 복합체라고 한다면 氣學的인 면은 왜 여태까지 공부를 안했느냐 하면 경락학 시간에 마치 양방학적으로 무슨 병에는 무슨 혈, 무슨 병에는 무슨 탕 이런식으로 외우게만 가르쳤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足少陰腎經에 어떤 기운이 흘러 들어간다고 일러주면 足少陰腎經 자체의 기운을 이해하게 되고, 그 기운을 이해하게 되면 그 기운을 補했을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날 것인가를 예측할 수 있지 않겠어요? 또 足太陽膀胱經에 흐르고 있는 에너지 전체를 이해하면, 膀胱經이 가진 에너지를 물이라(太陽寒水이므로)가정할 때 그 물은 어떤 부분에 가서는 수증기처럼 되기 쉬운 상태도 있고, 어느 부분에 가면 맑은 바닷물과 같은 상태도 있을 것이고, 혹은 강물, 혹은 빗물과 같은 상태가 될 수 있을 것이나, 물이라는 본래의 속성은 유지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경락 안에 흐르고 있는 에너지가 무엇인가를 일러준다면 경락학 전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아니겠어요. 그러면 왜 그런 강좌가 없느냐? 그것은 바로 강좌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왜 어려운가? 문자로 전달할 수 있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경락학이란 것은 우리 인체내에 흐르는 미묘한 기운이므로 觀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내용을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강의는 陰陽觀, 五行觀, 六氣觀을 공부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六經강의가 중요한 골자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제 강의를 이해하시기에 다소무리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선 일단은 攝受를 하시고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면 활용하는 차원이 훨씬 넓어질 것입니다. 제게서 공부를 하고 가신 분들 중에는 "선생님께서 여기까지 생각하신 것은 좋은데 이것이 좀 아쉽지 않습니까?"라고 할 정도로 연구를 많이 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처음 얘기와 같이 한 3% 정도, 즉 비유를 하자면 '문을 살며시 열어 보니까 기화요초가 만발하더라. 들어가서 꽃을 따기에는 힘이 겨워 문을 다 열지 못했고, 결국 들여다보기만 했는데 좋기는 참으로 좋더라'라는 정도만 알고 있는 셈입니다.
문제의 요점은 경락의 내용물이지 腎이나 肝 등의 장부론을 중요시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즉 腎이 아니고 足少陰經이며, 肝이 아니고 足厥陰經이라는 말입니다.
경락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지닌 어떤 한 생각의 통로이다'라는 전제조건 하에서 출발한다면 각 六經의 생각이 무엇인가를 추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바로 이것이 증거를 드리고자 周易八卦, 음담패설 또는 제가 엉터리로 꾸민 六臟六腑이야기 등을 등장시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것이 어떤 이론으로 굳어버리기 전에 그러한 우리의 심리적인 상황 전체를 이해한다면 여러분들이 실질적으로 장부를 이해하는데 굉장한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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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요컨대 문제는 形에 있지 않고 質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內革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質을 파악하는 것이 결국 우리의 생각을 파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각과 경락이 어떻게 연결이 되느냐? 어떤 상황을 유발시키는가? 이런 문제들을 여러분들과 함께 연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사암선생에 대한 소개를 하겠습니다.
"사암도인 침구요결"을 보면, "鍼道의 捷法最奇는 이른바 亂刺經絡하여 出血如糞에 있는 것이 아니요……."라고 적혀 있습니다. 요즘 침 놓는다는 사람들을 보면 그저 경락을 난자해서 100개 정도씩이나 꽂아보는 겁니다. 두통이 안 낫는다 하면 열결이 좋다니까 열결도 놨다가, 또 족삼리혈에도 그런 말이 있었던 것 같으니 족삼리도 놨다가, 합곡도 슬쩍 꽂아보고, 태충혈 통곡혈도 꽂고, 사람이 용기가 없는 것 같으니 용천혈도 꽂는 등 생각나는 대로 막 침을 놓습니다.
본래 사상방이라든가 상한론방 같은 묘방들은 '方多以效少'라고 즉 方이 많으면 效가 적다고 했습니다. 체침법 배우신 분들, 족삼리가 치료할 수 있는 치료병명을 찾아보면 약 3만여가지가 되지요. 그러니 못 고칠 병이 어디 있겠습니까? (족삼리혈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고, 자침의 무분별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또 태충혈, 외관혈과 같이 치료할 수 있는 병명이 많은 혈을 50개씩 100개씩 선택을 해서 취혈을 해서야되겠습니까(이것은 다방이 되는 결과입니다)? 여러분들 중에서 무의촌 봉사를 가 보신 분은 알 것입니다. 환자가 잘 낫지 않으면 陰陽寒熱虛實로 구분 짓는 것이 아니고 선후배를 막론하고 그저 생각나는 대로 자꾸 플러스(+)시키다가 나중에는 머리가 혼란해져 손을 드는 경우가 있었을 것입니다.
사암침법은 참 묘합니다. 여러분들에게 혼란 대신에 원리체계를 세워주고 그에 대한 토론도 가능하게 해 줍니다. 예를 들어 어떤 환자가 왔는데 그를 소양지기로 봤다고 합시다. 이것은 마치 불(소양상화)을 끌 때 물만 쓰는 줄 알고 모래를 끼얹는 방법을 잊은 편협성과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용약법에도, 꼭 숙지황, 생지황, 황련, 황금, 황백만으로 불을 끄는 것이 아니고 용골, 모려도 염두에 두셔야 하는 것입니다. 가령 기름불이 있다고 합시다. 거기에 물을 부을 수 있습니까? 그럴 때는 숨을 죽이는 방법, 모래를 끼얹거나, 두꺼운 보자기를 씌우는 방법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그러므로 용골, 모려를 언제, 어떤 불을 끄는 데 써야 하는지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렇듯 세속적인 일상생활을 면밀하게 관찰할 수 있는 두뇌가 필요하고, 사람의 본성을 통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바로 한방의 어려운 점인 것입니다.
어떤 부인이 남편이 외도한다는 소문을 듣고 부터 가슴이 울렁울렁하더니 臍部動悸가(배꼽노리가 펄떡펄떡 뜀) 있다고 합시다. 제부동계에는 龍骨牡蠣湯을 쓴다고 했으나 왜 숙지황을 쓰지 않고 용골, 모려를 쓰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열을 가라앉히는 데 숙지황, 생지황을 쓰는 경우, 향유를 쓰는 경우, 황련 황백을 쓰는 경우, 용골 모려를 쓰는 경우 등을 잘 알아서 불의 성품에 맞추어서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장작불은 물로 끄고, 기름불은 모래로 끄는데, 가령 촛불을 끄면서 물을 한 대야 들이부었다고 가정합시다. 그러면 불은 꺼졌지만 과다한 물로 인해 화를 부를 수도 있고 몸 전체가 냉해 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水克火라는 오행설을 외웠더라도 불을 모래로 끄는 경우는 土克火가 되므로 기존의 相生相克法이 들어맞지 않게 됩니다. 앞의 경우 촛불은 입으로 불어서 끌 수 있으므로 木克火(厥陰風木이므로)가 됩니다.
이제까지 여러분들은 논리로써 우주를 배워 왔지 사실을 관찰해서 논리를 유추하는 법을 공부하지는 못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사실을 먼저 깨닫고 그 사실을 열심히 공부하는 가운데에서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어떤 논리를 찾을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舍岩五行針은 五運六氣針'입니다. 따라서 단순한 오행적인 사고방식은 버리고 백지상태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한 가지 더 예를 듭니다. 방에 물을 쏟았다고 합시다. 그 물을 분필이나 흙가루로 말린다면 토극수가 되고, 전기드라이어로 말린다면 화극수가 되겠지요. 또 통풍을 시켜 말린다면 목극수가 되고, 다르게는 물길을 터서 물을 제거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니까 병을 고치는 것은 결코 한 가지 논리만으론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고정된 논리만을 외운 의사는 자신의 처방에 잘 낫지 않는 환자를 보고 "의학입문에 보면 분명히 이 처방으로 낫게 돼 있는데 왜 안 낫지? 자네 병이 잘못 된거야. 가서 병 고쳐와!" 이러더군요. 제 강의는 사암침법의 실질적인 효과를 알려드림에 목적이 있습니다. 어떤 이론만을 주장하여 厥陰風木은 신맛이고 권력욕이고 명예욕이고 어쩌고 하는 것을 결코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매일의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확실한 각성의 상태가 여러분에게 필요합니다. 사암침법의 묘미는 나중에 치료법에서 얘기하겠지만 아주 기묘합니다. 그 기묘함이란, 많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고, 그 경락이 갖는 에너지를 알아 사지의 팔관절, 무릎관절 이하에 있는 穴만으로 병의 근본을 조정해 주는 데 있습니다.
"사암침구요결"을 보면 "본서의 원저자 사암선생은 그의 존성대명을 밝힌 바 없고 그저 道號'舍岩'이라 하였을 뿐인데 세간에서는 石窟속에서 득도했기 때문이라고 하며, 승려본질이 俗姓發表를 忌하는 것이 통칙이고 보니 推考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으나 최근 此書公刊의 報를 접하고 專爲上洛한 江原道一老醫의 전하는 바에 의하면, 舍岩은 즉 別人이 아니라 사백십수년 전인 임진왜란 당시에 승병을 지휘하여 많은 전공을 세우고 軍使로 일본에 건너가 여러가지 이적을 나타내어 왜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저 유명한 四溟堂 松雲大師의 수제자라 한다"고 쓰여 있는데 혹자는 사명대사가 사암이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여간 이 기이한 책이 시중에 필사본으로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밝혀져 사암이 유명해졌는데, 불교계율 중에는 친히 자신의 법을 내지 말라는 율법이 있어서 이름은 커녕 아무런 행적도 알 수 없고, 다만 집 "舍"자, 바위"岩"자만이 남아 있습니다. 특히 굴 속에서 공을 들이고 관심을 한 침법인 까닭에 일반 침법과는 다른 것입니다.
치료하는 방침은 "황제내경"과 같지만 병을 보는 관점은 획기적인 것입니다. 그럼 무엇이 다른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足少陰腎이라 할 때 腎은 오행적으로 水라는 차원이지만 少陰은 君火를 일컫는 것이며, 足少陽膽經은 木이라는 개념외에도 相火之氣를 담고 있고, 相火는 팔괘상 어디에 해당하며, 정신적 물질적으로는 어떤 것이 취상되겠는가 하는 점 등을 추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은 요점만 간추린 것을 보고 사암침법을 이해하려고 하는데, 이 총론부분의 강의를 듣지 않으면 안됩니다.
제 강의 요약집을 보면 유심적, 유물적 취상을 하면서 '足厥陰肝經은 피리다.
足少陰腎經은 수중 Sex다'라는 말장난을 해 놓았는데, 그것은 여러분들에게 五運六氣를 이해시키기 위해서이며 또한 최대한의 상상력을 충분히 활용하기 위함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육기적인 개념과 오행적인 개념이 서로 복합되었을 때 추론할 수 있는 여러분의 상상력을 유발시키기 위한 표현이므로 때로는 그것들이 여러분들의 기분을 상하게 할지라도 이해해 주십시오. 그런데 제 강의의 간추린 것만 보신 분들은 제게 전화를 많이 합니다. '어째서 陰이 쾌락이고 陽이 분노라는 것이죠? 가설이 엉터리가 아니냐?'하는 항의를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간추린 것만 보는 공부는 이 강의의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도, 이해 할 수도 없습니다. 그만큼 사암침법은 난해합니다. 석굴 안에서 몇 십년 수도한 결과에서 나온 내용을 그리 쉽게 알 수가 있겠습니까?
저는 그 분이 공부했던 방법이 가장 궁금합니다. 옛날 선가에서는 비술로 이 사암침을 공부했는데 오늘날 스님들은 이 공부를 하다가 중도에 포기한다고 합니다.
만약 여러분 중에 이 사암침법을 공부하고 나서 '나는 舍岩針法派'라고 섣부른 속단을 한다면 그 사람은 크게 오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암도인의 가풍이 사명당의 가풍이고 곧 서산대사의 가풍이고, 서산대사의 가풍은 달마의 가풍이며, 달마의 가풍은 석가의 가풍이고 그것은 곧 역대 모든 성인의 가풍인데 성인의 가풍에 어찌 상이 있겠습니까? 상이 있을 수가 없지요.
일본의 유명한 선사의 시는 이러한 성인들의 가풍을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푸른산은 흰구름의 아버지
흰 구름은 푸른 산의 아들이다.
서로 의존함이 없이 온종일 서로 의존하지만
흰구름은 언제나 흰구름이고
푸른 산은 언제나 푸른 산이다.
이미 이 정도의 경지에 오르면 모든 것을 섣부르게 판단하는 인간사의 오류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 중에 사암도인의 오운육기만을 배워서 빨리 성공해 보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각성하시고 오운육기의 天眞面目을 깊이 이해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입니다. 이것이 도에 이르는 길입니다. 사명당대사 책을 아무리 보아도 오운육기, 궐음, 소음, 태음 등의 말은 한 마디도 없으니 증거할 수는 없으나, 비록 문자를 달리 썼다고 하더라도 오운육기를 보는 눈이나 禪을 보는 눈은 천진하지 않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분이 제자들을 어떻게 공부시켰는지 알 수 있다면 우리도 그런 식으로 공부를 한다면, 따로 오운육기를 가르치지 않더라도 절로 오운육기법을 깨우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때문에 그 분의 가풍을 공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강의를 하게 된 동기는 서산 → 사명 → 경허 → 만공 → 혜암으로 내려오는 참선법을 공부하는데 어느날 문득 마음의 매듭이 몇 개 풀려나갔습니다. '아하! 이렇게 한의학을 보면 되겠구나'. 그 때 3%정도 풀린 것입니다. 그래서 D대학교에 내려가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사암침법에 대해서는 강의를 안했고 원리론에 대해서만 상당히 장황하게 이야기했고, 크리슈나무르티의 "의식으로부터의 해방", "지식으로부터의 해방", 라즈니쉬의 "성과 명상" 같은 책들을 읽어오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구약성서의 선악과에 대해서 논하라', '불경의 어느 부분을 읽어와라' 이런 식으로 정신과 강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우스운 얘기지만 정신과 시간에 학생들을 데려다 놓고 정신병자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D대학교 1기생들은 잘 알 것입니다. 한 번 강의를 하기 시작하면 다섯 시간씩 강의를 했으니까요. 왜 제가 그런 강의를 했느냐? 사실은 그런 강의를 통해서 어떤 법에 대한 안내를 하려고 했던 것이지요.
그후 연분이 있어서 이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고, 이렇게 100명 200명, 또 테이프를 들은 사람들까지 합한다면 상당한 수의 한의과 학생들이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러면 이 많은 사람들이 왜 이 강의를 듣느냐? 그 기본은 바로 우리 마음을 닦는 수심공부, 도심을 익히는 공부, 천진한 면목, 절대자의 존재에 대한 탐구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동양철학의 근본은 태극이라든가 아니면 우주의 근본이 되는 신선공부가 아니겠느냐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한방의 정면이 너무나 장중하고 위엄이 있는 가파른 벼랑과 같을지도 모르므로 방과 술은 멀리하고 먼저 도부터 닦아보자하는 마음에서 저는 굉장히 많은 세월을 우회해 왔습니다. 무언가 가르침을 얻기 위하여 여기 저기 침술의 대가와 처방의 대가라는 사람들을 찾으면 그 대가들은 나를 여러 방법으로 시험하면서 "음양관하나 얻으려면 40살 넘거든 찾아오게", "한 10년 이 처방 저 처방 쓰다가 40넘거든 한 두어가지 처방을 쓰게나" 그러더군요. 여러대가들의 말씀도 결국은 저 깊은 내면의 修身공부를 강조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의과대학은 면허증만 따서 나가는 곳이 아니라 도 닦는 수련도장으로 성장되어져야 합니다.
사암도인이 굴 속에서 몇 십년 도를 닦아서 연구한 것만 똑 따먹으려 하지 말고 그 분의 마음을 알아서 그 분이 못다한 사명을 우리가 이루고자 노력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각론에 가면 사암침법을 강의하게 되는데, 저는 사암침법 임상 예를 여러분들에게 외우라고 하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고정된 것은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足太陰脾經을 많이 썼으나 지금은 다른 경락을 많이 써야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우주는 변하고 있습니다. 사암선생이 살았던 때와 지금은 인심이나. 대기나, 삶의 수준 등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므로 터득한 원리를 응용해서 써야지 양방병명처럼 외워서 쓰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제가 이 강의를 하는 배경이 무엇인지, 그 마음이 어떠한지 알고 싶다면 제가 알고 있는 공안법을 모두 통과해야 합니다. 1700가지 공안을 다 통과해야 "아하! 이런 것이었군. 결국은 불여우같이 우리를 갖고 놀았군" 하고는 한바탕 웃을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 강의에서 거론되는 임상 예를 중요시하지 말고 천진면목을 기르라는 것입니다. 임상예의 암기보다는 그 분의 행적에 대한 소설을 먼저 읽으세요.
문제는 그 분의 눈이지 그 분의 행실이 아닙니다.
제 사부님이신 혜암선사께서 제 한의원에 오셨을 때, "무얼 드시겠습니까?"하니까.
"시원한 맥주나 가져와라, 닭고기 하고"
"아니 스님께서, 더군다나 生佛이라고 소문이 나신 분이 어떻게...""그러면 어떠냐? 맥주는 시원해서 좋고 닭고기는 쫄깃쫄깃해서 좋지 않느냐?" 시원한 것을 그저 시원한대로 먹고 있는데, 나(금오)는 자기가 먹은 술이 풀장을 가득 채울 만큼이나 되는 주제에 어쩌다 한잔 먹는 것을 보고 계율이 어쩌고 자격이 어쩌고 하며 입방아를 찧습니다. 이 선사의 행위가 자칫 방종으로 보일지 모르나 행동보다 그 사람의 바른 소견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바른 소견, 곧 '正見'이지요. 이 바른 소견 하나만 얻으면 오운육기를 강의하는 제 말에 끄달리지 않고 여러분 스스로 오운육기를 굴릴 수가 있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시 두 편을 소개하면서 미흡하나마 이렇게 사명당과 사암의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한가로이 앉아 있는 것이 곧 나의 일이 아니요.
본래 계급이 없으니 길의 고저가 없도다.
금까마귀가 한 밤 중에 하늘 바다를 가로질러 지날 때
혼자 승상에 의지하고 앉아 새벽 닭소리를 듣노라.
閑坐則爲非我事
本無階級路高低
金烏夜半痛天海
獨倚繩床聽曉鷄
이 시는 사명당이 그의 제자에게 공부의 자세를 가르칠 때 지은 것으로 제 號를 여기에서 따서 저의 사부님께서 지어 주셨는데 금오란 동양에서는 흔히 태양을 상징하고, 불가에서는 깨달음을 상징하지요.
참선에는 많은 말이 필요가 없으니
단지 심상하게 자신을 묵묵히 관조하는데 있느니라.
趙州無字와 더불어 세상사를 잊고 공부를 한다면
비록 입이 있어 말을 안한다 하더라도 내가 너에게 간섭을 하지 않겠다.
나의 스승은 천축국의 금선씨(천축은 인도의 異名, 금선씨는 부처님)인데
곧바로 발이 부르트게 옛뜰로 돌아가라.
내가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지 돌아간 즉 너희는 얻을 것이라.
달이 푸른 계수나무에 임했는데 바로 원숭이가 우는 구나.
參禪不用多言語
只在尋常黙自看
趙州無字如妄却
雖口無言我不干
我師天竺金仙氏
直使趻跰返故園
自是不歸便歸得
月臨靑桂有啼원
이 시는 사명당이 그의 제자에게 준 시입니다. 조주는 스님이름이며, 무자란 어떤 사람이 만물에 불성이 있다는데 개에게도 있는지 없는지 물었을 때 "없다"라고 대답한 선가의 화두입니다.
모든 종교적인 깨달음의 방법에는 믿음(긍정)과 의심(부정)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敎學的인 방법은 믿고 긍정하고 들어가는 것이고, 선가적인 방법은 의심과 부정과 반항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것입니다. 크리슈나무르티도 의심과 반항의 정열 없이는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고 했습니다(이 때의 의심은 번뇌 망상에 속하는 의혹이 아닙니다). 여러분! "청소년을 위하여"라는 책을 꼭 읽어보세요.
여러분! 우리 한민족의 약점인 사대사상이 더욱더 팽배해진다면 한의학을 공부하려고 유럽이나 중국으로 유학간다는 말이 나올지 모릅니다.
앞으로 중공과 문호가 개방된다면, 중공에 가서 공부하고 온 것을 자랑으로 삼아서 중공의 어느 한의원 앞에서 찍은 사진을 영업장 안에다 대문짝만하게 붙이는 그런 일이 생기게 되지나 않을까요? 한방에 종주국이 어디에 있습니까? 뭐하러 중공에 유학을 가요? 중공사람들이 배우러 오도록 만들어야지요. 중공의 개방주의 정책에 따라 문호가 넓어지자 한방을 배우기 위해 많은 수가 들어간다고 합니다. 동양철학이나 모든 근본이 중공에 있는 줄 알지만 아마 그동안 중공의 몇몇 눈 밝고 마음 밝은 사람들은 산 속으로 도피해서 살기 바빴을 것입니다. 공산주의라는 조직과 통제로 사람을 획일화 시키는 그런 사회에서 무슨 도와 선의 꽃이 피겠습니까?
독일에서 몇 년 유학해서 독일어 좀 알고 칸트의 책을 번역 좀 했다고 그것이 유명한 칸트학자입니까? 이렇게 해야 인정을 해 주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학문적 민주주의가 없는 사회입니다. 자유분방히 참으로 正道를 공부하는 사람을 인정해 주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중공에 가서 공부를 해야 한방을 잘할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학문적 사대주의, 한문을 주절주절 잘 엮어낼 수 있어야 한의학자가 되는것이 아닙니다. 우리 한글로도 얼마든지 진리를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진실로 깨달은 사람은 문자의 구애를 받지 않습니다. 표현보다는 그 뜻이 중요하지요. 바로 그 뜻을 알아야 합니다.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란 책을 쓴 김용옥 교수는 '5천년 전에 쓰여진 "黃帝內經"의 말은 그 당시엔 평상언어가 아니었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때의 언어감각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지. 그것을 한자자전적으로 아무리 풀이를 잘 했다 하더라도 만족할 수 없는 거지요. 따라서 지금 우리네 고전 공부에도 제기되어야 할 이론이 참으로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당귀(승검초의 뿌리)가 토끼의 간에 미치는 영향' 이런 식의 얄궂은 석사, 박사논문보다는, 차라리 고전 한 페이지를 잘 번역한 사람, 현대용어로 획기적인 번역을 한 사람에게 학위를 주는 풍토를 만들어야 합니다. 토끼 간이 어쩌구, 쥐가 어쩌고 하는 이런 작태가 계속된다면 한방은 결코 발전할 수가 없습니다. 한 페이지의 고전에 온 정열을 바쳐서 참으로 알기쉬운 말로 번역을 해 낸 사람에게 학위를 줄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 한방은 찬란한 꽃을 피울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이번에는 사명당께서 쓰신 '覺夢歌'를 소개합니다. 깊이 한 번 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人生天地此世間이 妙蒼海之一粟이라.
蜉蝣같은 우리 人生 朝不謨夕世道로다.
夜來風雨正急되어 花落多少念?로다.
恨端枕에 驚起하니 莊生인가? 蝴蝶인가?
空王(석가)佛未出世에 三界大夢 꿈을 일워 깜짝 놀라 일어나니
秋夜月 둥근달이 중천에 밝았더라.
月色이 괴괴하고 萬山은 적적한데
無鉉琴 높이 타니 이 소식 누가 알리.
三毒酒에 大醉되어 無明長夜 잠이 깊어
꿈을 길이 꾸노라고 구경할 줄 모르오니
이 아니 불쌍한가?
방편으로 수행하여 내 먼저 成佛한 후 중생제도 하여보세.
태고라 넓은 천지 一間土窟 삼어 두니 自心性은 光明日月에 비할 소냐?
四海水深廣하야 不增不滅하오시니 定慧水이 아니며
人我業産 깊은 곳에 須彌山高妙하니 圓覺道場 이[是] 아니며
松栢은 不變하여 四時長靑하였으니 常住說法 이[是] 아닌가?
靑山은 청정하고 白雲은 무심한데 적적한 山水間에 무심히 홀로 앉아
虛空馬를 빗겨 타고 般若慧劍 높이 던져 法性寺를 찾아들어 主人公을 벗을 삼고
行住坐臥되어 語黙動靜 逍遙自在 受用하니 覺樹曇花滿發한데 嶺上에 우는 새는 觀音鳥 이 아니며
녹수는 잔잔하니 趙州淸茶 이[是] 아닌가? 이 어떠한 경계런고? 라라리라리로라 태평가를 기리부세.
杜鵑새 울음소리 終日無心 終夜無心 無心客이 되었구나.
深山無人到에 다만 來者烏鵲이라, 낮에는 해가 오고 밤에는 달이 오니
비록 寂寞空山이나 주야벗이 산수로다.
有時에는 염불로서 無孔笛를 빗겨 불고 柱杖子를 의지하여 打聲一篇이루오니 寂滅樂現前일세.
有時에 嶺頭巖上徘徊하여 觀月하니 雲無心而 出岫하고 水流意而谷灘이라.
봄이 오면 꽃을 보고 겨울 되면 눈을 보니 대장부 살림살이 다시 무엇 구하리요.
自受法樂 無爲眞樂 저버린 자 누구던고?
生死長夜 잠든 사람 五欲樂에 沈淪하여 無量苦 받지 말고 自他受用하여 보세.
自縛自繩不祥하다. 方便 돗대 손에 잡고 생사바다 넓은 물에
般若龍船 노를 저어 저 바다를 얼른 건너 同往極樂하여 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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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저는 여러분에게 지혜를 알려드리고자 이 강좌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제 어느 후배가 말하기를, "神農百草 거쳐간 사람들은 교수 애먹이는 데 선수라면서요?"와 같은 소문이 들립니다. 여러분! 자기 자신도 아직 성숙되지 못한 상태에서 교수들 너무 면박주지 마세요. 그 사람들 쫓아내면 누가 핀치히터로 등장합니까? 제 말 잘 들으세요. 사람들은 몸이 아프면 먼저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야 합니다. 왜? 의사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또 의사 처방전 가지고 약국에 가서 약도 복용해야 합니다. 왜? 약국의 약사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러나 그 약은 개천에 확 내버려야 합니다. 왜? 나도 살아야 되니까...
오늘날의 모든 쓸모없는 강좌는 이와 같습니다. 듣고 나서는 모두 잊어버려야 합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 생명줄을 끊어 놓으면 안되지요. 교수들도 먹고 살아야 되잖아요? 너무 그 사람들 공박하지 마세요.
학교 강의의 기초가 觀心法이라든가 도에 입각하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행해지기 때문에 거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어디서 양방얘기를 조금 잘 주워들은 그런 차원과, 도학적인 차원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것입니다. 먼저 內革하세요. 질문을 자주해서 교수들을 당황하게 하는 쾌감을 느끼는 것도 일종의 승부욕이올시다. 부처님께서도 승부욕[勝氣]이 많으면 도를 이루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기고자 하는 기운이 많으면 도를 이룰 수 없습니다. 그것도 일종의 자기 거만이며 자기 확대입니다.
"교수님! 手太陰肺經에 흐르는 에너지가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질문을 해 놓고 "글쎄 --잘 모르겠는데"라는 대답에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각성하세요. 제가 얻은 것이 고작해야 3%정도일 뿐인데 여러분들은 얼마나 더 얻었겠습니까? 그러니 우선 자기자신을 충분히 성숙시키십시오.
자! "舍岩寢具要訣"원문은
책 중간에 있는 임상예라든가, 뒤쪽에 나오는 樂浪老夫施針歌와는 달리 이 원서만큼은 사암선생이 직접 쓰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뜻인 즉 '천지가 개벽함에 山川之氣가 비로소 나뉘고 인물이 비로소 남[始]에 動靜之形이 능히 배합되었도다. 동서는 日月이요, 남북은 星辰이라. 음양은 용마의 그림[河圖]에 묘하게 운행되어 보이고, 오행 또한 신령스런 거북의 새김[洛書]에 아울러 운행되어 보이며' 용마의 그림, 거북의 새김이란 河圖와 洛書를 일컫는 데, 하나는 相生圖, 하나는 相克圖라고 합니다. 河圖는 우측으로 회전(相生 : 木→火→土→金→水)하고, 洛書는 좌측으로 회전합니다. 圓補方瀉(원은 보완하는 것이고, 방은 토해내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침을 놓을 때 우회전하여 우측으로 원을 그리면 補가 되는 것이니 외부의 기운을 안으로 넣어주는 것입니다. 한편 침을 약간 들어서 왼쪽으로 돌려주면 瀉가 됩니다. 여러분 나사를 박을 때는 우측으로 돌리지요. 좌측으로 돌려서 박는 나사는 이상하게도 금방 풀려버립니다. 이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닌 것입니다.
'四象이 길을 얻으니 八卦가 좇아 나뉘어지도다. 기는 백일하에 드러나 있지만 이치는 가운데에 의지하나니, 현명한 선비의 강의로 말미암음이 마땅할지언즉 이것을 어찌 어리석은 사내가 감히 헤아리겠는가? 무릇 기가 사람에게 부여된 것으로 百骸九竅가 있고, 形象이 병에 부착된 것으로 千邪萬靈이 있는데, 筋・骨・脈・絡은 변화가 무궁하고 生・旺・休・囚는 운행이 멈추지 않는다.
百骸란 백 가지의 뼈, 골수 등을 일컫는 것이니 전체성을 의미하고, 九竅는 사람 몸의 구멍을 말합니다. 남자는 9개, 여자는 10개를 갖고 있는데 남자는 9개로 양수이기 때문에 불안하므로 항상 움직이게 돼 있고, 여자는 10개이기 때문에 완성된 수이지요. 그러므로 남자는 동적이고 여자는 정적입니다. 천 가지 삿된 기운과[千邪]만 가지의 귀신[萬靈]이 있도다. 귀신이란 '氣聚 則 鬼也라' 즉 氣가 모여서 귀신이 됩니다. 애당초 음심이 없으면 귀신이 될 까닭이 없는 것입니다. 오기든, 욕심이든, 어리석은 마음이든지, 무엇이건 모이면 귀신이 되는 겁니다. 이것은 저에게 주역을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이 들려주신 말씀입니다. 조그만 일에도 화를 내는 사람, 욕심이 많은 사람…모두 한이 많습니다. 바로 生・旺・休・囚는 오행의 법칙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이런 연고로 補瀉의 이치를 올바로 전하는 바가 없더니 후에 현명한 사람이 훌륭한 책을 만들어 후대에 전함으로써 세상에서 행해지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제가 맨 처음에 말씀드린 歸源, 곧 원전으로, 경전으로 돌아가라는 말과 같습니다.
'황제, 岐伯께서는 藥石에 대한 문답으로 우리를 깨우쳐 주셨고, 화타와 편작께서는 침구의 법칙을 드리워 주시니, 君臣佐使를 세워 寒熱을 치료하고 補瀉迎䜔를 이용하여 한냉을 구하도다.'
군신좌사! 이건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음식에 양념을 잘 쓰면 훨씬 맛이있는 것과 같이 여러분들이 이 육경공부를 끝내게 되면 요리에도 일가견을 가지게 됩니다. 새로 맞이한 며느리가 요리 전공이라 해서 한 번 시켜보니 양념까지 저울에 달아가면서 했는데도 맛이 신통치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만 이 세상의 모든 할머니들은 조리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지만 요리를 그렇게 잘 할 수가 없습니다. 약을 짓는 것이 음식 만드는 것과 똑같습니다. 책에 있는대로 썼다고 해서 병이 쉽사리 낫는 것이 아닙니다. 열이 있는 환자에게 滑石, 芒硝, 大黃, 黃栢, 黃連 다 좋아요. 그런데 이렇게 한약만을 썼을 때도(열이 있는 환자인데도) 맨 끝에 살짝 熱藥인 肉桂나 乾薑이 들어가야지요. 아시겠어요?
냉면집 가면, 면에다 쇠고기 편육 몇 조각, 회도 몇 점, 배도 조금 썰어 넣고, 설탕과 참기름도 조금 넣었는데 왠지 맛이 없을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겨자가 빠졌기 때문입니다. 기껏 2g(半戈)정도 밖에 안 넣었는 데도 이렇게 큰 차가 나는 겁니다.
숙지황・산약・산수유같은 것이 들어갔으면 백복령・목단피・택사 같은 瀉藥이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六味地黃湯입니다. 이 안에는 군신좌사가 다 들어 있습니다. 세상에 육미지황탕이나 사물탕보다 좋은 聖人의 처방이 있습니까? 라면은 끓여 놓고 좀 느끼하니까 신김치를 넣어 먹지요. 또 돼지고기에는 마늘, 고추, 곰삭은 새우젓을 얹어 상추쌈을 싸 먹으면 맛있습니다. 그러나 아침, 점심을 굶은 사람에게 기름기 있는 음식을 먹이고자 하는데 라면을 끓여 그 속에 마요네즈를 넣는다면 이론은 그럴듯하지만 이것은 말이 안되겠지요.
우리가 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음양의 이치입니다. 돼지고기 편육에서 돼지고기가 君이라면 상추가 臣이 되고, 마늘 고추는 佐, 새우젓은 使가 됩니다. 그런데 군신좌사 중에 제일 쓸모없는것 같은 사가 제일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한의원 개업을 멋있게 하여 약사와 간호원을 두었더라도 청소하고 심부름하는 아이가 없으면 그 한의원이 엉망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한방을 "경험의학이다", "다 경험해 봐서 아는 것이다"라고 하는데, 약뿌리를 찾을때 아무 觀 없이 닥치는대로 다 먹어보고 한약으로 정한 것은 아닙니다. 사물의 특성을 철저히 파악하여 약효를 설명한 것입니다. 생김새나 냄새 혹은 만져만 봐도 이건 어디에 써야 좋은지 곧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한방입니다. 바로 직관의 학문이지요. 그런데 간혹 한방의 특성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한방을 경험의학이라 합니다. 이것은 미국에서 '알로에'가 들어와서 책을 찾아보니 蘆薈라고 되어 있고, "무슨 무슨 작용이 있고 금기 사항은 무엇이다"라고 한다면 어리석은 본초학자일 뿐입니다. "알로에? 무슨 약인지 몰라도 한번 가져와 보게. 내가 맛을 보고 냄새를 맡아보면 당장 알 수가 있어. 이것은 사람들이 양기에 좋다고 하지만 뚱뚱한 사람이 먹으면 안돼!" 한의사라면 이 정도의 직관은 있어야 합니다.
담배는 "황제내경"에 나오질 않는데 어떻게 "동의보감"(조선 선조 때 의관인 허준이 왕명으로 편찬한 책. 25책으로 되어 있으며, 광해군 때(1613년)에 간행되었다. 이 서는 동양의학 서적을 널리 탐독하여 집대성한 책으로 한의학계의 귀서중 하나이다)이나 "방약합편"(혜암 황도연이 이조말 고종20년에 펴낸 책으로 의종손익의 부록으로 쓰여진 책이다. 이 책은 의서중에서 상용이 가한 방제를 합해서 편성한 것으로 근대에 발간된 서적 중 첫손을 꼽을 만한 한의학의 매우 중요한 책이다)에 나올까요? 産地를 알고, 냄새를 알고, 맛을 알고 있다면, 그것이 어느 경락으로 입경하는지 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경전의 새로운 창조자가 되어야지, 경전에 없기 때문에 모른다는 식의 사고는 지극히 어리석은 것입니다. 이 강좌가 끝나면 여러분들도 맛을 보고, 냄새를 맡아보면 이것이 어느 병에 효과가 있겠는가를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들 중에는 친척들에게 약을 지어주고 용돈을 버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때, 몸이 더워서 찬약을 썼는데 아무래도 불안한 생각이 들면 더운 약을 조금 넣어 보세요. 혹은 몸이 뚱뚱해서 半夏・南星・澤瀉・木通・車前子・燈心을 많이 넣어 이뇨를 시켰는데, 어째 좀 불안하다 싶으면 麥門冬이나 天門冬을 살짝 넣어 주세요. 그러면 절대 부작용이 없습니다.
寒藥을 많이 썼으면 熱藥을 조금 넣고, 熱藥을 많이 넣었으면 寒藥을 조금 넣으세요. 이것이 바로 使입니다.
"아니? 처방대로 했는데 왜 자꾸 부작용이 생기지? 요즘 환자들이 이상한 거 아냐?"하는 사람은 아직 한방의 묘미를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附子를 1량 썼다면 黃栢이나 黃蓮을 살짝 가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음양의 이치를 맞추어 맞물려 돌아가게 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저는 이 이치를 깨우치기 위해 10년을 공부했습니다.
'몸은 三才의 棟梁을 만들고 穴은 五行의 門庭이 되나니 一身의 허실을 널리 관찰하고 七情의 浮沈을 깊이 살펴야 한다.'
八綱(陰陽・表裏・寒熱・虛實)을 못 보면 한의사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비쩍 마른 위궤양 환자에게 蔘出健脾湯에다 半夏를 넣고 蒼朮을 배로 넣어보십시오. 혹은 뚱뚱한 사람에게 熟地黃을 많이 넣어보세요. 이렇게 약을 쓰면 병이 낫지 않습니다. 마른 사람의 위궤양에는 숙지황을 1兩 넣은 六味地黃湯을 써야될지도 모릅니다. 우리 한방은 환자가 말랐는지 뚱뚱한지 음양부터 봐야 합니다. 이렇듯 여러분들은 제가 늘 강조하듯이 자유로와져야 합니다. 병명은 누가 붙인 겁니까? 제가 음양을 공부하게 된 동기가 바로 병명에 매달려 있다가 어느 돌팔이 할아버지에게 호되게 야단맞고 생각을 달리 한 것입니다.
여러분! '七情의 浮沈을 깊이 살펴야 한다'라는 말에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사람의 喜・怒・哀・樂・愛・惡・慾이 뜨고 가라앉음을 깊이 관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사암침법이 가지고 있는 특징입니다. 이것은 기술이나 몇 가지 지식으로 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여러분은 道를 공부해서 觀을 하고 뜻을 얻어야 되는 사람입니다.
'醫者는 意也라' '醫라는 것은 意이니 心中에 반드시 응해야 할 것이오. 病이라는 것은 虛란 뜻이니 오직 上手만이 깨달아 알 수 있는 것이다. 寒冷이 상승함은 肺와 腎의 흑백을 말미암음이요. 風火가 서로 動함은 肝과 心의 紅靑으로써이며, 濕은 脾原에 널리 흐르고 熱은 항상 가슴에 성하도다. 膽이 반드시 生하는 것은 小腸이요, 脾가 가히 생산하는 것은 肺經이라. 三焦는 흩어져 머물고, 膀胱은 모여서 성하니 氣血을 이끌어 任脈에 돌아감으로써 두기운이 五行과 화합하도다.'
'木이 火에 補해 주는 것이 없을 때에 心病이 스스로 낫고 土管이 水臣에 따지면, 腎이 回醒하고, 西官이 金氣를 억제해 주면 肝膽이 편안해지고, 木이 평해 주면 脾胃가 건전 장수케 되리라.'
이런 五行의 相生相克說(오행이란, 木・火・土・金・水를 지칭하며, 이는 고인이 오행이 가지는 속성의 추상개념에 의거하여 오행의 상생상극의 관계로써 사물간의 상호 관계 및 그 생성의 변화규율을 해석하기 위한 방법론적 이론의 수단이다. "상생" 중 '생'에는 자생.조장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고 "상극" 중 '극'에는 억제, 저지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은 일단 제 강의에서 제외 합니다.
"肝이 東方에 제 위치를 바로잡음에 腎의 生함을 받고 肺의 克함을 받으며, 心이 南鄕에 居함에 北受克而 東受生이라, 相生者는 補함이요. 相克者는 반드시 瀉하며, 虛는 補하고, 實은 瀉하니, 醫院에서 병을 치료함은 가히 좋은 결과를 볼 수 있으리라는 말은 믿을 수 있으되 귀신의 말은 듣지 말라"
'虛則 補하고 實則 瀉하라'하는 "황제내경"에 있는 원칙이 사암침법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허할 때는 그 어머니를 補하고, 실할 때는 그 자식을 瀉하라는 것에 相克者까지 포함시킨것이 이 五行針입니다. 그리고 이때의 의원이란 七情의 浮沈을 아는 의원, 즉 진리를 깨달은 의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에서 '귀신'이란 기이한 술수를 부리는 사람을 지칭한 것입니다. 대도에 입각하여 공부한 사람의 말을 믿되 기묘한 방술, 기이한 비법을 좋아하는 사람의 말은 믿지 마세요.
처방 하나 내 달라고 하면, 가령, 加味四物湯, 加味十全大補湯, 이런 좋은 처방을 두고, 加味興陽相火諸味十八지랄發狂湯 이러거든요. 기이한 것보다는 평범한 것을 많이 익히다가 점점 기이한 것을 연구해 보세요. 사암선생의 원서는 이것으로 끝내고 소동파의 시를 하나 음미합시다.
만약 가야금에 소리가 있다고 한다면
어찌하여 匣中에 있을 때에 스스로 울지 못하고,
만약 소리가 가야금치는 손가락 끝에 있다고 한다면
어찌하여 너의 손가락 끝에서 소리가 나지 않는가?
若言琴上有琴聲
放在匣中何不鳴
若言聲在指頭上
何不於君指頭上
이건 소동파가 지은 시인데, 마치 어린애같은 질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만약 손가락 끝에 소리가 있다고 한다면 가만히 있어도 소리가 나야 될 것이고, 만약 가야금 자체에 소리가 있다고 한다면 어째서 스스로 소리가 나질 않느냐는 이야기 입니다.
옛날에 一字無識인 육조대사(638--713 중국스님.선종의 제6조. 남해 신흥사람. 어느날 장터에서 어떤 스님이 '금강경 읽는 소리를 듣고 마음에 열린바가 있어 제5조 홍인에게 찾아가 선의 깊은 뜻을 전해 받음. 676년 남방으로 교화를 하려다가 조계산에 들어가 대법을 선양함. 당나라 현종 개원1년에 76세로 입적)라는 분이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다가 어느 절에 들어섰는데, 마침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는 걸 보며 수도승 둘이 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유인즉, 한 수도승은 깃발이 스스로 움직인다고 하고, 또 한 수도승은 바람이 깃발을 움직이게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야! 임마 바람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깃발이 없으면 바람이 어떻게 움직일 수 있냐 자식아!" 하면서 물어 뜯고 야단이 났습니다.
육조대사가 가만히 보다가 그건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고 하니까
"아니! 그럼 무엇이 움직인단 말이요?"
"바로 너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고 했답니다.
거문고에도 손가락에도 소리가 없다는 이 소동파의 시 속에는 禪指[禪에 대한 機知]가 가득 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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