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 최대 너비인 곳에서 강과 같은 너비로 펼쳐져 있으며, 깎아지른 절벽 위에서 최대 108m의 낙차를 이루며 떨어진다. 이 폭포를 처음 발견한 영국 탐험가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따서 빅토리아 폭포라 불렀다.
폭포의 동쪽 끝에는 이스턴 캐터랙트가 절벽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 절벽은 서쪽에서 암체어라 불리는 저지대와 경계를 이룬다. 암체어에서 서쪽으로 레인보 폭포가 뻗어 있고, 그 옆에 호스슈 폭포가 있다. 호스슈 폭포를 지나 나마카브와 섬과 캐터랙트 섬 사이에 메인 폭포가 있다. 캐터랙트 섬 다음에는 데블스 캐터랙트라는 좁은 절벽이 있다.
보일링 포트 바로 아래, 폭포에 거의 직각방향으로 폭포교가 놓여 있는데, 잠비아와 짐바브웨 사이를 오가는 기차·자동차·보행인이 이 다리를 이용한다.
빅토리아 폭포 ⓒ pixabay | Public Domain
폭과 깊이가 나이애가라 폭포
폭포에 가까워져도 강의 흐름이 빨라지지 않으나, 우렁찬 폭포소리와 물안개로 폭포에 다가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때문에 칼롤로로지족
폭포의 입구는 가장자리를 따라 자리잡고 있는 섬·저지대·갑 등에 의해 몇 부분으로 나뉜다. 폭포의 동쪽 끝에는 이스턴 캐터랙트(Eastern Cataract)가 절벽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것은 썰물 때 대부분의 모습이 드러난다. 이 절벽은 서쪽에서 암체어(Armchair)라고 불리는 저지대와 경계를 이루며 이 저지대가 건기에는 깊은 물웅덩이가 된다.
암체어에서 서쪽으로 레인보(Rainbow) 폭포가 뻗어 있고, 그 옆에는 또다른 절벽이 있어 호스슈(Horseshoe) 폭포를 이루고 있다. 호스슈 폭포를 지나 나마카브와(옛 이름은 리빙스턴) 섬이 있으며 나마카브와 섬과 캐터랙트(옛 이름은 보아루카) 섬 사이가 균열되어 형성된 메인(Main) 폭포가 있다. 캐터랙트(Cataract) 섬 다음에는 데블스 캐터랙트라는 좁은 절벽이 있는데, 건기가 한창일 때도 꽤 많은 물이 떨어진다.
빅토리아 폭포의 물은 넓은 웅덩이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폭이 25~75m인 깊은 틈으로 모이는데, 이 틈은 폭포의 절벽과 같은 높이의 반대편 절벽으로 형성된 것이다. 폭포 반대편의 벼랑을 따라 레인 포리스트(Rain Forest)라는 나무가 우거진 지역이 나타나며 폭포에서 물이 튀어 1년 내내 푸른빛을 띤다. 이 폭포벽의 선반처럼 튀어나온 부분이 폭포의 서쪽 끝에서 레인보 폭포 반대편, 좁은 협곡을 내려다보는 데인저 포인트(Danger Point)까지 뻗어 있다.
사나운 폭포수의 유일한 배수구인 이 협곡은 폭이 65m 미만이고 길이가 120m인데 잠베지 강물 전체가 모이는 곳이며 이 협곡의 끝은 보일링 포트(Boiling Port)라는 깊은 웅덩이로, 밀물 때에는 이곳에서 물이 거세게 소용돌이친다. 보일링 포트 바로 아래, 폭포에 거의 직각방향으로 폭포교(Falls Bridge)가 놓여져 있는데, 이 다리는 영국 통치령을 통과해 남쪽에서 북쪽까지 아프리카 대륙 전체를 종단하려는 의도로 계획된 케이프-카이로 철도 건설사업의 일환으로 세워진 것이다. 잠비아와 짐바브웨 사이를 오가는 기차·자동차·보행인이 이 다리를 이용한다.
유럽인으로서 이 폭포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영국 탐험가 데이비드 리빙스턴
이 지역을 지배하던 로지족 군주 레와니카는 1900년에 영국남아프리카회사(British South Africa Company)의 대표들과 '레와니카 양도조약'(Lewanika Concession)을 맺었는데, 1901년 조약이 비준된 후 유럽인들이 남쪽에서 이동해오기 시작했다. 1905년에 폭포교가 완성되었고 1904년 불라와요에서 철도가 들어왔으며, 1938년에는 '제3협곡'의 사일런트풀에 발전소가 세워졌다. 잠비아 정부는 수력발전소를 포함해서 이 회사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이권을 사들였다.
전세계의 관광객들이 찾는 폭포 그 자체뿐만 아니라 빅토리아 폭포 국립공원(짐바브웨), 리빙스턴 동물보호구역(잠비아)에는 크고 작은 사냥용 짐승들이 많으며 위락시설도 갖추고 있다.