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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굴어당의 한시 원문보기 글쓴이: 굴어당
영어와 한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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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문자정책만큼 복잡하고 골치 아픈 사안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문자정책이 복잡해진 원인은 바로 한자, 한문에 있다. ‘세계적으로 우수한 문자인 한글이 있는데 왜 한자를 혼용 또는 병기하느냐’는 주장과, ‘국어 어휘의 70%가 한자어인 현실에서 굳이 한자를 추방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왔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한 법률적 근거로는 1948년에 제정된 ‘한글 전용에 대한 법률’이 있다. 여기에는 “대한민국 공용문서는 한글로 쓴다. 다만 얼마동안 필요한 때에는 한자를 병용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이러한 조항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계속되다가 1969년에는 모든 교과서에서 한자를 없애고 1970년, 드디어 전면적인 한글전용을 단행했다. 이후 한글전용의 불편함과 비현실성을 깨닫고 1972년에는 한문 교육용 기초한자 1,800자를 제정하여 중·고교에서 각각 900자씩, 한문과 교육을 통하여 필수적으로 가르치게 했다. 그러나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서 일반인들은 한자를 계속하여 사용하기도 하고 한글만 전용하기도 했다. 지금은 한글전용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이제 사라진 한자 대신에 그 자리에는 영어가 들어와 있다. 길거리에 나가 보면 한자로 된 간판은 거의 없고 한글 간판과 영어 간판이 반반씩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한자사용에 대해서 알레르기적 반응을 보였던 한글전용주의자들이 영어사용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한글전용을 마치 애국심의 지표나 되는 것처럼 여기던 사람들이 왜 영어에 대해서는 그렇게 관대한가? 여기서 이른바 ‘한글사랑’의 허실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대중적 영향력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는 일간신문 중에서 전면적인 한글전용을 최초로 실시한 신문은 1988년에 창간된 모 일간지이다. 오랜 군사문화의 타성에 젖어 언론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던 타 일간지 속에서 이 신문의 출현은 단연 돋보였다. 게다가 사주(社主)가 따로 없고 국민들의 주식에 의해서 창간된 신문이라 더욱 참신했다. 나도 이 신문의 창간취지에 동조하여 내 처지로는 과하다 싶을 정도의 주식에 ‘투자’했다. 이 신문의 가장 큰 특징은 한자(漢字)를 한 글자도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자에 익숙해 있던 나에게는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글을 사랑하기 때문에 취한 편집방침이겠거니 하고 불편을 견뎠다. 그러던 어느 날 이영희 선생이 쓴 칼럼을 보고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그 글 중에 “학이시습지 불역열호…”라는 구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무슨 해괴한 처사인가! 분명 필자가 그렇게 썼을 리는 없었을 것이다. 괄호 안에 있었던 한문원문을 편집자가 삭제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이렇게 하는 것이 한글사랑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불쾌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 신문의 한글사랑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에이피통신”, “비비시방송”, “유피아이통신”, “티브이 드라마” 등의 예에서는 영어 알파벳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를 읽을 수 있다. 2006년 6월 14일자 신문만을 놓고 보자. 정밀 의료기구의 하나인 “엠아르아이(MRI)”,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국내 총생산(GDP)” 등의 예에서는 알파벳을 병기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한글전용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철모르는 철새들 DMZ 눌러 앉았네”(10면), “농민단체 한-미 FTA 협상의제 공개 소송”(8면)과 같은 제목에서는 알파벳을 노출시키고 있다. 이건 한글전용이 아니다. 이렇게 영어 알파벳은 병기하거나 노출시키면서도 “일토삼목회”(5면) 같이 한자가 없으면 뜻을 알 수 없는 대목에서도 굳이 한자를 쓰지 않고 있다. 이런 명칭에는 괄호 안에 한자를 병기하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닐까? 알파벳은 병기하거나 노출시키면서 한자에는 왜 그렇게 인색한지 모를 일이다. 이렇게 이 신문에는 한글과 한자, 한글과 영어의 관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 또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에 따라 표기방법이 들쭉날쭉하다. 6월 17일자 신문에서도 “버시바우 대사, 20일 DJ 예방”(6면)이라는 제목이 보이는데 이는 “티브이 드라마”(16면)식의 표기방법과 어긋난다. “DJ”를 왜 “디제이”라 표기하지 않는지 궁금하다. “back number”를 “백넘버”로 표기하고 “TV Drama”를 “티브이 드라마”라 표기하는 것만이 한글사랑은 아니다. 다음의 예를 보자. “화두선의 등장 이후 선종사에 대한 이해가 왜곡되고, 여래선과 조사선, 돈점법 등의 용어가 기본적인 교의조차 갖추지 못한 채 난무하면서…”(6월 14일자 28면) 이런 식의 표현법을 한글사랑이라 생각한다면 큰 오해이다. 필요한 경우에는 한자를 병기하여 적어도 사전을 찾아볼 수는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에 영어는 넘쳐나고 한자는 갈수록 줄고 있다. 2008학년도부터는 초등학교 1․2학년 학생들도 학교에서 영어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반면에, 자기 집 주소나 부모의 이름도 한자로 쓸 줄 모르는 대학생이 많다고 한다. 하기야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언어’인 영어를 학습하여 세계화의 대열에 당당히 끼이는 것이 나쁠 것은 없다. 나쁠 것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러나 미국의 세계지배가 영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언젠가는 아니 조만간 중국이 세계를 지배할 날이 올 것이다. 이미 도처에서 그런 조짐이 보이고 있다. 그런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한자, 한문을 소홀히 할 수 없다. 우리가 쓰는 한자, 한문이 현대 중국어와 꼭 같지는 않지만 한자, 한문을 익히면 현대 중국어도 빠르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다. 한글전용을 주장하는 예의 신문도 최근에는 다소의 융통성을 보여서 그나마 다행이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식의 경직성에서는 조금 벗어난 듯하다. 6월 14일자 28면의 “무생법인(無生法忍)”, 6월 17일자 2면의 “동의이어(同義異語)”와 같은 표기가 눈에 뜨인다. 모든 언어정책이 그렇듯이 한글전용도 점진적으로 추구해야지 하루아침에 이루려고 해서는 안된다. “back number”를 “백넘버” 아닌 “등번호”로 표기하고, “葉綠素”를 “엽록소” 아닌 “잎파랑치”로 표기할 수 있을 때 진정한 한글전용을 성취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가 100년 후일지 500년 후일지는 모를 일이다. 2006년 6월 민족문화추진회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