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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고가 낳은 또 하나의 변호사를 소개합니다.
어려운 이웃을 보면 나 몰라라 하지 못하는 천성의 소유자로,
오랫동안 국선변호사로 일하다 지난 달 사무실을 연 오 성규(34회) 동문을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지금부터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자.
< 변호사 사무실에서 취재에 앞서... >
Q. 먼저, 자신을 소개해주세요.
저는 남원고등학교 34회 졸업생 오성규입니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교룡산성 아래에 있는 산곡동이라는 마을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소풍코스로 자주 가던 곳으로 익히 아실 겁니다.
저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평범한 가정에서 4녀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사실 장남이라고 말하기가 좀 부끄러운 것이 위로 누나가 네 명이 있습니다.
가정형편상 전주로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못한 것 때문에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방황도 많이 했지만 고3 담임선생님께서 잘 이끌어 주신 덕분으로 1991년에 전북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법대에 진학을 하게 된 동기는 어릴 적부터 제가 법조인이 되기를 바라시던 아버님의 영향이 컸습니다.
제가 입학 당시 전북대학교에서는 사법시험 합격자가 거의 나오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사법시험을 염두에 두지 않고 대학생활을 하였습니다. 1998년 8월 경 대학을 졸업 후 당시 IMF가 겹치면서 취업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법시험에 도전해 보기로 마음을 먹고 신림동에서 공부를 시작하였고, 2004년에 제46회 사법시험에 합격을 하게 되었습니다.
Q. 하는 일을 자세하게 소개한다면...
2007년부터 의정부에서 개인 변호사 사무실에서 고용변호사로 1년 정도 일을 하다가 2008년 3월에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국선전담변호사로 위촉되어 2012년 3월말까지 국선전담변호사로 일을 하였습니다.
국선변호인 제도는 빈곤 등으로 인해 변호인을 선임하여 방어권을 행사할 수 없는 형사사건의 피고인들에게 국가가 변호인을 선임하여 피고인에게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주는 것인데 국선변호료가 현실적으로 너무 적다 보니 대체적으로 일반 국선변호인들의 변론이 충실하지 못한 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법원에서는 2006년부터 국선전담변호사 제도를 도입하여 국선변호만 전담으로 할 수 있는 변호사를 위촉하여 국선변호 업무를 맡기고 있는데 저는 2008년부터 4년 동안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국선전담변호사로 형사사건의 피고인들의 변론을 해 왔습니다.
< 늘 자상한 아빠로 남기위해 애쓰는 딸기(?)아빠... >
Q. 최근 법무법인 사무실을 오픈하였는데...
2012년 3월 말경에 국선전담변호사로 일을 하던 중에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에 있는 남부종합법무법인에서 구성원 변호사로 영입 제의가 들어와서 2012년 4월 초경에 남부종합법무법인의 구성원 변호사로 개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법무법인의 구성원이지만 별산제로 개인변호사 개업과 다르지 않습니다.
Q. 그동안 국선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보람있었던 일도 많았을텐데...
네, 국선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무엇보다도 보람 있는 일은 억울한 누명을 쓴 피고인이 저의 변론으로 인해서 진실이 밝혀지고 누명을 벗을 때입니다. 사실 무죄를 받는다고 해서 피고인으로부터 사례를 받거나 국가로부터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지만 피고인에게 무죄가 선고될 때는 제가 마치 피고인이 된 것처럼 기쁩니다.
또 저에게 도움을 받았던 피고인들이 가끔씩 선물을 보내오거나 구치소에서 피고인으로부터 감사의 편지를 받을 때는 정말 보람을 느끼고 국선전담변호사라는 자부심을 갖게 됩니다.
< 아내를 만난 얘기가 나오자 활짝 웃는 오성규 동문 >
Q. 잠시 학창시절로 되돌아 가보겠습니다. 그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은사님은...
네, 그래도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을 맡으셨던 이철우 선생님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이철우 선생님은 영어를 담당하셨는데요. 모습과 발음은 전혀 영어 선생님 답지 않았던 기억이 나네요.
이철우 선생님은 별명이 많았는데 껍시, 크로마뇽인 등... 머리가 완전 곱슬이셨죠.
설마 선생님이 이 글을 보시지는 않겠지요?
제자들에게 잘 해 주시다가도 한 번 화가 나면 정말 무섭게 때렸는데요..하루는 반장과 부반장이 보충수업을 빠졌다가 걸렸어요. 선생님이 반장과 부반장에게 학교 뒷산에 가서 싸리나무를 30개 씩 끊어 오라고 했죠. 반장과 부반장이 끊어온 60개의 싸리나무를 10개 씩 잡고 엎드려뻗치게 한 채 때리기 시작했는데요. 싸리나무가 다 부서지면 또 다시 10개 씩 잡고 때리기를 계속 했지요. 나무 파편이 온 복도에 널렸어요. 선생님 팔뚝이 정말 람보 팔뚝처럼 터질 듯 부풀어 올랐지요. 선생님은 팔에 힘이 없어서 더 이상 때리지 못할 때까지 때리더군요.
그날 반장과 부반장이 저에게도 함께 빠지자고 했었는데 왠지 그날은 걸릴 것 같아서 안 빠졌죠. 옆에서 맞는 것을 지켜보면서 빠졌더라면 어떻게 됐을 지 생각하니 소름이 끼치더군요.
사실 제가 고3때 방황을 하면서 진학포기 반에도 있었고, 보충수업, 자율학습을 많이 빠지면서 선생님을 힘들에 했는데 그래도 선생님이 저를 잘 이끌어 주셔서 대학까지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결혼할 때 연락이 닿아서 선생님께서 결혼식에 참석해 주셨지요. 선생님 사랑합니다!
Q. 고교시절 추억들도 많았을 텐데 특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하나 소개해주세요.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선육회라는 봉사단체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남원고와 남원여고의 남녀 혼성 단체였지요. 물론 학교에서 정식으로 인정을 해 준 단체였습니다.
선육회에서는 독거노인 할머니 한 분을 돕고 있었는데요. 그 할머니 집이 남원여고와 남원고 딱 중간에 위치하고 있었어요. 학교가 끝나면 바로 그 할머니 집으로 달려가서 할머니와 놀아 주고 할머니 밥 챙겨 드리고, 빨래, 청소도 해 드리고 했지요. 거의 매일 같이 갔어요.
제가 고등학교 3학년 가을 쯤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는데요. 할머니 장례를 치르고 나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당시 할머니를 천주교 공동묘지에 안장을 했는데요. 돈이 없어서 묘지에 비석을 못 세웠어요.
대학 1학년 때 쯤 선배 두 분과 함께 새벽에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다가 할머니 묘소에 비석이라도 세워드려야 하지 않겠냐고 해서 순창 동계에 있는 비석 집에 몰래 가서 길가에 세워둔 비석을 훔쳐다가 새벽에 셋이서 비석을 들쳐 메고 산 속에 있는 공동묘지에 올라갔지요. 할머니 묘소 앞에 이름도 새기지 않은 비석을 세우고 내려왔어요. 말하자면 특수절도를 한 거죠. 부끄러운 과거입니다만 할머니 묘소에 비석이라도 세워드리고 싶은데 돈이 없었어요. 너무 철없는 행동이었지요. 나중에 법을 공부하다 보니 큰 범죄더라고요. 특수절도는 징역 1년 이상입니다.
< 가족과 함께 송도 LNG 야구장에서... >
Q. 모교에서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먼저 남원고등학교에 대한 자긍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 대한 자긍심이 없고, 학교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진다면 아무래도 스스로 기대치가 낮아지고, 목표가 불분명해 질 것 같아요.
사회에 나와 보면 후배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훌륭한 선배님들이 사회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자신의 분명한 비젼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비젼이 있어야 그 비젼을 이루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계획을 세우고, 노력할 수 있겠지요. 자신의 능력으로는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꿈을 가지기를 바래요. 현실에 안주하고, 실패를 두려워하면 스스로 설정해 놓은 한계선을 결코 뛰어 넘을 수가 없습니다. 큰 꿈을 가지고, 열심히 배우고, 연구하고, 노력하면 불가능할 것 같은 꿈이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Q. 가족 자랑 좀 해주시겠어요.
저희 형제가 4녀 2남입니다. 형제들이 다 가까운 곳에 살고 있어서 자주 모여요. 모이면 자주 싸우는데요. 왜냐하면 서로 안 받으려고 싸웁니다. 돈이나 선물을 주려고 하고 힘든데 왜 이런 걸 주느냐며 안 받으려고 하면서 옥신각신 할 때가 많지요. 형제들이 모이면 서로 칭찬하기에 바쁩니다. 웃음꽃이 만발하죠. 정말 한 번도 형제간에 다툰 적이 없습니다.
제 처는 대학교 후배인데요, 제가 신림동에서 고시공부하고 있을 때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어서 연애를 하게 되었어요. 집사람이 정말 착해요. 시부모에게 정말 잘하고, 시누이가 넷인데 시누이들과 갈등도 없어요. 얼마 전에는 시아버지가 집에 오셔서 주무셨는데 시아버지 다리를 주물러 드리더군요. 아버님이 너무 흐뭇해 하시더라구요.
두 딸이 있는데요. 큰 딸은 여덟 살, 작은 딸은 여섯 살이에요.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죠... 큰 딸은 노래를 잘 하구요. 작은 딸은 말을 잘해요. 얼마나 말이 많은지, 너무 시끄러워요.
< 다음날 변호에 앞서 서류를 검토하고 있는 오성규 변호사 >
Q. 그동안 살아오면서 가장 가슴에 담았던 화두는 무엇인가요?
우리 사회에 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있는데요. 고등학교 시절부터 재활원이나 고아원을 방문하여 봉사활동을 하면서 막연히 나중에 어려운 사람, 약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지금까지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돈을 좀 많이 벌면 기부도 하고 선행도 해야겠다고 하면서 저 자신의 앞 길 만을 생각하며 달려온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올해 3월경에 우연한 기회에 차인표, 신애라 부부가 홍보대사로 있는 컴패션이라는 단체를 알게 되었고, 저는 컴패션을 통해서 전 세계의 가난과 전쟁으로 고통 받고 있는 어린이들의 참상을 눈으로 목격하고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컴패션은 한국전쟁 후 미국의 선교사가 한국을 방문하였다가 가난과 질병으로 죽어가는 한국의 어린이의 참상을 목격하고, 미국에 돌아가서 한국 어린이들을 돕기 위하여 설립한 단체입니다. 그렇게 설립된 컴패션은 이제 전 세계에 전쟁과 기근, 가난으로 굶어 죽어가고 있고,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한 채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는 어린이들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저는 돈을 많이 벌어서 누군가를 돕겠다는 생각으로는 평생 아무도 도울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우선 어린이 두 명을 후원하기로 약정을 하였습니다.
앞으로 제가 가진 재능, 물질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이것이 저의 화두가 될 것 같습니다.
Q. 앞으로의 포부를 듣고 싶습니다.
정직하고 성실한 변호사가 되고 싶습니다. 변호사로서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도 해야겠죠. 물론 돈도 많이 벌고 싶습니다. 많이 벌어서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싶어요.
< 2011년 크리스천 리그에서 10승 4패로 다승왕에 오른 오성규 투수 >
Q. 야구를 잘 하는 것 같던데 특기는?
네, 3~4년 전부터 교회에서 야구를 하고 있는데 하다 보니 재미가 있더라구요. 크리스천 리그라는 사회인 야구대회에 참가하고 있구요. 투수로 활동하고 있는데 작년엔 10승 4패로 다승왕에 올랐답니다. 경기가 있을 때는 가족들이 구장에 함께 나와 응원도 하며 즐긴답니다.
Q. 끝으로 18번을 소개해주세요.
제가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출석한 지가 벌써 12년이 넘는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술을 마시면서 노래를 불러 본 기억이 거의 없는 것 같네요. 아마 믿지 않으실 수도 있겠는데요... 사실입니다.
첫댓글 바쁜 일정속에서도 선뜻 시간은 내어준 오성규 후배님~ 고마워요. 사업도 번창하시길...
바쁜 시간 내 주셔서 부족한 후배를 기억하시고 챙겨주셔서 고맙습니다.
후배님이 개업을 했다고 하니 참 좋네요. 늘 좋은 일하는 힘없는 사람에게 힘을 주는 멋진 변호사가 되시길.
네 감사합니다.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자랑스런 후배님 진심으로 개업을 축하합니다 또한 집사람이 너무 훌륭하십니다
시아버지 다리를 주물러 드렸으니 아버지께서 얼매나 이쁘게 보시겠어요 아뭏튼 좋으시겠읍니다
또한 부탁하나 하리다 변호사 업무를 보시면서 돈많고 권력있고 힘있는 강자보다
힘들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챙겨주시고 역지사지 하는 마음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변호사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네 선배님 꼭 명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후배님이 야구를 하신다니 더욱 반갑네요^^ 뭐라 덕담해야 할까요?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ㅎ
혹시 SK에 계시는 선배님이신지요? 감사합니다.
남부지방법원주변에 사건은 모두 후배님께서 수임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꼭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박지훈 변호사와 더불어 오성규 변호사가 있어 우리 동문회가 든든합니다. 개업 축하하고 원하는 바 꼭 이루시길 바랍니다.
인터뷰 축하합니다.
회장님 감사합니다. 보내주신 화분은 잘 받았습니다. 잘 키우려고 신경 많이 쓰고 있습니다.
개업을하신 후배님 축하드리구요 사건이 있으면 연결하는데 보탬이 되어보겟습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처음 볼때 참 선한 인상을받았습니다 훌 륭한 후배님이 계셔! 자랑스럽습니다 근간에 식사 한번 해야죠?
선배님 감사합니다. 후배들 잘 챙겨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식사 대접하겠습니다.
선배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든든한 선배님들이 계셔서 너무 좋습니다.
늦게나마 후배님 개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리고..항상 정의로운 변호사님..그리고 행복한 가정을꾸리시길 기원드림니다...
인사 늦었네...건강하시고..다복한 가정이 부럽네...기회 되면 함 찾아가리다..
이제는 옆에 있어도 자주 못보네
인사가 늦었지만 돈도 많이 버시고 좋은일도 많이 하시고
가정에도 충실하시고 모두가 인정하는 멋진 변호사님이 되시길 기원드려요
선배님 멋지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