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글
1,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의 시기를 전후로 제국의 변방에 속해있던
많은 국가들은 독립을 하고 나서 그들 나름대로의 정치와 경제체제를 바탕으로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고자 노력해왔다. 그렇지만 제국주의의 식민지로서 제 3세계의 국가들은 독립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들의 영토와 국민의 사고와 무의식 깊숙이 뿌리박힌 식민의 흔적을 떨치지는 못했다. 가깝게는 우리나라 역시 지난 35년간 일제의 식민지로서 뼈아픈 역사를 겪었던 경험이 있고, 독립을 하고 나서도 빈번히 새로운 제국들의
무수한 압력 속에서 고통스런 삶을 이어나가는 처지를 감안할 때, 식민의
잔재란, 살기 위해 몸속에 남겨둔 병원균처럼, 우리의 삶의 실존적/역사적 조건이 되어버렸다. 다시 세계의 현실을 돌아보면, 지금 지구 곳곳에선 여전히 제국의 공식적인 통치가 끝난 이후에도 그들만의 민족을 단위로 한 국가와 자치지구를 획득하기 위해 과거에 제국이었던 나라들의 압력에 맞서 저항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팔레스타인인들이 그렇고 북아일랜드인들이 그렇다. 냉전의 시기를 기준으로 볼 때, 많은 신생 독립국가들에 대한 제국의 정치, 군사적 지배는 일단 물러난 듯 보였지만, 그것이 지배와 착취, 불의의 종말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점점 더 다양고도 근본적인 인종적, 종교적 갈등이 엄청난 살상과 보복으로 도처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고, 짐짓 물러난 듯 보였던 과거의 제국들이 가면을 바꿔
쓴 채 그 갈등들 배후에 엄연히 자리잡고 있는 게 현실이다. 특히 미국은
제 1,2차 대전을 전후로 해서 세계 도처에서 제국의 신식민통치를 경제,
정치, 문화의 권력으로 포장한 채 노골적으로, 혹은 교묘히 행하고 있다.
흔히 요즘 시대를 가리켜 사람들은 국경 없는 세계, 즉 전지구적 네트워크가 빠른 속도로 횡단해서 모든 지리적, 경제적, 문화적 차이가 지워져
버리는 세계로 부르고 있다. 그렇지만 외면적으로는 경계가 없는 듯 보이는 초국적 자본주의의 기업이 내적으로는 각자의 블록을 쌓고 여전히 저개발 국가를 상대로 경제적 착취를 감행하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그것은 정치나 문화의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억압과 착취의 역사를
살았던 많은 독립국가들은 여전히 세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유럽과
미국, 일본의 그늘아래에서 그들 고유의 문화나 역사를 대변하지 못한 채
오히려 보편화라는 미명하에 강대국들의 문화와 역사를 규범과 정전(正典, canon)으로 받아들이기를 강요받고 있다.
포스트-콜로니얼리즘(post-colonialism)은 바로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식민지의 역사적 잔재를 극복하고 부당히 침탈당한 물질적/정신적 영토와
억눌리고 침묵을 강요당한 목소리를 회복하여 세계체제에 걸맞는 역사와
현실에 동참하고자 하는 일련의 문화적 움직임이다. 그렇지만 이때 문화라고 하는 것은 정치, 경제의 현실과 경계가 분명히 나누어진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다.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은 오히려 그런 분할적인 경계선을
돌파하고 다양한 문화속에 아로새겨진 역사의 특수한 국면들을 지역적으로 탐색하는 일이며, 동시에 그것들의 차이의 역사와 영토를 긍정하려는
노력들이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중첩된 영역, 뒤얽힌 역사"라는 말로 근대 세계를 실질적으로 형성하고 지배했던 제국주의적 음모를 타파하고 식민지의 눌린자들의 혼성적인 목소리와 이질적인 전통을 타자 그 자체로서
인식하려는 기획을 표현한 바 있다.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은 우선 이 시대를 상징적인 식민지시대로, 그리고
우리의 상황을 식민지적인 상황으로 파악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비단 식민지시대뿐만 아니라, 독립을 얻은 후에도 계속 남아있는 식민지의 역사와 정치, 문화적 휴우증을 앓고 있는 식민지 이후의 시대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은 식민주의의 잔재부터 시작, 오늘날 더욱
교묘해지고 더욱 파악하기 힘든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제국주의의 탐색으로까지 관심범위를 확장하기 때문에 대단히 현실적-실천적인 문제의식을 지니며, 그 탐색은 반-언술/담론(反-言述, 談論 counter-discourse)의
비평적-위기적(critical) 성격을 띤다.
2. post라는 접두어의 역어 : '탈(脫)'-식민주의 혹은 '후기'-식민주의
포스트-콜로니얼리즘(post-colonialism)은 보통 우리나라에서는 탈-식민주의로 번역되곤 한다. 포스트모더니즘 역시 후기 모더니즘이라 부르기도
하며, 해체주의는 후기 구조주의, 포스트구조주의, 혹은 탈구조주의라고도 부른다. 포스트라는 접두어가 번역의 과정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사항이라고 할 때, 그 말을 적절하게 번역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번역과 관계된 학자들의 논쟁을 보면, 번역의 문제도 곧바로 권력의 문제-그들이 위와 같은 지적 흐름들을 통해 근본적으로 밝히고자 하는 현실에서의 지식과 권력의 문제와 연결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번역의
통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장 권위있고 보편적 의미를 획득할
수 있는 적절한 역어를 찾는 일은 학자들간의 경쟁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만일 어떤 학자가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을 후기-식민주의로 번역했다면, 다른 학자는 이에 대해 근거있는 반박을 통해 탈식민주의라는 말을
사용하자고 건의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단지 번역의 문제일까. 그리고 적절한 역어를 찾는 일이 오직 하나의 용어를 만들어나가는데 있어서
학자들간에 합의/건의의 문제로만 남아있을 수 있을까. 아마 학자들은 번역을 통해 그들이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해체주의를 통해서 밝히고자하는
여러가지 문제들 속에 그들 자신도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염두해 두어야 할 것이다. 번역은 단지 학자들간의 논쟁거리가 아니라, 번역이 행해지고 있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담론의 장속에서, 번역자 자신들이 속해있는 나라와 나라의 상이한 문화적 역학에 따라 파악해야 한다. 한편으로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의 역어는 그와 동시대의 주요한 사상적, 문화적 흐름들과 연계지어 파악할 때 보다 분명한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
예를 들어 모더니즘앞에 포스트라는 접두어를 붙였을 때 야기되는 상황과
논란은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을 정의하거나 번역할 때도 일어난다. 포스트는 식민주의를 넘어서서 그리고 식민주의 이후에 새롭게 구성되는 독립과
자율성의 단계와 의식을 가지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신식민주의라는 말처럼 그 체제의 연속과 강화를 지칭하는가? 바로 포스트를 후기라는 접두어로 번역할 때 이런 의미들이 따라붙는다. 한편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을 모더니즘과의 단절 속에서 그 나름대로 이해하고자 할 때,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의 포스트는 반식민주의나 반제국주의 비평의 범주내에서
이해되고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대략 남한의 민중문학론이나 사민과 라틴
아메리카 지식인들의 종속이론, 프란츠 파농의 사회 심리학적 저작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렇지만 중심과 주변, 제 1세계와 제 3세계를 대립적인 위치에서 파악하는 식민주의에 대한 종래의 분석은 왜 포스트라는 접두어가 붙은 식민주의에 대한 비평이 새로이 등장하게 됐는지에 대해서
설명해야 한다. 탈이라는 역어가 합당해 보이는 순간이다. 한편으로 탈식민주의가 적절한 역어인 듯 보이면서 동시에 불안해 보이는 이유도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은 과거의 식민주의 시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제국주의적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없는 모든 문화(넓은 의미에서 사회, 정치, 경제의 영향이 스며들어있는)를 포괄하는 통칭의 개념이다.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이라는 용어가 서구와 미국(아마도 제 2세계라고 부르는 구 소련이나 중공까지 포함해야 할지도 모른다)의 제국주의적 침략의 역사를 적절히 반영한다고 볼 때, 기존의 식민주의에 관한 담론역시 포스트-콜로니얼리즘과 같은 역할을 모자라게 수행하지는 않았다. 가령 남한의 민중문학론이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이 내세우는 문화에 비해 사회/정치적으로만 파장력을 가졌던가. 이미 민중'문학'론이라는 말 속에 그 해답이 있다. 그렇다면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은
단순히 탈식민주의로 번역될 수 없는 용어이다. 이렇게 볼 때,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은 구체적으로 그 담론이 산출된 역사적, 사회적 배경을 통해,
그리고 그 담론이 출현할 때 자양분을 주었던 다른 이론들과의 상호 텍스트적 관계를 통해 이해해야 보다 분명한 의미를 지닐 수 있게 된다.
탈식민주의 비평가 호미 바바(Homi K. Bhabha)는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이
제 3세계 국가들의 식민지 경험에 대한 증언과, 소수인종들에 대한 담론으로부터 출발하여 국가들, 인종들, 집단들, 그리고 민족들의 차별화된
역사들과 불공평한 발전에 개입한 제국의 논리에 브레이크를 걸고, 그 속에서 억압되고 가려진 문화적 차이와 사회적 권위, 정치적 차별문제에 관해 비평적으로 수정하는 작업을 해 왔다고 정의하고 있다. 여기에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은 다음과 같은 비슷한 세대의 담론과 실천들과도 일정한
관련을 맺으면서 성장해 왔다. 단일한 중심적 서사와 정전의 개념을 거부한 포스트모더니즘, 서구의 형이상학의 역사와 음성중심주의에 내재한 주체의 폭력과 권위를 문제삼은 철학적 해체주의, 억압받아온 여성들의 지위와 조건들을 비판하는 페미니즘, 말 못하는 소수인종들과 흑인들의 위상을 근본적으로 문제삼은 소수 문화정치, 게이/레즈비언의 상이한 성적
지위를 인정하려는 성담론(혹은 퀴어이론)의 반-언술은 모두 포스트-콜로니얼리즘과 이론적/실천적 에너지를 주고 받아왔다.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이 "식민지(더불어 제국주의) 경험의 특수한 양상들이 생산되고 수용되는 역사적이며 국가(민족)적인 맥락들과" 얽혀있다는
점에서 통국가적(transnational)이라면, 식민지 내/외부에서 다양한 문화가 생성되고 혼합되어 의미를 산출하고 교환한다는 점에서는 통역적(translational)이다. 또한 그것은 근본적으로 사회와 역사, 정치등을 포괄하는 실천적 담론행위나 정전이라고 일컬어온 텍스트에 대한 분석적 작업속에서 통-문화적 비평(cross-cultural critic)의 형태도 띠고 있다.
우리는 다음 장에서 위와 같은 관심을 갖고 특히 '제국의 중심부'에 들어가서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의 이론적/실천적 작업을 행하는 몇몇 비평가의
행적과 사상을 간략히 제시해 보도록 할 것이다.
3. 제국 바깥에서 온 제국 속의 이방인들 : 바바, 스피박, 사이드
1) 호미 바바(Homi K. Bhabha) : 위장과 흉내, 혹은 혼혈의 전술
인도태생인 호미 바바의 탈식민주의적 비평은 주로 식민주의 담론의 탐구를 위해 데리다, 라캉, 바흐친등의 지적 자원을 불러온다. 그가 관심을
갖는 주제는 식민지적 양의성(ambivalance)과 문화적 혼혈성(혹은 잡종성)이다. 제국주의는 식민지인을 야만인으로 보고 그들을 자국의 문화수준으로 교육시키겠다는 계몽주의를 내세운다. 그렇지만 피식민지인 만큼의 수준으로 그들을 가르치지는 않는다. 식민의 지배자에게 식민지인들은
계몽된 노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식민지적 양의성, 제국의 국민들과 거의 같지만 꼭 같지는 않은 식민지 주체를 생산하려는 제국의 음모이다. 그렇지만 식민지인들에 대한 이 부분적인 교화가 바로 식민지인이
지배자들에 대항하는 틈새이다. 양의성을 거꾸로 이용할 기회가 온 것이다. 바바는 흥미로운 예를 든다 : 지배자들이 '눈에는 눈 an eye for an
eye'이라고 영어를 가르치면 식민지인들은 '눈에는 눈 an eye for a I'이라고 따라한다. eye와 I는 발음이 같다. 데리다의 differance/
difference의 a가 오직 글로 써서만 나타나는 차이, 모든 동일성의 체계를 무너뜨리는 차이인 것처럼, eye/I 도, 바바의 표현을 빌면, '사악한
눈'/'자기' 'evil eye/I'가 된다. 지배자의 계몽적 기획이 착취의 양태라는 것을 폭로하는 차이의 주체인 식민지인은 이렇게 해서 제국의 통치에
대한 저항을 시작한다.
라캉의 흉내내기(mimicry) 전략도 제국의 지배자들의 계몽적 양의성을 전복시키는 행위이다. 흉내내기는 한마디로 적을 이겨내기 위해 적을 닮되,
위장하는 전술이다. 겉으로 차이가 없지만 결국 적을 흉내내고 복수적인
정체성으로 지배자를 혼란에 빠뜨린다.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가. 예를
들어 엄격한 카스트 제도속에서 살던 인도의 하층민들은 영국의 선교사가
전해준 기독교의 평등원리에 크게 매혹된다. 그들은 성경을 읽고 기독교인으로 개종을 하지만, 소고기를 먹는 영국인들의 성찬식에 참여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위장한 기독교인들이다. 원주민에게 기독교는 진리이지만, 지배자들의 기획에 원주민의 기독교는 위배된 진리이다. 이것이 제국의 양의적인 기획에 저항하는 식민지인들의 흉내내기의 전략이다.
혼혈성(잡종성)도 마찬가지이다. 바흐친의 다성성의 개념은 바바에겐 혼혈성으로 전환하는데, 혼혈성은 권위의 단성성을 문제삼고 불안하게 만든다. 식민지인들은 지배문화를 받아들이지만, 그들 고유의 문화와 외디푸스적인 충돌을 통해 혼성적인 문화를 만들어내고, 이러한 잡종의 문화를
통해 원래 있었던 제국의 문화적 기획을 횡단하며 무너뜨린다. 바바의 양가성, 흉내내기, 혼혈성의 전략은 제국의 지배에 대한 식민지인들의 복합적인 저항의 형태이다. 하지만 이것이 역투사되어 오히려 제국에 순응하는 새로운 억압기제로도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바바의
개념들 모두가 모호한 것은 식민지인들이 이것들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저항이 될 수도 있고 복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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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윤명로 「문신」 캔버스에 유채, 혼합재료 162.4×130.7cm 1964 개인소장
아래. 장 뒤뷔페(Jean Dubuffet)
「아버지의 충고」 메소나이트에 유채
64.5×53.8cm 1954 개인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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