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결혼한 부인이 사실은 조직폭력배, 그것도 칼을 무지무지 잘 쓰는 무림의 고수, 잘 나
가는 부두목이라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감히 부인에게 밥상 차려라, 빨래해라,
옷 벗어, 오늘 밤 같이 자자, 이런 말 함부로 할 수 있겠습니까? 얻어터지지 않고 얼굴에 멍
든 자국 없이 하루하루 목숨 붙어 있다면 천만 다행 아니겠습니까?
영화 [조폭마누라]는 조폭의 마누라가 아니라, 결혼해서 같이 사는 마누라가 알고 보니까 조
폭, 그것도 칼을 번개처럼 잘 쓰는 부두목이라는 발상에서 시작합니다. 올해 최대의 대박 영
화 [친구]의 흥행 성공 이후, 최근 조폭들을 소재로 한 영화가 쏟아지고 있는데요, [조폭 마
누라]도 그중 하나입니다.
특히 이 영화는 오래전 [납자루떼]라는, 언제 극장 개봉했는지도 잘 모르는 영화를 감독하기
도 했던 서세원씨가 다시 영화제작에 나서서 만든 영화라는 점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데
요, 과연 조폭의 마누라는 어떻게 사는지, 함께 보시죠.
[조폭마누라]는 철저한 상업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작품성 미학성 운운하는 자체가 이
미 실수를 범하는 것이죠. 만든 사람도 보는 사람도 그저 한 순간 웃고 즐기자는 암묵적 동
의 아래서 영화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고아원에서 함께 자란 신은경과 이응경은 자매 지간입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 언니인 이응
경은 입양되어서 고아원을 떠나지요. 이제 성장해서 조폭의 부두목으로 성장한 신은경은 수
소문해서 언니를 찾습니다. 그러나 언니는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
니는 동생에게 소원이 있다고 합니다.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것입니
다.
도저히 언니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는 조폭 부두목 동생은 부하들을 시켜 괜찮은 남자를 물
색합니다. 부하들은 결혼소개소 소장을 협박해서 맞선을 보게 합니다. 처음으로 립스틱을 발
라 보고 빨간 원피스를 입어 보는 조폭 부두목. 그러나 맞선 자리에서 자신도 모르게 거칠
고 험한 말들이 튀어나와 순식간에 깨지고 맙니다.
반드시 결혼해서 언니가 죽기 전에 소원을 들어주어야겠다고 생각한 동생은 또 다시 남자를
찾아오라고 부하들에게 호통을 칩니다. 개똥도 약에 쓸려면 없다고. 드디어 노총각 하나가
용의자로 떠오릅니다. 공무원으로 착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 남자는 박상면씨인데요, 맞선 자
리에서 포장마차 주인 부부는 가짜 부모가 되고 무사히 결혼해 합의해 첫날밤을 치르게 됩
니다. 그러나 남편의 기대와는 다르게 조폭마누라는 잠자리를 계속해서 거부하죠. 거기다 이
번에는 죽어가는 언니가 아이를 낳아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합니다. 이제 조
폭마누라는 할 수 없이 아이 낳기 작전에 돌입해야 합니다.
대강의 줄거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조폭마누라]는 무조건 웃기자는 대전제 아래 모든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진짜 희극적 요소는 배우들의 이상한 표정이나 대사가 아니라, 상황
의 언밸런스에서 오는 것인데요, 여자가 조폭의 부두목이다라는 상황 설정, 또 그 조폭이 자
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착한 남자와 결혼을 해야 한다는 설정이 우리에게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신은경씨는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게 될 때부터 남성적인 모습을 부각시켜왔습니다. [조폭마
누라]의 주인공에 그녀가 낙점된 것이 우연은 아니라는 얘기죠. 거칠게 쏟아내는 말투, 차가
운 시선, 그러면서도 여성성을 회복하려고 노력하는 이중적 모습에서 관객들은 그녀만의 매
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결투씬에서는 대역을 쓴 티가 역력히 드러나긴 하지만 그
래도 액션씬을 무사히 소화해냈습니다.
신은경씨의 남편으로 등장하는 박상면씨는 특유의 활달함보다는 우직하고 착한 남성의 모습
만을 보여 주었는데요,
물론 영화의 서사구조는 헐렁하고 허점이 수없이 많으며, 다른 영화에서 이미 낯익게 본 익
숙한 코드들이 전편에 흘러넘칩니다. 조폭들의 전설에서 시작해서 전설로 끝나는 영화의 처
음과 끝은 얼마전 개봉한 [신라의 달밤]을 닮았구요, 양대 조폭들의 긴장과 갈등 역시 숱하
게 보아온 모습들입니다.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상황의 비약이나 상투적 이야
기의 전개, 전형적 캐릭터로 시종일관하는 모습들은 실망스럽죠.
하지만 [조폭마누라]를 보러 극장에 가는 관객들이 그런 것을 심각하게 생각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웃기자는 대전제에 충실한 코믹극 [조폭마누라]였습니
다.
시사회장에서 제작자인 서세원씨는 기자들에게 재미있다고 입소문을 많이 내달라고 무릂 꿇
고 큰절까지 했고, 사회를 본 남희석씨는 [조폭마누라]의 흥행 성공을 장담하기도 했는데,
그 이유가 이번에는 서세원씨가 감독을 맡지 않아서라고 해서 시사회장을 웃음바다로 만들
기도 했습니다. 또 신은경씨 역시 작품성보다는 상업성을 생각하며 만든 영화니까 부담 없
이 즐겁게 봐달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일반 관객들의 반응은 크게 나쁘지 않습니다. 기자 시사회보다는 일반 시사회에서 폭소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고, 즐거워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들에게 이 영화를
권할 마음은 없습니다. 영화란 극장 안에서의 한 순간의 줄거움 이상의 그 무엇이라고 생각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답답한 세상, 스트레스를 꼭 풀어야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극장
에 가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