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겸재전(大謙齋展)', 선비를 닮은 진경산수 2004/05/17 21:23 |
|
박쟁으로부터 '간송 미술관'에서 열리는 '대겸재전(大謙齋展)'에 가자는 제의를 받았을 때 나는 '겸재'보다 '간송 미술관'에 더 이끌렸다. 성북동 어딘가에 비밀스럽게 숨어 있는 이 미술관 이야기는 여기저기서 참 많이도 주워 들었다. 미술 전공자도 아닌 내게도 그리 익숙한 이름인 것 보면 이 미술관이 지닌 의미는 분명 남다를 것이다. 여타의 상업성 화랑이나 부호 남편 덕에 여류 명사들이 운영하는 갤러리와는 분명히 다른 예술사적 의미가 있을 것이다.
오후 3시, '간송 미술관'엔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간송 전형필님의 깊은 뜻을 새기며 느긋하게 산책하듯 그림들과 눈 맞추며 대화할 수 있으리란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어제의 전시회 나들이는 충분히 즐거웠다.
미술관 전시실 입구는 좁은 뒷마당에 있었다. 일층에 사람이 워낙 많아서 이층부터 보았다. 토요일 밤 인터넷 신문을 통해 '서울은 기록되어야 한다.'를 추진하는 영화감독 이재용 씨의 가사를 읽어서였을까? 수백 년 전 서울을 그린 '한양진경' 시리즈는 인상적이었다. '자하동', '압구정동', '필운대', '송파나루', '광진', '목멱산의 일출' 등등 서울의 지명을 그림에서 만나는 일은 산뜻한 즐거움을 선사했다. 그림 속 서울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고즈넉했다. 현대판 부의 상징 압구정동이 한명회의 정자 '압구정'에서 유래된 지명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 옛날 압구정이 저리도 우아하고 웅장한 아름다움이었다니!' 감탄사 하나 발등에 톡 떨어져 내렸다. 하긴 당대의 권력가 한명회가 정자를 지은 곳이니 빼어난 경치를 자랑했겠지 싶다.
겸재의 붓끝에서 우리 산하는 꿈결처럼 아른거렸다. 섬세한 필치와 세밀한 관찰력으로 그려낸,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산수가 조금의 과장도 없이 말간 얼굴을 드러냈다. 높은 산을 그려도 깊은 골짜기를 그려도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산하는 사람을 주눅들게 하는 거친 위용이 없었다. 그의 그림은 은둔하는 선비같이 맑고 깨끗하고 속기가 안 느껴졌다.
그가 그린 몇 점의 금강산을 보았다. 가슴 가득 벅찬 기운이 느껴진다. 금강산 관광이 시작된 지 몇 년째이지만 특별히 그 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는데, 겸재가 살려낸 금강산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그의 금강산은 웅장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았지만 아주 유혹적이었다. 일만이천봉 봉우리마다 비밀스런 사연을 품고 있는 듯 깊고 신비스러웠다.
'독서여가(讀書餘暇)'나 화환상간(詩畵換相看)과 같은 그림에서는 겸재가 어찌 시간을 보냈는지를 잘 보여준다. 시간으로부터 물러나 앉은 은둔자의 여유와 담담한 삶이 엿보인다. 한가함을 즐길 줄 아는 이야말로 인생의 참맛을 아는 사람일 것이다. 한발 물러나 관조하는 시선을 모르는 사람은 늘 자기 중심의 감정에서 소용돌이치며 분노하고 힐끗거리고 안달을 한다. 그러다가 스스로 지치고, 지친 자신이 못내 못마땅하여 결국은 타인을 향해 칼끝을 겨눈다. 욕망에 분주한 이여, 겸재 그림 속 바람 소리에 귀기울여 보라. 아지랑이 같이 몽롱한 산그늘에 몸을 뉘여 보라. 삶이 좀 가벼워지지 않는가.
그의 그림 속에는 풍경을 그렸다 해도 늘 사람이 등장한다. 풍경과 사람이 하나가 되어서 조물주가 빚어낸 자연을 함께 즐기는 모습은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현대의 조경들이나 유명 관광지의 폭력적인 물량주의에 비한다면 얼마나 어여쁜 생각인가.
겸재가 그린 한양은 현대인이 일부러 찾아가 전원주택 짓고 사는 지리산 어느 자락만큼이나 한적해 보인다. 그런데, 그 시절에도 은둔의 삶을 찾아 낙향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보면, 사람들이 도시를 버리는 것은 공간의 복잡함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니라 관계의 복잡함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심리 때문이지 싶다. 순수하지 못한 인간관계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맑디 맑았던 본래의 자기 모습이 그리워질 때 괴나리 봇짐 하나 둘러매고 표표히 한양, 서울을 버리는 것이리라.
겸재 그림에서 또 하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잘 생긴 소나무였다. 일제 치하 소나무들을 마구잡이로 벌목하기 전 우리 산하의 소나무들이 저렇게 잘 생겼구나 감탄하게 만들었다. 소나무들은 쭉쭉 뻗어 올라가면서 힘차게 보인다. 채색하지 않았어도 붉디붉은 적송임을 알 것 같다. 애국가에 나오는 '남산 위의 저 소나무'도 바로 겸재가 그린 이런 소나무일 것이다. 소나무, 참 멋진 나무로구나!
더 없이 보배로운 문화재들 / 선생의 멀고 깊은 뜻이 더욱 길이 빛난다.
돌의자에 잠시 걸터앉아 흔들리는 나뭇잎들의 움직임을 느껴보았다. 초록으로 물들어 가는 바람은 좀 서늘했다. 서늘한 오월의 바람을 어루만지며 겸재 그림 속 선비처럼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겨 미술관 정원을 거닐었다. 고요해진 마음 안에 금강산이 출렁이며 솟아올랐다가 사라졌다.
미루나무 한 그루ㅣ다음블로그 바람결에 실려온 엽서 한 장
|
-----------------------------------------------------------
지금 간송에서 다시 겸재전(2009_0517 > 0531)이 열리고 있지요.
5년전 이맘때 미루님이 쓴 글인데, 읽고 또 읽고 싶은 좋은 글이라 제가 데려왔습니다.
+ 링크 :
겸재 정선, 진경산수 http://cafe.daum.net/adelle/ASb/795
첫댓글 토요일엔 보스코님 벙개, 일요일엔 박하님 벙개ㅡ 암요, 다들 한 번 움직이셔아죠. 저는 기다리지 못하고, 간송미술관 이번 봄 전시 첫날 휘다녀 왔습니다. 5월 17일 토요일 3-4시 사이였는데, 미술관 1층에서는 사람들에게 조금 밀려서 그림을 보긴 했지만, 미술관 입구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야하진 않았습니다. 다행히도ㅡ
저도 얼떨결이기긴 하지만 쥐님 덕분에 귀한 미술관을 다녀온것 같고 이 글을 읽고 갔으면 더 좋았을껄 하는 생각이 드네요~^^
'무한히 늙은 옛날의 고요'를 보며 가벼워진 시간들을 바라봐야겠습니다. 사실, 그간 지나치게 분주했기도 했구요. // 세상엔 빛바래지 않는 것들이 있지요. 5년전 포스팅을 꺼내주신 쥐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다녀왔습니다. 오전 일찍은 좀 낫긴하지만, 여전히 사람이 많더라구요. 꼭 다녀오셔요 ^^
토요일 간송 번개때 이글 복사해서 입장전에 나누어 드려야겠네요,,정말 고맙습니다,,쥐님,,미루님..^^
전 수요일(어제,20일) 가려고 몇날 며칠을 기다렸건만 아들의 예방주사 맞아야 하는 하찮은(?) 그러나 학교와 관계되므로 꼭 해야만 하는 일로 인해 무산되고 말았답니다. 당분간 공황상태.. 아이들에게 바람을 너무 많이 불어넣은 탓에 매일 해야 하는 공부가 밀려서.... 음.. 많은 생각을 해야 또 움직일 것 같습니다. 이래저래 부서지는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으므로... 오늘 비가와서 영풍문고에 가려고 했더니 데려가고 싶은 아줌니들이 하나같이 다 약속이 있네요..히 히 히... 그래서 찬밥덩이로 남아 있기로 했어요. 오늘 간송 갔으면 좋았을걸 그랬나요? 혼자라도...근데 입이 너무 심심하면 돌아다니는 일조차 힘들어지니까...
겸재 그림속의 바람소리, 파도소리가 글을 통해 더욱 분명해지는 느낌입니다. 오래전 글을 다시 길어 올린 것은 잘하신 일~
앗, 이런! 오늘에야 발견하고 다시 읽어보는 나의 옛글, 나도 새롭군요.
앗, 지금에야 잘 읽었노라는 인사를 제대로 드립니다. 이 포스팅 읽구선 낮이고밤이고 자꾸만 신호를 보내는 통에 마음이 들썩들썩 했'었'습니다.('-었- '시제 잘 챙겨서 적었습니다.^^) // 미-----루님, 늘 건안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