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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수기
한없이 부족한 제가 시험에 합격하고 또 수기까지 쓰게 되다니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많습니다. 저는 슈퍼 장수생으로 이번에 충남으로 합격하였습니다. 올해 늘어난 티오와 여러 가지 행운까지 겹쳐 꿈에서나 그리던 합격의 기쁨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저의 수기가 얼마나 여러분께 도움이 될까 생각하니 먼저 두려운 마음이 앞섭니다. 그러나 정명수 선생님의 격려를 받고 용기를 얻었기에 저의 수험경험이 조금이나마 여러분께 보탬이 될 것이라고 혼자서 위안을 삼아봅니다. 글에 조리와 두서가 없는 점 널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1. 합격하기까지
졸업하면서 치룬 첫 시험(1차:주관식, 2차:수업실연, 면접)이 커트라인과 불과 2점 여밖에 나지 않아 마음속으로 임용시험을 얕보았던 것 같습니다. 여름까지 마트알바와 공부를 병행하면서 바뀐 출제경향(1차:전공객관식, 2차:전공논술 3차:수업실연, 면접)에 대한 면밀한 준비 없이 아무생각 없이 공부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두 번째 시험은 커트라인과 큰 차이를 보이며 낙방하고 말았습니다. 삼수 때는 졸업한 학교에 가서 조별스터디를 짜서 공부했습니다. 공부만 하였고 실력에 대한 자신감도 있어서 1차 합격에 대한 기대가 높았지만 결국 1점차로 떨어졌습니다. 절치부심하며 다음 시험 준비를 했지만 지원 지역 커트라인이 다른 지역보다 유독 높았던 관계로 또 낙방하고 말았습니다. 네 번째 시험에 낙방하고 더 이상 공부만 할 수 있는 사정이 되지 못하여 일과 공부를 병행하기로 하였습니다. 기간제 교사나 강사를 하고 싶었지만 직업을 구하는 것이 여의치 못하였고 또 가계를 부양해야 했기에 알바의 수입으로는 한계가 있어 결국 현장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작업이 끝나고 공부를 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기존에 해왔던 공부 방법은 유지하고 시간을 줄이는 방식으로 하루 두세 시간 이상은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나 야근이 있는 날이나 피곤한 날은 공부를 하지 못하는 날도 많았습니다. 이 때문에 다섯 번째 치룬 시험은 컨디션 조절에 실패하면서 낙방하게 됩니다. 여섯 번째 시험과 일곱 번째 시험도 역시 기대와 달리 낙방하게 되고 저는 많은 상심을 했습니다. 수험기간이 길어질수록 자신감은 더더욱 없어졌고 스스로 한문 실력에 대한 회의감은 늘어만 갔습니다. 일곱 번째 시험이 끝나고 ‘나는 안 되는 놈인가’ 하며 깊은 좌절을 하였지만 이미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특별한 재주도 없고 달리 취직할 방법도 별다른 묘책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공부하여 팔 수만에 결국 최종합격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른 합격자와는 달리 철저한 공부계획과 자기관리로 얻은 합격은 아닙니다. 그러나 오랜 수험기간과 수많은 낙방을 통해 합격하였기에 그 기쁨이 더욱 소중하고 크게 느껴집니다. 수없이 포기하려 했지만 미련함에 가까운 저의 우직함 때문인지 7전8기의 성공을 거둔 것 같습니다. 저는 비록 많은 기회를 놓치며 뒤늦게 합격을 하였지만 여러분들은 부디 계획을 잘 세우고 현명하게 공부하여 꼭 단기간에 시험에 합격하길 바랍니다.
2. 전공 공부 방법
※ 경서 - 경서의 중요성은 다들 아실 겁니다. 저도 대학 때 사서는 보았지만 치밀하게 보지 못하였고 단지 수박 겉핥기에 불과했던 것 같습니다. 시험 유형도 서술형으로 바뀌었기에 예전처럼 무턱대고 외우기보다는 꼼꼼하게 번역하는 연습을 통해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는 단계까지 가야 합니다. 사서 중에서도 논어와 맹자는 더욱 중요합니다. 저는 학민문화사의 책으로 공부를 하고 주는 성백효 선생님(전통문화연구회)의 것을 참고했습니다. 방학 때에 서당에서 공부하고 졸업 후에 사이버서당 강의(권경상 선생님)를 꾸준히 들은 것이 경서의 감을 유지하고 번역 실력을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사서 외에 장자는 소요유, 제물론, 추수를 순자는 권학, 해패를 보았고 나머지 제자서들은 보지 않았습니다.
※ 한국산문 – 아마도 시험 준비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영역이 아닌가 싶습니다. 먼저 산문공부를 하면서 느낀 점을 써보겠습니다. 한국산문은 매우 중요하고 봐야할 양도 많습니다. 수험기간 동안 느낀 것이 이건 정말 봐도 봐도 끝이 없다는 것 이었습니다. 봐야 할 산문의 양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이 본다고 다 아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번 박지원 문장도 보았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번역해서 풀었으니까요. 중요한 것은 많이 봐서 불확실한 것 보다는 적게 봐도 확실하게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 낫다 입니다. 이점이 참으로 어려운 것 같습니다. 또 처음 번역이 잘 안 될 때는 제 자신에게 화가 많이 났었습니다. 부족한 번역 실력에 좌절한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해보고 안 되면 바로 번역을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잘못이라는 점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번역이 안 된다고 바로 번역을 찾아본다면 정말로 효과가 없습니다. 번역이 잘 안되면 잠시 뒤에 번역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다음날에 다시 번역해보고, 또 다음날에 해보고... 이런 과정을 통하면 어느 정도 해결이 되고 가끔은 불현듯 생각이 나서 해결되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번역 실력이 향상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생각하지 않고 타성적으로 번역만 하는 것도 매우 경계해야 합니다. 열심히 번역은 했는데 정작 나중에 무슨 내용인지 생각이 안 납니다. 제가 여실히 느꼈습니다. 공부도 전투적으로 해야 합니다. 번역하고 끝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요약정리해서 자기만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여한십가문초와 연암의 주요산문들은 스터디 조를 짜서 함께 보았습니다. 그 외의 작품은 원주용 교수의 고려시대 산문읽기, 조선시대 산문읽기와 민병수교수의 한국한문대표작평설(태학사)을 참고해서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외 주요작품은 고전번역원DB에서 작가별로 뽑아서 공부했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첫째, 양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적은 양이라도 확실하게 공부할 것과 둘째, 번역본 찾아보지 말고 스스로 번역해볼 것, 마지막으로 생각하면서 번역해볼 것으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 중국산문 – 중국산문도 보려고 하면 끝도 없지만 저는 고문진보 후집(을유문화사)만을 보았습니다. 앞에 이소를 빼고 모든 작품을 3회독 했습니다.
※ 역사서 –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예전에 비해 비중이 줄어들었는데 그래도 한번은 꼭 보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교과교육과 관련한 문제는 친숙한 지문에서 주로 나오니 내용을 확실하게 알면 문제 푸는 시간이 훨씬 단축된다는 것을 또 한 번 느꼈습니다. 저는 삼국사기(을유문화사)는 열전만 2회독 하였고, 삼국유사(을유문화사)는 한번만 보았습니다. 통감절요(전통문화연구회)는 1권 후진기까지만 보았고, 18사략은 대학 때 배운 것을 바탕으로 1회독 했습니다.
※ 한국한시 – 올해 시험은 작년과는 다르게 한시의 비중이 높았던 것 같습니다. 한시는 배운다고 곧바로 실력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하면 절대 합격할 수 없기 때문에 전략을 잘 짜야 합니다. 저는 산문을 번역하는 데는 자신이 없었지만 한시는 자신 있게 번역해 보려고 한 것 같습니다. 한시는 길어봐야 7자이기 때문에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말이 되게 번역을 해본 것이 한시공포증을 이겨내는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한시 공부를 처음 할 때 민병수교수의 한국한시사를 쭉 한번 읽으면 좋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작가와 작품은 물론 한시학사의 흐름도 잡을 수 있습니다. 여러 차례 읽으면 더 좋습니다. 이번 전공 논술형문제도 이 책을 꼼꼼히 보았다면 쉽게 풀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여기에 김갑기 교수의 한시로 읽는 우리 문학사(새문사)를 참고하면 큰 도움이 됩니다. 한국한시 작품에 대한 자세한 해설은 민병수 교수의 한국한시대표작평설(태학사)과 정민 교수의 한시미학산책을 참고했고 손종섭 선생님의 옛 시정을 더듬어, 다시 옛 시정을 더듬어, 손끝에 남은 향기를 통해 다양한 작품을 공부했습니다. 또한 심경호 교수의 한시의 세계(문학동네), 김상홍 교수의 한시의 이론(고려대학교 출판부)을 통해서 한시의 어려운 부분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 중국한시 – 중국한시는 고문진보 전집(을유문화사)으로 공부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백과 두보에 대해서는 손종섭 선생님의 이두시신평(김영사)을 많이 참고 했습니다. 그리고 시경부터 송나라까지 대표 한시를 모은 심우영 교수의 중국시가감상(상명대학교)은 스터디를 짜서 공부했습니다.
※ 시화 – 시화는 비중이 적다고는 하지만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저는 동인시화, 성수시화, 농압잡지는 스터디를 통해 해결했고 혼자서는 우리겨레의 미학사상(보리)을 보면서 보완했습니다.
※ 한문소설 – 소설의 단골 메뉴인 금오신화는 스터디를 통해 전편을 보았습니다. 시험문제에 내용을 묻는 것이 나올 수도 있고 이번처럼 제목을 물을 수도 있으니 꼼꼼히 공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범우사에서 나온 기재기이에 원문과 번역이 함께 실려 있으니 공부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박희병교수의 한국한문소설 교합구해(소명출판)에는 많은 소설작품과 해제까지 실려 있는 소설의 보고이므로 참고해서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문소설사는 차용주교수의 한국한문소설사(아세아문화사)를 스터디 시간을 통해 정독하는 것으로 공부했습니다. 야담집은 안대회 교수의 추재기이(한겨레출판)를 보았고 윤재민 교수가 편집한 한국한문소설작품선(학민문화사)으로 혼자 독해연습을 했습니다.
※ 한문학사 – 재학 시절때 한문과 교수님 별로 kiss에서 주요 논문을 찾아보고 정리를 한 것이 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이것을 책으로 만들어 중요한 부분에 색칠을 해두면 나중에 쓱쓱 훑어만 봐도 큰 도움이 됩니다. 졸업 이후에는 차용주교수의 한국한문학사(아세아문화사)가 출판되었는데 정독한다면 한문학사의 큰 줄기를 이해하고 흐름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 교과교육 – 수험기간 동안에 교육과정만 세 번 바뀌었습니다. 교육과정이 세 번 바뀔 동안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저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교육과정 한 문제만 더 맞았더라면 하는 후회가 뼛속까지 사무칩니다. 그만큼 중요하지만 소홀한 것이 교과교육입니다. 무조건 다 맞출 각오로 공부해야 합니다. 바뀐 교육과정 해설서를 충분히 읽고 이해해서 시험 전에는 거의 암기할 정도로 공부해두어야 합니다. 덧붙이자면 개정교육과정 교과서도 한 번씩 훑어보는 것이 서술형교과교육문제를 푸는 것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3. 교육학 공부 방법
15점 이상 교육학 점수가 나올 때도 있었지만 이번시험에서는 과락을 겨우 넘긴 점수를 받았습니다. 전공대비 턱없이 부족했던 교육학 공부시간과 말도 안 되는 저의 논술실력이 한 몫 한 것 같습니다. 교육학 주요 이론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암기하여 자신만의 글쓰기로 풀어내야 하는데 저는 실패했습니다. 여러분은 저를 반면교사삼아 꼭 고득점을 하시길 바랍니다.
4. 마치며
부족한 글쓰기 실력으로 수기를 쓰다 보니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온전히 전하지 못했습니다. 또 앞에서 열거한 공부 방법처럼 철저하게 공부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책 소개에만 그친 것 같아 죄송스런 마음입니다. 有志處在道.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有志者事竟成 뜻이 있는 이는 일이 마침내 이루어진다. 오랜 수험 기간 동안 저를 바라보며 애태운 늙으신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늦더라도 반드시 교단에 서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새벽 6시에 안전모를 챙겨 일터로 나가면 항상 뒤에서 말없이 지켜보시던 아버지의 눈빛이 생각납니다. 합격소식에 저를 얼싸안고 눈물 흘리신 아버지께 이제야 조금이나마 자식 된 도리를 한 것 같아 마음이 놓입니다. 지금 임용고시는 苦試가 된지 오래입니다. 낙방의 눈물을 흘리고 포기하느냐, 다시 시작하느냐의 갈림길에서 방황하고 있을 장수생 여러분들. 저는 ‘절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라고 단호히 말하고 또 응원하겠습니다. 참교육으로 지도해주신 정명수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제가 힘들 때마다 힘이 돼 준 시구를 끝으로 이만 마치겠습니다. 부족한 수기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A.S. 푸쉬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 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지나간 것은 그리움이 되리니
첫댓글 축하드립니다 ㅎㅎㅎ
예 부족한 수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콤맨님과는 오래 만난 사이는 아닙니다만 내 기쁨도 몇 년을 같이 한 친구들 못지 않습니다. 나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확연루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어 준 것도 고맙고 푸시킨으로 마무리한 것도 인상적이구요.^^
공부한 양에 비해서 합격이 늦을 걸 보면 역시 운빨이 작용하는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혹시 ......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케 하는 경험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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