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세존사 인터넷 방송입니다.
오늘은 1월 16일 월요일입니다.
지난 목요일이지요? 방송 사고가 났었습니다.
알고 보니 제 컴퓨터가 이상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어느 지역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카페에서 정리하는 기술적인 문제가 있었던가 봅니다.
오늘은 잘 되어서 그래도 참 다행입니다.
무슨 생각을 해 봤는가 하면 다음 카페가 우리들을 이렇게 만나게 해 주기도 하고
또 이런 법석, 법회의 자리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 참으로 고맙다 라고 하는 생각을
참으로 갖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우리 인간들은 어려움을 한 번 겪어 봐야 거기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게 되나 봅니다.
저도 아무런 생각 없이 방송을 통해서 강의하고 그렇게 했습니다만
방송이 그렇게 끊어지니까 아차 다음에서 만들어 놓은 인터넷 카페야 말로
참으로 고마운 곳이다. 그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제가 처음에 몇 년 전에 카페라고 해서 카페가 뭘까?
술 마시고 차 마시고 그런 곳이 있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무슨 카페 무슨 카페 그래서 아하, 불자들이 부산이나 서울 시내에서 카페에서
만나는가 했는데 이렇게 우리들을 만나게 해 주는 장소, 모임을 장소 이름이 카페라는
것을 알고 시설을 했습니다.
이렇게 내용을 모르면 오해 할 수도 있겠지요?
다행스럽게 오늘 공부하고 내일은 공부 마치고 종강을 하게 됩니다.
선요를 한 50여회 가까이 강의를 해 오면서 우리들이 지금까지 무엇을 배웠고
앞으로 내가 참선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조금은 이해했으리라고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通仰山老和尙疑嗣書 其二八 (2)
앙산 노화상을 통하여 공부를 이어가다. 28
지난 수요일 날 강의 했던 것이지요?
내용을 보면 노화상 고봉화상께서 지난날 경험했던 것,
출가해서 스님이 되어서 단교 화상을 뵙고 여러 스승들을 찾아뵙고 경도
배우고 참선에 3년 결사를 하시는 그런 말씀을 하셨지요?
오늘 이어서 계속 하겠습니다.
자 내용을 볼까요?
忽於次月十六夜夢中(홀어차월16야몽중)에
우연히 다음날 열여샛날 밤에,
忽憶斷橋和尙(홀억당교화상)의
室中所擧萬法歸一一歸何處話(실중소거만법귀일일귀하처화)호니
홀연히 단교화상의 가르침 속에서 만법귀일일귀하처를 들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보면 고봉 화상이 無자 화두를 들기도 하고
그랬지요? 이것도 들어도 안되고 저것도 들어도 안되고 했는데
그래도 마음속에 만법귀일일귀하처를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제가 5-6년 전에 원각경을 강의 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한 부분이
있는 것을 봤습니다.
원각경 강의한 것을 동영상으로 촬영을 해서 만들어 올려놨는데
보니까 제가 처음에는 시삼마라는 화두를 들어 봤고, 무자 화두를
들고 씨름을 하다가 그것도 내 버리고 다시 만법귀일 일귀하처를
들다가 결국 처음 시작했던 시삼마를 하게 되었다는 얘기한 부분
이 있었는데 고봉화상의 말씀을 듣고 제 생각이 나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고봉화상이 처음 했던 것이 만법귀일일귀하처이지요.
그래서 만법귀일일귀하처가 딱 떠올랐던가 봐요.
自此(자차)로 疑情(의정)이 頓發(돈발)에
이로부터서 이 의심덩어리가 딱 일어나서
打成一片(타성일편)하야
한덩어리가 딱 되니,
直得東西不辨(직득동서불변)하며
바로 동서를 가리지 못하고,
참선을 정말 열심히 하게 되면 정말 동서를 가리지 못합니다.
寢食俱忘(침식구망)호이다
침식도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밥 먹고 잠자는 것도 다 잊어버렸다.
至第六日(지제6일)하야
6일째 이르러서,
辰已間(진사간)에
아침 시간이지요?
진시와 사시 사이입니다.
在廊下行(재랑하행)이라가
행랄채에 거닐다가,
절에 보면 행랑채가 있는데, 행랑채라는 것은 법당이 있고
법당은 본채라고 안합니다.
해인사 같은 데는 법당이 있고 그 밑에 보면 큰 대중방이 하나
있습니다. 대중방에서 스님들이 모여서 공부도 하고 토론도 하고
회의도 하는 본 건물을 이야기 하는 것이지요.
본채 옆에 조그마하게 달려 있는 집을 행랑이라고 합니다.
행랑채를 거닐다가,
見衆僧(견중승)이 堂內出(당내출)하고
보니까 여러 스님들이 선방에서 죽 나와서,
밖으로 어딘가 가신다는 말이지요. 그것을 보고,
不覺(불각)에 輥於隊中(곤어대중)하야
나도 모르게 여러 대중 가운데 섞여서,
至三塔閣上(지3탑각상)하야
삼탑 전각위에 가서,
삼탑사라고 있는데 상경사라고도 하고 삼탑사라고도 하고
탑이 3개 있어서 삼탑사라고 합니다.
원래 이름은 상경사이지요. 제가 갔다 왔습니다. 그곳에,
지난번 여행하다고 우연히 그곳을 갔었는데 운남성에 있지요.
전각에 올라가.
諷經(송경)이라가
경을 외우다가.
擡頭(대두)하야
머리를 들었다는 말이지요.
忽親五祖演和尙(홀친오조연화상)의 眞贊末後兩句(진찬말후량구)에
이렇게 보니까 오조법연 선사가 있지요?
오조 법연선사의 진영 가운데 찬이 있어요
스님들 그림이 있는데, 초상화이지요?
스님들 초상화는 얼굴을 똑 같이 그리지 않습니다.
얼굴을 똑 같이 그리지 않으려 해서 안 그리는 것이 아니라
기술도 있어야 되겠지만 그 스님이 갖고 있는 품성, 법 이런 것을
그리지요. 그래서 이것을 진영이라고 그럽니다.
진영이라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을 얘기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사진은 그 사람의 얼굴 모양 그대로, 옷 입은 그대로,
찍어 내는 것이지만, 이렇게 복사판처럼 찍어내는 것이 아니고
예컨대 우리가 지금 원효 대사를 그린다고 하면 원효 대사를
보지도 못했고, 사진 자료니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런데 원효 대사에 대한 글이 많이 있어요.
글을 보고 화가가 명상에 든다던가 해서 원효 선사는 이런 분이
겠다 해서 원효 대사를 그려내게 됩니다.
그렇게 하면 진영이 되는 것입니다.
진영에 보면 스님 사상을 아주 짧은 글씨로 써 놓은 것이 있어요.
그것을 찬이라고 합니다.
진찬말후양구에, 두 구가 있었던가 봐요.
두 구에 이르기를,
云百年三萬六千朝(운백년3만6천조)에
3만 6천 5백조이지요? 백년이라는 것은 3만 6천 5백일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인간이 100년 산다하고, 실제 100년 사는 분도
계시지요? 100년 3만 6천 날에,
返覆元來是這漢(반복원래시저한)하고
되풀이 되는 놈이 원래 이 놈이다.
쓰여 있기를 백년 3만 6천 날 동안 늘 그 놈이 그 놈이다.
그런 얘기예요.
엊그제 강의를 들었던 그 놈이 바로 오늘도 강의를 듣고
오늘 강의 들었던 그 놈이 내일 강의 듣고
오늘 숨 쉬던 그 놈이 내일 숨 쉬고 그런다는 것이지요.
이 얘기는 그런 얘기입니다.
日前被老和尙(일전피노화상)의
그 내용을 보고 이전의 노스님이 다그쳐 물었던,
옛날의 노스님은 단교화상이지요?
단교화상이 멱살을 잡고 죽은 송장을 끌고 다니는 놈이 누구냐?
그렇게 물었다는 말이지요?
다그쳐 물었던 송장 끌고 다니는 놈이 누구인가?
所問拖死屍句子(소문타사시구자)를 驀然打破(맥연타파)호니
이 송장 끌고 다니는 놈이 어떤 놈이야 했던 것을
갑자기 타파했다. 깨뜨렸다는 말이지요.
直得魂飛膽喪(직득혼비담상)하야
혼이 날아가고 간담이 살아져서,
혼비백산한다고 하지요? 간담이 서늘하다는 말 쓰지요?
그런 얘기예요. 간담이 서늘하다.
絶後再甦(절후재소)호이다
끊어졌다가 다시 살아남과 같았소이다.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니까 이와 같이 어떤 의문을 가지고
있을 때 깨달으면 정말 기쁜 것이지요.
何啻如放下百二十斤擔子(하시여방하백이십근담자)리닛고
이것이 어찌 120근이나 되는 짐을 내려놓은 듯 하지 않겠느냐?
120근이면 얼마나 무겁겠어요. 100근 아니라 50근도 상당히
무거울 것인데, 120근이나 되는 물건을 들었다 놓은 것 같지
않겠느냐 그런 말이지요.
乃是辛酉三月卄二少林忌日也(내시신유3월이십이소림기일야)러이다
이때가 언제냐 하면 신유는 3월 22일,
소림이라는 것은 달마 스님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달마 스님 기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달마 스님 기일 날 깨달으신 것이지요.
其年(기년)이
그 해가,
恰 卄四歲(흡이십사세)라
옛날에는 한자를 卄이라고 이렇게 썼습니다.
열십이 더블이지요? 십 십이니 이십이지요?
이것을 옛날에는 이십이라고 읽는 것입니다.
이런 글자가 옥편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잘 없지 싶어요. 24세였다 이 말이지요.
그러니까 스님은 24에 초견성을 하신 것이어요.
다음 구절 보겠습니다.
滿三年限(만3년한)코사
만 3년을 기한하고,
便欲造南明求決(변욕조남명구결)이나
문득 남명사에 가서 인가를 구하고자 하였으나,
구결이라는 것은 결정코 내가 뭔가 한 번 구하여야 되겠다
진짜 깨달은 것인지 해 봐야 되겠다 그 말이지요?
노스님을 찾아가서,
那堪逼夏(나감핍하)리닛고
폭서(暴暑)라서 어떻게 감당하리꼬,
감당하기 힘드니,
諸鄕人(제향인)도 亦不容(역불용)이러이다
마을 사람들도 모두 말렸습니다.
용납하지 않았다는 것은 말렸다는 얘기지요.
아이구, 스님 이렇게 더운데 못 갑니다.
저번에는 길도 멀고 초행이라고 못 간다고 말리고
도첩을 빼앗아서 못 갔지요?
오늘은 또 날이 더워서 못 간다고 말린 것 같습니다.
直至解夏(직지해하)코사
여름 하안거가 끝나고,
方至南明(방지남명)하야
바야흐로 남명사에 가서,
納一場敗闕(납일장패궐)호니
저의 허물을 방장스님께 낱낱이 말씀드리고,
패궐이라는 것은 내가 잘못한 것을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뭐 잘못 깨달은 것이 있을까요?
제가 지금까지 혹시 잘못 된 것은 없습니까? 이렇게 여쭌다는
것이지요.
室中(실중)에 雖則累蒙煆煉(수즉누몽하련)하야
방장스님의 가르침을 입어서,
明得公案(명득공안)코는
공안의 뜻을 알고
그러니까 방장스님이 이런 것을 전부다 헤아려서 공안의 뜻을
알아서
亦不受人瞞(역불수인만)인나
또 남의 속임을 받지 않더라도,
及乎開口(급호개구)하야는
입을 열 때는
心下又覺得渾了(심하우각득혼료)하야
마음 속에 찝찝함이 있어서,
그러니까 스님한테서 가피를 입었는데
공안을 얻고 깨달았다고 하나 이제는 사람한테 속임은 당하지는
않아요. 그러니까 사람한테 속임을 당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니까 속임을 당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뭔가 아는 사람은 사기를 안당하지요?
속임을 안당한다는 말이지요. 누구한테 속임은 당하지 않겠다.
그러나 마음에 찜찜한 것이 있어요.
於日用中(어일용중)에
일상 가운데,
尙不得自由(상부득자유)호미
오히려 자유스럽지 못하니,
如欠人債相似(여흠인책상사)라
마치 어떤 사람에게 빚을 진 듯 하였습니다.
뭔가 찜찜해가지고 그러나 자유스럽지도 않고,
하여간 무엇인가 빚진 것 같다. 설명을 하셨지요?
正欲在彼(정욕재피)하야
바로 그 곳에 있으면서,
終身侍奉(종신시봉)이러니
죽을 때가지 시봉하려고 했는데,
不料同行澤兄(부료동행택형)오로
동행했던 택형과 함께,
有他山之行(유타산지행)일새
다른 산으로 갑자기 가게 되어서,
遽違座下(거위좌하)호이다.
큰 스님 계신 곳에서 떠나게 되었습니다.
거위라는 것은 떠났다는 얘기지요.
좌하라는 것은 우리가 보통 편지 쓸 때 끝머리에 보통 좌하라고 그럽니다.
어느 스님 어느 스님 좌하.
그런데 우리들이 종정 스님께 편지를 써서 보낸다고 할 때는 좌하라고 안하지요.
예하 라고 그럽니다.
그것은 종정스님께만 붙이는 극존칭이지요. 예하라는 것은,
그리고 보통 큰 스님한테는 법하.
큰 스님 법아래 있는 아무개입니다 그런 뜻이겠지요?
그 다음에 보통 스님들한테는 좌하라고도 씁니다.
스님이 법상에 앉아 있는 그 아래란 이런 말이지요?
여기서 좌하라는 것은 바로 그 말입니다.
큰 스님 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얘기지요.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내일은 종강이지요?
종강을 하고 현재로써는 다른 강의 계획이 없습니다.
언제 강의를 재개하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도 여러분들과 함께 만나서 참 좋은 인연이 되고 좋은 강의를 하려고
애썼습니다만 스스로가 만족하지 못한 것 같아요.
항상 하다보면 무엇이 많이 부족하고 또 설명도 미진한 것 같기도 하고
그럴 때가 많았습니다.
내일 마지막 날이니 대거 많이 좀 오셔서 우리들 스스로 공부한 것도 점검하고
좋은 토론도 있었으면 합니다.
오늘 고마웠습니다.
감사 합니다.
장산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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