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
삼계가 다 고통 속에 있으니
내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셔서 동서남북으로 일곱 걸음을 떼어놓으시기 전에 읊으신 게송입니다.
이 게송에는 일체 중생의 마음속에 똑같이 갖추고 있는 근본자리, 부처님과 똑같은 성품, 이것을 마음이라고 하기도 하고 주인공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름을 어떻게 붙이든 상관없이 그 근본자리에서 보면 모두가 다 존귀하다는 뜻입니다. 불교를 믿었든 믿지 않았든, 사람으로 태어났든 사람으로 태어나지 못했든 간에 근본자리에서는 일체 중생이 모두가 다 평등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삼계의 모든 중생들이 다 고통 속에 허덕이고 있으니 내 마땅히 편안하게 하리라. 즉 제도하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일체 중생이 다 존귀하다고 말씀하셨듯이, 불교는 구원받는 종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구원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종교입니다. 정진해서 깨닫는다는 것은 자신이 이미 깨달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지, 본래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참선하고, 염불하고, 경전을 독송하고 참회하는 등의 수행을 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다 구원되어 있어서 하나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것입니다.
근본자리에서는 일체중생이
모두 평등하고 존귀함 알아야
부처님께서는 룸비니 동산에 중생들을 위해 몸을 나투셔서 모든 중생들이 모두 다 존엄하다는 것을, 스스로가 구원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시켜 주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수도 없이 많은 종교가운데 부처님의 가르침, 불교만이 갖는 탁월성은 과연 무엇일까요?
첫째로 부처님의 가르침은 평등주의입니다. 누구나 갈고 닦으면 부처님이 될 수 있으며, 그 때문에 부처님의 문중에서는 불평등이란 존재치 않습니다. 사회 모든 계급의 사람들은 부처님 앞에서 평등합니다. 인간의 귀천과 계급의 높낮이는 모두 스스로의 행위에 의해 그리되는 것이지, 태어나면서 정해진 것은 아닙니다.
둘째는 부처님 가르침의 근본은 평화주의에 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의 이상은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미칠 수 있는 정신적, 도덕적 감화력에 의한 사회개혁을 이상으로 하고 있으며, 강권에 의한 사회개혁을 원치 않습니다.
셋째로, 부처님의 가르침은 보편주의의 종교란 점입니다. 어느 누구나 부처님의 말씀 가운데로 들어설 수 있고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습니다.
넷째로, 철저한 현실 긍정주의라 할 수 있습니다. 진실로 종교는 산 사람과 죽은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균등한 분배를 위해 끊임없이 베푸는 마음을 지녀야 하며 지극한 마음으로 영원한 부처님의 말씀을 정신의 지주로 삼아 법답게 베풀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치우치지 않는 마음, 중도주의(中道主義)에 있습니다. 부처님은 항상 극단에 치우치는 인간의 마음을 경계하셨습니다. 어느 한편에 쏠리게 되면 적이 생기게 되고, 싸움이 일게 마련이라 하셨습니다. 중도는 적당이 아닙니다. 불편부당(不便不當)한 차원입니다. 이같은 불교의 탁월성은 어느 종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가르침입니다. 무자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다시 한 번 부처님 오신 참뜻을 마음속에 되새기고, 부처님의 말씀 가운데 스스로를 반조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선묵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